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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27화 (32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27화

마족의 고백(5)

나와 발레리안은 레스토랑과 함께 있는 칵테일바에 나란히 앉았다.

발레리안의 손에는 그가 평소에 즐겨 마시는 칵테일을 들고 있었고, 나는 과일 음료수를 홀짝이고 있었다.

“아쉽네요. 시현 씨도 같이 칵테일을 함께 즐겼으면 좋았을 텐데요.”

“돌아가는 길에는 제가 운전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별로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라서요.”

발레리안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생겨났다.

“그렇게 걱정되십니까?”

“당연히 걱정되죠. 아까 안드라스 씨 표정 못 보셨어요? 거의 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들어갔잖아요.”

우리가 칵테일바 앞에 앉아 있는 사이.

안드라스와 아미는 오붓하게 야경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방으로 향했다. 주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둘만의 공간이었다.

레스토랑 직원에게 안내를 받아 방으로 향하는 안드라스의 표정은 긴장감으로 완벽하게 굳어 있었다. 걱정이 안 되려야 안될 수가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렇게 보여도 해야 할 때는 해내는 친구니까요.”

“에휴…… 리안 씨야말로 너무 여유만만이신 거 아니세요? 리안 씨도 고백할 때 힘들었던 경험 있으시잖아요.”

내 물음에 발레리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칵테일을 홀짝였다.

“글쎄요. 고백으로 그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어서…….”

“…….”

“저는 상대방 쪽에서 먼저 고백을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제가 직접 고백을 한 경우에도 거절당한 적도 없고요. 그래서 그런지 긴장했던 기억도 별로 없네요.”

“리안 씨…… 우리가 좀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방금 그 말은 많이 재수 없네요.”

살짝 짜증이 담긴 내 눈빛에 발레리안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반응했다.

“하핫! 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는 말아주세요.”

“쩝…….”

“자∼ 자!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편안하게 이 시간을 즐기세요.”

그리고 발레리안은 자신의 칵테일 잔을 건배하듯 들어 보였다. 나도 마지못해 과일주스 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

* * *

“와아아! 저것 좀 보세요, 안드라스 님. 야경이 너무 예뻐요.”

“…….”

형형색색 불빛으로 물든 야경에 아미는 감탄을 터뜨렸다. 발레리안은 삐걱거리는 기계처럼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아미는 안드라스의 어색한 모습은 신경 쓰지 않고, 화려한 야경을 구경하는 일에 집중했다.

잠시 후.

전채요리를 시작으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오는 음식들은 두 마족의 입맛에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아미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안드라스에게 말을 건넸다.

“멋있는 야경에 맛있는 음식까지…… 정말 너무 좋네요. 시현 님과 발레리안 님도 함께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 그렇네요.”

편안하게 음식을 즐기는 아미와는 달리.

안드라스는 눈앞의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을 떨쳐내기 위해 잔에 담긴 와인을 벌컥 들이켰지만, 쉽사리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없었다.

안드라스가 긴장감과 싸우느라 정신없는 동안, 아미는 모르는 척하며 그 모습을 다 지켜봤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잠시 떠올랐다.

“오늘 정말 고마워요.”

“예?”

“안드라스 님 덕분에 이쪽 세계를 제 눈으로 구경할 수 있었어요. 이야기로 들었던 것처럼 정말 놀라운 것들로 가득했어요. 안드라스 님이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 절대 못 했을 거예요.”

“별말씀을…….”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백화점이라고 했었나요? 거기에 있던 수많은 가전제품이었어요.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것들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가전제품 이야기에 안드라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정말 이곳의 기술력은 놀랍지 않습니까? 저도 시현 님의 ‘스마트폰’을 처음 봤을 때, 신세계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시현 님과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당장 제 것을 분해해볼 텐데…….”

“그렇죠. 저도 마법사단의 일원으로 뭔가 연구해 보고 싶은 욕구가 끓어올랐어요.”

한번 물꼬를 튼 다음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안드라스는 이쪽 세계와 관련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연구 주제를 하나씩 쏟아냈다.

다른 농장 식구들 같았으면 너무 어렵고 전문적인 이야기라 금방 진저리를 쳤겠지만.

그와 달리 아미는 적절히 맞장구를 치는 것도 모자라, 안드라스의 연구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까지 덧붙였다.

그녀가 안드라스와 같은 제르무어 마법사단이면서 평소에 그가 관심 가지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눈앞에 음식을 잊을 정도로 대화에 푹 빠졌다. 긴장으로 고생하던 안드라스도 어느새 표정이 자연스럽게 변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뚝!

신나게 말을 이어나가던 안드라스가 돌연 말을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 앉아 있는 상대방을 빤히 쳐다봤다.

“안드라스 님?”

“…….”

안드라스는 뒤늦게 뭔가를 깨달았다.

그녀가 왜 이런 대화 주제를 꺼냈는지.

‘일부러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본인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그녀의 따뜻한 배려심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긴장감에 묻혀 있던 감정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막혀 있던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처럼.

안드라스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시현과 함께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던 멋있는 멘트들도, 준비해뒀던 깜짝 이벤트도, 전부 안드라스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지금 그가 느낄 수 있는 건.

마음속에 넘쳐 흐르는 감정들과 창문 밖 야경보다 더 반짝이는 아름다운 여자 마족뿐이었다.

안드라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 감정을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미 양.”

“네?”

“오늘 아마 양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걸요.”

“……!”

안드라스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앞으로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빛을 내는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제 모든 지식과 경험으로 만든 목걸이입니다. 제가 만든 것 중에서 최고의 물건이며, 제 모든 걸 담았다고 자신할 수 할 수 있습니다.”

멍한 표정을 짓는 아미에게 안드라스는 또렷하게 말했다.

“저는 아미 양과 정식으로 관계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부디 이 목걸이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아…….”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안드라스는 그 짧은 침묵이 10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상자를 들고 있던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려올 때쯤.

멈춰 있던 아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입술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로 괜찮으시다면…….”

너무 목소리가 작아 제대로 듣지 못한 안드라스가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허,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

아미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두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을 확인한 안드라스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바람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놓칠 뻔했다.

겨우 정신을 되찾고 목걸이 상자를 제대로 들었을 때, 엄청난 행복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얼굴 근육에 힘이 완전히 빠진 것처럼 흐물흐물해지고, 입꼬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어찌할 줄 모르는 아미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실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기 안드라스 님.”

“네, 넵!”

“목걸이…… 직접 걸어주실래요?”

“아, 알겠습니다.”

안드라스는 허둥지둥 목걸이를 꺼내 아미의 뒤편으로 향했다. 아미는 안드라스가 목걸이를 걸 수 있도록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 보였다.

가족이 아니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새하얀 목선이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안드라스는 몸을 흠칫 떨었고, 아미는 부끄러움에 귀까지 빨갛게 물들였다.

“걸겠습니다.”

안드라스는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둘렀다. 손이 후들후들 떨려 목걸이의 연결 부분을 고정하느라 한참 동안 꼼지락거려야 했다.

손의 떨림이 목걸이를 타고 아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뒤에서 안드라스가 끙끙대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안드라스의 고백은.

뒤에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하게 끝을 맺었다.

* * *

-삐이이익!

-삐이이익!

하늘에 울려 퍼지는 우렁찬 울음소리.

그곳에는 두 마리의 작은 그리핀이 날개를 퍼덕이며 비행을 하고 있었다.

-휘이익!

바람을 타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승과 하강.

거기에 날개의 세세한 움직임으로 생겨나는 완벽한 방향전환까지!

얼마 전에 비행을 시작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두 그리핀은 비행에 능숙해져 있었다.

나는 흐뭇하게 두 녀석의 비행을 지켜보다가 목걸이에 걸어놓은 피리를 들고 입 앞으로 가져갔다.

-삐리리리릭!

피리 소리를 들은 그리와 피니는 순식간에 고도와 방향을 바꿔 내 쪽으로 향했다.

-펄럭! 펄럭!

-삐이이익!

-삐이이익!

두 녀석은 크게 날개를 퍼덕이며 아주 여유롭게 땅에 내려섰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착지 동작에 우아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 녀석을 동시에 쓰다듬었다.

“어이구! 잘했어 내 새끼들! 이제 내가 비행 장치를 써도 전혀 못 따라가겠는데?”

-삐이익! 삐이익!

-삐이이익!

내 칭찬에 녀석들은 부리를 하늘로 치켜들며 의기양양한 자세를 취했다.

혹시 시작이 늦어서 고생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녀석들은 그런 내 걱정을 말끔하게 지워주었다.

너무나도 기특한 마음에 손을 뒷주머니로 가져갔다.

“자∼! 오늘도 고생했어. 여기 육포!”

-삐이익!

-삐이익!

육포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녀석들. 나는 먹기 편하게 잘라놓은 육포를 그리와 피니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이 정도면 바르바토스 가문에서도 문제없겠지?

중요한 행사에서 멋지게 비행하며 등장하는 그리핀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마음이 웅장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리핀들과 행복한 상상에 젖어 있던 그때.

“시현 선배∼!”

“시현 선배님∼!”

멀리서 나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두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쪽으로 몸을 일으켰다.

“어! 엘린, 우르키! 딸기밭 일 벌써 끝났어?”

급하게 달려왔는지 두 사람은 내 앞에서 한동안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왜 이렇게 급하게 뛰어온 거야?”

“흐읍…… 큰일 났어요, 시현 선배!”

“……?”

엘프리드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딸기밭의 요정들이 전부 사라졌어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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