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82화
수호신과 신녀(4)
“으으…….”
“침입자…… 컥!”
우리를 포위하려던 은월족들은 하나둘 제압당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모두 무장한 상태라고 해도 반쯤 넋 나간 상태로 강력한 세 사람을 당해낼 순 없었다.
문제는…….
-촤르르르륵!!
“아오, 이놈들! 왜 이렇게 많아.”
“죄송해요, 조금만 누워 계세요.”
“…….”
그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앞사람을 제압하면 뒤에서 두 명이 더 몰려드는 형국이었다.
얼굴에 짜증을 잔뜩 머금은 카네프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시현! 내 뒤에 딱 붙어. 빠르게 길을 뚫고 지나간다.”
“네?”
“건물까지 길을 뚫어 줄 테니까. 너는 리아네와 함께 은율이를 데리고 와. 밖은 나랑 테르잔이 맡는다.”
“저도 같이 갈게요.”
아니스도 함께하겠다고 나섰다.
카네프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몰려오는 은월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르르륵!!
그의 양손에서 뻗어 나온 사슬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으으…….
저런 걸 제압이라고 할 수 있나? 죽는 거 아냐?
내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리아네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카네프 님이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것처럼 보여도 치명적인 급소는 모두 피해서 공격 중이에요.”
테르잔도 잠시 내 옆에 나타나 한마디 거들었다.
“리아네 말이 맞아. 단장은 사람 패는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전문가니까.”
“하하하…….”
“뒤에서 뭘 그렇게 쫑알거리고 있어! 얼른 따라와!”
카네프의 호통에 우리는 찔끔 놀란 뒤, 그의 뒤편으로 재빨리 다리를 움직였다.
은월족들은 우리를 포위하기 위해 꾸역꾸역 모여들었지만, 카네프와 테르잔의 공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길을 내줘야 했다.
잠시 후.
우리는 신녀의 거처 입구에 도달했다.
“금방 다녀올게요!”
나는 리아네 아니스와 함께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어두운 내부를 아니스의 푸른 불꽃이 밝혀 주었다.
건물 안쪽에서는 공격해 오는 은월족이 없었다.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미르나의 방 앞에 도착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방문을 양쪽으로 열어젖혔다.
“은율아!”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안을 샅샅이 둘러봤지만, 사람의 인기척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은율이는…… 미르나 님은 어디 간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아니스도 비어 있는 방을 둘러보며 당혹스러워했다. 다른 곳을 살피던 리아네도 다시 돌아와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곳에도 은율이는 없어요.”
애초에 건물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어디 숨어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럼 은율이와 미르나 님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더 허탈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왔다.
“드디어 나왔…… 은율이는?”
“여기에 없었어요. 아마 건물에서 나간 것 같아요.”
은율이를 찾지 못했다는 말에 카네프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와중에도 은월족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카네프는 계속 주변을 제압하며 외쳤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으음…….”
나는 자연스럽게 아니스를 바라봤다. 지금 상황에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아니스도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미간을 찡그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일행 모두가 아니스를 초조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으으으…… 침입자…….”
“진짜 귀찮게 하네.”
“잠깐만요!”
아니스가 다가온 은월족을 보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은월족의 정체는 아까 스치듯 잠깐 마주쳤던 다우르였다.
“살살해달라는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 없을…….”
“그게 아니에요. 숙부님을 완벽히 제압해 주세요.”
“뭐?”
“숙부님의 정신을 깨울 거예요. 아마 숙부님이라면 어머니와 은율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테르잔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다우르의 뒤편에 귀신처럼 나타나더니, 얇고 튼튼한 끈으로 순식간에 그를 제압해 버렸다.
테르잔은 제압한 다우르를 아니스의 앞에 내려놓았다.
“됐지?”
“고마워요.”
“고마우면 빨리 은율이 찾아줘.”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요.”
아니스는 제압당해 꿈틀거리는 다우르를 내려다봤다.
“숙부님. 숙부님!”
“으으으…….”
“숙부님이라면 이겨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녀의 주변으로 신비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익숙함이 느껴지는 기운에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가끔 은율이가 보여줬던 그 신비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운이 신녀의 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스의 주변을 맴돌며 반짝이던 기운은 천천히 다우르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 으윽…… 여긴……?”
“숙부님! 정신이 드세요?”
“아니스? 여기는…… 내가 왜 이곳에…….”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드릴게요. 혹시 어머니와 은율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계세요?”
“신녀님? 은율이? 으윽?!”
다우르는 뭔가를 떠올리는 듯하다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아직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모양이었다.
“숙부님, 제발 도와주세요.”
“끄응…….”
그의 입술 사이로 쉴 새 없이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두 눈동자는 흐릿함을 지워내고 점점 또렷해졌다.
“제단…….”
“네?”
“머리가 어지러워서 흐릿하지만, 신녀님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분명 수호신님의 제단으로 향하고 있었어.”
수호신의 제단이라면…….
나는 머릿속으로 작은 오솔길을 떠올렸다. 머릿속으로만 떠올린 것뿐인데, 그 불길한 기운이 내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우리는 곧바로 수호신의 제단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카네프와 리아네는 횡설수설하는 다우르가 못 미더운 눈치였지만, 지금 당장은 그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스는 앞에서 제단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방해하는 은월족들을 빠르게 제압했다.
나는 아직 흐느적거리는 다우르를 부축하며 열심히 뒤를 따랐다.
“미안…… 하네…….”
“괜찮아요, 다우르 씨.”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다우르는 의지를 잃은 은월족들을 보며 안타까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제정신을 찾은 다우르를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달려드는 은월족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님을.
“으으으…….”
“침입자…… 막아라…….”
수호신의 제단에 가까워질수록 은월족의 저항이 더욱 거세졌다. 지금까지는 카네프를 중심으로 잘 이겨내고 있었지만, 전투가 계속 이어진다면 상황이 쉽지 않아 보였다.
“여기예요! 여기가 제단으로 향하는 길…….”
-파직!!
“꺄아악!”
“아니스 씨?!”
“아니스!”
평범하게 걷던 아니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모두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가운데, 다행히 그녀는 금방 몸을 일으켜 세웠다.
“괘, 괜찮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죠?”
“제단으로 향하는 길에도 결계를 펼쳐놓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결계예요.”
“또 결계라니…….”
카네프는 주변의 은월족들을 제압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왔나 보네. 이 결계만 없애면 한밤중에 우리를 개고생시킨 놈을 볼 수 있다는 거지?”
“아니스 씨가 이 결계를 풀어줄 수 있나요?”
리아네의 물음에 아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진 신녀의 힘 수준으로는 불가능해요. 이 정도의 결계를 펼치고 없앨 수 있는 건 오로지 어머니뿐이에요.”
“신녀의 힘으로 안 되면 다른 힘으로 해결해야지.”
“예?”
“모두 물러서!”
카네프가 결계의 앞으로 나섰다.
그의 주변에 나타난 사슬들 하나하나에 강력한 힘이 담기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콰아앙!!
사슬과 결계가 부딪치면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충격으로 주변의 땅이 흔들리면서, 무지성으로 달려들던 은월족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출 정도였다.
결계는 깨졌나?
기대감을 안고 결계 쪽을 바라봤지만, 돌아오는 건 짜증 섞인 카네프의 중얼거림뿐이었다.
“이런 젠장…….”
-콰아아앙!!
-콰아아앙!!
그 뒤로 카네프는 몇 차례 더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수차례 이어진 공격에도 결계를 없애는 일에는 실패했다.
“으읏…….”
그는 결국 이런 공격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닫고 결계에서 물러섰다.
카네프가 실패한 이상. 물리적으로 파훼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초조하게 결계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내 양손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쳤다.
“이건?”
힘차고 따스한 기운.
요정계를 부탁하며 나에게 맡긴 요정 여왕의 힘이었다. 이 기운들은 마치 나를 결계 쪽으로 이끌 듯 강하게 넘실거렸다.
“아니스 씨, 저 대신 다우르 씨 좀…….”
“네? 아…… 네!”
나는 부축하고 있던 다우르를 아니스에게 맡겼다. 그리고 양손에서 느껴지는 요정 여왕의 힘에 집중하며 결계 쪽으로 향했다.
“시현 님?”
“……?”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애써 그 시선들을 무시하며 결계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우우우웅!
양손이 밝게 빛날 정도로 여왕의 힘이 넘실거렸다. 나는 양손을 결계에 찔러 넣듯이 팔을 쭉 뻗었다.
-콰직! 콰지지직!
마치 격렬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듯, 결계와 요정 여왕의 힘이 쉴 새 없이 얽혀들었다. 나는 팔을 움직여 작은 틈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카네프의 공격에도 꿈쩍 않던 결계가 조금씩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양손을 더 크게 움직이며 틈을 키워나갔다.
어느 순간 결계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날 정도의 구명이 생겨났다.
됐다!
……라고 생각하며 손을 빼내는 순간, 결계는 순식간에 틈을 메워 버렸다.
“허어…….”
허탈함에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살짝 흥분한 카네프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너 방금 결계를 뚫은 거 아니었어?”
“네, 맞아요. 뚫어내는 데는 성공했는데. 문제가 있어요.”
“뭔데?”
“처음에는 결계를 완전히 뚫어낼 생각이었는데.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겨우 작은 틈을 만드는 것 정도가 최선인데…….”
나는 굳어진 얼굴로 결계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저 혼자 이 결계를 통과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