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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71화 (37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71화

다시 찾아온 손님(5)

그 뒤로는 뭐…….

굳이 설명할 게 있을까?

유령이 나타났다고 비명을 지르던 붉은 은월족.

안타깝게도 그들은 쓸데없는 말을 내뱉었던 누구 때문에 진짜 악귀를 맞이해야 했다.

멀리 농장에서 순식간에 날아온 카네프.

은은한 분노를 내뿜는 카네프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 전부를 순식간에 때려눕혔다.

‘때려눕혔다’라고 많이 순화된 표현을 사용해서 그렇지. 뼈와 살이 터져 나가는…….

정말 이 자리에 은율이나, 다른 아이들이 없어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살벌한 투지를 드러내던 수비대원들도 쓰러져 있는 침입자들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내겠는가?

여우 떼에 뛰어든 한 마리 호랑이.

그 표현이 눈앞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해 주고 있었다.

“그만하세요, 사장님. 이러다 진짜 다 죽겠어요.”

“허락도 없이 남의 구역에 발을 들여놨으면, 당연히 죽을 각오 정도는 돼 있겠지. 이런 놈들은 대충대충 상대해 주면 안 돼.”

카네프는 살벌한 말을 내뱉으며 쿠나흐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이 녀석이냐? 아까 통신으로 싸가지 없는 말을 내뱉던 놈이?”

그는 발로 툭툭 쿠나흐의 온몸을 건드렸다. 가볍게 발을 움직인 것 같은데도 쿠나흐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흘러나왔다.

“끄흐흑…….”

“아까 그 기세 좋던 모습은 어디 갔어? 어디 또 한 번 큰소리쳐봐. 볼품없는 영지 그대로 박살 내놓겠다며?”

“끄륵…… 끄윽!”

가벼운 발길질이 몸에 닿을 때마다 쿠나흐는 고통스럽게 끅끅거리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 꼬르륵 기절해 버렸다.

“아오! 이 여우놈들은 왜 이렇게 전부 밉상이야? 한 놈 한 놈 여우 꼬리를 다 잘라내서 전부 목도리로 만들어 버릴까보다…… 아! 물론 은율이는 빼고.”

“…….”

“…….”

카네프의 목도리 발언에 아니스와 다우르는 부르르 몸을 떨며, 황급히 자신들의 꼬리를 뒤로 감췄다.

분노가 한풀 꺾인 카네프를 뒤로하고.

나는 아직 멍한 표정의 레빌에게 지시를 내렸다.

“레빌 씨.”

“어어? 아…… 넵, 영주님.”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침입자들을 전부 가두고…… 아니, 그 전에 심한 부상자들 치료부터 먼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영주님.”

내 지시에 따라 레빌과 수비대원들은 침입자들의 수거를 시작했다.

카네프의 자비 없는 공격으로 인해 붉은 은월족 대부분 땅에 널브러져있었다.

실려 나가는 모습들을 대충 살펴보니. 몸이 성한 사람을 찾기 어려워 따로 감시가 필요 없어 보였다.

오히려 감시보다는 간호하는 데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일머리 좋은 라구스와 로커스는 금방 마을에서 수레와 마차를 동원해 왔다.

정신을 잃은 침입자들은 마치 짐짝처럼 짐칸에 차곡차곡 쌓여 옮겨졌다.

카네프는 저딴 놈들을 왜 치료해 주나며 툴툴거렸고, 테르잔은 난입한 카네프 때문에 집값을 많이 벌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두 사람이었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던 그때.

카네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니스와 다우르를 쳐다봤다.

“어이, 거기 둘.”

“……!”

“……!”

-까딱까딱.

카네프는 두 사람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낸 뒤, 훌쩍 저택 방향으로 먼저 걸어갔다.

지목당한 두 사람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사장님이 아예 말이 안통하시는 분도 아니니까. 두 분이서 제대로 설명해 주시면 별일 없을 거예요…… 아마도…….”

“…….”

“…….”

* * *

우리들은 다시 응접실로 모였다.

카네프가 특유의 삐딱한 자세로 앉아 정면을 바라봤고, 그 앞에는 잔뜩 주눅 든 아니스와 다우르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일단 자신들이 방문한 이유에 대해서 카네프에게 설명했다. 아까 나에게 해줬던 이야기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은율이를 할머니에게 데려가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거네?”

“네. 절대 은율이를 억지로 데려가거나,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어요. 어떻게든 시현 님에게 허락을 구하고 싶었어요.”

“그럼 아까 그 붉은 털을 가진 놈들은 뭐야? 걔네들도 은월족아냐?”

“맞아요…… 하지만 쿠나흐 대장이 이곳에 온 것은 저희도 전혀 몰랐던 일이에요.”

“아마도 우리를 미행한 것 같소.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쿠나흐 대장을 이곳으로 이끌게 된 꼴이지만, 이런 소동을 일으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소.”

붉은 은월족의 적대적 행동에 대해 아니스와 다우르는 자신들의 의도와 전혀 관계없음을 강조했다.

카네프는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 줄게. 그런데 쿠나흐 대장인가 뭔가 하는 놈은 왜 은율이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지? 너희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던데.”

나도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쿠나흐 대장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은 분명 은율이었다. 그는 분명 ‘은월족 아이’를 찾으면서, 동시에 ‘신녀의 피’라는 말도 함께 언급했다.

아니스와 다우르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차가워지는 카네프의 눈빛에 못 이겨 다시 입을 열었다.

“은율이의 할머니. 그러니까 저의 어머니는 은월족 수호신을 모시는 신녀님이세요. 수호신님의 말씀을 직접 전해 듣는 존재로. 은월족에게는 아주 중요한 존재예요.”

아니스는 신녀와 수호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이곳에서 가장 박학다식한 안드라스도 처음 듣는 내용인지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언니가 신녀님이 될 예정이었어요. 저도 신녀 후보 중 하나였지만, 저보다 언니가 신녀의 재능을 더 많이 타고났거든요.”

아니스의 언니라면…….

“그런데 어느 날, 언니는 사람들 몰래 마을을 도망쳐 나왔어요. 붉은색 털을 가진 어느 은월족 남자와 함께 말이죠.”

“사랑의 도피…… 같은 건가요?”

내 물음에 아니스는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옆에 있던 다우르의 표정도 울적하게 변했다. 그 두 사람의 사랑의 도피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않았으니까.

“나중에 나미라를 통해 알게 됐는데. 언니가 마을에서 도망칠 때는 이미 은율이를 임신한 상태였대요. 아마 언니는 임신한 사실을 알자마자 도망칠 결심을 한 모양이에요.”

“근데 왜 도망친 거죠? 은월족의 신녀는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나요?”

“그건 아니에요. 애초에 신녀이신 어머니도 저희를 낳았는걸요. 문제는 은율이의 아버지 쪽이었어요…….”

“……?”

“신녀는 절대 붉은빛 은월족과 아이를 만들어선 안 돼요. 신녀의 피는 무조건 은빛 은월족을 통해 이어져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요.”

“아…….”

아니스는 주변의 반응을 살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건 은월족에게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규칙이에요. 신녀와 사랑을 나눈 남자가 붉은빛 은월족이라는 사실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언니 분은 도망을 결심한 거군요.”

“맞아요. 언니는 뱃속의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 언니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은율이를 아끼고, 예뻐했기에, 은율이의 부모가 겪어야 했던 처절한 상황에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눈매가 많이 부드러워진 카네프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럼 더 이해가 안 가는데? 네 말대로라면 붉은빛 은월족의 피가 섞였으니까 은율이를 마을로 데려갈 이유가 더더욱 없잖아.”

논리적인 지적에 아니스와 다우르를 제외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방금 하신 말씀이 맞아요. 은율이에게 신녀의 피가 이어졌더라도 의미가 없죠. 하지만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어요.”

“복잡해졌다고……?”

“원래는 언니가 신녀의 자리를 물려받았어야 했어요. 그런데 언니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버렸고. 마을에서 신녀의 피를 이은 사람은 저와 어머니밖에 남지 않았어요. 저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명됐기 때문에 사실상 신녀의 자리를 이을 후계자가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이에요.”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은율이를 신녀로 만들겠다는 건가요?”

“정확히는 일부의 세력이 그걸 원하고 있죠. 쿠나흐 대장과 같은 붉은빛 은월족들이요.”

“그들이 왜……?”

다시 한번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려 할 때.

이번에는 다우르가 나서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대로 신녀의 자리는 은빛 털을 가진 은월족에게만 허락되었소. 은월족에게 신녀의 영향력은 엄청나기 때문에 붉은빛 은월족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왔소.”

“설마…….”

“그들은 은율이를 데려가 신녀로 추대할 생각이오. 만약에 성공한다면 최초로 붉은빛 은월족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신녀가 되는 거지.”

나의 얼굴이 더더욱 찡그려졌다.

부모님을 잃고 도망쳐야 했던 은율이를 억지로 데려가 정치적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카네프에게 험한 꼴을 당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참으로 몹쓸 계획이로군요.”

“아까 카네프 님이 더 혼내줬어야 하는데.”

이 와중에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카네프가 슬쩍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잠깐만.”

“…….”

“…….”

“아까 그놈들이 왜 은율이를 데려가려고 한 건지는 알겠어. 그런데 말이야…….”

카네프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만약에 내가 너희라면 은율이를 굳이 마을로 데려갈 것 같지 않단 말이야. 혹시라도 은율이가 신녀라도 되면 너희도 곤란해지는 거 아냐?”

“그건…….”

“…….”

아니스와 다우르는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 미심쩍은 반응에 나도 당황스러워졌다. 카네프는 더욱 매섭게 그들을 몰아붙였다.

“정말 은율이를 할머니와 만나게 해주려는 게 끝이야? 너희들도 아까 그 녀석들처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

“…….”

두 사람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응접실 안의 긴장감이 더욱 팽팽하게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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