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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76화 (37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76화

은월족 마을(3)

은월족 마을은 지금 여러 가지 문제로 어수선했다.

첫 번째로 신녀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굉장히 나빠졌고.

두 번째로 일부 인원이 독자적으로 움직여 귀족의 영역을 침입한 것도 모자라, 그들 전원 포로로 붙잡혀서 협상의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일 모두 쉬쉬하며 넘길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민들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마을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장로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끄으응…… 일이 어쩌다…….”

얼굴에 난 깊은 주름과 덥수룩한 수염.

한 은월족 장로가 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양 옆으로 앉아 있는 다른 장로들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로회에서 가장 상석에 앉은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보게. 쓰러진 신녀님에게는 별다른 차도가 없는 겐가?”

“그렇습니다, 대장로님. 마을의 치료사들이 밤낮으로 신녀님의 상태를 살피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허어…….”

장로들 사이에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외부에서 치료사를 초빙해 와야 하지 않을까요?”

“신녀님의 치료를 외부인에게 맡기기는…….”

“후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신녀님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게 최우선 아니겠습니까?”

“신녀님의 나이가 적지 않으니. 외부에서 치료사를 데려온다고 해도 얼마나 큰 효과를 보겠소?”

자리에 모인 장로들이 자신의 생각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순식간에 많은 말들이 오고갔지만. 분위기만 어수선해졌을 뿐, 딱히 쓸 만한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크흠!”

“…….”

“…….”

대장로라 불린 노인이 크게 헛기침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아까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던 은월족 남자에게 다시 질문했다.

“포로 협상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상대측과 짧은 의견 교환을 끝냈습니다. 붙잡힌 포로들도 모두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술술 설명을 풀어나가던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뒷말을 흐렸다.

“협상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그게…… 포로로 붙잡힌 자들이 침입했던 영지가 생각보다 영향력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처음에는 변방에 작은 영지에, 주인도 귀족 작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 않았나?”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협상에 나선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큰 세력을 자랑하는 귀족 가문의 인물이 셋이나 직접 나섰고, 심지어 마왕성 쪽에서도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허허…….”

남자의 설명에 허탈해진 대장로는 힘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로들 사이에도 웅성거림이 커졌다.

은월족은 먼 옛날부터 주변과의 관계를 최소한으로 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유지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주변 관계를 무시할 순 없었다.

큰 세력을 자랑하는 귀족 가문들도 모자라, 마왕성이 이 문제에 직접 나선다?

대장로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른 장로들도 일의 심각함을 느꼈는지 표정이 아주 어두워졌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누군가 자리에 벌떡 일어서며 한쪽을 손가락질했다. 그쪽에는 붉은색 털을 가진 은월족 장로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이게 다 저자들이 마음대로 일을 벌였기 때문이오!”

“…….”

붉은 은월족을 제외한 나머지 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맞는 말이오.”

“이 상황을 어떻게 책임질 거요?”

손가락질을 받던 붉은 은월족 중 한 명이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 부하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인 잘못에 대해서는 인정하겠소. 하지만 그쪽도 마음대로 일을 벌인 건 마찬가지지 않소?”

“뭐, 뭐요?”

“그쪽도 아니스와 다우르를 몰래 그 영지로 보내지 않았소! 그곳에 신녀의 피를 이은 아이가 있다는 걸 우리가 모를 줄 알았소?”

“…….”

“흥! 먼저 음흉하게 일을 꾸민 건 그쪽이요.”

붉은 은월족 장로의 뻔뻔한 대응에 반대편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우리 탓이란 말이요?”

“내가 틀린 말 했소?”

“이, 이익! 이런 건방진 놈이!!”

흥분한 장로가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곧장 상대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그만! 장로라는 직책을 단 사람들끼리 이게 무슨 추태요!”

“…….”

“…….”

대장로의 외침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서로 눈치를 살피는 장로들을 보며 대장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늘 아침. 다우르와 아니스가 손님들과 함께 곧 도착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소.”

손님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장로들의 얼굴에 제각각 다른 감정들이 떠올랐다.

“포로로 잡힌 자들이 무단으로 침입했던 영지. 그곳의 영주가 은월족 아이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이곳으로 오고 있소.”

-웅성웅성.

-웅성웅성.

영주가 직접 이곳으로 온다는 말에 장로들이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커졌다.

대장로는 웅성거림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평범하게 그들을 손님으로 맞을 거요. 잘못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면 그것도 순순히 응할 생각이오. 혹여 이곳에 있는 누구라도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길 바라겠소.”

대장로의 단호한 태도에 나머지 장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제각각 다른 의미로 빛나고 있었다.

* * *

“도착했어요.”

“와아…….”

안개가 자욱했던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과 함께 커다란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은월족 마을 ‘시르눈’이에요.”

모든 은월족의 고향인 ‘시르눈’.

시르눈을 보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그 규모가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을이 아니라 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마계에서 봤던 큰 도시들보다는 조금 작고, 평범한 마을보다는 훨씬 큰 느낌?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은월족 마을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었다.

건축물 대부분이 목조건물로 이루어졌고, 그 분위기는 지구의 동양권 국가들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의 목조건물들.

그곳에서 익숙한 편안함과 동시에 신선한 새로움이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일행은 다우르와 아니스를 따라 마을 입구로 향했다. 멀리서 우리를 발견한 경비병들이 다가왔다.

“돌아오셨습니까? 다우르 님,”

“그래. 미리 소식을 전한 대로 손님들을 모시고 왔다.”

다우르가 대표로 나서서 창을 든 경비병들과 대화를 나눴다. 경비병들 대부분은 붉은색 털을 가진 은월족들이었다.

“다우르 님. 손님은 이분들이 전부입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 어엇?”

일행을 둘러보던 다우르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나도 뒤늦게 그가 당황한 이유를 눈치챘다.

쩝…….

테르잔 님은 그새를 못 참고 몸을 숨기셨구나.

분명 결계를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테르잔과 함께 이동했었는데, 결계를 통과하자마자 그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네.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예요.”

당황한 다우르 대신 아니스가 말을 이었다. 경비병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들이 도착하면 곧바로 마을로 들여보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두 분께서는 손님들과 함께 곧장 마을로 향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경비병들은 별다른 질문이나 수색 없이, 우리가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일행은 다우르와 아니스를 따라 마을 입구를 통과했다.

입구를 지나면서 마을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조금 더 안쪽으로 이동하자, 거리를 돌아다니는 마을 주민들과 조금씩 마주치기 시작했다.

“헉…….”

“어머…….”

우리를 본 마을 주민들은 한결 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부정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신기한 무언가를 만난 듯한 반응이었다.

아니스는 우리 쪽을 돌아보며 민망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외부인의 방문이 거의 없다 보니…….”

나는 괜찮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이며 그녀의 민망함을 덜어주었다. 사실 나도 호기심을 가지고 마을 주민들을 살피고 있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은월족 사람들은 처음엔 손님이 방문했다는 것 자체에 놀라움을 표현하다가 천천히 의문으로 바뀌었다.

그 의문의 시선 끝에는 내 손을 잡은 은율이가 있었다. 마치 ‘저 아이는 왜 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거지?’라는 느낌이었다.

은율이도 그 시선들을 느끼고, 조금 몸을 움츠리며 내 다리 뒤로 숨어들었다.

어쩌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은율이가 이런 시선을 받는다는 사실이 내겐 씁쓸하게 느껴졌다.

마을의 중심부로 가면서 볼거리가 점점 많아졌다.

물건을 파는 상인부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점도 보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 뒤쪽으로 작은 발걸음들이 따라붙었다.

“저기 봐봐. 머리에 뿔이 난 마족이야.”

“어? 저 사람은 뿔이 없는데?”

“우웅. 형아, 누나 같이 가.”

은월족 아이들이 우리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여우 귀를 쫑긋거리며 두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아이고, 귀여운 것들.

나는 모르는 척하며 슬쩍슬쩍 아이들을 살폈다. 은율이 때문인지 은월족 아이들에게 굉장히 정감이 갔다.

그러던 중 가장 체구가 작은 아이의 몸이 기우뚱 기울더니, 앞으로 풀썩 넘어졌다.

“아얏!”

“엇! 괜찮아?”

“히이잉…… 형아…….”

“네가 너무 빨리 걸어서 그렇잖아.”

“내, 내가 뭘?”

작은 은월족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형, 누나로 보이는 아이들이 당황하는 사이, 내가 후다닥 쓰러진 아이에게 다가섰다.

“괜찮니?”

“헉!”

“어엇?”

놀라는 두 아이의 반응은 무시한 채, 먼저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줬다. 아이는 갑자기 서러워졌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흑…… 흐아아아앙!”

나는 당황하지 않고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를 시도했다.

“괜찮아, 괜찮아. 많이 안 다쳤네. 리아네 씨, 손수건 좀 줄래요?”

“네, 시현 님. 잠시만요.”

나는 리아네에게 손수건을 받아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넘어지면서 살짝 부딪쳤는지 코가 새빨개져 있었다.

혹시 다른 곳에 상처가 생기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오랜만이네.

품 안에서 훌쩍이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옛날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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