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64화
봄이 찾아오면(3)
농장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부터 운동, 세끼 식단에 변화, 그리고 무분별하게 흡입하던 간식을 줄였다.
다이어트를 시도한 결과.
체중이 불어났던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은율이가 장난을 치던 안드라스의 뱃살이 줄어들고, 리아네와 릴리아도 눈에 띄게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이어트의 시도가 꼭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살금살금.
아무도 없는 부엌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살핀 뒤, 머리 위 수납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드륵……. 달그락, 달그락.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부엌에 울려 퍼졌다. 마치 밤손님처럼 조심스럽게 수납장을 뒤지길 십여 초, 부엌의 침입자는 뭔가를 발견한 듯 몸을 움찔 떨었다.
-스으윽.
그는 수납장에서 그것을 천천히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안에 들린 물건을 감격스럽게 쳐다봤다. 원하던 것을 마침내 찾아낸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나직하게 침입자의 이름을 불렀다.
“리아네 씨.”
“헉?!”
그녀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놀라며 거친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고 삐걱이는 인형의 머리가 돌아가듯 부자연스럽게 나를 바라봤다.
새하얗게 질린 표정이 귀신을 코앞에서 만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재밌는 점은 그 와중에도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빠르게 등 뒤로 숨겼다는 것이었다.
“리아네 씨, 여기서 뭐하세요?”
“저, 저요? 으음…… 그게……. 부, 부엌이 좀 더러운 것 같아서 청소를 좀 하려고…….”
“청소요?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깨끗한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하하하.”
은율이도 눈치챌 것 같은 어색한 웃음.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예요? 청소 도구는 아닌 것 같은데.”
“…….”
“앞으로 꺼내보세요.”
“…….”
“리아네 씨?”
-도리도리.
리아네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숨겨두었던 물건을 손바닥 위에 꺼내놓았다.
-툭.
내 손 위에 올려진 것은 편의점 포장지에 담긴 빵. 크림이 아주 잔뜩 들어 있기로 유명한 크림빵 제품이었다. 농장 식구들 먹으라고 사 왔던 간식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부엌 수납장에서 이게 나올 줄이야…….
“이건 또 언제 숨겨두신 거예요.”
“다이어트 시작하기 전에…… 나중에 배고프면 먹으려고…….”
리아네는 얼굴을 푹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냐면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하는 일의 특성상 집 안 곳곳을 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의 손과 눈이 잘 가지 않는 곳곳에 먹을 걸 숨겨놓고 있었다.
숨기는 건 정말 감쪽같이 숨겨놓았지만, 몰래 꺼내 먹는 건 영 서툴렀는지. 이렇게 현장에서 걸린 것이 벌써 세 번째였다.
이건 뭐…….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 이런 기분이려나?
“이건 압수에요.”
“우으…….”
내가 매정하게 크림빵을 가져가자, 그녀의 미련 가득한 시선이 끝까지 크림빵을 따라갔다. 다시 한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스로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 감시를 피한 탈선행위는 리아네뿐만 아니었다.
-와작, 와작.
-우물우물.
평화롭게 과자를 먹는 은율이.
그 뒤로 수상한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스으윽.
“은율아.”
“으응?”
“과자 맛있어?”
“응! 맛있어. 릴리아 언니도 먹을래?”
은율이는 릴리아의 검은 속내도 모르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릴리아는 조용히 눈을 빛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율아. 언니가 재미있는 장난감 하나 만들었는데. 한번 구경해 볼래?”
“장난감? 구경 할래!”
장난감 이야기에 은율이는 여우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보였다. 릴리아의 입가에 득의에 찬 미소가 걸렸다.
“굉장히 어려운 아티팩트 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장난감이거든.”
그녀의 손바닥 위에는 나비 모양의 장난감이 올려져 있었다. 작고 반짝이는 나비 모형에 은율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나비 인형이야?”
“잠시만. 이걸 이렇게 하면…….”
릴리아가 나비의 스위치를 올리자, 정말 살아 있는 나비처럼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비 장난감은 날갯짓의 힘을 받아 몸을 들썩이더니, 금방 릴리아의 손에서 벗어나 방안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진짜 나비처럼 날아다녀!”
“헤헷! 대단하지?”
은율이는 날아다니는 나비 장난감을 보며 크게 감탄을 터뜨렸다. 그 반응을 본 릴리아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끝이 아니야. 이렇게 손가락을 뻗어서 신호를 보내면…….”
릴리아는 검지 손가락을 길게 뻗으면서 나머지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방안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나비 장난감이 그녀의 검지로 날아와 착! 하고 내려앉았다.
“와아!”
나비 장난감은 한 번의 비행과 착지로 단번에 여우 소녀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은율아, 어때?”
“진짜 대단해!”
“이 장난감…… 갖고 싶어?”
“나 주는 거야?”
은율이는 벌써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릴리아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은율이 주려고 만든 거야.”
“정말?”
“물론이지.”
“와아! 릴리아 언니 최고!”
릴리아의 품 안으로 은율이가 와락 뛰어들었다. 그녀는 행복해하는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은율아. 대신 언니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응, 할게.”
“그…… 언니가 간식을 못 먹은 지 좀 오래되서 그러는데. 은율이 과자 좀 나눠주면 안 될까? 대신 아빠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해.”
“으응?”
은율이는 알송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릴리아에게 과자를 나눠주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아빠한테 비밀로 해야 한다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장 식구들 중에서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 은율이 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줄래 은율아?”
“응. 괜찮아. 이거 언니 가져가.”
은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먹고 있던 과자를 건넸다. 릴리아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과자 봉지를 받아들었다.
“오홋! 고마워, 은율아. 여기 장난감! 나중에도 과자 나눠줄 거지?”
“제일 좋아하는 과자 빼고. 나머지는 다 나눠줄게.”
“헤헤! 좋아, 좋아!”
은율이의 손에는 나비 장난감이, 릴리아의 손에는 과자 봉지가 들려지게 됐다. 싱글벙글하던 릴리아는 다시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은율이에게 부탁했다.
“은율아. 아까 했던 말 기억하지? 절대 아빠한테 말하면 안 된다?”
“누구한테 말하지 말라고?”
“너희 아빠. 시현 오라버니한테……. 으헥?!”
릴리아는 뒤에 서 있던 나를 뒤늦게 발견하고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바들바들 몸을 떨며 손에 들고 있던 과자 봉지를 뒤로 숨겼다.
어째 반응이 다 한결같냐…….
“아빠, 아빠! 이거 봐. 릴리아 언니가 나 한테 만들어줬어.”
둘 사이의 분위기를 눈치 못 챈 은율이가 신나서 나비 장난감을 자랑했다. 나는 금방 흐뭇한 표정으로 바꾸며 대답했다.
“어구구, 그랬어? 은율이는 좋겠네. 언니가 예쁜 장난감도 만들어주고.”
“응! 대신 내 과자를 언니한테……. 아앗! 이건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괜찮아,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은율이 대신 아빠가 언니한테 과자 나눠줄게.”
나는 은율이를 안심시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은율아. 밑에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 신기한 장난감 구경시켜 줄래?”
“헤헷, 알았어.”
은율이는 새로운 장난감을 자랑할 생각에 신나서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갔다. 살랑이는 은빛 꼬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릴리아가 가지고 있던 과자봉지를 뺏어 들었다.
-탓!
“압수!”
“으앗! 내 과자!”
“이게 어떻게 네 과자야. 은율이 과자지. 아무리 과자가 먹고 싶어도 그렇지 은율이 과자를 뺏어 먹어?”
“빼, 뺏어먹은 거 아냐. 정당한 거래였다고.”
“호오? 정당한 거래? 그럼 왜 은율이한테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시켰어.”
“…….”
릴리아는 할 말이 없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은율이한테 예쁜 장난감 만들어줘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는 거야. 다음에 또 이러면 안드라스 씨한테 말해서 크게 혼날 줄 알아.”
과자를 몰래 먹으려 했다는 것 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은율이에게 거짓말을 시키려 했다는 부분이 괘씸해 아주 따끔하게 이야기했다.
“히잉…… 잘못했어.”
그녀도 뭔가 깨닫는 부분이 있었는지 곧바로 잘못을 빌었다.
울상을 짓는 릴리아를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간식이 먹고 싶었으면……. 잠시 마음이 약해지려 하다가도, 금방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하나씩 하나씩 허용해 주다보면 다이어트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 농장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내가 매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괜히 분위기가 더 불편해지기 전에 방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과자 봉지를 가지고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뒤에서 릴리아가 나를 붙잡았다.
“시현 오라버니. 거기 남은 과자라도 먹으면 안 돼?”
“안돼. 당분간은 간식 안 먹기로 약속했잖아.”
“으으. 그렇긴 한데. 나 어제 그 장난감 만든다고 밤 새서 고생했단 말이야. 남은 과자라도 먹게 해줘.”
“조금만 참아. 있다가 저녁 맛있게 만들어줄게.”
“으아아앙! 간식 먹고 싶어!”
릴리아는 어린아이처럼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떼를 썼다. 정말 은율이가 볼까 봐 걱정이 될 정도로 낯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한동안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녀를 타이르듯 말렸다.
“다 커서 이게 뭐 하는 거야. 억지 그만 부리고 일어나.”
“이익! 시현 오라버니 정말 이럴 거야?”
릴리아는 떼쓰는 걸 멈추고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나를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뾰족하게 말했다.
“흥! 이러면 나도 생각이 있어.”
“……?”
그녀는 화난 감정을 표출하듯 쿵쿵하는 발소리를 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직전에 내게 소리쳤다.
“다 같이 파업할 거야!”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