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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75화 (375/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75화

은월족 마을(2)

-다그닥, 다그닥.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리는 마차.

그 안에 은월족 마을로 향하는 일행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카디스 영지에서 차원도약 마법으로 은월족 영역 근처까지 이동한 뒤. 중간 지점에서 안드라스, 엘프리드와 헤어져 각자 이동을 시작했다.

마차 안에는 나와 은율이, 리아네, 카네프, 아니스가 자리했고, 마부석에는 다우르가 마부와 함께 앉아 마차를 이끌고 있었다.

내 예상으로는 카네프의 눈치를 피해 마부석으로 도망친 것 같았다.

나머지 한 명.

테르잔은 마차의 어딘가에 숨어들어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마차인데 그녀는 소름 돋을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냈다.

가끔 마차에 숨어든 게 아니라, 어디에 떨어진 게 아닐까? 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가끔 휴식을 위해 마차를 멈출 때면 잠깐 모습을 드러내 내 걱정을 덜어줬다.

처음에는 아니스도 마부석에 앉겠다고 고집을 피웠는데. 내가 괜찮다고 억지로 이끌어서 마차 안에 자리 잡게 됐다.

“사장님, 저기 봐봐. 언덕에 양들이 잔뜩 있어.”

“그렇네.”

“털이 엄청 복슬복슬해. 직접 만지면 기분 좋을 것 같아.”

은율이는 카네프의 무릎 위에 앉아 조잘조잘 수다를 떨었다. 카네프는 은율이의 수다에 단답이긴 해도 맞장구 쳐줬고, 직접 먹여주는 과자도 곧잘 받아먹었다.

우리가 카네프를 저렇게 귀찮게 했다면 벌써 짜증을 내고도 남았겠지만, 은율이의 수다에는 아주 고분고분 반응해 주는 중이었다.

은율이가 ‘카네프 짜증 방지’ 역할을 잘해준 덕에 마차 내부에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카네프의 눈치를 많이 봤던 아니스도 지금은 좀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열심히 조잘대던 은율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때쯤, 리아네가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아니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저기…… 은월족 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관심이 생긴 나도 슬쩍 아니스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특별한 곳은 아니에요. 조금 폐쇄적인 분위기인 것만 빼면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거든요.”

아니스는 옅은 미소를 띠며 은월족 마을에 관해 이것저것 알려줬다.

은월족 구성원 대부분이 어떤 음식을 먹고, 또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가족을 이루는지. 이런 평범한 이야기부터.

조금은 복잡한 은월족 공동체의 의사결정 방법 같은 것도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은월족에게 중요한 일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결정해요. 각자 맡은 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마을의 장로로 추대 받으신 분들이죠.”

“그럼 신녀의 자리도 그 장로라는 분들이 결정하나요?”

“아뇨. 신녀와 관련된 일은 마을의 장로님들도 관여할 수 없어요. 신녀 후계자도 대부분 신녀가 직접 정하거든요.”

흐음.

확실히 은월족에게 신녀라는 존재는 굉장히 특별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리아네에 이어 아니스에게 질문했다.

“지금은 신녀 후계자가 없는 건가요?”

“어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신 거라 확실히 정해진 건 없어요. 만약에 누군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면 제가 그 자리를 잇게 되겠죠. 자질은 부족하지만…….”

신녀 후계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니스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무래도 그녀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정인 모양이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은율이에게도 신녀의 자질이 있을까요?”

“으음…… 저는 뭐라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그걸 확실히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어머니밖에 없을 거예요.”

종종 은율이가 보여줬던 신비한 기운과 현상.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력이 아니스가 말하는 ‘신녀의 자질’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불안감도 함께 엄습했다.

은율이에게 정말로 신녀의 자질이 있다면…….

신녀 후계자가 불확실한 은월족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신녀인 은율이 할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던 찰나.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던 카네프가 불쑥 입을 열었다.

“뭐가 됐든 달라지는 건 없어.”

“……!”

“우리는 은율이에게 할머니만 만나게 해주고 잽싸게 돌아갈 거야. 누구라도 우리를 방해하면…….”

카네프의 두 눈에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전부 때려 눕히면 그만이야.”

마차 안에는 순식간에 싸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그때, 마차 밖에서 타이밍 좋게 다우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은월족 영역이오. 모두 내릴 준비를 하시오.”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달리던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여나갔다.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공손하게 열며 도착을 알렸다. 마차에 앉아 있던 일행들이 차례로 마차 밖으로 나섰다.

“끄응…….”

꽤 오랫동안 덜컹거리는 마차에 앉아있던 탓이었는지, 땅에 내려서자마자 앓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내 다음으로 카네프가 가볍게 마차에서 내려섰다. 그의 품 안에는 아직 비몽사몽인 은율이가 안겨 있었다. 은율이는 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리며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우우웅…… 사장님…… 벌써 도착했어?”

“아직 도착 안 했어. 조금 더 가야 할 것 같아.”

“나 내릴래…… 내려줘.”

카네프가 내려주자마자 은율이는 후다닥 내 옆으로 달라붙었다.

혼자가 된 카네프의 눈에 살짝 섭섭함이 느껴졌다. 마치 ‘마차에서 응석은 내가 다 받아줬는데.’ 라며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은율이의 잠을 깨울 겸 가방에서 물을 꺼내 조금씩 마시게 해줬다. 그러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숲으로 이어지는 입구 바로 앞이었다. 조금 이상한 건 새벽녘도 아닌데 숲 주변으로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말의 상태를 살피던 마부에게 물었다.

“저기 마부 아저씨. 이 길을 따라가면 은월족 마을인거죠? 그럼 마차를 타고 계속 가도 되지 않나요?”

내 물음에 마부는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나으리! 저 숲은 아무나 통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예?”

“은월족의 허락 없이 저길 들어갔다가는 큰일 납니다. 여기서부터는 저기 있는 은월족 분들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나와 리아네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자, 아니스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시현 님. 여기 약속했던 품삯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아니스가 마차를 이용한 대가를 마부에게 건넸다. 평소보다 많은 금액을 받았는지 마부의 표정이 싱글벙글해졌다.

“이랴!”

-히이잉!

주머니를 챙긴 마부는 곧장 마차를 이끌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니스가 다우르와 함께 숲 입구 쪽으로 나서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여기서부터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시면 안 돼요. 저와 숙부님의 뒤를 바짝 따라오셔야 해요.”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경고했다. 나도 모르게 은율이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다우르가 가장 앞에 서서 우리를 이끌고, 아니스는 일행의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마 일행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없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일행은 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천천히 숲으로 진입했다.

처음 숲에 발을 내디뎠을 때는 그다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가 짙어지면서 감각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침묵의 숲’을 방문했을 때만큼 위험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방향 감각이 흐릿해지면서 마치 미로를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으윽.

-탓!

숲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림자 속에서 테르잔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뭔가 잘 안 풀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테르잔 님? 무슨 일 있으세요?”

내 물음에 그녀가 투덜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 숲에서는 몸을 숨길 수 없어. 내 능력이 안 통해.”

“예?”

“언니 능력이 안 통한다고요?”

나와 리아네가 깜짝 놀라며 테르잔을 바라봤다.

그 좁은 마차에서도 몸을 숨겼던 그녀인데, 이렇게 넓은 숲에서 몸을 숨길 수 없다니…….

의문의 해답은 뒤쪽에서 걷고 있던 아니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마 숲 속에 펼쳐진 결계 때문에 그럴 거예요.”

“결계요?”

“은월족 영역을 둘러싼 이 숲에는 커다란 결계가 펼쳐져 있어요. 그래서 은월족이 아닌 존재가 침입하게 되면 길을 잃고 숲을 헤매게 되죠.”

아!

그래서 아까 마부 아저씨가 그렇게 질색을 했던 거구나.

주변을 둘러보던 카네프도 결계에 대한 감상을 툭 내뱉었다.

“이렇게 넓은 숲 전체에 결계를 쳐놓다니. 안드라스 녀석도 쉽지 않겠는데?”

“모두 수호신님의 힘이에요. 오래전부터 은월족은 신녀를 통해 수호신님의 보호를 받아왔거든요.”

“이 정도 수준의 결계를 유지하는 존재라…… 확실히 신녀가 특별하게 취급받는 이유를 알겠군.”

카네프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결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긴장감만 커져나갔다.

어쩌다 일행을 놓치게 되면 평생을 이 숲을 떠돌아야 할지도 몰랐다.

혹시 은율이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옆을 살펴봤는데.

“……?”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은율이는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은율이를 불렀다.

“은율아, 안 무서워?”

“응? 나는 안 무서운데. 오히려 재밌어!”

“재밌다고?”

은율이는 신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숲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숲이 어디로 가야 할지 나한테 계속 알려줘. 옆에서 요정들이 속삭이는 것처럼 귀가 간질간질해.”

간지럽다며 여우귀를 쫑긋거리는 은율이.

그 이야기를 들은 아니스와 다우르가 동시에 몸을 움찔 떨었다.

“으, 은율아. 정말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거니?”

“응! 지금부터는 저기 가장 커다란 나무 왼쪽, 붉은 꽃이 피어 있는 길로 가라고 그랬어.”

“헉?!”

은율이가 정확히 가야 할 길을 짚어내자, 아니스는 두 눈동자가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상할 정도로 격렬한 그녀의 반응에 리아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은율이도 은월족이니까 길을 아는 거 아닌가요?”

“아, 아니에요! 저희는 은월족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외워서 길을 찾는 것뿐이에요. 그 표식이 없으면 저도 숙부님도 이 숲을 통과할 수 없어요.”

그리고 아니스는 믿기 힘들다는 듯 중얼거렸다.

“표식을 외우지 않은 은율이가 길을 찾아냈다는 건. 이 결계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가능한 존재는…….”

그녀의 중얼거림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생략된 뒷내용을 예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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