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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47화 (34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47화

위기의 요정계(5)

-쓰담쓰담.

내 손이 그림자 일족 아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손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기운이 아기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꺄아우!”

자신을 감싸는 따뜻한 기운에 아기는 방긋 웃으며 옹알이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두 부모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생겨났다.

나는 품에 안은 아기를 토닥토닥해 주며 마지막 덕담 한마디를 남겼다.

“그래. 앞으로 건강하게 자라나렴.”

“아우우. 아우!”

방긋방긋 웃으며 품에 안겨드는 아이.

너무 귀여운 모습에 계속 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렵게 그 욕망을 억누르면서 아기를 부모에게 넘겨줬다.

“끄, 끝난 건가요?”

“네.”

“축복을 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요정 왕님!”

“아뇨. 저는 요정 왕이 아닌데…….”

나는 곧바로 ‘요정 왕’이라는 호칭을 부정했으나, 아이의 부모들은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할 뿐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심이 담긴 인사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부부는 자리에 일어서면서도 공경한 자세를 유지하며, 아기를 데리고 방문 밖으로 나섰다.

“아바바. 아바!”

“안녕!”

아빠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아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흐뭇하게 웃으며 귀여운 인사를 받아줬다.

부모와 아기가 떠나고.

방안에 혼자만 남게 된 나는 조금 늘어진 자세를 취했다.

“휴우우.”

귀여운 아이들을 상대하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그것도 계속해서 이어지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계속 축복을 걸어주다 보니 알게 모르게 기운이 허해지는 것 같았다.

혼자만의 느긋한 시간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똑. 똑. 똑.

-바르단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내 허락과 동시에 방문이 열리고 바르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주 공경한 태도로 내게 예의를 표했다.

원래도 나를 손님으로서 정중하게 대접하긴 했지만, 지금 보이는 태도는 그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엘든 마을의 주민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최소 동급, 혹은 그 이상이었다.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죠. 얼른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애초에 바르단이 주인이고, 내가 손님인 입장인데. 그는 마치 정반대의 입장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조심스럽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꼿꼿하게 자세를 잡았다. 누가 봐도 주인 쪽에서 취할 자세는 아니었다.

“저기…… 좀 더 편하게 앉으시는 게?”

“괜찮습니다. 저는 이 자세가 편합니다.”

“…….”

아오!

내가 불편하다고!

마음 같아서는 시원하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바르단이 오체투지 자세를 취할지도 몰랐기에 꾹 참았다.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혹시 너무 많은 아이를 상대하시느라 무리하신 건 아니신지?”

“이 정도는 괜찮은 것 같아요. 아직 마을에 축복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남아 있나요?”

“아닙니다. 조금 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요정 여왕의 축복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 규모가 크지 않은 탓에 생각보다 빨리 모든 아이를 만나볼 수 있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뇨, 이 정도로 뭘요. 저는 그저 이 방에 편히 앉아서 아이들을 몇 번 쓰다듬어줬을 뿐인데요. 뭘.”

“그렇지 않습니다. 요정 여왕의 축복을 받는 건, 그림자 일족에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입니다. 오늘 축복을 받은 아이들은 평생 시현 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게 될 겁니다.”

“하하…….”

바르단의 이야기에 입바른 말이 전혀 아니라, 진한 진심이 느껴졌다.

너무 과한 반응에 부담스러우면서도, 아이들의 미소가 생각나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드르륵…….

닫혀 있던 문이 살짝 열리며 누군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시현 님. 하시는 일은 끝났나요? 들어가도 될까요?”

붉은 머리의 용마족.

리아네였다.

“네, 끝났어요. 들어오셔도 돼요.”

“헤헷.”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쏙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으로 안드라스, 로커스, 크록가 줄줄이 뒤따랐다. 혼자 있기에는 썰렁했던 방이 금방 북적북적해졌다.

“정말 대단해요. 시현 님 덕분에 아이들 모두가 축복을 받았다면서, 지금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예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민망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자, 안드라스가 정색한 표정으로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요! 무려 ‘요정 여왕의 축복’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축복을 받은 존재는 인생에 행운이 가득했으며, 숨을 거두는 날까지 무병장수했다고 합니다.”

“허허…….”

나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내 두 손을 바라봤다.

그런 대단한 축복을 내가 쓰다듬는 것만으로 받을 수 있다니. 도저히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요정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떻게 요정 여왕의 능력이 우리 영주님한테 있는 거냐고.”

로커스의 질문에 모두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드러냈다. 나에게 쏟아지는 열망의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딱히 뭐라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딱히 숨기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아는 게 없었다.

신비한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규리와 함께 요정계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무뿌리 쪽에 있던 요정계 입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동하지 않았다.

좀 더 입구에서 기다려보려 해도 이미 그때는 오후의 많은 시간이 흘러 어둠이 찾아오던 시점이었다.

위험한 숲 한가운데서 밤을 지낼 수 없었기에,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행들과 급히 마을로 되돌아왔다.

나와 계속 함께 있었던 규리 역시.

「끄응…… 나도 잘 모르겠다, 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불안해하던 규리는 피곤함에 지쳐 내 주머니 안에서 잠들었다.

일행들에게는 이 능력을 얻게 된 경위 대신, 요정계에 있었던 일을 대신 설명해 줬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안드라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요정계에서도 균열이…….”

“그럼 새로운 요정계를 만드는 데 실패한 건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리아네 씨.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입구가 막혀 버려서 확인할 수가 없으니.”

만약에 요정계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면…….

그 많던 요정들은 전부 사라진 것일까? 규리만 유일하게 끔찍한 일을 피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일에 휘말리긴 했어도 이번 여행의 목적은 딸기밭 요정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면 마음이 너무 안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시현 님?”

“…….”

안드라스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을 단정 지을 순 없었다. 가능하면 결말을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다.

“바르단 님.”

“편하게 불려주셔도 됩니다, 시현 님.”

“으음…… 그럼 바르단 씨. 혹시 괜찮으시다면 내일 요정계 입구로 다시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내 부탁에 바르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내일도 정찰대원들을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물론 나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걸 까먹지 않았다.

방에 남은 일행들에게도 조금만 더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도 역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 *

그림자 일족 마을에서 하룻밤이 또 지나가고.

나와 일행들은 정찰대원들의 안내를 받아 다시 요정계 입구로 향했다.

입구가 있는 커다란 나무가 보일 때쯤.

이젠 익숙해진 거대 마수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크릉! 역시 또 왔군.

녀석은 이제 전혀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물론 다른 일행들과 정찰대원들은 여전히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아직도 여기에 있었어?”

-네가 또 이곳에 찾아올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내 자식들을 살려줬으니 그만큼 은혜를 갚아야지. 당분간은 계속 이 근처에서 지내며 다른 마수들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지킬 생각이다.

“오? 그렇게 해주면 나는 고맙지.”

거대 마수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거대 마수와 짧은 대화를 끝마치고.

나와 규리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입구가 있는 뿌리 쪽으로 향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동굴로 들어가 통로를 지나는데.

「아앗! 시현, 시현!」

어깨에 걸터앉아 있던 규리가 내 목 부분을 찰싹찰싹 때리며 소리쳤다.

「입구가 다시 열린 것 같다, 뾰!」

“정말?”

나는 반색한 표정으로 통로 앞쪽을 바라봤다. 규리의 말대로 어제와는 다르게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 근데 어제 방문했던 요정계의 느낌이랑 조금 다른데.

거기다 이 느낌…… 왠지 모르게 어딘가 익숙하네?

통로 끝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느낌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는 거냐, 뾰?」

“으응. 알았어.”

나는 규리의 재촉에 떠밀리듯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몽롱한 기분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잠시 후.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긴…….”

내가 의식을 되찾은 곳은 분홍색 하늘, 그리고 커다란 나무와 꽃들이 가득한 요정계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의 그곳…….

“아이고! 제자야, 드디어 왔구나.”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쉽게 그 존재를 인식했다.

“스승님?”

“잘 왔다. 잘 왔어.”

“……?”

벨리온은 ‘지금껏 이런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그는 얼떨떨한 나를 붙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제자야. 저 지독한 녀석들 좀 어떻게 해줘라.”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저 녀석들의 괴롭힘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예에??”

아니.

차원 전쟁의 영웅이라 불리는 스승님을 도대체 누가 괴롭힌단 말인가?

연이어 벌어지는 이상한 상황에 제정신을 못 차리던 그때.

「앗! 찾았다, 뾰!」

「무서운 아저씨 저기 있다, 뾰!」

「우리랑 놀다 말고 어디 간 거냐, 뾰!」

장난기 가득한 작은 존재들이 내 앞에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는 딸기밭에서 함께 했던 녀석들도 섞여 있었다.

불안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싹 깨끗해지며 그 빈자리에 안도감과 함께 반가움이 가득해졌다.

그러면서 머릿속 한편에서 하나의 의문이 강하게 떠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요정들이.

시현계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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