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49화 (34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49화

베르딕의 방문(1)

“드디어 오셨네요.”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은율이 다음으로 엘프리드와 릴리아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 뒤를 아슈미르와 우르키도 함께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시현 님.”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시현 선배님.”

“저희가 떠나 있는 동안 별일 없었죠? 아직 농장 일에 익숙하지 않으셨을 텐데. 두 분 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엘린 선배가 잘 알려줘서 괜찮았어요.”

처음 농장을 떠날 때, 두 명의 천족이 농장 일을 잘해줄지 걱정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일 처리를 잘해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농장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체감이 들었다.

리아네는 익숙한 농장의 풍경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집이 최고인 것 같아요.”

“동감입니다, 리아네 양.”

“으으. 이제 나도 늙었나 봐. 밖에 나돌아다니는 것도 못 할 짓이다. 안 그렇냐, 크록?”

“…….”

로커스가 기지개를 켜며 묻자 크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모든 일행이 편안해진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빠, 아빠!”

“은율아, 왜 불러?”

“정말로 요정계에 갔다 왔어? 요정 여왕님도 만난 거야?”

“응. 다녀왔지. 요정계에 있던 요정들도 만나고, 여왕님도 직접 만났지.”

“와아…… 여왕님은 어떻게 생겼어? 규리처럼 작아?”

은율이는 눈을 반짝이며 요정 여왕에 관해 물었다. 나는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은율이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나중에 전부 이야기해 줄게. 요정 여왕님 말고도 은율이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들이 많거든. 침묵의 숲에서 신비한 그림자 일족이라든가, 큰뿔이처럼 커다랗고 사나운 마수 이야기라든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용담들에 은율이의 눈동자가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벌써부터 안달이 난 표정으로 몸을 들썩거렸다.

“나중에 꼭 이야기해 줘야 해. 약속!”

“물론이지. 약속! 은율이가 듣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이야기해 줄게.”

“헤헤!”

은율이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채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도 작은 여우 소녀를 꼬옥 껴안으며 안정감을 느꼈다.

“어이, 드디어 돌아왔냐?”

그리고 농장 쪽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한 마족.

카네프가 잠에 덜 깬 것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말을 걸어놓고 성의 없이 하품하는 모습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굉장히 정겨웠다.

“네, 이제 막 도착했어요.”

“그래도 크게 다친 녀석은 없나 보네? 한두 놈쯤은 들것에 실려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의 무신경한 말에 리아네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휴, 그게 힘들게 돌아온 사람들에게 할 말이에요?”

“하여간. 저 삐뚤어진 성격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질 않는구나.”

“하하, 이렇게 마중을 나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녀의 핀잔에 로커스가 동감을 표했고, 안드라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카네프는 그들의 반응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아웅다웅하는 모습도 정겹게 느껴져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카네프가 내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 녀석은 왜 데리고 온 거냐?”

“……?”

“그림자 일족이 있는 곳에 남은 거 아니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돌아온 사람은 여기 있는 농장 식구들밖에 없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네프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와 다리를 스윽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오른쪽 발이 내 그림자를 툭툭 건드렸다.

“어이! 너 거기 있지?”

“갑자기 그림자는 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 올랐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몸을 움찔 떨었다.

-스으윽. 탓!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무언가는 허공에 떠올랐다가 재빨리 땅바닥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흐물흐물하던 형체가 천천히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으으음…… 벌써 도착했어?”

흐릿한 눈동자와 나른한 목소리.

날렵한 체형을 가진 여자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저,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

로커스는 평온한 표정을 단박에 깨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나머지 일행의 얼굴에도 놀라운 감정이 깃들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테르잔 님?”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여기가 네가 말했던 농장이야? 생각보다 훨씬 크네.”

“언제 따라오셨어요? 저는 당연히 먼저 떠나신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마을에 머무르려고 했는데. 너희를 따라가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벌꿀 맥주도 더 먹고 싶고, 겸사겸사 단장도 만나고.”

테르잔은 별일 아이라든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랜만이야, 카네프 단장.”

“제멋대로 행동하고 다니는 건 여전하구나?”

“예전에 단장이 경고했던 대로 남한테 피해준 적은 없어.”

“뭐…… 그럼 됐고.”

카네프와 테르잔은 무미건조하게 인사를 나눴다. 둘의 성격대로 친밀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서로를 향한 신뢰가 단번에 느껴졌다.

한편, 테르잔을 처음 본 농장 식구들은 카네프를 편안하게 대하는 모습에 호기심을 보였다.

“시현, 시현.”

“네, 테르잔 님.”

“당분간 여기서 지내도 돼?”

“농장에서요?”

“응.”

의외의 제안에 나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네가 이곳의 영주라면서? 필요한 일은 뭐든 도와줄게. 몰래 감시하는 일이나, 누굴 끌고 오는 일. 그리고 나쁜 놈에 한해서는 깔끔한 암살도…….”

“으아아앗! 그런 도움은 필요 없어요.”

황급히 은율이의 양쪽 귀를 막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부정적인 반응에 테르잔은 금방 시무룩해졌다.

“필요…… 없어……?”

“당연하죠.”

“귀족들은 이런 일 많이 부탁하던데…….”

“다른 귀족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한테는 정말로 필요 없는 도움이에요.”

“…….”

테르잔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함을 드러냈다. 다른 도움이 되는 일을 말하고 싶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 로커스는 입을 벙긋벙긋하면서 테르잔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으음. 어떻게 할까?

몰래 따라온 건 좀 의외이긴 해도 딱히 나쁜 의도는 없어 보였다.

지금도 내가 허락해 주지 않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면 딱히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도 않았다.

거기다 조금 특이한 사람인 것만 빼면. 카네프가 인정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인재이기도 했다.

누구 뒷조사나, 납치, 암살 같은 부탁을 할 생각은 당연히 없지만, 다른 일로도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정말?”

“네. 테르잔 님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았으니까. 이 정도 부탁은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고마워, 시현!”

테르잔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가 굉장히 기뻐한다는 걸 느끼며 나도 방긋 미소 지었다.

그렇게 딸기밭에 요정들이 돌아온 날.

신비한 능력의 그림자 일족도 함께 농장에서 지내게 됐다.

* * *

카디스 영주로 맞이한 첫 번째 겨울.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혹독한 계절이 그 끝을 드러냈다.

아직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잠자고 있던 생명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켤 준비를 시작했다.

농장 식구들과 영지의 주민들도 새로운 계절 맞이를 위해 점차 활동량이 늘어났다. 가장 그 움직임이 두드러진 곳은 한때 위기를 맞이했던 딸기밭이었다.

“수확한 딸기는 얼른 저장고로 옮겨!”

“빨리빨리 움직여! 날은 많이 풀렸어도 아직 해 뜨는 시간은 짧다고.”

사라진 요정들 때문에 딸기밭이 잠시 시들해졌었지만, 다행히 요정들이 돌아오면서 생기를 되찾았다.

새로운 요정계의 영향 때문인지 딸기밭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싱그러움과 활기가 넘쳤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벌써 봄이 찾아왔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영주님! 이번 수확량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 정도면 저번에 손실량을 메꾸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열심히 수확하는 주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겨울의 영향으로 딸기 가격은 훨씬 비싸졌는데, 수확량은 점점 늘어나니 모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흐뭇한 표정으로 수확의 현장을 지켜봤다. 열심히 움직이는 수인들 사이에 독특한 존재가 내 눈에 띄었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딸기밭을 날아다니며 열심히 딸기를 옮기는 새로운 일꾼. 바로 요정계에서 만났던 장수풍뎅이 호위병들이었다.

요정 여왕이 잠들면서 장수풍뎅이 호위병들을 나의 지시를 따르게 됐는데 영지 안에서는 딱히 호위가 필요하지 않으니, 지금은 든든한 일꾼으로 써먹는 중이었다.

물론 부려먹는 만큼 일당은 제대로 챙겨줬다. 딸기밭에서 막 수확한 딸기 한 상자씩이면 아주 기뻐했다.

-부우우우웅!

“꺄하하! 너무 재밌다!”

행복한 웃음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커다란 장수풍뎅이가 은율이를 태우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장수풍뎅이는 천천히 내 앞에 내려앉았다.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에 빨개진 은율이의 양쪽 볼. 나는 손으로 얼굴 양쪽을 따뜻하게 감싸주며 물었다.

“그렇게 재밌어?”

“응! 엄청 재밌어. 대장 풍뎅이가 최고야.”

흥분한 은율이는 양팔을 버둥거리며 장수풍뎅이를 극찬했다. 호위병 대장 풍뎅이는 덩치가 가장 크다는 이유로 은율이의 전용 탈것이 돼버렸다.

은율이에게 방긋 웃어준 뒤,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장수풍뎅이에게 속삭였다.

“대장 풍뎅아. 괜찮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습니다. 은율 아가씨를 태우고 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가 고생이 많다. 앞으로도 좀 부탁할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높이 날지는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대장 풍뎅이는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격려의 의미를 담아 녀석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줬다.

-무우우. 무우우.

-삐익! 삐익!

-삐익!

어디선가 나타난 아꿍이와 새끼 그리핀들이 대장 풍뎅이 곁으로 모여들었다. 녀석들이 눈을 반짝이며 울음소리를 내자, 은율이가 금방 뭔가를 눈치채고 말했다.

“대장 풍뎅아. 이 아이들도 한 번씩 태워주면 안 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은율 아가씨.」

“헤헷! 고마워. 너희들도 얼른 타.”

대장 풍뎅이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등 뒤에 아꿍이와 새끼 그리핀들도 올라탔다. 탑승자가 늘어났음에도 대장 풍뎅이는 거뜬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무우우! 무우우!

-삐익! 삐이익!

-삐익!

하늘에서 아꿍이와 새끼 그리핀의 신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혼자서도 날 수 있는 그리, 피니가 왜 저렇게 신났는지 의문이었지만, 즐거워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 풍뎅아 고맙다.

너는 나중에 딸기 두 상자 챙겨줄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