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21화 (32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21화

그리핀의 날갯짓(4)

“……저보고 날아보라고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아슈미르에게 되물었다.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에도 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거죠?”

“저 작은 그리핀들에게 비행에 대한 동기를 심어주려면 시현 님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저들은 시현 님을 부모처럼 믿고 따르니까요.”

그리와 피니는 나를 부모라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직접 하늘을 날면 자연스럽게 따라올거라는 이야기.

그녀의 대답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였다.

“정말 죄송한데. 저는 등에 날개도 없고, 엄청난 마법을 사용할 줄도 모르는 평범한 인간입니다만?”

날아달라고 갑자기 부탁한다고 해서 날 수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을까?

아슈미르도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두지 않았는지 슬쩍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해결책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죠? 역시 이건 너무 무리…….”

“하지만 다른 마족분들이라면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다른 농장 식구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농장 식구들은 벌써 엄청난 흥미를 보이는 중이었다.

“그거 재밌겠는데?”

“시현 님과 그리핀들의 관계성을 생각하면 아주 합리적인 의견입니다. 아주 흥미롭군요.”

“오라버니가 가진 아티팩트들을 개조하면 금방 비행 장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냐, 아냐! 날개 부분도 따로 만들어서 멀리까지 활공할 수 있게 만들자.”

안드라스와 릴리아는 벌써 비행 장치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다른 농장식구들과 심지어 카네프마저도 나의 비행에 흥미를 드러냈다.

“내가 굳이 날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보는 게…….”

“아냐, 시현 오라버니! 내가 밤을 새워서라도 금방 비행 장치 만들어줄게!”

“저기 너무 무리해서 안 해도 되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꼭 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런 걱정 한 적 없는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를 도우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식구들에게 차마 그 말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의 관심은 ‘그리핀의 비행’에서 ‘임시현의 비행’으로 순식간에 옮겨갔다.

* * *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

그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자 힘든 도전의 영역이었다.

이제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시대가 되고. 비행은 꿈이 아니라 평범한 현실이 돼버렸다.

그런데 여기!

마계의 외딴곳 어느 농장에서.

인간의 오랜 꿈을 다시 실현하려는 열망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직 인간의 자유로운 비행을 위해, 농장의 마족들은 밤낮으로 힘을 모아 비행 장치를 만들었다.

“…….”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이곳에 유일한 인간인 내가 이 상황이 탐탁지 않다는 것…….

“짜잔! 드디어 그리핀 3호 완성!”

릴리아는 안드라스와 함께 완성한 비행 장치를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비행 장치는 등으로 맬 수 있게 설계됐고. 안쪽에서 커다란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형태였다.

‘그리핀 3호’를 본 은율이와 새끼 그리핀들이 관객이 된 것처럼 신나게 환호했다.

“오오!”

-삐이이!

-삐이이!

“에헴! 비록 그리핀 1호, 2호는 약간의 설계 오류로 실패했지만, 그리핀 3호는 그 문제점들을 완벽하게 보완해냈지. 이것만 있으면 천족이 부럽지 않다 이 말씀이야!”

“와아아! 대단해. 릴리아 언니!”

눈을 반짝이며 계속해서 감탄을 터뜨리는 은율이.

반면에 나는 길거리 약장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표정이 더욱 흐려졌다.

내 반응을 읽은 안드라스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시현 님.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안전에 대해서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설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안전 문제를 검증했고. 시험 비행도 여러 번 끝냈습니다.”

“안드라스 선배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직접 ‘그리핀 3호’를 사용해 비행했는데 전혀 문제없었어요.”

순진한 표정의 우르키가 들뜬 목소리로 ‘그리핀 3호’를 칭찬했다. 그가 ‘그리핀 3호’의 시범 비행했다는 건 나도 직접 봐서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리핀 1호’, ‘그리핀 2호’ 때, 우르키가 추락하는 모습도 직접 봐버렸다는 것…….

물론 천족인 우르키는 자신의 날개를 사용해 여유롭게 위험을 탈출했지만,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아찔한 장면이었다.

과거에 그 아찔했던 추락장면을 떠올리며, 꺼림칙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누군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혹시 무서워서 그러는 거냐?”

“…….”

“큭! 진짜로 무서운가 보네.”

카네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했다.

“으으. 사장님은 좀 들어가 계세요. 평소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시지도 않는 분이…….”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을 놓칠 수 있나. 여기 은율이랑 같이 앉아서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지켜볼 거야. 그치?”

“응!”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있는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진짜 은율이만 없었다면 한 대 쳐버리고 싶은 얄미움이었다.

“끄응…….”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운 게 맞았다.

우르키가 비행 장치로 날아다니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끝과 발끝이 저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날아오른다?

유원지의 놀이기구들도 큰맘 먹어야 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정말 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그런 걸 가지고 놀리세요?”

“쩝. 훨씬 무모한 상황에서는 겁도 없이 나서면서. 이런 거로 망설이니까 신기해서 그러지.”

리아네가 매섭게 카네프를 밀어내며 나를 위로했다.

“시현 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리와 피니도 중요하지만, 저는 시현 님의 안전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옆에 있던 아슈미르도 한마디 보탰다.

“저도 무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오.”

나는 말 없이 ‘그리핀 3호’를 바라봤다.

천재적인 슈나르페 남매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것이니, 그 성능과 안전에는 확실히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제는 내가 어떤 선택만 남아 있었다.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내 옆으로 그리와 피니가 다가왔다.

-삐이익?

-삐이, 삐이!

내가 슬퍼 보였는지 주변을 맴돌며 울음소리를 냈다. 단순히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걸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위로하려는 듯 보였다.

그런 녀석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

슈나르페 남매가 열심히 비행 장치를 만들어줬고, 아슈미르와 우르키도 위험하지 않게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나 혼자 겁먹고 어물쩍거릴 수 없었다.

새끼 그리핀들이 정말 내 영향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의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굳게 다짐한 나는 안드라스와 릴리아의 도움을 받아 ‘그리핀 3호’를 장착했다. 등에서 느껴지는 비행 장치의 묵직함에 조금씩 가슴이 떨렸다.

“시현 오라버니. 내가 설명해준 건 기억하고 있지?”

“다 기억하고 있어.”

“저기 언덕 아래로 빠르게 뛰어 내려가는 거야. 그다음에는 전부 알아서 될 거야.”

릴리아의 말에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파이팅!”

“시현 선배, 힘내세요!”

“큭큭! 저 녀석 얼굴 새하얘진 것 좀 봐.”

“카네프 님은 좀 조용히 하고 계세요! 시현 님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거에요!”

농장 식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가파른 언덕 위에 섰다. 아래쪽에서 안드라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시현 님! 이제 출발하셔도 됩니다!”

후우우…….

뻣뻣해진 팔다리를 가볍게 흔들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망설임이 더 커지기 전에 언덕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타다다닷!

생각보다 무거운 그리핀 3호 때문인지 쉽게 속력이 붙지 않았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며 온 힘을 다해 언덕을 내달렸다.

어느새 언덕 절반.

‘이대로 땅바닥에 내리꽂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기려는 순간.

-휘이이잉!

귓가에 바람 소리가 강하게 들려오더니, 시야가 어지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내 몸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진짜 날았어!”

“시현 님∼!”

-삐이익!

-삐이익!

농장 식구들의 목소리와 그리핀들의 울음소리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부르는 소리는 거센 바람에 묻혀버렸다.

처음에는 이렇게 높이 날고 있다는 불안감과 쉴 새 없이 몸을 스치는 거센 바람에 잔뜩 긴장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긴장이 풀어지더니, 가슴을 가득 메운 불안감은 해방감과 신비함으로 변해갔다.

“와아…….”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점처럼 아주 작게 보였다. 넓은 농장 시설이 한 눈에 보였고, 멀리 딸기밭과 엘든 마을의 풍경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렇게 높은 하늘에서 바라본 농장과 마을의 풍경은 굉장한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치직…… 시현 오라버니, 내 말 들려?

“잘 들려!”

-이제 조금씩 그리핀 3호를 직접 조종해 봐. 하는 법은 기억나지? 너무 고도를 낮추거나 높이지 말고. 멀어지면 내가 미리 이야기해 줄게.

“알았어!”

나는 릴리아에게 미리 설명을 들은 대로 그리핀 3호의 조종을 시작했다. 손으로 장치를 조작해 약간의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펄럭!

-휘이이잉!!

날개가 움직이더니 내가 의도한 대로 자유롭게 방향을 전환했다.

처음에는 방향을 전환할 때마다 크게 흔들렸지만, 몇 번 더 시도한 뒤에는 금방 바람 타는 요령을 익힐 수 있었다.

-잘했어. 그렇게 하면…… 어? 어어?!

“릴리아, 무슨 일이야?”

-시현 오라버니! 밑, 밑을 봐!

“밑?”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아래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넓게 펼쳐진 초원과 숲 말고는 특별한 게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하며 다시 릴리아를 찾으려던 그때.

강한 바람 소리를 뚫고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어?!”

흐릿하지만 분명히 들려오는 울음소리.

나는 최대한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살폈다.

그곳에는 작은 그리핀들이 열심히 날갯짓하며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야, 피니야!”

-삐이이익!

-삐이이익!

반가움이 담긴 내 부름에 두 녀석은 다시 한번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