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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79화 (37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79화

수호신과 신녀(1)

신녀의 거처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니스 님, 오셨습니까?”

“신녀님의 거처에 들어가실 분들을 모셔왔어요. 자세한 소식은 들으셨죠?”

“네, 상부에서 이미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경비병은 아니스의 뒤쪽을 흘긋 바라봤다.

“입장이 허락된 분이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 시현 님과 은율이만 어머니를 뵈러 갈 거예요. 나머지 분들은 이곳에서 기다리실 거예요.”

“으음…… 알겠습니다.”

카네프와 리아네가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하자 경비병의 얼굴에 잠시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금방 감정을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병은 아니스의 옆을 지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무기나,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뇨. 그런 건 없어요.”

“손에 들고 계신 걸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아, 이거요? 별건 아니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에서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그래도 은율이의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건데 덜렁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챙겨온 선물들이었다.

“이건 저희 영지에서 직접 재배해서 만든 ‘딸기잼’. 또 이건 ‘수제 한과 세트’, 이건 ‘입욕제 세트’…….”

딸기잼은 카디스 영지에서 최근에 가장 잘 만들어진 것을 선물로 챙겼고, 한과 세트는 어머니의 추천, 그리고 농장 식구들에게 선물로 반응이 좋았던 입욕제를 추가로 챙겨왔다.

꽤 많은 양의 선물들을 보고 경비병의 얼굴이 굳어졌다.

“죄송하지만 이것들은 가지고 가실 수 없습니다.”

“네? 이건 전혀 위험한 것들이 아닌데요?”

“저희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물건들을 신녀님의 거처로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아니…….”

조금 억울한 마음에 곧바로 반박하려다가, 단호한 경비병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내려놨다.

여기서 괜히 소란을 피워봤자 괜히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가지고 오신 것들은 저희가 보관하고 있다가 돌아가실 때 돌려드리겠습니다.”

“쩝…….”

나는 어쩔 수 없이 선물이 담긴 가방을 경비병에게 건넸다.

꽤 신경 써서 준비한 선물들인데…….

아쉬워하는 나에게 아니스가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거라며 대신 위로해 줬다.

“다녀올게요. 사장님, 리아네 씨.”

“기다리고 있을게요. 은율이도 잘 다녀와.”

리아네는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를 응원했다. 반면에 카네프는 귀찮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얼른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 흔들었다.

“신녀님이 계신 곳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선물을 뺏어갔던 경비병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은율이의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랐다.

“…….”

어두워서 표정을 살필 순 없었지만, 붙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만으로도 은율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은율이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은율이의 작은 손을 꽉 붙들었다.

높은 담벼락을 지나 건물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귓가에 테르잔의 속사임이 들려왔다. 멀리서 목소리를 전하는 그림자 일족의 특별한 기술이었다.

-시현, 시현!

“……?!”

-숲에 펼쳐져 있던 결계가 저 건물 주변에도 펼쳐져 있어. 이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나는 더 이상 몸을 숨길 수 없어.

계속 몸을 숨기고 우리를 지켜주던 테르잔이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테르잔이 볼 수 있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는 따라오지 말라는 신호였다.

금방 내 신호를 이해한 테르잔이 다시 한번 더 속삭였다.

-알았어. 나도 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크게 소리쳐. 최대한 빨리 안쪽으로 진입할 테니까.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아니스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만 빼면, 신녀의 거처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평범했다.

은월족 수호신을 모시는 존재라고 해서 뭔가 종교적인 느낌을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용한 복도를 지나 큰 방문 앞에 도달했다.

“아니스 아가씨 오셨습니까?”

중년의 은월족 여인이 익숙하게 아니스를 맞이했다.

“손님을 모시고 왔어요. 어머니는 지금 일어나 계세요?”

“조금 전에 일어나셔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리고 손님이 도착하면 바로 방으로 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저희가 도착했다고 안쪽에 알려주세요.”

“네, 아가씨.”

중년 여인은 방문 쪽으로 다가서서 들릴 듯 말 듯 한목소리로 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커다란 방문이 양쪽으로 조용히 열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경비병과 중년 여인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양쪽으로 길을 비켜섰다.

아니스는 우리와 짧게 눈을 마주치고 먼저 방 안으로 향했다. 긴장한 나는 한번 마른침을 삼킨 뒤에 은율이를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왔느냐?”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어머니.”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한 은월족 여인이 침대에 기대서 상체만 일으킨 자세로 우리를 맞이했다.

저 사람이 은율이의 할머니…….

처음 그녀를 보고 가장 놀란 점은 생각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였다. 전혀 할머니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젊어 보이는 외모와 별개로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얼굴색은 무서울 정도로 창백했고, 그녀의 주변에는 왠지 모를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옆에서는 시중드는 여인들을 사발을 치우고 있었는데, 그 안에 거무스름한 탕약이 언뜻 보였다. 방 안에 은은하게 퍼져 있는 쓴 향기로 보아 방금 약을 마신 모양이었다.

“어머니, 이쪽이 저번에 말했던 시현 님이세요. 그리고 옆에는…….”

“…….”

침대에 누워 있던 늙은 여인의 시선이 내 얼굴을 지나 천천히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멈춤과 동시에 내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아…….”

떨리는 건 은율이의 손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손녀를 만나본 늙은 여인의 눈동자도 크게 흔들렸다.

“조,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그녀는 애원하듯 내게 말했다.

나는 묵묵히 은율이의 손을 이끌고 침대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율이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

은율이는 할머니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어렸다.

귀엽게 쫑긋 세워져 있던 여우귀가 축 늘어지고, 꼬리도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은율이는 지금 자신감을 잃고 망설이는 것 같았다.

도망치듯 내 다리 뒤로 숨으려는 은율이를 붙잡았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가족과의 만남을 허무하게 끝낼 순 없었다.

“괜찮아, 은율아.”

“…….”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은율이를 달래며 작은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어졌다.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돼.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생각했지?”

은율이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싱긋 웃으며 떨리는 작은 손을 강하게 잡아주었다.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지나 이곳에 도착했다.

아직은 은율이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은율이가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응원했다.

은율이는 뒤에 숨으려던 행동을 멈추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할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손녀를 바라보는 늙은 여인의 눈이 다시 한번 더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

“그래…… 아가야.”

은율이는 몇 번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힘겹게 한마디를 꺼냈다.

“보고…… 싶었어요.”

“아아…….”

그 한마디에 늙은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쏟아졌다. 그녀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추스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 나도 정말 보고 싶었단다, 아가야.”

그리고 그녀는 은율이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한 번만…… 한 번만 안아 봐도 되겠니?”

“응…….”

은율이는 천천히 할머니 쪽으로 다가섰다. 나는 은율이를 살짝 들어 올려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해줬다.

늙은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듯 은율이를 꼬옥 품에 안았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어색해하던 은율이.

그녀의 품에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더니. 어느 순간 몸을 들썩이면서 작게 울음을 터뜨렸다.

“흐윽…… 흑!”

“미안하다, 아가야.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흐…… 흐아아아앙!!”

“흑, 흑!”

은율이의 울음이 커질수록 늙은 여인의 떨림도 커졌다. 그녀는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은율이를 꼭 껴안았다.

나는 조용히 울고 있는 은율이를 지켜봤다.

그 울음 속에는 슬픔, 원망, 외로움…… 마음 속 깊숙이 쌓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전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니스도, 시중을 들던 은월족 여인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방 안에 울음소리가 잦아든 건.

아주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 * *

“훌쩍…… 훌쩍.”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은율이가 눈 주변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코를 훌쩍거렸다.

주변에서 손수건을 건네받은 늙은 여인이 은율이의 얼굴을 소중하게 닦아주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감정이 격해진 것 때문인지 얼굴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떠올라 훨씬 생기 있게 보였다.

한참 동안 품 안에 은율이를 살피던 늙은 여인이 처음으로 나와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중요한 손님 앞에서 추태를 보였군요.”

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은월족을 대표해 수호신님을 모시는 중인 ‘미르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품 안에 은율이를 내려다봤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할머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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