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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37화 (33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37화

침묵의 숲(2)

‘침묵의 숲’ 경계에 도착한 일행은 그곳에서 꼬박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다.

‘왜 곧바로 숲으로 들어가지 않냐?’

-는 나의 질문에 안드라스와 로커스가 차례로 대답했다.

“최대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해가 떠오르는 새벽에 출발하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해가 없으면 진짜 지옥이 시작되니까.”

옆에 있던 크록도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말에 동의했다. 그들의 대답에서 ‘침묵의 숲’을 얼마나 경계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물끄러미 침묵의 숲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멀리서 보면 그냥 평범한 숲일 뿐인데…….

너무 고요하다 못해 평화롭게까지 느껴지는 침묵의 숲.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경계를 하는 건지 살짝 궁금해졌다.

일행은 근처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바람막이 삼아 노숙을 준비했다.

그리고 농장에서 가져온 휴대용 간편식을 잔뜩 꺼내 든든한 식사를 준비했다.

“오오…….”

특히 테르잔은 저쪽 세계에서 가져온 간편식 제품들을 보며 관심을 드러냈다. 끓는 물 하나만으로 꽤 근사한 식사가 완성되자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받아 직접 맛을 봤을 때는 그녀의 흐릿했던 눈동자가 순간 초롱초롱해졌다.

“이것도 네가 만든 거야?”

“이 간편식 제품들이요?”

“응응.”

“아뇨. 저도 돈을 주고 사 온 것들이에요.”

“그럼 나도 살 수 있어? 돈은 충분히 줄게.”

그녀는 내 팔을 꽉 붙잡고 제품들의 구매를 부탁했다. 당연히 마계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들이라 나는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테르잔 님이 직접 구매하기는 힘들 거예요. 대신 남는 것들이 있으면 전부 드릴게요.”

“으음…….”

남는 것들은 그냥 주겠다는 말에 테르잔은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이 간편식 제품들을 꽤 많이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다시 음식을 맛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것만 있으면 리아네가 요리할 걱정도 없을 텐데…….”

“어, 언니?!”

“큭큭큭.”

“어흠, 큼!”

테르잔이 뜬금없이 리아네의 요리를 언급하자 당사자는 크게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고, 나머지 일행들은 필사적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끝까지 표정 관리를 못 한 로커스는 남은 식사시간 내내 리아네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약간의 소란스러움과 함께 식사시간이 끝났다.

식사 정리가 끝나자마자 일행은 평소보다 빠르게 잠자리를 준비했다.

내일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하니, 모두가 일찍 휴식을 취했다.

* * *

아직 밤하늘에 별이 흐릿하게 보이는 새벽.

일행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나 역시 침낭과 자리를 정리하고 약간 찌뿌둥한 몸을 가볍게 풀었다.

그래도 요 며칠 사이에 여행이 익숙해진 덕분인지. 노숙이었음에도 꽤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리아네가 준비한 따뜻한 차 한 잔씩을 받아 마신 뒤. 일행은 본격적인 숲 진입을 위해 움직였다.

“시현 님, 이제부터 긴장하셔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최대한 대열을 유지해 주십시오.”

“제 옆에 꼭 붙어 있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드릴게요.”

안드라스와 리아네는 아이에게 타이르듯 나를 주의시켰다.

조금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머릿속에 스쳤지만, 여느 때보다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나도 진지한 태도로 새겨들었다.

“걱정 마…… 나만 잘 따라오면 돼.”

“후방은 나랑 크록이 맡을 테니까 안심하라고.”

“…….”

전방에서 길 안내는 테르잔. 후방은 로커스와 크록이 맡기로 했다. 나는 가장 안전한 자리에서 리아네와 안드라스의 호위를 받게 됐다.

대열을 갖춘 일행은 테르잔을 따라 천천히 숲으로 진입했다.

주변은 점점 끝없는 숲의 풍경으로 가득해졌다.

분명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음에도 숲 안쪽은 아직 밤인 것처럼 시야가 흐릿했다.

-…….

-사박……. 사박…….

거기다 비현실적인 고요함.

그나마 앞뒤로 들려오는 일행의 풀 밟는 소리가 현실감을 유지하게 해줬다.

어떻게 이 정도로 조용할 수 있지?

그 흔한 새소리, 풀벌레 소리도 모두 숲에 잡아먹힌 것처럼 고요함을 유지했다. 분명 개방된 공간임에도 밀실에 들어온 것처럼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 숲을 얼마나 걸었을까?

주변은 온통 빽빽한 나무로 가득해 햇빛도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시간 감각도 자연스레 무뎌졌다.

걸어도 걸어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장소. 점점 무뎌지는 감각.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어둠이 조금씩 나에게로 다가와…….

-짝!

“정신 차려!”

한쪽 뺨이 화끈해지는 느낌과 함께 테르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예?”

“…….”

테르잔은 대답 대신 눈짓으로 발 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내려보니, 어느새 두 발은 일행의 진행 방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헉…….”

순간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안드라스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의 놀란 마음을 안심시켰다.

“처음 이곳에 오면 많이 겪는 증상입니다. 저도 예전에 겪어봤습니다.”

“으음.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이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종류의 위험이 아닙니다.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그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죠. 아마 테르잔 님이 부르기 전까지는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셨을 겁니다.”

“…….”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뺨에 화끈함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나의 이상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괜히 이곳을 마계에서 손꼽히는 위험한 곳이라며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지독한 곳이죠.”

“미안해요. 좀 더 긴장할게요.”

“괜찮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처음에는 누구나 다 겪는 증상입니다.”

머쓱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테르잔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하나의 감각만 무뎌져도 나머지 감각 모두 제 기능을 할 수 없어.”

“예?”

“너무 자신의 감각에 의존하지마. 이 침묵과 고요를 그대로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

“응…… 그래야 침묵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어.”

테르잔은 아리송한 조언을 남긴 뒤, 다시 대열의 앞쪽으로 돌아갔다.

이 지독한 곳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조금은 안 것 같았다.

약간의 해프닝을 뒤로하고 일행은 다시 숲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있는 그대로…….

조언을 머릿속으로 계속 되새기며, 침묵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신을 유지했다. 덕분에 지독한 고요함과 숲에서 느껴지는 답답함도 조금은 익숙해질 수 있었다.

최소한의 휴식으로 강행군이 이어지는 와중.

테르잔은 방향도 가늠하기 힘든 숲속을 쭉쭉 나아갔다. 나침반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테르잔 님은 어떻게 안내를 하는 걸까요?”

내 물음에 옆에 있던 리아네가 조용히 답했다.

“저도 언니가 어떻게 길을 찾는지는 잘 몰라요. 그저 그림자 일족의 능력이라고 추측할 뿐이에요.”

“그림자 일족…… 그분들은 왜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자리 잡은 걸까요?”

“글쎄요…….”

나와 리아네가 잠시 잡담을 나누던 그때.

길을 안내하던 테르잔이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으윽?!

혹시 나랑 리아네 씨가 이야기하는 걸 들으셨나?

수업 중에 떠들다가 선생님에게 걸린 것처럼 불안해하고 있는데. 정작 테르잔은 내 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주변을 살폈다.

한참 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온다.”

“……?”

그녀의 중얼거림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머지 일행들은 곧바로 전투준비를 하며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는 급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안드라스와 리아네가 주의했던 자리를 지키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스스슥……. 스스슥…….

모두가 긴장하고 주변을 경계했지만, 적의 위협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약한 바람 소리만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숨죽이고 기다리던 그때.

-스스슥…… 파앗!

흐릿한 어둠 속에서 찰나의 번쩍임.

그리고 작은 바람 소리 사이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채앵∼!

가장 먼저 반응한 크록이 자신의 대검으로 공격을 쳐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힘을 잃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 첫 번째 공격이 신호였다는 듯.

사방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챙! 채앵!!

크록은 민첩하게 대검을 휘둘러 적의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저 거대한 덩치에 잔상을 느낄 만큼 비현실적인 움직임이었다.

로커스는 크록의 방어를 앞세우며 푸르스름한 단검을 하나씩 날려 보냈다.

-휙!

-키에에엑?!

단검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기괴한 비명이 되돌아왔다.

안드라스는 아티팩트로 주변에 방어막을 펼쳐내며 공격을 차단했고, 리아네 역시 내 주변을 지키며 적의 기습을 대비했다.

그리고 테르잔은…….

-휘이익…… 촤아악!!

-키에에엑?!

-키에에엑?!

높은 나무 위를 빠르게 움직이며 적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크록이 비현실적으로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줬다면, 테르잔은 눈으로 좇기도 힘든 움직임으로 적들을 상대했다.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지면, 잠시 뒤에 그 주변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식이었다.

-투둑…… 털썩!

나무 위쪽에서 떨어지는 적들의 시체.

전체적으로 원숭이와 비슷한 모습의 마수였다.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 꼬리에는 뾰족한 침들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저 꼬리의 침들을 어둠 속에서 날려 보낸 것 같았다.

숲속을 울리던 비명이 잦아들었다.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을 때.

테르잔이 특유의 유령 같은 움직임으로 우리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약간의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다친 사람?”

“…….”

“죽은 사람?”

“…….”

“좋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살짝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테르잔을 보며.

이 지독한 숲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나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더는 주변에 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 일행은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전투에 사용했던 무기를 잠시 정비하던 와중에 테르잔이 다시 중얼거렸다.

“벌써 왔나…….”

“또 적인가요?”

다시 긴장하는 일행들에게 테르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오히려 다칠 거야.”

“예? 그게…….”

그녀에게 제대로 물어보기도 전에 수많은 그림자가 우리 주변에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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