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66화
봄이 찾아오면(5)
“아까도 말했다시피 개개인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다이어트를 억지로 강제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억지로 안 시키면 니네들 전부 안 할 거잖아. 제대로 할 놈들이었으면 이렇게 살을 찌우지도 않았겠지.”
“그건 오해예요! 시현 님이 가져다주는 간식이 너무 맛있어서 조금은 조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지금은 완전 달라졌다고요.”
“카네프 아저씨는 몰라. 이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라니까.”
안드라스, 리아네, 릴리아.
그리고 그 반대편의 카네프가 열띤 논쟁을 펼쳤다. 얼마나 치열한지 진행자인 발레리안이 중간에 끼어들 틈도 주지 않았다.
“애초에 시현이 너무 물러터져서 그래. 나 때는 말이야 삼시세끼만 잘 챙겨줘도 정말 잘 챙겨주는 거 였다고.”
카네프가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압박하려 했다. 어째 사장님은 말을 하면 할수록 악덕사장님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시는 듯했다.
의미 없이 이어지는 논쟁.
점점 어지러워지는 상황에 보다 못 한 발레리안이 나서서 사람들의 말을 멈췄다.
“잠깐! 잠깐만요. 지금 말씀하신 분들의 의견은 들어봤으니까.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죠. 시현 씨의 이야기부터 좀 더 들어볼까요?”
발레리안의 중재로 나에게 발언권이 돌아왔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쉰 다음,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솔직히 조금 서운하네요.”
“서운하시다고요?”
“네.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된 건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였거든요. 평소에 식사와 간식을 챙겼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것도 있고요.”
서운하다는 말을 꺼내자, 반대편에 있던 몇몇이 움찔 몸을 떨었다.
“저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까지 싫어하실 줄은…….”
나는 말끝을 흐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괴로워하는 내 모습에 다이어트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시현 님이 저희를 생각해 주시는 건 당연히 알고 있죠.”
“맞아. 시현 오라버니는 잘못 없어.”
이 모습을 본 카네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빈정거렸다.
“이것들 봐라? 조금 전에 나한테는 바락바락 대들더니?”
“시현 오라버니랑 카네프 아저씨가 같아?”
“카네프 님은 좀 빠지세요.”
“…….”
카네프는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무튼, 괴로워하는 내 모습으로 인해 순식간에 우리 쪽으로 분위기가 넘어오려던 순간.
반대편에 있던 은율이가 테이블을 지나 쪼르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허벅지 위로 얼굴을 빼꼼 들이밀었다.
“아빠 화났어?”
“…….”
“우웅?”
은율이는 내 기분을 살피려는 듯 계속 주변을 기웃거렸다. 얼굴을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쫑긋거리는 여우귀가 계속 눈에 보였다.
결국, 나는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흐흣.”
“아빠 웃었다, 헤헷!”
이렇게 귀여운 딸이 애교를 부리는데.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아빠가 세상에 있을까?
나는 두 손으로 은율이를 안아 들어 무릎 위에 올려 주었다. 은율이는 만족스러운 듯 방긋방긋 미소를 지었다.
“앗! 시현 오라버니 지금까지 연기 한 거야?”
“크흠. 연기라니. 서운하다고 한 건 진짜야. 대신 극적인 연출을 조금 해본 거지.”
쩝, 아깝네. 은율이만 아니었다면 분위기를 이쪽으로 끌어올 수 있었는데.
내가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쩔쩔매고 있던 상대 쪽도 순식간의 원래 기세를 되찾았다.
발레리안이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다시 정리하기 위해 나섰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까요?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엘린 군은 어떤가요?”
“저, 저요?”
엘프리드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발언권이 돌아올 줄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네. 엘린 군은 다이어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으음…… 저는…….”
그는 말을 끌면서 한참동안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뭔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의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어?”
다이어트 반대 측 사람들은 엘프리드의 예상 못 한 행동을 멍하게 바라봤다.
“저는 다이어트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오오?”
“엘린 오라버니, 배신자!”
“허허…….”
엘프리드가 다이어트 찬성 쪽으로 돌아서면서 갖가지 반응이 튀어나왔다.
릴리아는 ‘배신자’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비난했지만, 엘프리드는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일정한 몸 상태를 유지하려면 식습관도 중요하거든요. 말은 안 하고 있었는데, 이번 겨울에 너무 간식을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럼 엘린 군은 다이어트에 찬성하시는 거군요?”
“네. 거기다 아침에 모여서 운동하는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들거든요.”
카네프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린이 뭘 좀 아네. 아침에 모여서 같이 운동하고 그러면, 단합도 되고 얼마나 좋아?”
“……사장님은 귀찮다고 아침 운동 안 하시잖아요?”
“나는 너한테 대신 맡기는 거지. 원래 그런 건 밑에서 관리하는 거라고.”
뻔뻔한 카네프의 대답에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프리드가 다이어트 찬성 쪽으로 넘어온 다음, 가만히 있던 아슈미르도 뒤따라 움직였다. 그녀도 엘프리드 옆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저는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딱히 찬성도, 반대도 아닙니다. 하지만 농장의 전반적인 관리를 맡고 있는 시현 님의 생각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녀는 나를 부담스럽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떤 단체든 리더의 권한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개인의 의사를 무시하는 결과이더라도 말입니다.”
아슈미르는 천족 특유의 완고한 모습을 보이며 다이어트 찬성 쪽을 지지했다. 카네프는 다시 한번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족답지 않게 아주 마음에 드는 발언이야.”
반면에 다이어트 반대 측은 얼굴이 흐려졌다.
다이어트 찬성 쪽의 기세가 약간 우세함을 보이는 상황에서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남은 한 사람, 또 다른 천족 우르키에게 쏠렸다.
우르키는 슬쩍 아슈미르 쪽을 쳐다본 뒤, 더듬더듬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저, 저는 간식을 먹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물론 다이어트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힘들게 일 하다 보면 맛있는 간식이 도움이 될 때가 많거든요.”
“맞아요. 저도 가끔은 맛있는 간식 생각을 하면서 힘을 낼 때도 많아요.”
“동기부여는 중요한 법이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르키의 말에 동감을 표하면서 간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느 정도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의견이었다.
우르키가 반대쪽 의견을 밝히면서.
정확히 반반.
찬성 측과 반대 측에 각각 4명이 자리하게 됐다.
진행을 하던 발레리안은 난감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딱 반반으로 나뉠 줄이야…… 적당히 타협을 하는 것도 쉽지 않겠는데요?”
다이어트 찬성, 반대 모두 적당히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때.
작은 손 하나가 조용히 들어 올려졌다.
“은율아?”
그 작은 손의 주인공은 바로 은율이였다. 여우 소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진행자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발레리안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은율이에게 손짓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직 의견을 말하지 않은 분이 한 분 더 계셨군요. 우리 모두 은율 아가씨의 의견을 들어볼까요?”
발레리안에게 발언권을 얻어낸 은율이가 내 무릎을 딛고 일어섰다.
“나는 모두 간식을 먹었으면 좋겠어.”
“으음. 왜 그렇죠? 은율 아가씨는 다이어트랑 상관없이 마음껏 간식을 먹을 수 있는데. 그럼 다른 사람들 몫까지 더 먹을 수 있어서 좋지 않나요?”
물음에 은율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어.”
“……?”
“혼자 맛있는 거 먹는 건 싫어. 다 같이 먹는 게 더 좋아.”
은율이는 테이블에 앉은 모두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더 말했다.
“그러니까 맛있는 간식은 다 같이 먹어야 해.”
뭔가 억지스러운 주장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말이 묘한 울림을 줬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은율이에게 물었다.
“은율아. 그러니까 너는 간식을 더 맛있게 먹고 싶으니까, 모두 간식을 먹어야 한다는 거야?”
“우웅…… 맞아.”
“허헛, 은율이 완전 욕심꾸러기네?”
“헤헷.”
내가 간식을 맛있게 먹고 싶으니, 모두 다 같이 간식을 먹어야 한다. 참으로 어린아이다운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은율이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귀여운 여우소녀를 바라봤다.
“끄응…… 뭐, 은율이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지.”
“같이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모여서 간식을 먹는 것도 좋죠.”
“…….”
완강하게 다이어트를 주장하던 카네프, 엘프리드와 아슈미르가 순식간에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다이어트 반대 측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일단 모두 함께 먹는 간식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먹는 간식은 엄격히 제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침 운동도 계속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좋아요!”
“으으…… 아침 운동은 싫은데…….”
조금 전까지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돌변해 타협을 하고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생각은 다 같았다.
은율이의 행복한 간식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순식간에 한마음 한뜻이 됐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발레리안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시현 씨.”
“네?”
“저는 농장의 실질적인 주인이 시현 씨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잘못 생각했었군요.”
“……?”
“아무래도 농장의 주인은 은율이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하핫!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발레리안의 진지한 이야기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농장의 첫 노사 협상은.
모두 함께하는 간식시간을 보장하고 지속적인 운동과 과도한 간식을 금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은율이는 다시 모두 함께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행복한 미소만으로 모든 농장 식구들이 만족스러워 했음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