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55화
엘프리드의 결심(3)
“안드라스 씨.”
“네, 시현 님.”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죠?”
“잘 모르겠습니다. 검술에 대해서는 저도 그렇게 조예가 깊지 못해서…….”
안드라스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우리의 시선은 다시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엘프리드 쪽으로 향했다.
-휘이익!
-타닷! 탓!
“헉…… 헉…….”
“뭐 해? 겨우 나뭇가지 못 꺾어서 그러고 있는 거냐?”
벨리온은 아직도 멀쩡한 나뭇가지를 허공에 휘휘 내저었다. 한심한 듯 바라보는 그의 눈초리에 엘프리드가 발끈하며 다시 검을 세웠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래. 열심히 움직여라. 정답을 모를 때는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달려드는 수밖에 없으니까.”
흐트러진 숨소리만큼 엘프리드의 검 역시 거칠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나뭇가지만 깔끔하게 노리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죽일 듯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매서운 공격에도 나뭇가지는 꺾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특이할 정도로 단단한 나뭇가지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 비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벨리온이 손에 들고 있는 나뭇가지는 정면으로 검과 부딪치지 않았다. 아주 교묘할 정도로 살짝 빗겨 맞거나,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엘프리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해 보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무리한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벨리온은 아주 신기한 방식으로 위기를 빠져나갔다.
-툭…….
벨리온이 앞으로 쭉 내민 나뭇가지가 검의 옆면을 쿡 찔렀다. 그러자 엘프리드는 마치 자신이 직접 찔린 것처럼 신음소리를 냈다.
“윽!”
흐름이 끊긴 공격은 자연스럽게 무위로 돌아갔다. 그 뒤에도 엘프리드는 매서운 공세를 이어나갔지만, 그때마다 벨리온은 비슷한 방식으로 공격을 무효화했다.
묘기를 보는 듯한 벨리온의 실력에 나는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스승님…… 엘린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네요.”
“두 사람의 실력 차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건 벨리온 님은 왜 이런 방식을 사용하시는 걸까요?”
“네?”
“엘린 군은 앞으로 있을 대결을 위해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벨리온 님의 지도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확실히 그러네요.”
“아마 벨리온 님이 따로 생각하신 바가 있으실 텐데……. 지금으로써는 무엇을 위한 지도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 군요.”
벨리온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아마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지금의 방식이 앞으로 있을 대결에 큰 도움이 될지는 나도 의문이었다.
-태애앵!
나와 안드라스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시 한번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허억…….”
검을 놓친 엘프리드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벨리온이 멀쩡한 나뭇가지를 어깨에 올리며 그쪽으로 다가섰다.
“쯧쯧. 벌써 쓰러진 거야? 생각했던 것보다 싱겁네, 싱거워.”
“…….”
“그래. 한바탕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좀 깨달은 게 있냐?”
“제가 가진 실력은 벨리온 님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퍼억!
벨리온의 나뭇가지가 정확히 엘프리드의 머리를 강타했다.
“으윽!”
“너랑 내가 실력차이 난다는 걸 누가 몰라? 저기 있는 아기 요정들도 바로 알겠다. 그런 거 말고 대결에서 뭔가 깨달은 거 없어?”
“어…… 으음…… 나뭇가지가 생각보다 단단했다?”
-퍼억!
“으악!”
자비 없는 나뭇가지가 다시 한번 엘프리드의 머리를 강타했다.
엘프리드는 많이 아팠는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찔끔거렸다.
보다 못한 내가 두 사람사이에 끼어들며 말렸다.
“어휴, 스승님. 그렇게 때리다 정말로 애 잡겠어요.”
“별로 세게 때리지도 않았어.”
“퍽! 하는 소리가 저기까지 들리던데요, 뭘.”
“진짜 소리만 큰 거야. 이정도면 살살 때린 거지!”
벨리온은 살살 때렸다는 핑계를 대면서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뒤로 물렸다.
“스승님. 직접 가르칠 생각이 없으시다는 건 잘 알겠는데. 조금만이라도 힌트를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벨리온 님.”
나와 안드라스가 차례로 부탁을 했다. 벨리온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코를 찡긋거리다가, 체념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어이, 거기 베르딕 꼬맹이.”
“예? 예!”
“아까 네가 공격하려고 했을 때, 나뭇가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기억 나냐?”
갑작스러운 질문에 엘프리드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한 모습으로 대답을 꺼내 놨다.
“으음, 말로 설명하기 좀 힘든데. 뭔가 숨이 턱턱 막히고, 답답한 느낌? 마치 나뭇가지가 검을 옭아매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느낌이 왜 들었다고 생각해?”
“제가 공격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역습을 당했기 때문인가요?”
“그게 아니야.”
“……?”
“역습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흐름이 끊겼기 때문이다.”
“흐름?”
벨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모든 검술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다. 누구는 박자, 또는 호흡이라고도 표현하지. 어느 정도 검술에 능숙해지면 각자의 고유한 흐름이 생겨난다.”
엘프리드뿐만 아니라, 나와 안드라스도 그의 설명을 귀담아 들었다.
“나 정도 되는 실력이면 몇 번 검을 휘두르는 것만 봐도 대충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상대의 흐름을 간파하면 다음에 어떻게 움직일지, 언제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있지.”
“허어…… 그 정도면 검술이아니라 독심술 아닌가요?”
“꼭 그렇게 만능인 것만은 아니다, 제자야.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상대라면 일부러 자신의 흐름을 조절해서 오히려 혼란을 주기도 하거든.”
와아…….
저런 게 말로만 듣던 고수들의 세계인 건가?
벨리온은 별거 아니라는 듯 설명했어도 듣고 있는 세 사람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네가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고 느낀 이유는 자신의 흐름이 강제로 끊겼기 때문이야. 만약에 내가 역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답답함이 아니라 섬뜩함을 느꼈을 거다.”
“그럼 저는 벨리온 님이 보여주신 ‘흐름 끊기’를 배우면 되는 건가요?”
“네가 흐름 끊기를? 푸하하하!”
벨리온은 목젖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크게 입을 벌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은 엘프리드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질 때까지 계속 됐다.
“푸흐흐. 네 정도의 실력이면 ‘흐름 끊기’는커녕, 상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한세월이 걸릴 거다.”
“윽…….”
“거기다 대결할 상대가 만만치 않다던데, 그런 상대에게 ‘흐름 끊기’ 같은 고난이도 기술을 사용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웃음을 멈춘 벨리온은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베르딕 검술을 아주 많이 경험했었다. 너의 할아버지인 카엘을 통해서 말이야.”
“…….”
“그래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읽고, 검술의 약점을 쉽게 파악하는 거지. 예나 지금이나 베르딕 가문의 검술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군.”
그 말을 들은 엘프리드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베르딕 가문의 검술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그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본 벨리온은.
“어디서 눈을 부라려? 이걸 확!”
곧바로 나뭇가지를 머리 위로 들며 호통 쳤다. 엘프리드는 금방 쭈굴쭈굴해져서 호다닥 내 등 뒤로 숨었다.
“오해 살 만한 소리 하지마라. 나는 베르딕 가문의 검술을 무시한 게 아냐. 정확히는 네 미천한 실력을 무시한 거지.”
벨리온은 묵직한 팩트를 꽂아 넣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에 완벽한 검술 따위는 없어. 검술을 익힌 개인의 노력에 따라 불완전한 부분이 보완될 뿐이지. 카엘은 분명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냈다. 네가 익힌 것과 똑같은 검술로 말이야.”
“…….”
“이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건 끝이다. 얼른 검을 집어 들고 일어서라.”
엘프리드는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땅에 떨어진 검을 줍는 데 얼굴에서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
“아직도 뭔가 깨닫지 못했다면 눈앞에 상대에만 집중해라. 머리가 나쁘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한 번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냐! 다시 와라.”
엘프리드는 검을 곧게 세우고 다시 벨리온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신중해진 모습으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물론 벨리온의 나뭇가지는 여전히 얄밉게 움직이며, 엘프리드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얽혀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좀 더 시원하게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스승님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으음…….”
“안드라스 씨?”
“저는 벨리온 님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네? 진짜요?”
나는 깜짝 놀라며 안드라스 쪽을 바라봤다.
“지금 벨리온 님은 엘린 군의 약점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약점?”
“네. 벨리온 님은 베르딕 가문 검술의 흐름과 약점이 훤히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저 나뭇가지가 찌르는 부분이 바로 약점인거죠. 엘린 군이 답답하다고 말한 것도, 지독할 정도로 약점을 공략 당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
“벨리온 님은 지금 이 수련을 통해서 엘린 군 스스로 약점을 극복하길 원하신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의 설명은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아리송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약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는 결국 사장님의 수련과 똑같은 거 아닌가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
“지금 벨리온 님이 엘린 군에게 전하고 싶은 건 그게 끝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안드라스는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불리한 대결을 이겨낼 가장 중요한 무기를 알려주고 계신 걸지도…….”
* * *
어려운 수련은 계속 됐다.
엘프리드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농장 식구들도 최대한 서포트해 줬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엘프리드의 얼굴에 잠깐씩 걱정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는 불안함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대결을 위한 수련에 집중했다.
나도 엘프리드가 해낼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농장과 다른 일들에 전념했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금방 흘러가 버리고.
약속했던 클라디온과 대결을 펼칠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