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68화
다시 찾아온 손님(2)
우리는 계속해서 저택의 다른 곳들도 둘러보았다.
저택의 1층은 대부분의 공간은 영지 운영과, 중요한 외부 손님맞이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약간 카디스 영지의 관청 같은 느낌?
나중에 안드라스에게 따로 듣기로는 보통 이런 업무적인 공간은 저택의 별채로 따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우리 같은 경우는 건물을 따로 두 채, 세 채씩 지을 수 없기에 저택의 1층을 할당한 것이다.
1층의 둘러보기가 끝난 다음. 우리는 다시 처음 저택에 발을 들여놓았던 곳으로 돌아가 계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은율이가 계단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며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의 마지막 계단을 막 올랐을 때.
복도 모퉁이에서 작은 인형이 불쑥 튀어나왔다.
“짠∼!”
갑자기 등장한 고양이 소녀가 깜찍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미루?”
“왜 이제와요, 사탕 아저씨! 아까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미루가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곧이어 미루의 등 뒤로 엄마인 아델라도 등장했다. 그녀는 청소용 앞치마를 입고, 차분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어서오세요, 영주님.”
“안녕하세요, 아델라 씨. 여기 계셨네요.”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영주님이 도착하시기 전에 미리 청소를 좀 해놓고 있었어요.”
아델라는 영주 저택에 사용인으로 고용됐다. 저택이 완공되기 전에 이미 결정돼 있던 내용이라, 그녀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아델라와 미루.
두 모녀가 마을에서 떨어진 조금 허름한 집에서 지내는 게 조금 신경 쓰였었는데, 저택에 일손이 필요한 김에 두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엄마인 아델라는 저택 관리와 집안일. 그러니까 농장에서 리아네가 해주는 역할.
미루는 이곳에서 일하게 될 라구스, 로커스의 잡다한 심부름꾼을 맡게 되었다.
나중에 손님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하고, 저택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지면 일을 도울 사람이 더 필요하겠지만, 처음 시작은 아델라와 미루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했다.
“영주님의 집무실과 개인 공간은 전부 청소해 뒀어요. 지금 들어가 보실래요?”
“얼른 들어가 봐요, 아저씨. 엄청 멋있게 잘 꾸며놨어요.”
나는 미루와 아델라의 안내를 받아 나의 집무실로 향했다.
-덜컥!
“짜잔!”
“오오…….”
라구스, 로커스의 집무실보다 조금 더 커보이는 방에 조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커다란 창문에는 햇볕이 잘 들어왔고, 필요한 가구와 물품들이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방 옆쪽에 있는 문을 통해서 옆방으로 넘어가보니,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응접실이 나왔다. 1층에서 구경한 응접실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화려해 보였다.
“여기는 영주님을 뵈러온 아주 중요한 손님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2층 전체가 영주님이 직접 사용하실 공간들이라 최대한 신경 써서 배치하고 꾸몄습니다.”
건설 책임자의 설명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확실히 2층의 방들은 1층보다 훨씬 신경 쓴 티가 났다.
조금 화려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일반적인 귀족가의 저택을 생각해 본다면 이 정도는 굉장히 검소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잘 꾸몄네?
함께 2층을 구경한 다른 일행들도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방 구경을 끝마치고 다시 복도로 나왔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중, 복도 끝 쪽에 위치한 방문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어디를 말씀…… 앗! 거기는……!”
아델라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나는 무심코 방문을 열어버렸다.
-벌컥!
순간 열린 방문 사이로 오싹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멈칫하면서 둘러본 방 안은 조금 전에 봤던 집무실과 정반대로 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뭐, 뭐지?
안 쓰는 창고 같은 곳인가?
머릿속 의문의 해답은 전혀 예상치 방식으로 찾을 수 있었다.
-스으으윽.
목 부근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다시 한번 오싹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뭐야. 시현이었잖아.”
김이 샜다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
잠시 굳어 있던 머리가 다시 천천히 돌아가면서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테…… 르잔 님……?”
“안녕……?”
어둠 속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낸 테르잔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근데, 제 목에 닿아있는 차가운 것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응…… 미안. 자고 있어서 네 기척을 눈치 못 챘어. 날 죽이러 온 암살자인 줄 알았거든.”
“…….”
그녀는 암살자를 언급하며 내 목에 겨눠져 있던 단검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렸다.
문 한 번 잘못 열었다가 큰일 날 뻔했네.
그런데 왜 테르잔 님이 여기에……?
“어? 테르잔 언니?”
“테르잔 님! 여기 계셨군요.”
“으윽?! 여기에 왜…….”
“안녕……?”
다른 일행들도 뒤따라 데르잔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리아네는 가장 먼저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가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벌써 아침인데 왜 이러고 계세요.”
“으으…… 아직 자고 있었어.”
테르잔은 마치 뱀파이어처럼,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피해 침대 속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갔다.
리아네는 작게 한숨을 푹 쉬더니,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이불에 대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테르잔 언니? 시현 님의 저택에서 왜 이러고 계시는 거예요?”
꽁꽁 싸맨 이불에서 테르잔의 얼굴이 쏙 튀어나왔다.
“나는 농장에서 못 지내잖아. 그래서 여기에 머무르려고.”
“예?”
침묵의 숲에서 여기까지 따라온 테르잔.
그녀가 카디스 영지에 머무르는 것은 허락했지만, 안타깝게도 농장에서 함께 지낼 수는 없었다.
일단 농장 건물에 그녀가 머무를 수 있는 방이 남아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야쿰들의 경계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테르잔의 몸에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섬뜩한 기운을 야쿰들이 경계하는 거라고…….
그런데 농장에서 나간 그녀가 여기서 지내고 있을 줄이야.
“테르잔 님, 언제부터 여기에 계셨던 거예요?”
“으음…… 한 달 전부터?”
“그렇게 오래됐어요? 그리고 한 달 전이면 아직 저택의 공사가 진행 중이었을 텐데.”
“맞아. 그래서 방해 안 되게 숨어있었어. 가끔 간식 몇 개 훔쳐 먹은 것 빼면 정말 조용히 있었어.”
나는 슬쩍 건설 책임자 쪽을 바라봤다. 얼굴이 완전 창백해진 걸 보니 지금까지 테르잔이 여기에 있는 줄 전혀 몰랐던 모양이었다.
“어제부터 공사하던 사람들이 전부 나가서 오랜만에 푹 쉬고 있었는데. 너희들이 찾아올 줄은 몰랐네.”
처음에 놀랐던 감정은 가라앉고, 마음속에서 측은한 감정이 들었다.
“쩝…… 좀 더 일찍 이야기해 주시지 그랬어요. 그럼 따로 지낼 곳을 마련해 드렸을 텐데.”
“괜찮아. 나는 원래 이런 곳에서 지내는 걸 좋아하거든.”
으음.
그러고 보니 처음 테르잔 님을 만났을 때도 폐가에서 지내고 있었지. 그때랑 비교하면 훨씬 좋은 환경이었을지도?
“그리고 사람들이 여기서 공사하는 걸 몰래 지켜보는 것도 꽤 재밌었고.”
건설 책임자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그의 생생한 반응이 재밌어서 몰래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럼 여기서 계속 지내실 생각이세요?”
“안 돼?”
이불에서 얼굴만 내민 테르잔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뭐…… 안 될 건 없는데…….”
-쿡. 쿡.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누군가 내 옆구리를 강하게 찔렀다. 뒤를 돌아보니, 로커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속삭이듯 말했다.
“절. 대. 안. 돼…… 컥?!”
아주 작은 쇠구슬이 로커스의 이마에 박혀들었다. 날아온 방향으로 보아 아마 테르잔의 솜씨인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테르잔은 아직도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손을 꼼지락 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성격이 마이웨이인 그녀도 저택의 방을 마음대로 차지하는 건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지내게 해주면 꼭 보답할게. 내가 있으면 어떤 암살자가 찾아와도 걱정 없을 거야.”
“저, 저한테 암살자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빨리 자신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싶었던 그녀는 다급히 라구스와 로커스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기 두 사람이 일하면서 네 뒷담화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해 줄게.”
“뒤, 뒷담화라뇨?! 저는 절대 안 그럽니다!”
“헹! 열심히 감시해 보시지. 아무리 엿들어도 어떤 미친년 욕밖에 안 나올…… 으악?!”
다시 로커스의 이마에 쇠구슬이 박혔다. 이번에는 제대로 충격이 들어갔는지,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간절한 표정의 테르잔을 보며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는 여기서 지내세요.”
“정말?”
“네. 아델라 씨도 계시니까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시현.”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평소에 무표정한 모습을 생각하면, 굉장히 큰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저택에 또 한 명의 식구가 늘어나는 사이.
뒤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복도 쪽에 있던 안드라스가 방 안으로 들어서며 내게 말했다.
“시현 님. 아무래도 바깥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요?”
“대충 전해 듣기로는 손님이 찾아온 것 같은데. 직접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손님?
뭐지? 오늘 공식적으로 방문 예정된 손님은 없는 걸로 아는데…….
머릿속으로 찾아올 만한 손님을 빠르게 생각해 봤지만, 금방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 저택 완공식도 영지 사람들과 조촐하게 치룰 생각이었다.
“그럼 일단 나가보죠.”
나는 은율이를 리아네와 아델라에게 부탁하고, 계단을 통해 1층 현관으로 향했다 내 뒤로는 안드라스, 엘프리드, 라구스, 그리고 로커스가 뒤따랐다.
저택 대문을 나서자마자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그 뒤쪽으로 향하자 영지민들은 파도처럼 갈라지며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주었다.
사람들 너머로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는 레빌과 수비대원들이 보였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에요?”
“여기 있는 외부인들이 영주님을 뵙고 싶다고 요청해 왔습니다. 본인들의 말대로는 은율 아가씨의 가족들이라고…….”
은율이의 가족?
나는 황급히 수비대원들을 지나치며 앞으로 나섰다.
“당신은…….”
“오랜만이네요.”
머리에 난 뾰족한 여우 귀와 살랑거리는 꼬리.
은빛 털과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아! 이제 영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