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34화
위험한 그녀(3)
우리는 루크의 뒤를 따라 빈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빈민가 주민들은 정말로 ‘귀신의 저주’가 무서웠는지, 아무도 우리의 뒤를 쫓지 않았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무성한 풀들, 중간중간에 버려진 쓰레기,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말라 죽은 나무까지. ‘저주받은 집’으로 향하는 길은 왠지 기분 나쁜 것들로 가득했다.
으음…… 정말 귀신의 저주를 받은 곳은 아니겠지?
일행들에게 들키면 창피할 것 같았기에 최대한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계속 걸었다.
“다 왔어요. 저기 보이는 저 집이에요.”
루크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집 한 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폐가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처럼 보였다.
안드라스가 폐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흠. 겉으로 봐서는 정말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처럼 보이는군요.”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귀신의 저주가 무서워서 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한다니까요.”
루크의 말대로 집 주변에는 사람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딱 그 여자가 살 것 같은 집이긴 하네. 안 그러냐, 크록?”
“…….”
원래 말을 하지 않는 크록이지만, 로커스의 질문에 이번에는 침묵으로 답변했다. 리아네는 어색하게 웃으며 ‘테르잔’이라는 사람을 옹호했다.
“테르잔 언니가 취향이 좀 독특하긴 하죠.”
“그게 독특한 거냐? 지랄 맞은 거지?”
확실히 개인의 선택으로 이런 폐가에서 산다고 하면. 그건 취향의 영역이라 존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로커스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에잇! 뭘 꾸물거려? 빨리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냐?”
“예에엣?! 저, 저, 저기 들어가시려고요?”
루크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집 안에 들어가 봐야 있는지 없는지 알 거 아니야?”
“그…… 그건 그렇죠.”
금화의 약발이 다 떨어졌는지 루크의 얼굴에 스멀스멀 공포심이 차올랐다. 집 근처까지 안내하는 것과 직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인가보다.
벌벌 떠는 루크에게 안드라스가 품에서 금화를 꺼내 내밀었다.
“수고했다. 보상은 약속한 대로 줄 테니. 너는 이대로 돌아가도 좋아.”
“…….”
루크는 눈앞에 금화를 바라보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잠시 후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금화를 떠밀었다.
“손님들을 놔두고 도망가면서 또 금화를 받을 수 없어요. 저도 끝까지 손님들과 함께한 다음에 두 번째 금화를 받을게요.”
“호오?”
결연한 눈빛으로 금화를 거부한 루크.
일행은 두려움을 극복한 작은 소년을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로커스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루크에게 물었다.
“큭큭, 괜찮겠어? 귀신의 저주를 받으면 빌빌대가 며칠 내에 죽는다면서?”
“으으…… 괜찮아요. 손님분들도 돌아갈 때 안내해 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루크는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로커스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루크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라, 꼬맹이. 귀신의 저주 같은 건 얼씬도 못 하게 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렴. 금방 끝날 거야.”
리아네도 다정한 미소와 함께 한쪽 손을 잡아줬다. 덕분에 루크의 떨림은 잦아들고,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시현 님, 그럼 가볼까요?”
“네. 들어갑시다.”
안드라스와 나를 시작으로 일행은 폐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폐가의 입구.
-끼이이이익…….
나무문이 굉장히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내부를 드러냈다. 어두컴컴한 안으로 들어서자 묘한 적막감이 일행을 감쌌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눈이 익숙해지고. 조금씩 집 안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옷장, 침대, 테이블 등등…….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집 안 가구들은 대체로 멀쩡해 보였다. 언뜻 보면 평범한 가정집과 다를 게 없었다.
묘한 분위기만 빼면 사람들이 왜 귀신의 집이라고 무서워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죠?”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실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여기도 꽝인 것 같은데?”
로커스는 김빠진 표정으로 터덜터덜 집 안을 둘러봤다.
“안드라스 씨. 여기도 없는 것 같은데…… 어쩌죠?”
“으음…… 일단 돌아가서 발레리안에게 연락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정보 없이 여기서 계속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제 돌아가는 거예요?”
리아네에게 꼭 붙어있던 루크가 꼬리를 흔들며 기뻐했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집 안을 다시 둘러봤다.
여기가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혼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로커스는 흥미를 잃고 툭 내뱉었다.
“돌아가자. 귀신이라도 나왔으면 좋았을…….”
-기우뚱!
갑자기 로커스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균형을 잡기 위해 팔을 버둥거렸다.
“으악?!”
-파바바밧!!
-휘이이익!!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
“으아앙!! 귀, 귀신이다!!”
루크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모든 일행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나는 크록의 보호를 받으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휘익! 휘익!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나 빠른지 잔상만 눈으로 겨우 쫓을 정도였다.
잠시 후.
날카로운 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인 것은 완벽히 제압된 로커스의 모습이었다.
“으윽?! 이건…….”
그는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가느다란 줄로 꽁꽁 묶여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로커스 씨!”
“시현 님, 위험합니다.”
“…….”
안드라스와 크록이 다시 내 앞으로 나서며 다음 상황을 대비했다.
-스르륵!
로커스의 뒤편으로 사람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마치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정체불명의 존재는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로커스의 목을 겨눴다.
“누구…… 지?”
“으윽!”
“날 죽이러 왔나?”
“야! 너 ‘테르잔’ 맞지? 당장 이거 풀어!”
흐물거리던 그림자의 형태가 점점 더 또렷해지더니, 가녀린 몸매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이름…… 누가 사주했지?”
“야이씨! 나 몰라? 로커스! 로커스라고!”
“로커스…… 로커스…….”
단검을 겨눈 여자는 ‘로커스’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눈빛에 시퍼런 기운을 번쩍였다.
“기억…… 안 나…….”
“……?”
“죽어.”
“으아아악!!”
단검이 움직이려던 찰나.
안드라스와 리아네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테르잔 님!”
“테르잔 언니!”
다행히 두 사람의 외침에 여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우리 쪽으로 향했다.
테르잔이라고 불린 여자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한참 안드라스와 리아네를 살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아주 잠깐 빛이 반짝였다.
“오오!”
-스르르륵!
테르잔은 미끄러지듯 우리 앞에 도달했다.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힘든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안드라스…… 리아네…… 맞지?”
“오랜만입니다, 테르잔 님.”
“오랜만이에요, 언니.”
“응응…….”
그녀는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두 사람을 볼 때마다 공허한 눈동자에 작게 빛이 반짝였다.
“여긴…… 무슨 일이야?”
“테르잔 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나한테?”
“침묵의 숲에 관한 일입니다. 꼭 테르잔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자세한 건 조금 있다가 전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안드라스는 믿음직해.”
테르잔은 아이를 칭찬하듯 안드라스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굉장히 기분 나쁠 수 있는 행동인데, 안드라스는 오히려 기쁜 얼굴로 대답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뭔가 훈훈한 느낌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에.
벌벌 떨고 있던 루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요.”
“……?”
“저분을 먼저 풀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아앗!
로커스 씨!
“야이, 나쁜 놈들아!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냐?”
로커스는 여전히 제압당한 상태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안드라스는 급하게 로커스를 가리키며 테르잔에게 말했다.
“테르잔 님. 제압당한 로커스 님부터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잠시 로커스를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일까?”
“하하하.”
“언니…….”
안드라스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리아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크록은 안쓰럽다는 듯 로커스를 바라봤다.
그들의 반응을 보며 테르잔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왜 로커스가 테르잔을 ‘미친년’이라 표현하며 치를 떠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 * *
“어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풀려난 로커스는 계속 목을 쓰다듬으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는 중간중간 테르잔을 강하게 째려봤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땅바닥에 둘러앉아 간단한 소개부터 시작했다.
“테르잔 님. 이쪽은 임시현 님입니다. 카디스 영지의 주인이면서, 지금은 카네프 님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테르잔 님.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단장이랑 일해? 그럼 쟤도 검은수리야?”
“아, 아닙니다. 시현 님은 그냥 농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카네프 님도 거기에 계시고요.”
“…….”
테르잔은 뚫어질 듯 나를 바라보며 관심을 드러냈다. 나도 슬쩍슬쩍 그녀의 모습을 관찰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칼과 눈동자.
초점 없는 시선과 무표정한 얼굴.
천족의 무표정은 감정을 숨기기 위한 철가면 느낌이라면, 테르잔은 애초에 감정 자체가 희미한 느낌이었다.
-스르르륵!
테르잔은 또다시 유령 같은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당황하는 나에게 거침없이 두 손을 내밀었다.
-쓰담! 쓰담!
응?
그녀는 내 정수리 쪽을 열심히 쓰다듬더니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 안드라스를 향해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안드라스…… 안드라스. 얘 이상해. 뿔이 없어.”
“아, 시현 님은 마족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인간?”
테르잔은 ‘인간’이라는 말에 살짝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곳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들이밀고 냄새를 맡거나, 얼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기도 했다.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행동에 모두가 난감해하던 그때.
「시현이 싫어하니까 떨어져라, 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