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43화
위기의 요정계(1)
「…….」
-흔들흔들
「……나라, 뾰!」
몸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천천히 의식이 돌아왔다.
「시현!」
“으으음. 규리?”
「일어나라, 뾰!」
귓가에 울리는 규리의 목소리.
이제 막 정신을 차려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시끄러운 것 같은데…….
누워 있는 상태로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런데 신기하게도 파란색이 아니라 연한 분홍색 하늘이었다.
이게 요정계의 하늘?
신비한 분위기에 잠시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을 가득 담던 내 시야에 귤색 머리칼 요정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야, 뾰!」
“알았어. 이제 일어날…… 음?”
나는 분홍색 하늘보다 더 이상한 사실을 깨닫고 두 눈을 끔뻑거렸다. 혹시 눈이 이상해졌나 싶어 두 손으로 비벼보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상 현상은 그대로였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어…… 규리야.”
「왜 부르냐, 뾰?」
“너 언제 이렇게 커졌어?”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시선을 맞추는 규리.
평소였다면 시선을 맞추기 위해 내 얼굴 앞으로 날아야 했을 텐데. 지금은 평범한 소녀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날개 달린 것만 빼고.
「꺄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뾰!」
“……?”
「내가 커진 게 아니라, 시현이 작아진 거다, 뾰!」
“내가 작아졌다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황급히 내 몸을 둘러봤다. 침묵의 숲에 있을 때와 별달리 달라진 점을 찾지 못했다.
지금으로써는 내가 작아진 것인지, 규리가 커진 것인지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더 꾸물대지 말고 빨리 가자, 뾰! 얼른 친구들이랑 여왕님을 만나고 싶다, 뾰!」
“으…… 응.”
신난 표정의 규리가 나를 재촉했다. 아직 얼떨떨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작은 모습이었던 요정인데. 지금은 나의 팔을 쭉쭉 잡아당기며 이끌자 기분이 묘했다. 나중에 은율이가 쑥쑥 자라면 이런 느낌이려나?
뭐, 어찌 됐든.
앞서나가는 규리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마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처음 보았던 분홍색 하늘처럼, 주변의 풍경도 굉장히 신비로웠다.
내 키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꽃들이 가득했고. 중간중간에는 버섯과 나무 열매들도 잔뜩 널려 있었다. 덕분에 내가 작아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작아진 덕분인지 꽃향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꽃 아래를 지나면서 달콤한 향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온몸을 감싸는 듯한 포근함과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분위기. 정말 요정들이 지내는 곳이라는 느낌이 확 와 닿았다.
으음…….
근데 아직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불안한 느낌이나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가끔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평온함이 가득했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다, 뾰!」
“알았어. 얼른 가보자.”
일단 정확한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이곳의 요정들과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았다.
* * *
“여기가 요정 마을?”
「맞다, 뾰!」
“와아…….”
처음 요정 마을을 보자마자 자연스레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형형색색의 꽃잎과 커다란 잎을 엮어 만든 집부터, 딱딱한 도토리를 재료로 만든 집, 작은 나무의 가지마다 작게 만든 집까지.
정말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기자기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이 요정의 웃음소리와 너무 잘 어울렸다.
이곳저곳 구경하느라 완전히 빠져 있는데.
-스윽…… 스윽……
마을 곳곳에서 하나둘 요정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저거 시현인 것 같은데, 뾰!」
「시현? 어디어디?」
그들은 수군거리며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앗! 진짜 시현이다, 뾰!」
「정말?」
「시현!!」
나를 발견한 요정 몇 명이 반가운 미소와 함께 달려들었다.
-우르르르!
“어…… 어엇! 너희들?”
몸집은 커졌어도 금방 그들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규리와 함께 딸기밭을 도와줬던 요정들이었다.
「으아앙! 보고 싶었다, 뾰!」
「딸기밭은? 딸기밭은 무사한 거야, 뾰?」
「왜 이제 온 거야, 뾰!」
“으아악! 얘들아, 자, 잠깐!”
평소에 작은 요정의 모습이라면 괜찮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요정들과 비슷한 몸집이었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요정들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야 했다.
「저건 누구야, 뾰?」
「나도 잘 모르겠다, 뾰!」
소란스러움에 마을의 요정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내 주변은 금방 모여든 요정들로 혼잡해졌다.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딸기밭은 아직 괜찮아. 엘든 마을 사람들이 잘 보살피고 있을 거야. 그러니 모두 진정 좀 해봐.”
덩치는 커졌어도 순수하고 착한 내면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딸기밭 요정들을 달래줬다.
웃음을 되찾는 요정들을 보며 나도 방긋 미소 지었다. 요정들이 아직 딸기밭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다.
딸기밭 요정들이 조금 진정 됐을 때, 나는 곧바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을 질문했다.
“너희들. 갑자기 왜 딸기밭에서 사라졌던 거야? 규리의 말대로 요정 여왕님의 명령으로 떠난 거야?”
「응! 여왕님이 우리를 불렀다, 뾰!」
「딸기밭에서 계속 지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뾰!」
「우리 말고 다른 요정들도 다 돌아왔다, 뾰!」
여기까지는 규리가 나에게 설명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그럼 여왕님은 왜 갑자기 너희들을 데려온 거야?”
「그건…….」
딸기밭 요정 중 한 명이 가장 중요한 대답을 하려던 그 순간.
「꺄아아악!」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또 붕괴가 일어난다, 뾰!」
「빨리 막아야 한다, 뾰!」
「얼른 가자, 뾰!」
비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여있던 요정 모두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 주변에 있던 딸기밭 요정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시현! 저길 봐라, 뾰!」
규리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 하늘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쩌저적…… 쩍!
-끼이이이익!!
하늘에 울려 퍼지는 파열음.
그것은 평화로운 요정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저건…… 균열?”
요정계의 분홍색 하늘이 크게 갈라지며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지구에서 봤던 균열 현상과 매우 흡사했다.
수많은 요정이 재빨리 균열을 둘러싸며 반짝이는 빛을 뿜어냈다. 요정의 빛은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천천히 밀어냈다.
「나도 가봐야 할 것 같다, 뾰!」
“…….”
규리도 재빨리 하늘로 날아올라 요정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쩌적!
-끼이잉!!
「모두 조금만 더, 뾰!」
「균열이 작아진다, 뾰!」
균열은 계속 크기를 키우려고 했고, 요정의 빛은 어떻게든 그것을 저지하려 했다. 팽팽하던 두 세력 간의 싸움은 조금씩 요정 쪽으로 기세가 기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요정들에게 밀려 점차 줄어들던 균열은 작은 빛무리를 남기고 완전히 사라졌다. 불길한 기운이 자취를 감추자 요정계 하늘에는 다시 평온함이 찾아왔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균열을 막아낸 요정들은 하늘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약한 바람에도 휘청휘청하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몇몇은 거의 추락하듯 땅에 내려앉았다.
“너희들 괜찮아?”
「으응…….」
그나마 규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힘들게 대답했다. 나머지 요정들은 바닥에 널브러져 휴식을 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규리야. 요정계에 원래 저런 균열이 생겨나는 거야?”
「나는 저런 건 처음 본다, 뾰!」
처음 본다?
규리는 고개를 흔들며 내 질문을 정확히 부정했다.
하지만 아까 다른 요정들은 균열이 발생하자마자 빠르게 대처했다. 거기다 마을에 있던 요정들은 규리보다 훨씬 피곤해 보였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추측해 보았을 때, 요정계에 균열이 생겨난 건 처음이 아닌 듯했다. 요정들은 그 균열들을 수차례 막아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요정들을 불러모은 요정 여왕.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균열.
어지러웠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추측은 잠시 미뤄두고.
나와 규리는 지쳐 쓰러진 요정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혹시 다친 요정이 없는지 살피고, 물통을 꺼내 목을 축일 수 있게 도와줬다.
「꿀꺽, 꿀꺽!」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말 고맙다, 뾰!」
요정들은 힘없이 웃으며 감사 인사도 겨우겨우 입 밖으로 냈다. 그들의 미소가 너무나도 애처롭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나와 규리가 동분서주 뛰어다닌 덕분에 요정들은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머리 위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요정들의 날갯짓 소리와 비교해 더 묵직하고 큰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날갯짓의 주인을 확인했다.
“……장수풍뎅이?”
갑옷을 입고, 검과 방패를 무장한 장수풍뎅이들이 차례로 내 앞에 내려앉았다. 규리는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왕님을 지키는 호위병들이다, 뾰!」
“…….”
그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장수풍뎅이가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 요정계 입구를 통과한 인간입니까?」
“네…… 맞습니다.”
「요정 여왕님께서 당신과 만나길 원하십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장수풍뎅이 호위병은 꽤 정중한 태도로 제안했다.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여기 요정들은 어떻게 하죠?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어요.”
「이분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왕님께서 보낸 지원이 곧 도착할 겁니다.」
“아…… 그렇군요.”
마치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덕분에 나는 조금 뻘쭘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시현이랑 같이 가고 싶다, 뾰!」
「상관없습니다. 여왕님께서는 당신도 함께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규리는 사명감에 찬 얼굴로 나에게 꼭 붙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두 분 다 따라오시지요. 여왕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