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32화
위험한 그녀(1)
-우우우우웅!!
차원도약 마법 특유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는……?”
“카디스 영지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베코’라는 도시입니다. 수많은 상인의 교역로가 이어지는 곳이라 상업 도시로 유명합니다.”
농장에서 출발할 때는 꽤 쌀쌀한 날씨였는데. 이곳은 입고 있는 옷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포근했다.
피부에 느껴지는 차이만으로도 농장에서 멀리 떠나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떤 커다란 건물의 뒤뜰 같은 곳이었다.
건물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눈앞에 등장했다.
“하하! 드디어 오셨군요.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리호리한 느낌의 안경을 낀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금방 남자의 얼굴을 알아봤다.
“에르긴?”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금시계 상회 소속 상인, 에르긴이 카디스 영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정중한 인사를 받았다. 에르긴은 눈치 빠르게 내 표정을 읽고 말을 덧붙였다.
“여기는 베코의 황금시계 상회 지점입니다. 카디스 영주님의 일행이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일은 전부 젖혀두고 직접 인사를 드리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아! 그렇군요.”
안드라스도 추가로 설명을 보충했다.
“차원도약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종종 상회 지점에 협조를 요청합니다. 상회의 지점은 따로 좌표가 설정돼있는 경우가 많아서 준비가 수월하거든요.”
“그럼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요?”
내 물음에 에르긴이 몸을 들썩일 정도로 빠르게 반응했다.
“어이쿠, 민폐라뇨!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영주님을 상회 지부에 모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죠. 저는 오랜만에 영주님을 만나 뵐 생각에 너무 설레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하하하.”
상인 특유의 매끄러운 사탕발림에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일단 들어가시죠. 안쪽에 귀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뒀습니다.”
우리는 에르긴을 따라 건물 쪽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카디스 영주님.”
“어서 오십시오.”
1층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많은 상회의 직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거창한 환영 인사가 부담스러워 에르긴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 눈치 빠른 그는 금방 직원들을 해산시키고, 준비한 방으로 안내를 이어나갔다.
그가 안내한 방은 굉장히 우아한 장식품들과 화려한 그림으로 가득했다. 일행의 인원도 미리 전달받았는지, 자리도 숫자에 딱 맞춰서 준비된 상태였다.
부담스럽지만 가장 상석인 자리에 내가 앉고, 그 양옆으로 로커스와 안드라스, 크록과 리아네가 차례로 자리했다.
우리가 자리에 앉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상회 직원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척척 내왔다.
“이 도시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음료입니다. 먼 길 떠나는 상인들이 기력을 보충하려고 즐겨 마시는 음료로 유명하죠. 그리고 이건 아주 희귀한 열매로…….”
에르긴은 준비한 것들을 아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로커스는 대놓고 귀찮은 티를 냈고 리아네와 크록은 설명을 한 귀로 흘리며 음료와 열매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나마 안드라스 정도만 그의 설명을 경청했다.
물론 나도 관심은 없었지만, 준비한 에르긴의 성의를 생각해 열심히 듣는 척이라도 했다.
설명이 좀 길어진다 싶을 때쯤.
“크흠!”
안드라스가 짧게 기침하며 신호를 보냈다. 나는 금방 신호를 알아듣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에르긴.”
“예?”
“대접해 준 건 정말 고마운데. 우리가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여기에 너무 오래 있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아앗,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눈치 없이…….”
에르긴은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숙여 굽신거렸다. 나는 적당히 손을 흔들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도와드릴 만한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 역량이 허락하는 한해서는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안드라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흠흠. 그럼 도움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안드라스 님.”
“오늘 황금시계 상회에서 받은 호의는 꼭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안드라스와 에르긴의 입꼬리가 동시에 살짝 올라갔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베코의 빈민가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빈민가요?”
“그렇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빈민가의 길 안내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속속들이 아는 자였으면 합니다.”
“흐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에르긴은 진지한 표정으로 재빨리 방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이 멀어지길 기다린 다음, 안드라스에게 지금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안드라스 씨, 갑자기 빈민가는 왜요?”
“발레리안에게 받은 정보에 의하면. 저희가 찾는 분의 최근 행적이 빈민가 근처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지금으로써는 다른 정보가 없기에 빈민가를 직접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빈민가에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그럴 확률도 있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워낙 신출귀몰한 분이라…….”
안드라스는 말끝을 흐리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 없는 로커스는 ‘거기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중얼거려 리아네와 크록의 눈총 세례를 받았다.
흐음.
제발 그 ‘테르잔’이라는 분이 빈민가에 계셔야 할텐데…….
* * *
에르긴은 생각보다 빨리 도와줄 사람을 데려왔다.
약간의 문제라면…….
“저는 ‘루크’라고 합니다.”
어린 강아지 수인이 꼬리를 빨빨 흔들며 나를 올려다봤다. 허름해 보이는 옷차림과는 다르게 눈빛이 아주 똘똘해 보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카디스 영주님!”
“어…… 음, 그래. 나도 잘 부탁해.”
“헤헷!”
녀석의 순수한 미소는 엘든 마을의 미루를 떠올리게 했다. 쓰다듬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워 정감이 가긴 했지만, 빈민가의 안내를 잘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에르긴. 정말로 이 아이가 안내를 맡을 수 있는 거예요?”
“예, 그렇습니다. 상회에서 허드렛일들 돕는 아이인데. 빈민가 출신이라서 그곳 지리와 사정을 잘 압니다. 나이에 비해 총명해서 믿고 맡길 만합니다.”
루크도 손을 번쩍 들며 자신감을 표했다.
“빈민가라면 제 손바닥 안이죠! 제 일생 대부분을 그곳에서 지냈으니 한번 믿어보세요.”
아직 어린 녀석이 일생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귀를 쫑긋 세우고 자신감을 뿜뿜하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다른 일행들도 루크의 자신감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나는 일행들과 눈빛을 교환한 다음, 무릎을 굽혀 루크와 시선을 맞췄다.
“루크. 그럼 빈민가의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 저만 따라오세요.”
“좋아.”
싱긋 웃으며 루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줬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걸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주십시오!”
건물 앞에서 에르긴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베코의 시내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베코는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마계 도시와 비슷하면서도 상업 도시 특유의 활기 넘치고,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특색있게 느껴졌다.
정감넘치는 상인들의 호객과 화려한 상품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도시 시내를 지나 외곽 쪽에 가까워졌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주변의 분위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고요해졌다. 방금 보았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큰 거리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도시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났다.
“으으…….”
“제발 동전 하나만…….”
거리의 노숙자와 거지들이 힘없이 손을 뻗었다.
불편한 광경에 인상이 찡그려지는 나와는 달리, 다른 일행들은 덤덤하게 그들을 지나쳤다. 심지어 어린 루크조차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스윽!
안드라스의 큰 덩치가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마치 나의 시선을 가리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돈이 넘치는 상업 도시일지라도 모두가 부자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흔한 풍경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어디서든 문제군요. 괜히 영지 주민들이 생각나 마음이 불편하네요.”
“이게 보통 도시의 모습입니다. 시현 님의 영지가 특별한 경우인 거죠.”
“…….”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걸음을 재촉해 뒷골목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도시의 가장 외곽 지역에 도착했을 때, 판잣집이 얼기설기 엉켜 있는 빈민촌의 모습이 드러났다.
루크는 빈민촌의 입구 앞에서 몸을 돌렸다.
“여기가 빈민촌의 입구예요. 이제 뭘 도와드릴까요?”
“루크야. 우리는 지금 사람을 찾고 있거든. 혹시 ‘테르잔’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아니?”
“테르잔이요?”
내 물음에 루크는 눈을 감고 ‘테르잔’이라는 이름을 계속 되뇌었다.
“테르잔…… 테르잔…… 흐음. 잘 모르겠어요.”
“그럼 이렇게 생긴 사람은?”
이번에는 안드라스가 종이에 한 장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차분한 분위기의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도 잘 모르겠어요.”
“으음…….”
루크가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녀석도 처음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에서 약간 기가 죽은 느낌이었다.
뒤에 있던 리아네가 루크를 변호하는 말했다.
“시현 님. 테르잔 언니는 유령 같은 분이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알아보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 건가요?”
“아무래도 저희가 직접 들어가서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쳇! 저런 우중충한 곳엔 들어가기 싫은데.”
로커스가 대놓고 투덜거렸지만, 일행의 의견은 직접 빈민촌을 수색하는 쪽으로 모였다.
“그럼 직접 들어가서…….”
“하하! 이게 웬 횡재야!”
“어젯밤에 꿈자리가 좋더니만.”
“루크, 네 녀석이 데려온 놈들이냐?”
빈민촌 입구에서 껄렁껄렁한 걸음걸이의 남자들이 쏟아져나왔다. 열 명 정도 되는 마족과 수인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쌌다.
“귀하신 분들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웬일이실까.”
“큭큭! 당연히 불쌍한 우리에게 베풀기 위해서 아니겠어?”
비아냥거리는 말투.
딱 봐도 좋은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