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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24화 (32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24화

마족의 고백(2)

“하아…….”

나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생각보다 데이트 계획 짜는 게 쉽지 않네요.”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주겠다고 자신만만했는데.

막상 계획을 짜려고 하니 좋은 생각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발레리안은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며 끙끙대는 나를 가끔 힐끗 쳐다봤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그래요. 안드라스 씨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인데요.”

“인간, 마족 할 것 없이. 고백은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제가 봤을 때 두 사람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거든요.”

“물론 그렇긴 한데……. 기왕 준비할 거면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게 좋잖아요. 고백이 성공한다면 두 사람에게는 그만큼 의미 있는 날이 될 테니까요.”

나는 불퉁한 얼굴로 발레리안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리안 씨도 얼른 와서 좋은 의견 좀 내봐요.”

“저 말입니까? 저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만 하느라 그런 쪽은 잘…….”

“아! 거짓말하지 마세요. 종종 여성분들이랑 만나는 거 다 알고 있거든요!”

“하하하! 알고 계셨습니까?”

발레리안은 머쓱한 감정을 숨기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개인적인 일이라 굳이 캐묻지 않았을 뿐이에요. 매번 바쁘시다고 하셔서 진짜 그런 줄 알았는데.”

“정말 바쁜 건 사실입니다. 제가 맡은 업무의 특성상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되다 보니, 그 업무의 연장 느낌으로 사교활동을 좀 했을 뿐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여성분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미인이시던데요?”

“하하! 우연입니다, 우연.”

그는 한 손을 휙휙 흔들며 능글맞게 대답했다. 괜히 심술이 나서 끝까지 캐물어 보려다 그만뒀다. 지금은 데이트 계획을 준비하는 게 더 급했다.

“아무튼, 와서 좀 도와주세요. 사교활동을 자주 하는 리안 씨!”

결국, 발레리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으며 정리한 노트를 살펴봤다.

“꽤 조사를 많이 하셨군요?”

“일단 인터넷에 유명한 곳 위주로 적어왔어요. 가까운 거리에 갈 수 있는 관광지, 맛집, 커플 명소…….”

안드라스와 아미가 이곳에 머무르는 시간은 반나절이 조금 넘는 시간. 당연히 너무 먼 곳까지 갈 수 없으니, 가까운 곳 위주로 일정을 짤 계획이었다.

노트를 살펴보던 발레리안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조금은 여유롭게 계획을 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

“평범한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당연히 이런 곳들을 추천하겠지만. 안드라스와 아미 양은 느낌이 조금 다르잖아요.”

“…….”

나는 곧바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저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았어요. 커다란 건물, 평범하게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자동차, 스마트폰. 전부 다 신기해 보였거든요.”

“아…….”

“굳이 세세하게 일정을 계획하는 것보다는. 여유롭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두 사람이 흥미를 보이는 쪽을 안내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흐음. 정말 그렇네요.”

발레리안은 그 뒤에도 여러 방면에서 도움 되는 조언을 계속해 주었다.

“제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식당들이에요. 이 정도면 처음 맛보는 음식이더라도 별로 부담 없을 거예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은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이벤트 아니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데이트 계획을 하나씩 세워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완성된 데이트 계획을 안드라스에게 전했다.

“정말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시현 님!”

그는 가져다준 데이트 계획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딱히 문제 삼는 곳 없이 이대로 준비하면 될 것 같다며 설렌 표정을 지었다.

* * *

“시현 님. 저 이상하지는 않습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정말 멋있어요.”

안드라스는 평소의 음침한 로브 차림이 아니었다. 셔츠와 화사한 색감의 스웨터, 그 위에는 겨울 코트를 껴입었다.

겨울에 흔히 볼 수 있는 옷차림이지만, 생각보다 옷을 잘 소화하는 커다란 키와 마족 특유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줬다.

정작 본인은 새로운 옷차림이 어색한지, 몇 번이고 나에게 이상하지 않냐고 물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진짜 멋있어요, 안드라스 선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엘프리드와 우르키도 역시 멋있다고 칭찬하며 그의 자신감을 북돋아 줬다.

“사장님도 한 말씀 해주세요. 안드라스 씨의 옷차림 어떤 것 같아요?”

“뭐…… 매일 작업실에 틀어박힐 때보단 이게 훨씬 낫네.”

카네프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옷차림에 대해서는 좋다는 의견을 남겼다. 덕분에 안드라스는 조금 자신감을 되찾고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의 평온함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다다다닷!

“아빠, 아빠!”

은율이가 나를 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곧바로 내 품에 안긴 은율이를 보며 말했다.

“은율아, 계단에서는 조심해야지. 그렇게 뛰어다니다 넘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에헷! 괜찮아. 나는 안 넘어져.”

실제로 은율이는 평범한 인간 여자아이보다 몸놀림이 훨씬 날렵했다.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어도 아빠의 눈에는 항상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2층은 준비 다 끝났어?”

“응! 다 끝났어. 새로 온 언니가 엄청 예뻐!”

은율이가 ‘새로 온 언니’라 표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곳에 있던 모두가 금방 눈치챘다.

그리고 잠시 후, 준비를 끝마친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기…… 안녕하세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아미 룬드그 바르바토스’. 그녀 역시 안드라스처럼 평소와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니트 원피스에 분홍색 자켓.

긴 목도리와 예쁜 구두.

아담한 키와 귀여운 옷차림이 잘 어울려, 마치 풋풋한 대학생인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어? 화장도 하셨네요?”

“네…… 발레리안 님께서 도와주셨어요.”

나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뒤에 있던 발레리안을 바라봤다.

“리안 씨. 여자 화장도 할 줄 아셨어요?”

“기초적인 화장만 좀 도와드린 겁니다. 아미 양이 워낙 아름다우셔서 그마저도 불필요해 보였지만요.”

발레리안의 칭찬에 아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힐긋힐긋 눈동자를 돌리며 안드라스의 반응을 살폈다.

뒤쪽에 있던 리아네가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불쑥 앞으로 나섰다.

“안드라스 님, 오늘 아미 아가씨 어때요? 옷이 정말 잘 어울리죠?”

멍하게 쳐다보던 안드라스가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아…… 저기…….”

리아네가 정말 타이밍 좋게 질문을 던졌는데도, 안드라스는 마치 언어 회로가 고장 난 로봇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덜덜거리고 있는 안드라스를 보며…….

‘벌써부터 이래서야 나중에 고백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앞섰다.

엘프리드와 우르키는 약간 한심한 표정을, 발레리안은 고개를 돌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아냈다.

안드라스의 이상한 모습에 아미의 표정이 어두워지려고 할 때쯤, 참다못한 카네프가 신경질적으로 안드라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퍼억!!

“컥!”

물리적인 충격의 효과로 안드라스의 눈빛이 순간 또렷해졌다. 그리고 눈치가 전혀 없지는 않았는지 뒤늦게라도 입을 열어 칭찬을 시작했다.

“너무 잘 어울립니다, 아미 양.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아, 아니에요. 안드라스 님이야말로 오늘 너무 멋지세요.”

“크흠…….”

“…….”

두 마족은 서로를 칭찬하면서 부끄러움에 눈빛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캬아! 선남선녀가 따로 없네.

함께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풋풋함이 전해졌다. 주책맞은 아저씨가 된 것처럼 내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카디스 영주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쪽 세계로의 동행을 허락해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큰 은혜인데. 이렇게 손수 옷까지 준비해 주시고.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아미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두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 말고도. 오늘을 위해 카디스 영주님이 정말 많이 준비를 도와주셨다고 들었어요.”

“그 정도야 뭐…… 저도 안드라스 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걸요. 아미 양은 안드라스 씨에게 중요한 분이시니까, 저도 도움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중요한 분’이라는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아미의 얼굴에 더없이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안드라스도 엄청나게 감동한 표정으로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괜히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것 같아 슬쩍 화제를 돌렸다.

“이제 슬슬 출발할 준비를 해볼까요?”

“네, 카디스 영주님.”

“아아! 그리고 아미 양, 저쪽 세계에서는 ‘카디스 영주님’이라는 호칭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거기에서는 영주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거든요.”

아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그곳에 계신 분들은 카디스 영주님의 정체를 모르시나요?”

“그게 아니라…….”

어떻게 이해를 도와야 할지 난감해 말을 잇지 못하던 그때. 안드라스가 대신 나서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시현 님의 능력이 워낙 출중하셔서 그 정체를 숨기고 계십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중요한 위치에 계신 몇몇 분만 시현 님의 진정한 정체를 안다고 합니다.”

“앗! 그랬군요.”

“아니……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왜곡이 잔뜩 들어간 설명에 조금 난감했지만, 아미가 곧바로 수긍한 것 같아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카디스 영주님 말고 뭐라고 불러드려야 하죠?”

“그냥 편하게 ‘시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셔도 괜찮아요. 저쪽에서는 그게 평범하게 보일 거예요.”

“그럼 저도 안드라스 님처럼 ‘시현 님’이라고 부를게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농장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응원의 의미가 담긴 배웅을 받으며 차원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으으으…….

내가 고백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지?

나는 두 사람에게 긴장한 모습을 숨기며, 다시 한번 오늘의 일정을 마음속으로 체크했다.

모두의 얼굴에 설렘과 긴장이 가득한 가운데.

풋풋한 마족 커플의 데이트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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