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56화
엘프리드의 결심(4)
대결이 펼쳐지는 날.
약속된 시간에 맞춰 카엘과 클라디온이 농장에 도착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수행 인원을 따로 대동하지 않고 두 사람만이 차원도약 마법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카엘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농장을 둘러봤고, 클라디온은 그 뒤에서 조용히 따라 움직였다.
이번에도 내가 대표로 나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카엘 님, 오셨습니까?”
“딱 일주일 만에 보는 건가? 자질구레한 안부인사는 생략하는 게 좋겠어.”
“수행 인원은 따로 대동하지 않으신 겁니까?”
“지난번에는 짐이라도 챙길 겸 데려왔지만, 오늘은 나랑 저 녀석만 왔어. 진지한 대결인 만큼 쓸데없는 구경꾼들은 없는 게 좋으니까.”
어…….
나는 당연히 구경하려고 생각했는데…… 구경하면 안 되는 거였나?
내가 살짝 당황하는 기색을 내보이자. 카엘이 금방 내 생각을 읽어내며 싱긋 웃었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외부인의 참석을 금지하는 게 원칙이지만. 오늘은 크게 상관하지 않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구경하도록 해. 너도 상관없겠지?”
카엘은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할아버님. 그쪽이 더 동생과 여기 있는 분들을 납득시키에 좋을 테니까요.”
클라디온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오늘 대결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 자신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혀끝이 바싹 마르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엘프리드도 준비는 다 끝났겠지? 그럼 굳이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시작하자꾸나.”
“알겠습니다. 두 분 다 저를 따라오시죠.”
나는 두 손님을 데리고 엘프리드가 기다리고 있는, 오늘의 대결 장소로 향했다.
* * *
-주물주물.
안드라스와 릴리아가 엘프리드에게 달라붙어 팔다리를 주물렀다. 대결에 들어가기 앞서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 옆에는 리아네가 언제든지 목을 축일 수 있도록 시원한 물을 가지고 대기했다.
한편.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있는 엘프리드는 꽤나 긴장한 표정으로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카네프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뭘 그렇게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어.”
“카네프 님…….”
“일주일 동안 구르면서 실전 감각은 충분히 키워놨어. 쓸데없이 긴장해서 본 실력을 썩히지 말고, 네 실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오오!
사장님이 웬일로 정상적인 격려를?
의외의 모습에 엘프리드도 살짝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카네프는 그런 엘프리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방긋 웃었다.
“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
“일주일 동안 고생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어휴! 저리 가세요, 사장님. 안 그래도 긴장한 애한테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카네프를 두 손으로 밀어냈다.
“엘린 군은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분명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엘린 오라버니, 꼭 이겨!”
“힘내세요!”
슈나르페 남매와 리아네, 그리고 두 명의 천족도 응원의 말을 남겼다.
“할 수 있어요, 엘린 선배님!”
“무운을 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와 은율이도 응원에 나섰다.
“엘린 오빠, 파이팅! 계속 응원하고 있을게!”
“보여줘. 이곳에서 지냈던 시간이 절대 의미 없던 게 아니라는 걸!”
“알겠어요, 시현 선배. 열심히 하고 올게, 은율아.”
엘프리드는 마지막으로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대결이 이뤄지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의 응원 덕분에 약간이나마 걸음이 가벼워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할아버님.”
“그래.”
“…….”
클라디온은 인사를 끝낸 뒤에도 잠시 동안 물끄러미 카엘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카엘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훗, 굳이 내 눈치 볼 필요 없다.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상대해 주도록 해라. 나는 그저 저 아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을 뿐이야.”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뒤, 클라디온도 대결이 펼쳐지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베르딕 가문의 두 형제가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
“…….”
두 사람 모두 담담하게 시선을 맞췄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감정이 눈빛을 타고 서로에게 오고갔다.
“이렇게 너와 검을 맞대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군.”
“그러네요, 큰형님.”
“이전에는 대결이었다고 하기엔 지도해 주는 쪽에 가까웠지. 하지만 오늘도 그렇게 물렁할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저도 그 정도 사리구별은 할 줄 알아요. 큰형님도 예전에 지도대련을 받던 저를 생각하고 나오셨다면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엘프리드는 클라디온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그 모습을 본 클라디온의 입매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형제간에 잠시 훈훈했던 분위기는 서로 검에 손을 올린 순간 빠르게 식었다.
-챙!
-챙!
두 사람은 빠르게 검을 뽑아들며 서로에게 날카로운 검 날을 겨눴다.
“지도대련은 아니라고 했지만, 선수 정도는 양보하도록 하지.”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오너라.”
엘프리드는 굳어진 얼굴로 자신의 검 끝과 상대를 동시에 응시했다. 그리고 힘차게 발을 구르며 정면으로 쇄도했다.
-챙!
나는 은율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옆에 있던 카네프에게 속삭였다.
“누가 이길까요?”
“나도 모르지. 승부라는 건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예상이라는 게 있잖아요.”
“압승.”
“압승? 엘린이요?”
“아니. 저 클라디온이라는 녀석의 압승.”
“…….”
“검을 든 모습을 보니 더 정확히 알겠네. 저놈은 엘린보다 최소 두, 세수 정도 실력이 앞서고 있어. 평범하게 대결이 진행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기는 상황이야.”
너무나도 냉정한 카네프의 평가에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 그 정도라고요? 엘린도 지난 일주일 동안 엄청 열심히 수련했잖아요?”
“하! 일주일 수련했다고 금방 변하는 건 없어. 꾸준히 수련하는 놈들은 전부 바보인 줄 알아?”
“…….”
“거기다 상대는 베르딕 가문의 후계자야. 태어났을 때부터 주변에 엄청난 압박을 받으면서 실력을 쌓아왔을 거다. 그 차이를 일주일로 극복? 어림없는 소리지.”
차갑다고 느껴질 만큼 냉정한 평가.
너무나 부정적인 평가에 카네프가 괜히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말이 이해됐다. 많은 것을 변화시키기에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안드라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엘린 군도 이곳에서 나름의 성장을 이뤘습니다. 거기다 카네프 님과 벨리온 님의 수련은 이번 대결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렇게 될까요?”
“지켜봐야겠죠. 카네프 님의 말대로 승부는 끝까지 알 수 없는 법이니까요.”
-채애앵!
-챙!
엘프리드와 클라디온의 격돌은 점점 치열해졌다.
일주일간 빡센 수련으로 엘프리드의 움직임은 아주 가벼웠다. 하지만 클라디온 역시 그 움직임에 밀리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초반에는 선공을 가져갔던 엘프리드가 한동안 공세를 이어나갔다. 꽤 날카로운 공격들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클라디온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내던 클라디온은 점점 기세를 끌어올렸다.
점차 승부는 백중지세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금방 클라디온이 주도권을 가져왔다.
엘프리드의 상황이 조금씩 불리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긴장감에 은율이를 잡고 있는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은율이도 안타까운 듯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발을 동동 굴렀다.
-타앗!
분위기를 잡아나가던 클라디온이 돌연 엘프리드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서로 벌어진 거리 탓에 싸움은 자연스럽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흐트러진 숨을 고르는 엘프리드를 바라보며 클라디온이 말을 건넸다.
“많이 달라졌구나.”
“허억…… 헉…….”
“예전처럼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도 없고, 집중력도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어.”
“허억…… 벌써 인정해 주시는 겁니까?”
클라디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장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마. 하지만 아직 내 마음을 돌릴 정도는 아니야.”
“…….”
“지금이라도 대결은 포기해라. 이런 식으로 대결을 계속해 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허억…… 죄송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를 응원해 주는 식구들이 좀 많아서요.”
엘프리드는 등 뒤 쪽으로 고개를 까딱 움직이며 싱긋 웃었다.
“오히려 실망하게 될 텐데?”
“그건 모르는 일이죠. 승부는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
“이제 조금 큰형님의 흐름을 알 것 같거든요.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요.”
“뭐?”
클라디온은 알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엘프리드는 대답대신 다시 검 끝을 세우며 준비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대결의 끝을 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지금 끝내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주마.”
잠시 느슨해졌던 분위기는 금방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클라디온이 먼저 움직임을 가져갔다.
-휘이익!
-카앙!
묵직한 일격을 겨우 받아내는 엘프리드.
클라디온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비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공격을 이어나갔다.
-카앙! 카앙! 카앙!!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을 엘프리드가 겨우겨우 방어해냈다. 너무나도 위태로운 모습에 농장 식구들 모두 진땀을 빼던 그 순간.
-휘이익!
-툭…….
공격해 오던 검 옆면이 상대방 검에 의해 쿡 찔렸다.
“으윽?!”
클라디온은 곧바로 신음을 흘리며 검을 되돌렸다. 하지만 아직 손목에 충격이 남았는지 얼굴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저, 저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크게 소리 내면 안 된다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호오?”
카네프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안드라스 씨, 방금 그거 봤죠?”
“네. 저도 봤습니다.”
방금 엘프리드가 공격을 막아내는 움직임.
그건 벨리온이 나뭇가지를 들고 보여줬던 움직임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움직임을 따라한 거죠? 스승님은 절대 엘린이 쓸 수 없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엘린 군은 자신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응에 당혹스러워하는 클라디온.
반면 엘프리드는 새롭게 뒤바뀐 대결에 분위기에 두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