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22화
그리핀의 날갯짓(5)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 위해 열심히 날개를 움직이는 그리와 피니.
첫 비행인 것 치고는 두 녀석 모두 그럴듯한 모습이었지만, 비행 장치의 속도를 따라오기에는 조금 힘에 부치는 듯했다.
나는 장치를 조작해 속도를 낮추고, 고도를 살짝 내렸다.
그러자 새끼 그리핀들은 곧바로 내 뒤쪽으로 따라붙어 편대를 이루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삐이이익!
-삐이이익!
내 칭찬에 두 녀석은 큰 울음소리로 화답했다.
뒤쪽에 합류한 덕분에 새끼 그리핀들은 한결 편해진 모습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나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끼며 녀석들과의 비행을 즐겼다.
하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의 흐름을 의식하며, 그 거대한 흐름에 온몸을 자유롭게 맡겼다.
이렇게 앞장서서 비행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내가 그리핀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을 따라 초원을 넘어 끝이 보이지 않는 숲 위를 날아보기도 하고, 엘든 마을의 주민들이 아주 작게 보이는 곳까지 둘러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비행 장치의 동력이 끝날 때까지 이 자유로움을 계속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비행 장치의 힘을 빌린 것과는 다르게 계속 날개를 움직였던, 그것도 생에 첫 비행을 하는 새끼 그리핀들은 조금 힘든 기색이 엿보였다.
목표했던 그리핀들의 비행은 성공.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음 한편에 아쉬움은 금방 털어내고, 비행 방향을 농장 쪽으로 선회했다.
다시 보이기 시작한 농장.
나와 새끼 그리핀들은 바람을 타고 활공하며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넓게 펼쳐진 초원을 스치듯 비행하다가 부드럽게 땅에 내려앉았다.
두 다리로 땅을 밟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리에 족쇄를 매단 것 같은 답답함도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끼 그리핀들을 바라봤다. 둘은 훨씬 더 자연스럽게 착지를 끝낸 뒤 내 쪽으로 달려왔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첫 비행의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그리와 피니는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울음소리를 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신난 모습이었다.
“둘 다 잘했어. 이렇게 잘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감격한 얼굴로 두 그리핀을 껴안았다.
껴안은 팔에서 ‘파르르!’하고 날개의 떨림이 전해졌다.
나를 따라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날갯짓했다는 게 느껴져 마음이 찡해졌다.
“앞으로 자주 비행 연습하자. 나중에는 너희들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게. 알았지?”
-삐이익!
-삐이익!
나는 그렇게 한동안 그리핀들을 꼭 껴안고.
생애 첫 비행의 기쁨과 떨림을 함께 나눴다.
* * *
-툭. 툭.
-부우우. 부우우.
커다란 야쿰이 내 어깨 쪽에 얼굴을 들이밀며 울음소리를 냈다. 당연히 위협은 아니고 내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다.
“알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이제 다 끝났으니까.”
-부우우우.
“진짜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오랜 기다림에 안달이 난 야쿰을 달래며 하던 일을 계속 이어나갔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부우우…….
손에 들린 커다란 브러시가 등을 쓸고 지나가자, 내 앞에 있던 야쿰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울음소리였다.
“우르키! 반대 쪽도 다 끝났지?”
“넵! 시현 선배님!”
나는 브러시를 내리고 야쿰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자∼! 손님 끝났습니다. 뒤에 밀린 손님이 많으니 슬슬 자리 비켜주실까요?”
-부우우. 부우우.
눈앞의 야쿰은 빗질이 더 받고 싶은지 자리에 버티고 섰다. 마음 같아서는 녀석이 만족할 때까지 빗질을 해주고 싶지만,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야쿰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좀 더 엄해진 목소리로 타일렀다.
“어허! 이렇게 떼쓰면 나중에 간식 안 챙겨줄 거야?”
-부우우우…….
녀석은 덩치에 안 어울리게 잔뜩 시무룩해져서 축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기다리고 있던 야쿰이 자연스럽게 걸어들어왔다.
어후…… 오랜만에 야쿰 빗질 좀 해주려고 했는데. 역시 장난 아니게 힘드네.
최근에 야쿰 무리가 축사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몇몇 야쿰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해결해주고 싶었지만, 대부분 날씨 탓으로 생기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스트레스받는 야쿰들을 위해 전신 빗질 서비스를 준비했다.
임시방편이긴 해도 야쿰들이 워낙 내 빗질 받는 걸 좋아해서 효과는 탁월했다.
몸은 힘들어도 행복해하는 야쿰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함이 잔뜩 느껴졌다.
“으으. 그나마 우르키,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
“너 아니면 농장에서 이렇게 야쿰 빗질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아무래도 농장의 마족 모두가 야쿰에 익숙해지긴 했어도 이렇게 가까이 빗질하는 건 난색을 보였다.
그나마 가능한 건 어린 야쿰들을 빗질해 주는 정도?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천족인 아슈미르와 우르키는 야쿰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었다. 천족에 대한 야쿰들의 경계심이 줄어든 뒤에는 아무렇지 않게 축사를 들락날락할 정도였다.
덕분에 내가 전담하다시피 했던 야쿰 돌보는 일이 아주 수월해졌다. 오늘 빗질해 주는 일도 우르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뻗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우르키는 쑥스러워하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저는 특별히 한 게 없는걸요. 야쿰들이 워낙 시현 선배님을 잘 따라서 어려운 일은 없었어요.”
“어쨌든 도움이 많이 됐다는 건 사실이니까. 정말 고마워.”
“별말씀을요.”
천족 견습 감시관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순박한 미소를 보였다. 나도 싱긋 웃으며 계속 빗질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빗질만 몇 시간.
우리는 마지막 야쿰의 빗질을 끝내고, 반쯤 녹초가 된 상태로 축사를 빠져나왔다.
“고생하셨어요, 시현 선배. 우르키 너도 고생했어.”
축사에 나온 우리를 엘프리드가 맞이했다. 그는 야쿰의 빗질을 돕지 못해 조금 미안한 표정이었다. 나는 일부러 지친 기색을 숨기며 다른 화제를 꺼냈다.
“너는 딸기밭에 다녀오는 거야?”
“네, 오늘 수확하는 날이어서 도와주고 왔어요. 딸기 좀 가져왔는데 드셔보실래요? 방금 막 수확한 거예요.”
엘프리드는 작은 딸기 바구니를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됐어. 우르키나 챙겨줘.”
손사래를 치며 뒤에 있던 우르키를 가리켰다. 나와는 달리 우르키는 딸기 바구니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 이거 다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래. 많이 가져왔으니까 다 먹어도 돼.”
“감사합니다, 엘린 선배님.”
우르키는 양손으로 딸기를 집어 하나씩 입으로 가져갔다. 조금 전까지 피곤이 가득했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렇게 맛있어?”
“네! 딸기는 저쪽 세계에서도 먹어봤었는데. 이곳의 딸기는 특별히 맛있는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우르키는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며 대답했다. 그 반응에 나와 엘프리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흠흠.
내 영지에서 재배한 딸기가 특별하긴 하지.
두 사람이 사이좋게 딸기를 나눠 먹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 먼저 농장 건물로 향했다.
“고생하셨어요, 시현 님.”
현관문 앞에서 리아네가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먼저 씻으실 거죠? 갈아입을 옷이랑 수건 준비해뒀어요.”
“고마워요, 리아네 씨.”
언제나 한결같은 그녀의 배려에 편안함을 느껴졌다.
“그럼 저는 씻고 내려올게요.”
“아! 시현 님.”
“예?”
“바쁘신 것 같아서 말씀 안 드렸는데. 지금 발레리안 님께서 여기 와 계십니다.”
“리안 씨가요? 미리 연락도 없이 무슨 일로 오셨데요?”
“저도 어떤 용무로 방문하셨는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니, 시현 님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그래요?”
잠시 최근에 발레리안과 만났던 일을 떠올려봤지만, 딱히 특별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빨리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리아네에게 부탁했다.
“금방 씻고 내려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실래요?”
“알겠습니다. 발레리안 님께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리아네와 대화를 끝낸 뒤.
나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몸을 씻어내고 깨끗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빗질이 조금 무리였는지 피곤함과 나른함이 몰려왔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졸음을 몰아내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아네는 발레리안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런데 평소에 손님을 맞이하던 곳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이쪽은 사장님 방 인데요?”
“발레리안 님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별일이네요.”
거기는 손님을 맞이하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곳인데…….
잠시 의아함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리아네를 따라 카네프의 방으로 향했다.
-똑. 똑. 똑.
“시현 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와.
리아네는 카네프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카네프와 발레리안, 그리고 안드라스까지 모습을 보였다.
“오셨군요, 시현 씨.”
“리안 씨, 갑자기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세요?”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안드라스 씨도 계셨네요?”
“네, 시현 님.”
나는 두 사람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카네프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적거리며 인사를 대신에 했다.
“간식과 차를 준비해드릴까요?”
“리아네 양. 차는 준비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것보다 여기 모인 사람들끼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발레리안은 말끝을 흐리며 리아네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녀는 잠시 몸을 움찔 떨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리아네가 빠져나가고 방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를 쫓아낼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나는 역시 침묵을 이어나갔다.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안드라스였다.
“흠흠. 여기에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는 저 때문입니다. 조용히 의논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여러분들을 모셨습니다.”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가던 그는 슬쩍 내 쪽을 쳐다보았다.
“시현 님. ‘아미 룬드그 바르바토스’ 기억하십니까?”
아미 룬드그 바르바토스……?
나는 뒤늦게 이름의 주인을 떠올렸다.
“아! 기억하죠. 바르바토스 가문 출신에. 안드라스 씨와는 마법사단 직장 동료이면서 몰래 사귀…….”
“거, 거기까지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안드라스는 진지한 표정을 깨뜨리며 황급히 뒷말을 막았다. 그의 당황하는 모습을 나와 발레리안은 장난스럽게, 카네프는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 이야기는 왜……?”
내 물음에 안드라스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다시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젯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결심했습니다.”
“……?”
“저는 그녀에게 정식으로 교제를 요청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