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26화 (32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26화

마족의 고백(4)

백화점을 충분히 둘러본 뒤.

우리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남산타워로 향했다.

데이트 코스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광 명소라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

너무 뻔하고 평범한 곳이라 두 사람이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안드라스와 아미는 남산타워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드러냈다.

“산 위에 그렇게 높은 구조물을 짓다니. 정말 놀랍군요.”

“너무 기대돼요.”

눈을 반짝이는 두 마족을 보면서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한산했던 덕분에 금방 케이블카에 올라탈 수 있었다.

천천히 산 위쪽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유리창 너머로 도시 풍경이 조금씩 펼쳐졌다.

“와아아.”

“아까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니 도시의 크기가 제대로 실감 됩니다.”

안드라스와 아미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유리창에 딱 달라붙어 풍경을 구경했다. 살짝 흥분한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나도 유리창 너머 풍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현 씨?”

“네?”

“갑자기 표정이 이상해지셔서……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발레리안인 조금 걱정을 담아 물었다.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갑자기 옛날 일이 떠올라서요.”

“……?”

“도시에 올라와서 어머니와 처음으로 놀러 나왔던 곳이 여기거든요.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요.”

우리 가족은 여러 안 좋은 일을 겪으며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다. 그때 우리 가족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부모님과 함께 외출한 기억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기억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때는 어머니랑 단둘이 걸어서 올라갔었어요. 비싸서 전망대 위에는 못 올라가고, 실컷 풍경 구경하다가 내려가서 돈가스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에 발레리안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건넸다.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잖아요.”

“네. 많이 달라졌죠. 이제는 오랫동안 괴롭혔던 빚도 모두 청산했고, 어머니도 훨씬 건강해지셨죠.”

그때의 나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미래의 내가 이렇게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줄은. 그리고 너무 귀엽고 착한 딸의 아빠가 될 줄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오묘한 표정으로 일행을 둘러봤다.

“이곳을 마족들과 함께 다시 방문하게 될 줄이야.”

“하핫!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일이죠.”

웃음을 터뜨리는 발레리안을 보며 내 입가에도 미소가 생겨났다.

조금은 우중충한 예전의 추억을 수많은 기억 너머로 묻어두며. 다음에는 어머니와 은율이를 데리고 다시 여기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타워 아래에 금방 도착했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평일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일행도 꽤 많았다. 덕분에 우리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나와 발레리안도 사방으로 뻥 뚫린 시원한 풍경을 보며 상쾌함을 즐겼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두 분도 즐거워 보이고요.”

안드라스와 아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꼭 붙어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평범한 커플처럼 보였다.

나는 조금 황량한 겨울 풍경을 보며 아쉽게 말했다.

“가을쯤에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때는 단풍도 붉게 물들어서 주변 풍경이 훨씬 예쁘거든요.”

“저는 이 정도로도 만족스럽습니다. 애초에 알콩달콩한 커플들에게는 주변이 불바다여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쩝……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씁쓸해지네요.”

“하하하!”

발레리안의 시원한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좋은 자리를 찾아 안드라스와 아미를 이끌었다.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미리 준비해 온 사진기를 꺼냈다.

“사진 찍어드릴게요. 두 분 가까이 서주세요.”

“…….”

“이, 이렇게 서면 되겠습니까?”

“에이. 누가 보면 모르는 사람인 줄 알겠어요. 좀 더 다정하게 붙어보세요.”

좀 더 붙으라는 손짓에 안드라스는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했다. 오히려 아미 쪽에서 과감하게 안드라스의 옆으로 파고들며 다정하게 팔짱을 꼈다.

“……?!”

“시현 님, 이 정도면 될까요?”

“아주 좋아요!”

카메라 화면 속에는 잔뜩 긴장한 안드라스와 행복한 미소의 아미가 비쳤다. 안드라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사진을 찍었다.

근처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은 다음 타워 안쪽으로 입장했다. 어머니와 함께 왔을 때와는 달리, 타워에는 많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했다.

높은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도시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곳은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가득한 기념품 가게였다. 두 마족에게는 이런 종류의 상품들이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기념품들의 용도를 설명하고 하나씩 구경하는 것만 해도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현 님, 이건 뭐에요?”

“아! 그건…… 조금 있다 설명해드릴게요.”

“……?”

두 사람이 가져갈 기념품들을 몇 개를 구매하고 가게를 나섰다. 다시 타워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내려가기 전에 잠시 저쪽에 들렀다가 가실래요?”

나는 일행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발레리안과 아미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발레리안은 금방 내 의도를 눈치채고 눈을 찡긋거렸다.

“시현 님. 여기는……?”

“이곳에 연인들이 방문하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거든요.”

나는 아까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했던 자물쇠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 두 사람의 이름을 적고 자물쇠로 걸어두면. 그 자물쇠가 풀리기 전까지 둘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전설이 있거든요.”

일명 사랑의 자물쇠!

물론 전설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과장된 부분이 있고. 그냥 관광 명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벤트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커플들에게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나 매력적인 단어였다. 역시나 마족 커플의 눈동자에도 순간 반짝임이 일어났다.

“두 분도 해보실래요?”

두 사람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서 준비한 자물쇠와 펜을 건네받고 이름을 적을 준비를 했다.

“시현 님, 한글로 적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풀네임을 적기에는 자리가 모자라는데. 이름만 적어도 될까요?”

-같은 진지함이 담긴 질문을 하며, 정성스럽게 자물쇠에 이름을 적어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수많은 자물쇠 사이에 자신들의 자물쇠를 걸어놓았다.

“…….”

“…….”

안드라스와 아미는 자물쇠를 바라보며 부끄러움과 행복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좋을까요?”

“사랑을 하게 되면 전부 유치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은 인간이나 마족이나 다른 점이 없네요. 아마 여기에 자물쇠를 건 마족은 두 사람이 최초겠죠?”

“…….”

“리안 씨??”

“흠흠. 날이 금방 어두워지네요. 더 추워지기 전에 빨리 내려가죠.”

발레리안은 내 시선을 억지로 무시하며 먼저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향했다.

나는 황급히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발레리안’이라는 이름이 적힌 자물쇠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쩝. 저희도 이제 내려가죠. 안드라스 씨?”

발레리안의 뒤를 따라 내려가려는데, 안드라스가 아까 매단 자물쇠를 붙잡고 끙끙대고 있었다.

“뭐 하세요?”

“저희의 이름이 적힌 자물쇠에 강화 마법을 걸어두는 중입니다.”

“…….”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 있으면 누군가의 공격으로 자물쇠가 풀려 버릴지도 모릅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강화 마법과 저항 마법 정도는 준비해 둬야…….”

나는 진지하게 중얼거리는 안드라스를 잠시 멍하게 바라봤다. 그가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짝 한숨을 내쉬며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안드라스 씨.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따라오세요.”

“쓸데없는 짓이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자물쇠를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안드라스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나의 손을 떨쳐냈다.

“원래 이렇게 두는 거리니까요?”

“안됩니다. 누가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방해하려고 자물쇠를 공격할지도…….”

“어우! 부끄러운 소리 그만하시고 빨리 와요!”

안드라스와 나는 자물쇠 앞에서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아미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먼저 내려갔던 발레리안이 다시 돌아오고 나서야 안드라스를 억지로 끌고 갈 수 있었다.

* * *

어느덧 해가 모습을 감추고 저녁이 찾아왔다.

남산타워에서 내려온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 예약해 둔 곳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는 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가끔 아미가 먼저 말을 꺼내고 짧은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침묵이 이어지는 시간이 미세하게 길어졌다.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눈에 띄게 굳은 안드라스의 표정과 몸짓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었다.

맛있는 저녁 식사도 중요하지만, 지금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이벤트가 숨겨져 있었다.

안드라스의 고백!

아미와 정식으로 교체를 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 사실상 청혼, 프러포즈나 다름없는 이벤트.

멋진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안드라스와 아미,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두었다. 그곳에서 안드라스는 아미에게 고백을 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이벤트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당사자인 안드라스뿐만 아니라, 계획을 함께 준비한 나도 슬슬 초조해졌다.

뒷좌석에 아미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최대한 평범한 척 연기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계속 슬쩍슬쩍 뒷좌석 쪽을 살폈다.

그러다 우연히 발레리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이나마 불안함을 잊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를 태운 차량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