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41화
요정계로 향하여(3)
-크허어어엉!
거대한 마수의 입에서 다시 한번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살벌한 기세가 담긴 울음에 숲의 나무들이 몸을 떨었다.
그림자 일족은 그 기세에 밀리지 않고, 마수 주변을 빈틈없이 포위하며 계속 압박해 나갔다.
바르단과 테르잔도 직접 나서서 정찰대원들의 포위를 도왔다.
그들의 압박이 심해질수록 마수의 눈동자에는 점점 살기가 진해졌다.
긴장감으로 잔뜩 뻣뻣해진 꼬리, 눈에 띄게 움찔거리는 앞발. 마수는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그림자 일족을 덮칠 듯했다.
서로 물러섬 없이 팽팽한 대치 상황.
그 사이 리아네와 안드라스가 다시 한번 더 나를 재촉했다.
“시현 님, 지금 당장 가야 해요!”
“저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얼른 가셔야 합니다.”
“잠시만요. 저 마수……. 그냥 싸우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뭔가를 지키려고 여기 있는 거예요.”
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마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
“예?”
“으음…….”
리아네와 안드라스는 당황한 반응을 보였지만, 반대하거나 헛소리 취급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를 오랫동안 겪으면서 이런 상황 자체가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반면에.
“뭘 확인하겠다는 거야? 지금 저 녀석 눈동자를 봐봐! 당장에라도 누군가를 찢어놓을 기세라고. 아무리 영주님이라고 해도 너무 위험해! 그냥 저 녀석들에게 맡겨.”
“……!”
로커스는 펄쩍 뛰며 나를 말리려 했다. 크록도 다급한 손놀림으로 수화를 표현했다. 대충 너무 무리하지 말하는 의미인 것 같았다.
“안 돼요. 이대로 두면 그림자 일족분들이 엄청난 피해를 볼 거예요.”
“어제 저 녀석이 하는 말 같이 들었잖아. 마수가 적당히 물러날 정도만이라면 큰 피해 없을 거라고.”
나는 단호하게 로커스의 말을 부정했다.
“아뇨. 저 마수는 절대 물러서지 않아요. 오히려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려고 할 거예요.”
“뭐……?”
“그런 식으로 싸움이 계속된다면 아무리 그림자 일족의 실력이 뛰어나도 큰 피해를 볼 거예요.”
요정계 입구로 가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지만, 그렇다고 친절하게 도움을 주었던 그림자 일족의 위험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 없어요. 지금은 무의미한 싸움을 멈추는 게 먼저예요.”
나는 더 설명하는 것을 그만두고. 거대한 마수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함께 있던 일행들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뒤따라 움직였다.
-스스스슷!
마수를 향해 다가가던 내 앞에 테르잔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뭐 하는 거지? 이곳은 위험해.”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싸늘한 눈빛으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테르잔 님, 저 마수와 싸움을 멈춰야 해요!”
“……?”
“섣불리 마수를 공격했다가는 분명 큰 피해를 볼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지금 저 마수는 뭔가를 지키려 하고 있어요. 어떤 위협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울 거예요.”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내 뒤편에 있는 안드라스 쪽을 바라봤다. 마치 ‘이 말이 사실이냐?’라고 묻는 듯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현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마수와 관련된 일이라면 매번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셨으니까요.”
“…….”
안드라스의 대답을 들은 테르잔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녀는 한층 또렷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일단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그림자 일족분들의 포위를 조금만 물려주세요.”
“섣불리 포위를 풀었다간 마수의 공격에 대응이 힘들어져.”
“괜찮아요. 마수 쪽에서 먼저 공격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마수는 뭔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섣불리 공격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포위를 푼 다음에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직접 저 마수와 이야기를 해볼 거예요.”
“……!”
테르잔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그녀에게는 꽤 큰 표정 변화였다.
“위험할 텐데?”
“알고 있어요. 그래도 도움을 주신 그림자 일족분들의 위험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어요.”
“으음…….”
테르잔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스르륵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빠르게 손을 올려 내 머리를 토닥거렸다.
“기특하네.”
“……?”
“좋아. 네 말대로 할게.”
생각보다 쿨하게 허락한 테르잔은 허공을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그림자 일족의 독특한 대화법을 사용하는 듯했다.
잠시 후.
마수를 압박하던 포위망이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포위망이 풀린 건 아니었다. 여전히 마수 주변을 철저히 통제하며 포위를 유지했다.
이제 내 차례인가?
나는 일행들과 짧게 시선을 교환했다. 모두 불안한 표정을 하면서도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만약에 마수가 너를 공격하려 한다면, 그때는 기다리지 않을 거야.”
테르잔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볼 수 있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천천히 마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마수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충분히 서로를 인지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크르르르르…….
포위망의 압박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마수의 경계심은 여전히 최대치에 가까웠다.
내가 다가설 때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를 체감할 정도였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경계선에 서서 마수를 응시했다.
멀리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마수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능력을 사용해 천천히 마수와 교감을 시도했다.
-죽여 버리겠다!
가장 먼저 마수에게 느껴진 것은 아주 지독한 적대감이었다. 만약 녀석이 지켜야 할 게 없었다면 나를 순식간에 조각내 벼렸을 거다.
“자, 잠깐! 나는 너랑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온 거야.”
-크르르르르…….
최대한 싸울 의사가 없음을 표현하며 계속해서 교감을 시도했다.
“뭔가 사정이 있어서 여길 계속 지키고 있는 거지?”
-알 필요 없다! 계속 허튼짓한다면 후회하게 해주마.
“나는 요정 여왕을 만나기 위해 여길 찾아왔어. 혹시 너도 요정 여왕을 만나러 온 거야?”
-…….
대화는 삐걱거리며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지독하던 적대감은 조금 누그러졌다.
“으음…… 혹시 지금 지키고 있는 게 네 새끼인 거야?”
내 질문에 마수는 낮은 으르렁거림으로 대신 대답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뒤쪽에서 느껴지던 미약한 기운들은 마수의 새끼가 틀림없는 듯했다.
“새끼들의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내가 뭔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혹시 모르지. 나에게 도울 방법이 있을지도. 어차피 너도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서 무작정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
마수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나의 태도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너랑 싸울 생각은 없어. 도움이 필요하다면 최대한 도와줄게.”
-킁! 내 새끼들에게는 요정 여왕의 축복이 필요하다. 네 녀석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야!
요정 여왕의 축복?
“여기에 있으면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원래라면 그렇다.
원래라면……?
그 말은 반대로 말해서 지금은 아니라는 뜻. 아마 이 마수도 요정계에 생긴 이상 때문에 피해를 보는 중인 듯했다.
짧게나마 마수와 대화가 오가던 그때.
뒤쪽에서 느껴지던 희미한 기운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다지 좋지 않은 징후였다. 마수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행동이 다급해졌다.
“이봐! 나한테 새끼들을 보여줘!”
-크와아앙! 물러서라. 아무도 내 새끼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
마수는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위협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거야?!”
-크르르르…….
계속된 설득에도 녀석은 여전히 경계심을 드러내며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급해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새끼들이 죽으면 저 마수가 날뛰게 되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이대로 물러서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내 품속에서 규리가 쏙 모습을 드러냈다.
「멍청한 마수다, 뾰! 시현이라면 충분히 네 새끼를 살릴 수 있을 거다, 뾰!」
-요정……?
예상치 못한 규리의 등장에 마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요정이 왜 저 녀석이랑 같이 있는 거지?
「나랑 같이 요정계로 가는 길인데, 네가 길을 막고 있어서 못 가고 있는 거다, 뾰!」
규리는 무시무시한 모습에 전혀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규리에게는 마수가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호의적인 모습으로 물었다.
-요정. 정말로 이 녀석이 내 새끼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거냐?
「시현은 내 친구다, 뾰! 절대 거짓말 안 한다, 뾰!」
-크릉…….
커다란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수는 고민에 빠진 듯 나와 규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렇게 한참 동안 끙끙대던 녀석은 뭔가를 결심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도울 수 있는 거겠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볼게.”
-허튼짓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수는 몸을 슬쩍 돌려 길을 열어주었다.
“오오!”
“마수가 물러섰다?”
“정말 해냈어.”
압박에도 꿈쩍 않던 녀석이 쉽게 물러서자,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한편.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쓸 틈도 없이 곧바로 움직였다. 미약하게 느껴지던 기운들이 마치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커다란 마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생명의 기운들이 느껴졌다. 기운을 따라 도착한 곳에서 나뭇가지와 커다란 잎으로 위장된 곳을 발견했다.
천천히 위장을 걷어내니 급하게 파낸 듯한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잉. 끼잉.
-끼이잉.
그 구덩이 안에는 새끼 마수들이 서로 온기를 나누며 버티고 있었다.
아직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걸 보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마수들인 것 같았다.
옆에 있는 무시무시한 마수의 자식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귀여운 아기 마수들이었다.
구덩이 쪽으로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녀석들을 살폈다. 예상한 대로 부상이나 질병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