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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80화 (380/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80화

수호신과 신녀(2)

미르나는 품 안의 은율이를 토닥이며 나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시현 님의 이야기는 아니스를 통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혼자가 된 이 아이를 보호해 주고, 가족처럼 돌봐주셨다고요.”

“‘가족처럼’이 아니라 정말로 제 가족이 되었죠. 농장에서 함께 지내는 다른 분들처럼요.”

내 대답을 들은 미르나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제 손녀는 정말 운이 좋았네요. 시현 님 같은 분을 만나서 말이에요.”

“저에게도 행운이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은율이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많이 늦었지만,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희 대신 든든한 보호자가 돼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미르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그녀의 인사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잘 알았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그 뒤부터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 대화가 오갔다. 주된 대화의 내용은 당연히 은율이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바위들 사이에 작은 틈에서 조그마한 여우를 발견했던 이야기부터, 평소에 농장에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 다른 식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오랫동안 쌓여 있었던 질문과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색함을 떨쳐 버린 은율이는 열심히 농장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미르나는 손녀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반응해 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딸기라는 게 그렇게 맛있니?”

“응! 그리고 아빠가 직접 만들어주는 딸기잼도 엄청 맛있어. 우웅…… 그런데…….”

신나게 이야기하던 은율이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졌다.

“왜, 왜 그러니?”

“아빠가 선물로 딸기잼 가져왔는데. 어떤 무서운 아저씨가 뺏어가 버렸어.”

“누가 그런 짓을!”

“저기 집 앞에서 아저씨가 무섭게 인상 쓰면서 가져갔어.”

아무래도 은율이는 준비한 선물을 경비병이 가져갔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은율이 입장에서는 경비병의 고압적인 태도가 꽤 무서웠나 보다.

“많이 무서웠니?”

“쪼끔? 그래도 아빠랑 같이 있어서 괜찮았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미르나는 은율이를 대견하다는 듯이 토닥이면서, 어딘가로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순식간에 매서워진 그녀의 분위기는 내가 몸을 움찔할 정도였다.

나는 사소한 오해를 풀기 위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경비를 서시는 분께서 억지로 저희에게 선물을 뺏어간 건 아니에요. 조금 딱딱한 말투이긴 했지만, 설명도 잘해주셨고요.”

”맞아요, 어머니. 확인이 안 된 물건들을 여기에 가져올 수 없으니, 잠시 맡아두겠다고 했을 뿐이에요.”

나와 아니스는 경비병이 오해를 받지 않도록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덕분에 싸늘했던 미르나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죄송합니다, 시현 님. 정말 중요한 손님이라고 몇 번을 강조했는데…… 경비병이 실례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전혀요! 그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한 것뿐인데요 뭘. 저는 별로 불쾌해하지 않았어요. 선물은 나중에라도 따로 전해드리면 되니까요.”

“후훗. 시현 님은 듣던 대로 정말 상냥하신 분이군요.”

“하하…….”

미르나의 칭찬에 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현 님의 말대로 선물은 나중에라도 꼭…… 쿨럭, 쿨럭!!”

“신녀님!”

“신녀님!”

시중드는 여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침대 곁으로 다가섰다.

미르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나머지 손으로 그들을 멈춰 세웠다.

“나는 괜찮으니 소란 떨지 말아라.”

“하, 하지만 신녀님. 치료사가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만 손님들을 물리시는 게…….”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러나거라.”

“네.”

“네.”

미르나는 단호하게 그들을 물러서게 했다.

“할머니…… 아파?”

“괜찮단다. 조금 피곤해서 그럴 뿐이야.”

“우웅…….”

미르나는 은율이를 다시 품에 안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과는 반대로 그녀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시현 님.”

“네, 말씀하세요.”

“은월족과 신녀. 그리고 은율이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은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에 아니스를 통해 은율이의 소식을 들었을 때, 손녀만큼은 어지러운 상황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말을 이어가던 중 그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질수록. 한 번만이라도 손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더군요. 결국, 늙은이의 욕심 때문에 시현 님께 민폐를 끼쳐버렸네요.”

“괜찮습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니 민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미르나는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 뒤, 결연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은율이가 어지러운 상황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현 님은 내일 아침 일찍 은율이와 함께 카디스 영지로 돌아가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수년의 시간을 지나 겨우 만난 손녀.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 떠나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괜찮을 리 없었다.

미르나는 흐릿하게 웃으며 은율이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행복이에요.”

“으음. 알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말씀하세요.”

“오늘 밤만은 손녀와 함께 있고 싶어요. 정말 염치없지만.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애절한 목소리로 내게 부탁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은율이와 시선을 맞췄다.

“할머니가 오늘 밤은 은율이랑 같이 지내고 싶으시다는데. 은율이는 어떻게 하고 싶어?”

“우웅…….”

은율이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미르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손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민이 끝난 은율이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할머니랑 있을래.”

“알았어.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올 테니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해?”

“응!”

미르나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럼 은율이를 잘 부탁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시현 님.”

나는 미르나에게 은율이를 맡기고 아니스와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을 따라서 한 번 지나왔던 복도를 되돌아갔다.

미르나의 거처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쯤.

나란히 걷고 있던 아니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고마워요, 시현 님.”

“네?”

“어머니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 정말 오랜만에 본 것 같아요. 이게 다 시현 님과 은율이 덕분이에요.”

“뭘요.”

당연히 이뤄졌어야 할 만남이 이뤄졌을 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다만, 마음속 한구석에 이 만남이 조금만 더 일찍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카네프와 리아네가 기다리고 있는 정문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리아네가 나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왔다.

“이제 오셨어요? 어? 근데 은율이는요?”

“오늘 밤은 할머니와 지내기로 했어요. 내일 아침 일찍 데리러 갈 거예요.”

“그랬군요…… 으음, 저기 그런데…….”

“……?”

“그…… 어땠나요?”

머뭇거리던 리아네가 굉장히 함축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해 줬다.

“좋은 분이셨어요. 은율이도 정말 좋아했고요. 역시 여기에 오기를 잘한 것 같아요.”

그제야 리아네도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정말 다행이에요.”

옆에 있던 카네프가 불쑥 끼어들어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은율이를 그렇게 아무한테나 맡겨도 되는 거야?”

“아무한테라뇨. 할머니라니까요.”

“할머니든 뭐든. 은율이랑 오늘 처음 만난 건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금방 평범한 할머니, 손녀처럼 보이더라고요.”

“…….”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두 사람에게 시간을 더 주고 싶었어요.”

“오? 내일 아침에 바로 떠날 거야?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인데?”

내일 떠난다는 이야기에 카네프가 반색하며 좋아했다.

“네. 내일 곧바로 농장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니까 아침 일찍 이곳에서 떠나려면 저희도 얼른 돌아가서 쉬어요.”

“쉬시는 곳까지 안내해드릴게요.”

우리는 신녀의 거처를 떠나, 쉴 수 있는 숙소로 향했다.

* * *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마을의 불이 거의 다 꺼진 한밤중이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잠들기 전에 내일 일찍 떠나기 위한 짐을 정리했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짐 정리는 정말 쉽게 끝났다.

모두 은율이가 없는 허전함을 느끼며, 각자 잠자리에 들려 할 때쯤. 갑자기 가방 안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어? 이 소리는…….”

“안드라스 님이 건네줬던 통신 아티팩트가 내는 소리예요.”

나는 가방 속 아티팩트를 꺼내 통신을 연결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심한 지직거림과 함께 안드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지직! 들리…… 치직! 니까?

“안드라스 씨? 저예요.”

-역시 지직! 통신……! 원활하지 않군요. 지지직! 아마 그곳 주변에 펼쳐진 결계…… 때문일 겁니다.

노이즈가 조금 심하긴 해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치직! 여기에서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죠?”

-영지 침입을 사주한 존재를 찾기 위해, 은월족 몇몇을 심문했는데 치지직! 모두 다 이상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이상한 대답?”

-치직! 모두 한결같이 수호신님의 지시를 받아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하더군요. 치직! 그러면서 갑자기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수호신님의 지시를 받았다고?

그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당황한 내가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카네프가 심드렁하게 한마디 했다.

“그냥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거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치직!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연락을…… 치지지직! 시현 님? 카네…… 치지지지직!!

“안드라스 씨? 안드라스 씨!”

아티팩트는 시끄러운 노이즈를 내더니 별안간 통신이 완전히 끊어졌다.

방 안에 있던 모두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스으으윽!

테르잔이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다급히 외쳤다.

“큰일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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