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33화
위험한 그녀(2)
루크가 불쑥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아저씨들,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하하, 루크였구나? 이렇게 좋은 먹잇감을 여기까지 데려온 게.”
“이상한 짓 하지 말아요. 이분들은 황금시계 상단의 귀한 손님들이라고요!”
“황금시계 상단의 손님? 그럼 볼 것도 없이 주머니가 두둑하겠구먼. 아주 마음에 들어.”
가장 앞에 있던 불량배가 감탄을 터뜨리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낄낄거렸다.
어린 루크는 점점 이상해지는 상황에 불안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한편 우리 쪽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상대의 모습에도 평온함 그 자체였다.
“나도 진짜 다 죽었네. 다 죽었어. 저런 떨거지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 올 정도라니…… 크록,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로커스는 갑자기 크록에게 짜증을 냈다. 당연히 크록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반응했다.
“……?”
“네가 얼굴만 드러내고 있었어도 저런 떨거지들은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을 거 아냐.”
크록은 처음 엘든 마을에 왔었을 때처럼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용혈족 특유의 위압감을 숨기기 위한 복장이었다.
그가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면,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그건 그렇고.
쩝…… 확실히 만만해 보이는 일행이기는 하네.
나야 말할 것도 없었고 로커스와 리아네는 곱상한 외모 덕분에 싸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인드라스와 크록이 덩치는 컸지만, 위협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일행 모두 귀족들이 입을 법한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주변에는 호위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놈들에게는 확실히 뜯어먹기 좋은 먹잇감처럼 보였으리라.
우리 쪽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상대는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기세가 한껏 높아져 거침없이 행동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우리 구역이라서 말이야. 그냥 보내줄 수는 없겠는데?”
“몸 성히 돌아가고 싶으면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털어놔야 할 거야.”
“큭큭! 잔뜩 겁먹었나 보군. 걱정하지 마. 가지고 있는 걸 순순히 내놓으면 곱게 돌려보내 줄 테니까.”
빈민가의 불량배들은 건들거리는 말투로 우리를 압박했다. 그중에는 리아네 쪽을 향해 음침한 시선을 보내는 놈들도 있었다.
리아네는 눈살을 찌푸리며 슬며시 기세를 끌어올렸다.
“시현 님. 제가 처리할까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서늘한 감정이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튀어 나가 상대를 찢어놓을 듯한 기세였다.
무시무시한 용마족이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불량배들은 여전히 낄낄대며 즐거워했다.
무슨 일을 당해도 싼 놈들이긴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괜히 여기서 소란을 크게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일단 참으세요, 리아네 씨.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니잖아요.”
“……알겠어요.”
리아네의 눈동자에 잠시 불만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내 뜻을 존중하기 위해 그녀는 순순히 기세를 가라앉혔다.
“안드라스 씨. 부탁 좀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시현 님.”
안드라스는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며 앞으로 나섰다. 옆에 있던 루크가 안드라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손님, 안 돼요. 저 아저씨들이 정말 해코지할지도 몰라요. 제가 잘 말해볼게요.”
루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안드라스를 만류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이 아주 대견했다.
안드라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린 루크를 안심시켰다.
“별일 없을 거란다. 조용히 이야기만 나눌 뿐이니까.”
“그래도…….”
“여기서 지켜보고 있으렴.”
루크를 물러나게 한 뒤.
안드라스가 불량배들 앞으로 나섰다.
“모두 이곳에 사시는 분들 같은데. 혹시 이 그림 속 여성분을 보신 분 계십니까?”
“뭐?”
“이분에 대한 정보를 말씀해 주시는 분께는 섭섭지 않게 사례하겠습니다.”
“…….”
사례하겠다는 말에 불량배들의 시선이 잠시 그림 쪽에 집중됐다.
“너 저런 여자 본 적 있냐?”
“없는데.”
“저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면 금방 눈에 띄었지. 여기는 쭈그렁 할멈밖에 없잖아.”
“속지 마! 저놈들 쫄리니까 헛소리를 하는 게 분명해.”
안드라스의 굉장히 신사적인 제안에도 불량배들은 다시 흉흉한 기세를 피워올렸다.
“어이, 손에 든 그림은 집어치우고. 당장 가지고 있는 주머니 다 꺼내.”
“쓸데없는 짓 하면 후회할 거야. 경고했어!”
놈들은 허리춤과 품에서 무기를 꺼내 우리 쪽으로 겨눴다. 그들은 엄청난 위협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제대로 관리도 안 된 무기의 상태는 나조차 코웃음이 날 정도였다.
“이런, 조용히 말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잔말 말고 주머니 빨리 안 꺼내?”
안드라스는 불량배 리더처럼 보이는 마족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콰지지지직! 콰광!
그러자 굉음과 함께 번개가 내리쳤다.
“끄아아악!!”
불량배 리더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는 연기와 함께 타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조금씩 움찔거리는 거로 봐서는 단순히 기절한 것 같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불량배들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모두 위를 봐주시겠습니까?”
“……?!”
“저건?!”
그들의 머리 위에는 안드라스의 아티팩트들이 어느새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그림 속에 여자분을 찾으러 왔습니다. 쓸데없는 싸움은 그만두시죠.”
“저 자식 말 듣지 마! 모두 같이 공격…… 으아아악!!”
불량배 한 명이 발악하듯 달려들려 했지만, 빛의 속도로 내리쳐지는 번개에 그는 리더와 똑같이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땅바닥을 나뒹굴자 불량배들의 얼굴이 공포로 새하얗게 질려갔다.
“이, 이게 말로만 듣던 아티팩트?”
“으으…….”
“도, 도망쳐야…….”
-콰지지지직! 콰광!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불량배가 아니라 땅바닥에 번개가 내리쳤다. 그곳에는 검게 그을린 구덩이가 생겨났다.
도망치려던 불량배들의 다리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하.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는데.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
“…….”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저희는 이 그림 속의 여성분을 찾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좀 받으려고 하는데. 모두 괜찮으신지요?”
안드라스는 정중하게 도움을 구했다. 물론 말이 끝날 때쯤에 구덩이 쪽을 슬쩍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량배들은 검게 그을린 구덩이를 애써 외면하며, 안드라스의 말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불량배들은 친절한 거주민으로 변해 열심히 우리를 도왔다.
덕분에 복잡하게 얽힌 빈민가를 직접 돌아다니는 수고를 덜었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테르잔’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분은 이미 빈민가를 떠난 게 아닐까요?”
“흐음……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애초에 발레리안의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고요.”
안드라스는 난감하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로커스는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나야 이대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여기서 그 여자를 찾지 못하면, 아무리 발레리안이라 해도 한동안 찾기 힘들 거야.”
“…….”
크록도 수화를 통해 로커스의 말에 동의했다. 얼른 요정들을 데려와야 하는 나로서는 이대로 허무하게 물러설 수 없었다.
조금 더 찾아보자고 말하려던 그때.
“저기…… 아직 확인 안 한 곳이 한군데 있는데요.”
루크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황급히 물었다.
“정말이야?”
“네. 빈민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집 한 채가 있어요.”
“왜 빨리 말 안 했어?”
“그게…….”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루크가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그 집은 귀신에게 저주받은 곳이라고 모두가 쉬쉬하는 곳이거든요. 집이 없는 거지들도 절대 안 가는 곳이에요.”
“귀신?”
“네.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소름 끼치는 속삭임을 들고 며칠 동안 끙끙대다가 죽어버렸대요.”
루크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저주받은 집을 설명했다. 주변에 있던 불량배들의 반응을 보니, 정말로 그런 괴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저주받은 집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일행들 모두 비슷한 표정으로 빠르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루크야. 그럼 우리를 그 집으로 안내해 줄래?”
“예에? 정말로 거기에 가시려고요……? 손님들 모두 저주받을지도 몰라요…….”
루크는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되물었다. 촉촉해진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게 정말 무서운 모양이었다.
으음.
저렇게까지 무서워하면 억지로 데려가기 좀 미안하네.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량배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어른인 불량배들도 공포에 질려 나의 시선을 피했다. 죽어도 그 집에는 가기 싫다는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드라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주 반짝반짝 빛나는 금화였다.
“그 집으로 안내해 주시는 분에게는 이 금화 한 닢을 드리겠습니다.”
“……!”
“……!”
“그리고 무사히 도착하면 그곳에서 한 닢 더 드리겠습니다. 안내해 주실 분 없습니까?”
금화를 주겠다는 이야기에 불량배들과 빈민가 주민들이 술렁였다. 금화 두 닢이면 이곳 사람들은 평생 만지기 힘든 거금이었다.
저주의 공포와 금화 사이에서 모두 망설이는 사이.
누군가 빠르게 안드라스 앞으로 나섰다.
“저요! 저요!”
“루크?”
조금 전까지 겁에 질려 떨고 있던 루크였다. 아직 촉촉한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났고, 꼬리는 프로펠러를 연상시킬 만큼 빠르게 흔들렸다.
“너 괜찮겠어?”
“괜찮아요. 에르긴 님에게 부탁받은 귀중한 손님들인데. 제가 끝까지 책임져야죠!”
루크는 입으로 책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두 눈동자는 안드라스의 금화를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영악한 모습에 일행 모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것 참…… 약속은 약속이니.”
약속대로 안드라스는 금화를 건넸다.
루크는 조심스럽게 받아든 금화를 재빨리 품 안으로 숨겨 넣었다. 빈민가 사람들은 아쉬움과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자! 이쪽이에요. 금방 안내해 드릴게요.”
루크는 완전 밝은 목소리로 우리를 이끌었다. 마치 신나는 소풍을 떠나는 아이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로커스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나중에 저 녀석 크게 되겠는데?”
나머지 일행들도 모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