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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81화 (38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81화

수호신과 신녀(3)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테르잔.

놀란 나와 리아네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테르잔 님?”

“무, 무슨 일이에요?”

“큰일 났어.”

테르잔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은 인원이 갑자기 신녀의 거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테르잔,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어느새 카네프도 가까이 다가와 그녀에게 좀 더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마을의 경비병이 순찰을 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그 이상의 인원이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어. 거기다 모두 무장한 상태야.”

“신녀의 거처라면…… 지금 은율이가 있는 곳이잖아?”

카네프의 중얼거림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솟구치는 불안감과 함께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테르잔은 얼굴을 흐리며 내게 말했다.

“미안해, 시현. 은율이를 지키러 가고 싶었지만. 그 주변에 퍼져 있는 신비한 힘 때문에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어.”

“아…….”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직접 알아봐야겠어요. 우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별일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제일 확실하지.”

“저도 갈게요.”

카네프와 리아네도 내 뒤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모두의 얼굴에서 잠들기 직전의 나른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먼저 방을 뛰쳐나와 은월족 사람을 찾아 나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건물 내부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우리가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이 분명 있었는데…….

뭔가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은 건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완전히 깨져 버렸다.

“이게 도대체…….”

건물을 나서자마자 우리가 맞닥뜨린 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었다. 단순히 달과 별이 구름에 좀 가려졌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리아네가 어디선가 급하게 가져온 호롱불도 소용없었다. 호롱불의 빛은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금방 그 힘을 잃어버렸다.

“이 느낌은…….”

어둠을 응시하던 카네프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틀림없어. 결계가 주변에 펼쳐진 거야.”

“결계요? 결계는 마을 주변으로만 펼쳐져 있었잖아요?”

“나도 왜 그런지는 몰라! 하지만 이 갑갑한 느낌은 틀림없어. 우리가 숲을 지나올 때 봤던 결계가 마을 전체에 펼쳐진 거야. 아까 통신 아티팩트의 연결이 갑자기 끊긴 것도 이것 때문이겠지.”

카네프는 중간에 말을 멈추고 테르잔을 바라봤다.

“네가 돌아올 때는 결계가 없었지?”

“응. 그냥 평범했어.”

“우리가 움직이길 원하지 않는 누군가가 장난질 친 게 틀림없군…… 테르잔, 신녀의 거처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겠어?”

“결계 속에서는 나도 힘들어, 단장.”

“제길…….”

신녀의 거처로 향한 정체불명의 사람들.

테르잔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마자 펼쳐진 결계.

이제는 도저히 우리의 오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불길한 정황들이 마음속에 불안감을 점점 키워나갔다.

“이제 어떻게 하죠?”

“…….”

“…….”

리아네의 걱정 담긴 물음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짙은 어둠을 뚫고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 님! 제 말 들리세요!”

이 목소리는……?!

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금방 주인을 떠올렸다.

“아니스…… 아니스 씨! 여기에요!!”

“아! 찾았어요.”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불꽃을 휘두른 아니스가 등장했다. 우리를 찾아 급하게 움직인 듯 숨소리는 거칠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조금 맺혀 있었다.

아니스가 숨돌릴 틈도 없이 나는 곧바로 질문부터 건넸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후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을 숙소로 모셔다드리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결계가 펼쳐졌어요. 걱정되는 마음에 일단 여러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카네프가 나서서 물었다.

“이봐 은월족!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설마 이번에도 은율이를 노리려는 거냐?”

“저, 저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정말로 저에게 꿍꿍이가 있었다면 뭣 하러 여러분들을 찾으러 왔겠어요. 어차피 이 결계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텐데요.”

카네프의 물음에 아니스는 살짝 말을 더듬으면서도 차분하게 변명했다. 그녀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는지 카네프는 살짝 의심을 거둬들였다.

“아니스 씨. 테르잔 님이 신녀의 거처로 무장한 병력이 이동하는 걸 봤다고 했어요. 미르나 님과 은율이가 위험해요.”

“무장한 병력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아니스의 얼굴이 순간 복잡해졌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퍼져나갔다.

“그럴 리가…… 도대체 왜…….”

“아니스 씨? 아니스 씨!”

내가 몇 차례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아…… 죄송해요.”

“뭐라도 좋으니 설명 좀 해주세요. 답답하고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에요.”

“일단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없으니 바로 움직일게요.”

그녀는 도깨비불처럼 떠다니던 푸른 불꽃을 리아네가 들고 있던 호롱불로 쏘아 보냈다.

그러자 호롱불의 불빛이 푸르스름해지며 주변의 어둠을 조금씩 밀어냈다.

“이 정도면 될 거예요. 따라오세요.”

* * *

우리는 아니스의 푸른 불꽃과 호롱불에 의지해 신녀의 거처로 향했다.

모든 감각이 차단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결계의 어둠이 짙었지만, 아니스는 거침없이 우리를 이끌었다.

만약에 아니스를 만나지 못하고 우리끼리 먼저 길을 나섰다면, 어둠 속에서 헤매며 정말 끔찍한 경험을 하고 있었을지도…….

걱정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나는 아니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니스 씨.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

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절박한 내 눈빛을 끝내 무시할 수 없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 무장한 세력이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은율이를 노리는 누군가가 일을 벌인 거라 생각했어요.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어머니는 은율이를 지키려고 결계를 펼치셨겠죠.”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경계했던 상황 중 하나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요. 단순히 은율이를 지키기 위함이라면 이렇게 마을을 뒤덮을 정도로 넓은 결계를 펼치지 않았을 거예요. 주변에 결계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겠죠.”

“그럼……?”

“이 결계는 은율이를 지키기 위한 결계가 아니에요. 누군가 쉽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일 거예요. 예를 들면…….”

아니스의 시선이 나와 다른 일행들에게 향했다.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던 카네프가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말은 은율이를 데리고 있는 신녀가 이 일을 벌였단 말이야?”

“저도 믿을 수 없지만…… 하지만 결계를 펼칠 수 있는 건 오로지 신녀밖에 없어요.”

은율이의 할머니가 이런 일을 벌였다고?

손녀를 껴안고 눈물짓던 미르나의 모습이 떠올라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때 보인 그녀가 보인 눈물은 지금도 거짓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늘 밤만은 손녀와 함께 있고 싶어요.

은율이를 껴안고 애절하게 부탁하던 미르나.

그때 부탁을 거절했어야 했나…….

내가 너무 쉽게 그녀를 믿은 탓에 은율이가…….

-턱!

고통스러운 생각이 들려던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사장님…….”

“뭐가 됐든 다 쓰러뜨리고 은율이를 되찾아오면 돼.”

테르잔과 리아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맞아. 내가 누구보다 빠르게 은율이를 찾아올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현 님.”

“……고마워요. 이제 정신 차렸어요.”

그들의 말대로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은율이를 다시 구해오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할 때였다.

나는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으며 눈에 의지를 불태웠다.

“이제 곧 어머니의 거처예요.”

아니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신녀의 거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는 수많은 은월족 사람들이 무장한 채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리아네의 말대로 은월족 사람들의 움직임이 기이했다. 모두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치 좀비가 된 것처럼 흐느적흐느적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철통같이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도 똑같은 상태였다.

“잠깐, 저기 다우르 씨 아니에요?”

“수, 숙부님?”

다우르 역시 다른 은월족과 마찬가지로 넋 나간 표정을 한 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니스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며 말을 걸었다.

“제 말 들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숙부님. 숙부님!”

“으으으…… 침입자…….”

-채앵!

“숙부님?!”

다우르는 아니스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덩달아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침입자…….”

“모두…… 절 못 알아보시겠어요?”

“아니스 씨, 일단 피하세요.”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아니스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동안 무기를 든 은월족들이 느릿느릿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잘됐네. 어차피 우리도 말로 할 생각 없었거든.”

카네프를 시작으로 테르잔과 리아네도 전투태세를 갖췄다. 내 손에 붙잡힌 아니스가 절규하듯 외쳤다.

“저분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너무 심한 공격은 자제해 주세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그녀의 외침이 카네프는 별로 마음에 만든다는 듯 볼을 씰룩거렸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시했다.

“모두 적당히 제압만 해라.”

“걱정하지 마세요!”

“…….”

“특히 테르잔 너! 조심해. 그 흉악한 무기 빨리 집어넣어.”

“…….”

힘차게 대답하는 리아네와는 달리, 테르잔은 굉장히 아쉬워하며 기괴한 무기를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손에 평범한 단검이 들리자 아니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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