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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61화 (36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61화

겨울의 끝, 새로운 시작(4)

그러고 보니 여기…….

은율이가 만들어 냈던 꽃밭이잖아?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난 것도 있고, 이 꽃밭에 대한 기억은 은율이가 쓰러졌다는 충격 때문에 희미하게만 남아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은율이가 만들어낸 꽃밭은 여전히 향기로운 꽃 냄새와 화사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요정들이 이 꽃밭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느긋한 생각도 잠시.

나는 곧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때의 충격적인 일을 절대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

“은율아, 방금 뭐라고 했어?”

은율이는 내 변화를 금방 눈치채고,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내가 꽃밭 더 만들어주면 안될까? 그러면 저 요정들도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

“그래서 은율이가 꽃밭을 더 만들어주려고?”

“으응…… 해주면 안 돼?”

은율이는 여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두 눈동자 가득 ‘허락해 줘요!’라는 눈빛을 마구 쏘아 보냈다.

평소 같았으면 귀여운 딸의 애교에 그냥 녹아내렸겠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은율이의 보호자로서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많은 없었다.

“안 돼, 은율아.”

“왜에?”

“저번에도 꽃밭을 만들다가 쓰러졌었잖아. 그래서 사장님이 쓰러진 은율이 데리고 허겁지겁 돌아갔었어. 거기다 멀리서 의사 선생님도 모셔 오고, 농장 식구들도 하루 종일 걱정했었어.”

“우으…….”

나의 단호한 태도에 실망한 은율이가 살랑이던 꼬리와 여우 귀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도 아직 꽃밭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았는지, 은율이는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내게 부탁했다.

“이, 이번에는 안 쓰러질 것 같아. 그러니까 쪼금, 아주 쪼금만 해보면 안 돼?”

“으음…….”

“아빠아아∼”

여우 소녀는 리듬감 있게 내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허어…… 이것 참…….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요정들을 도와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마냥 혼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은율이를 잘 타이를지 고민하던 그때.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치즈가 슬쩍 끼어들었다.

「은율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허락해 주는 게 어떻겠냥?」

“뭐?”

「은율이는 자신의 힘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냥. 그 기회를 막아서는 안 된다냥.」

“치즈 너는 은율이가 꽃밭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야?”

「아까 내가 말하지않았냥. 그때는 미숙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냥. 조금 더 성장한 지금에는 분명 다른 결과가 있을 거다냥.」

치즈는 진지한 표정으로 은율이에게 필요한 일이라 설명했다. 녀석의 뒤를 이어 아슈미르도 말을 덧붙였다.

“저도 치즈와 똑같은 생각입니다.”

“아슈미르 씨…….”

“그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는 짐작하기 힘들어도, 은율이가 이 세계에 특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

“딸을 걱정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지금 은율이가 하려는 행동은 분명 아주 큰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겁니다.”

아슈미르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의견을 주장했다.

「혹시 은율이가 또 쓰러질까봐 망설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냥. 우리가 지켜봐 줄 테니까냥.」

“믿어주십시오, 시현 님.”

“아빠…….”

치즈와 아슈미르, 그리고 은율이까지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끄응…….”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셋의 시선을 피해 아직도 시끌시끌한 꽃밭을 바라봤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았어. 허락해 줄게.”

“와아아!”

「냐아아아.」

은율이가 크게 기뻐하며 치즈를 꽉 껴안았다. 아슈미르는 나와 시선을 맞추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웠다.

“은율아, 대신 절대 무리하면 안 돼. 힘들거나, 어디 불편한 게 느껴지면 당장 이야기해. 아빠랑 꼭 약속하는 거야?”

“응응. 알았어.”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인 내 모습과는 달리, 은율이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율이가 내 걱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조금은 야속하게 느껴졌다.

은율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끌시끌한 꽃밭 옆, 공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천천히 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곧이어 은율이의 몸에서 무지갯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우웅…….

「어멋?!」

「이 기운은…….」

시끌시끌하던 요정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은율이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무지갯빛 광채가 점점 더 커질수록 요정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 나갔다.

-화아아아악!

지난번보다 더 많은 무지갯빛 기운이 퍼져 나왔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기운은 곧바로 공터에 스며들었다.

은율이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사그라들 때쯤.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땅에서 작은 새싹이 자라더니 금방 꽃망울이 맺히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냥.」

“정말 대단하군요.”

치즈와 아슈미르는 짧게 감탄을 터뜨렸다. 두 번째로 지켜보는 나도 이 신비한 분위기와 감정이 벅차오르는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새로운 꽃밭이 우리들 눈앞에 새로 생겨났다. 신비한 기운이 사그라들자마자 나는 재빨리 은율이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은율아, 괜찮아?”

“응, 괜찮아.”

은율이는 괜찮다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방긋 웃어 보였다. 얼굴에 살짝 지친 기색이 엿보였지만, 저번처럼 쓰러질 정도는 아닌 듯했다.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불안감이 스르륵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에 힘 빠진 미소가 지어졌다.

“나 잘했어?”

“그래 잘했어. 은율이가 최고야.”

“헤헷!”

뿌듯한 미소를 짓는 여우 소녀를 두 팔로 꼭 껴안아 줬다.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잘 성장한 것 같아 마음이 헛헛해졌다.

-뾰로로롱!

-뾰로로롱!

「너는 누구야, 뾰?」

「정말 저 꽃밭 네가 만든 거야, 뾰?」

「맞다니까, 뾰! 아까 신비한 기운이 얘한테서 막 뿜어져 나왔다, 뾰!」

나와 은율이 주변으로 순식간에 요정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은율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던졌다.

「시현, 얘는 누구야?」

“은율이. 내 딸이야.”

내 딸이라는 말에 요정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아?! 시현의 딸?」

「안 닮은 것 같은데, 뾰.」

「아니다, 뾰! 눈이 조금 닮았다, 뾰!」

흥분한 요정들이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요정들 특유의 끝나지 않는 수다에 점점 귀가 아파 오는 것 같았다.

내 품에 안긴 은율이는 시끄러운 요정들이 마음에 드는지 눈을 반짝였다.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요정들.

그 사이에서 한 요정이 조심스럽게 은율이 쪽으로 다가왔다.

「은율,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뾰?」

“부탁?”

「저 꽃밭에 내 보금자리 만들어도 될까, 뾰?」

“응, 괜찮아. 대신 다른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해.”

「꺄아! 고맙다, 뾰!」

허락을 받은 요정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은율이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뺨에 연속으로 뽀뽀를 날리며 격하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꺄핫! 그만해. 간지러워.”

「헤헷! 언제든지 놀러와라, 뾰! 은율이랑 하루 종일 놀아줄 수 있으니까, 뾰!」

“응, 알았어.”

한 요정이 은율이에게 허락을 받는 모습을 보이자 다른 요정들도 우르르 은율이에게 모여들었다.

「나도 저 꽃밭에 보금자리 만들고 싶다, 뾰!」

「은율, 허락해 줘, 뾰!」

「내가 먼저 왔다, 뾰! 나 먼저 허락해 줘야 한다, 뾰!」

정신없이 몰려드는 요정들 때문에 은율이는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일이 허락을 해줬다. 많은 요정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은율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요정들이 워낙 많이 몰린 탓일까. 두 번째 꽃밭만으로는 모든 요정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기 부족했다.

「히잉…… 늦었다, 뾰…….」

「나도 은율이가 만든 꽃밭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뾰…….」

남겨진 요정들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은율이는 슬퍼하는 요정들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아빠.”

“…….”

은율이가 다시 한번 더 나를 불렀다.

아직 뒷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보금자리를 만들지 못한 요정들이 많은데. 내가 꽃밭 하나만 더 만들어주면 안 돼?”

꽃밭을 하나 더 만들고 싶다는 은율이.

나는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으음…… 괜찮겠어?”

“나는 괜찮아. 멀쩡해!”

은율이는 두 팔을 파닥파닥 움직이며 기운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슬퍼하는 요정들을 위해 힘을 내려는 모습이 그렇게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 대신 무리하지 말고.”

“응!”

허락을 받은 은율이는 내 품에서 빠져나와 다른 공터 쪽으로 향했다. 나와 치즈, 아슈미르. 그리고 다른 요정들도 은율이를 따라 움직였다.

적당한 공터를 찾아낸 은율이가 다시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익숙해진 건지 금방 무지갯빛 기운이 은율이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와아…….」

「힘내라, 뾰!」

꽃밭을 원하는 요정들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은율이를 응원했다.

-우우우우웅.

하지만 뿜어져 나오는 무지갯빛 기운이 아까보다 훨씬 적어 보였다. 은율이가 끙끙대며 힘을 끌어올리려 해보았지만, 무지갯빛 기운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기운이 많이 빠진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두 개의 꽃밭을 만드는 건 무리였던 것 같다냥!」

아슈미르와 치즈도 쉽지 않음을 눈치채고 걱정을 표했다. 나도 애쓰는 은율이의 작은 뒷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더는 힘들 것 같다 판단하고.

은율이를 멈추기 위해 직접 나서려던 그 순간.

-부우우우웅!

-삐이익! 삐이익!

-무우우!

「우리가 도와줄게, 뾰!」

대장 풍뎅이와 함께 새끼 그리핀들과 아꿍이, 그리고 규리가 등장했다.

“어…… 어엇?!”

녀석들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쪼르르 은율이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은율이를 지키려는 듯 주변에 꼭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하나로 똘똘 뭉친 아이들.

그 덕분인지 힘들어하던 은율이의 얼굴에 편안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눈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우우우웅!

조금 전까지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미약한 기운이었는데. 아이들이 모인 뒤에는 처음보다 더 강렬하고 세차게 무지갯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작은 공터를 넘어서 주변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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