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29화
사라진 요정들(2)
“으응? 시현계로 가야 한다고?”
조각 케이크 간식을 먹고 있던 릴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서 같이 먹던 카네프도 눈살을 찌푸리며 반응했다.
“이건 갑자기 뭔 소리야? 너 또 무슨 일을 벌인 거야?”
“그게 아니라…….”
나는 살짝 억울함을 담아 딸기밭에 요정들이 사라진 일과 방금 은율이가 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릴리아는 훨씬 심각해진 얼굴로 딸기밭을 걱정했다.
“엑! 요정들이 전부 사라졌어? 그럼 딸기밭이 큰일이잖아.”
“그러니까 빨리 요정들을 찾아야지. 요정들이 자발적으로 딸기밭을 떠났을 리는 없어. 아마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강제로 끌려간 것 같아.”
“그럼 빨리 구하러 가야지! 내가 뭐든지 도와줄게!”
릴리아가 의욕을 불태우는 것과 달리, 카네프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 그래서 너 시현계로 가겠다는 거야?”
“지금은 단서가 이것밖에 없어요. 일이 더 잘못되기 전에 뭐든지 해봐야죠.”
“……설마 은율이까지 데려갈 생각은 아니겠지?”
순간 겨울바람이 불어닥친 것처럼 분위기가 싸해졌다.
은율이가 시현계에서 쓰러졌던 일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농장 식구가 큰 충격을 받았었다. 간접적인 언급만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훨씬 신중해진 얼굴로 물음에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은율이가 이 단서를 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시현계에 데려가지는 않을 거예요. 아무리 요정의 일이 급해도 은율이에게 위험한 일을 시킬 수 없어요.”
단호한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카네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표정을 풀었다.
“……그런데 제가 가는 건 상관없으세요?”
“너? 너는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어떻게든 들어갈 거잖아.”
“조금 섭섭한데요?”
“섭섭은 개뿔! 케이크 먹는 거 방해하지 말고 빨랑 꺼져!”
카네프에게 훈훈한 응원을 듣는 사이.
리아네와 아슈미르가 조각 케이크와 따뜻한 차를 가지고 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은율이가 쪼르르 쫓아왔다.
“모두 추운데 고생하셨어요. 여기 간식이랑 따뜻한 차 드세요.”
“여기 있습니다. 시현 님.”
“감사합니다. 리아네 씨, 아슈미르 씨.”
엘프리드와 우르키도 따뜻한 차를 받아마시며 몸속에 남아 있는 추위를 날려 보냈다.
옆에 딱 붙어 앉은 은율이에게 케이크를 먹여주고 있는데. 거실의 분위기를 읽은 리아네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게…….”
거실에 없었던 리아네와 아슈미르에게도 요정이 사라진 일을 짧게 설명했다.
“어머! 정말로 요정들이 전부 사라진 건가요? 정말 큰 일이네요.”
“…….”
리아네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슈미르는 크게 감정의 변화는 보이지 않았지만, 눈동자에 작은 빛을 번쩍이며 관심을 드러냈다.
“그래서 시현계에 가 보려고 해요. 어떻게 은율이가 규리의 흔적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단서가 그것밖에 없거든요.”
“나도 갈래. 아빠!”
“은율이는 안 돼.”
“왜? 나도 규리 보고 싶어.”
“규리는 아빠가 데리고 올 테니까. 은율이는 여기서 기다려.”
“아빠∼ 아빠∼!”
은율이가 내 팔을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평소 같았으면 애교에 흔들렸겠지만, 이번만큼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히잉…….”
애교가 통하지 않자 은율이는 시무룩해져서 양쪽 볼을 불룩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시현 오라버니, 그럼 바로 출발할까?”
“저도 같이 갈게요.”
“저도요.”
엘프리드와 우르키가 따라가겠다고 차례로 나섰다.
“너희들은 좀 쉬고 있어. 아까 요정들 찾는다고 계속 돌아다녔잖아.”
“이 정도는 괜찮아요, 시현 선배.”
“저도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아직도 귀랑 코가 빨간데. 어차피 많은 사람이 갈 필요 없어. 두 사람은 좀 더 쉬고 있어.”
아쉬워하는 두 사람을 다독이며 좀 더 쉬라고 이야기해 줬다.
“그럼 제가 대신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아슈미르 씨가요?”
“시현계라는 곳을 꼭 방문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도울 테니. 따라가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아슈미르의 무표정에서 무언의 박력이 느껴졌다. 거절하면 허락해 줄 때까지 계속 요청할 기세였다.
굳이 사람이 많을 필요는 없는데.
딱히 도움을 거절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으음…… 알겠어요. 아슈미르 씨도 같이 가시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 *
릴리아는 곧바로 차원문 장치를 꺼내왔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정비해놓았는지, 생각보다 금방 사전준비를 끝냈다.
시현계로 향하는 사람은 총 셋.
나와 릴리아, 그리고 아슈미르.
안드라스 씨가 있었으면 좀 더 든든했을 텐데…….
지금 안드라스는 아미와 함께 데이트 중이었다. 급한 일이라고 연락하면 곧바로 달려와 주겠지만, 최근에 한창 뜨거워진 두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우우우웅…….
-파아아아앗!
차원문 장치가 진동음을 내며 안정적으로 차원문을 생성해냈다. 차원문을 넘기 직전에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금방 다녀올게요. 저 대신 은율이 좀 잘 달래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시현 님.”
세 사람은 차례로 차원문을 통과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울렁거림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익숙한 농장 주변의 풍경.
농장 주변과 닮은 시현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시현계…….”
아슈미르는 놀라운 감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리고 멍하게 두리번거리거나, 땅바닥에 웅크려 꽃을 살피는 등. 세세하게 주변을 살폈다.
“저 천족 언니도 시현계가 신기한가 봐.”
“아슈미르 씨는 놔두고. 우리는 규리를…….”
규리를 찾자고 말하려는 순간.
멀리서 작은 무언가가 내 쪽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시현∼∼∼!!!」
-퍼억!!
내가 반응도 하기 전에 작은 요정이 내 얼굴로 달려들었다. 얼마나 빠르게 날아왔는지, 충격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으아아앙! 왜 이렇게 늦게 찾아왔어, 뾰!」
“끄으응…… 규, 규리?”
귤색 머리카락의 작은 요정.
규리는 내 얼굴을 붙잡고 서러운 목소리를 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뾰!」
“어떻게 된 거야, 규리야. 왜 여기에 있어? 다른 요정들은?”
「으아아앙!」
“자, 잠깐만, 규리야. 조금만 진정 좀…….”
규리를 달래보려 했지만, 작은 요정의 격해진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답답해하는 와중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등장했다.
“드디어 왔냐?”
“벨리온 스승님!”
“저 작은 녀석이 어찌나 쫑알대던지. 네가 조금만 더 빨리 안 왔으면 내가 먼저 미쳐 버렸을 거다.”
벨리온은 수염이 떨릴 정도로 몸을 부르르 떨며 난색을 보였다. 아마도 규리에게 꽤 시달린 모양이었다.
“벨리온?”
“어? 아슈미르 씨, 스승님을 아세요?”
아슈미르는 벨리온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차원 전쟁 때, ‘카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족과 함께 활약했던 분 아닙니까?”
“맞아요. 아슈미르 씨도 스승님을 알고 계시는군요?”
“차원 전쟁에 대한 역사는 천족 모두가 중요하게 여기고 배우니까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엄청난 활약을 보였던 인물이라 알고 있습니다.”
“허허! 누군지는 몰라도 나에 대해서 제대로 배웠구먼.”
벨리온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제자야. 너는 언제 천족까지 인연을 맺게 된 거냐?”
“너무 길고 복잡한 이야기라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이잉, 쯧! 오랜만에 찾아와놓고 스승님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야.”
“아, 아니에요. 진짜 급한 일이라서 그래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이번에는 급하게 벨리온을 달래 준 뒤, 다시 규리 쪽을 바라봤다. 작은 요정은 얌전한 모습으로 내 손바닥 위에 올라와 있었다.
아직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격했던 감정은 많이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규리야. 이제 좀 괜찮아?”
-끄덕끄덕.
“딸기밭의 요정들이 갑자기 사라져서 모두 걱정하는 중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규리는 코를 훌쩍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훌쩍! 우리가 떠난 게, 훌쩍……. 아니다, 뾰!」
“그럼 누가 억지로 데려간 거야?”
「……여왕님이 모두 데려가 버렸다, 뾰!」
“여왕님? 저번에 나한테 말했던 그 여왕님 말하는 거야?”
「맞아, 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잠시 의심하긴 했었는데. 정말로 여왕님이 요정들을 데려간 범인인 듯했다.
“그런데 여왕님이 갑자기 왜 요정들을 다 데려간 거야?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뾰! 그냥 갑자기 여왕님의 능력으로 모두 끌려갔다, 뾰!」
“허어…….”
‘이유도 모르고 전부 끌려갔다’라…….
왠지 일이 점점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릴리아가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그럼 너는? 너는 어떻게 안 끌려가고 여기 있었어?”
「여왕님의 능력은 절대적이라 나도 끌려가야 한다, 뾰! 그런데 이대로 끌려가면 영영 이곳에 다시 못 돌아올 것 같아 끝까지 저항했다, 뾰!」
규리는 울적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친구들도 도와주고 싶었는데. 전부 끌려가 버리고 말았다, 뾰! 쓰러진 다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여기에 와 있었다 뾰!」
정리하자면 요정들을 모두 데려간 존재는 여왕.
규리는 여왕의 부름에 끝까지 저항하다가 시현계로 넘어오게 된 상황.
나는 일말의 희망을 담아 규리에게 물었다.
“혹시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끌려갔던 요정들이 돌아올 수도 있잖아.”
「아니다, 뾰! 여왕님이 이렇게 억지로 끌고 갔다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거다, 뾰!」
“으음…….”
역시 쉽게 해결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나마 규리가 이렇게 남아 있지 않았다면, 영영 요정들의 행방을 모르게 될 뻔했다.
나는 고마움과 위로의 의미를 담아 규리의 작은 등을 살짝 쓰다듬어줬다.
“시현 오라버니, 이제 어떻게 해? 이대로 다른 요정들이랑 헤어지는 거야?”
“…….”
손바닥 위에 있던 규리가 날개를 흔들며 내 얼굴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 모아 부탁했다.
「제발 도와줘, 뾰! 끌려간 요정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는 건 시현밖에 없다, 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