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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83화 (38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83화

수호신과 신녀(5)

“너 혼자 결계를 통과하겠다고?”

“안 돼요, 시현 님! 저 너머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고요.”

내 말을 듣자마자 카네프와 리아네가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아니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시현 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좀 더 안전한 방법을 찾으시는 게…….”

“다른 방법을 찾겠다고 마냥 기다릴 순 없어요.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는 만큼 은율이가 더 위험해질지도 몰라요.”

“…….”

“저는 이미 결심했어요.”

단호한 어조로 혼자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모두 불안한 표정을 했지만, 끝내는 나를 막아서지 못했다. 이것 말고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나는 천천히 결계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뒤를 부탁드릴게요.”

“잠시만요, 시현 님. 대신 이거라도 가져가 주세요.”

아니스는 푸른 불꽃이 담긴 호롱불을 내게 건넸다.

“결계 안에서 오래 버티지는 못해도. 한동안은 길을 밝혀줄 거예요.”

“고마워요.”

농장 식구들도 한마디씩 건넸다.

“시현 님, 무사하셔야 해요.”

“여기서 얼마든지 버티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힘내. 시현.”

나는 얼굴에서 불안함을 숨기고 웃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은율이를 꼭 무사히 데려올 테니까.”

그리고 곧바로 결계를 향해 두 손을 찔러 넣었다.

다시 한번 요정 여왕의 힘이 결계를 어지럽혔다. 이번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밀어 넣었다.

결계 안쪽에서 거센 압력이 느껴졌다.

“으윽!”

숨이 막히는 듯한 압박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대로 밀려날 수 없다고 생각에 이를 꽉 깨물었다. 한 발씩 억지로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전진시켰다.

어느 순간.

지독한 압박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몸이 쑥! 끌어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나는 안쪽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끄으응…….”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정신을 되찾았다.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지면서, 땅에 떨어져 있던 호롱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니스가 불어넣어 준 푸른 불꽃이 주변을 밝혀주고 있었다. 호롱불을 집어 들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불빛에 비치는 거라고는 어딘가로 이어진 오솔길과 그 주변을 둘러싼 숲이 전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금 지나온 뒤쪽도 살펴보았지만 짙은 어둠만 가득할 뿐, 일행의 모습도 지나온 결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솔길을 따라가면 수호신의 제단이라고 했었지?

아니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끝이 보이지 않는 오솔길.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내 발걸음 소리만이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줬다.

꽤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 때쯤.

-츠츠츳…… 픽…….

점점 작아지던 호롱불이 결국 꺼져 버리고 말았다. 심지에 남아 있던 붉은색 온기마저 사라지자,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덮쳐왔다.

침착하자…… 침착해.

계속 길을 따라 걸어 나가는 거야.

가상의 길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최대한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가지 않아 방향 감각은 흐릿해지고 발걸음은 어지러워졌다.

그나마 똑똑히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도, 언젠가 지독한 어둠에 묻혀 조용해졌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속에서 메스꺼운 느낌이 솟구쳤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공포감에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려는 순간.

나는 손을 움직여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빠악!

강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에 빠진 것처럼 흐릿했던 감각도 다시 살아났다.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할 순 없어.

은율이…… 은율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해!

나는 머릿속으로 은율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밀어냈다. 안정을 되찾고 되살아난 감각이 천천히 어둠을 향해 뻗어 나갔다.

어둠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듯 계속 압박했지만, 은율이를 찾겠다는 내 의지는 그 무엇보다 강했다.

-팟!

어둠의 저편에서 느껴지는 기척.

“찾았다!”

너무나도 기뻐서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 외침은 잔잔했던 어둠에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은율이의 기척을 잡아낸 다음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다.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두꺼운 어둠을 헤쳐 나갔다.

-화아악!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딤과 동시에 나를 감싸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변은 호롱불이 없어도 보일 정도로 밝아져 있었고, 눈앞에는 오솔길 끝에 세워진 작은 구조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 은월족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바로 은율이와 함께 사라졌던 미르나였다.

“미르나 님!”

내 부름에 미르나가 몸을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 나갔다.

“호오? 결계를 뚫고 이곳까지 도착하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예상외인 걸?”

“미르나…… 님?”

“평범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숨겨둔 한 수가 있었던 모양이야. 큭큭!”

미르나는 멍한 내 표정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눈앞의 은월족은 분명 신녀의 거처에서 봤던 미르나의 모습이 확실했지만, 말투와 눈빛 그리고 특유의 분위기가 완전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너는 누구지?”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헛소리는 그만둬! 진짜 미르나 님은 어딨지? 그리고 은율이는 어딨어?”

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 밤. 달이 아주 예뻐.”

“……?”

그녀의 말대로 하늘에는 달이 떠올라 있었다. 구름에 뒤덮여 있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크고 아름다운 달이었다.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날과 아주 잘 어울려.”

“그게 무슨…….”

“너에게는 고마워할 일도 있으니 말해줄게. 나는 은월족이 섬기는 수호신, 또는 여우신이라 불리는 존재다.”

수호신? 여우신?

자칭 수호신이라 밝힌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무시한 채,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나는 오랫동안 부활을 위해 그릇을 찾고 있었어. 그릇에 적합한 아이를 신녀로 만들고, 은월족을 통해 그 핏줄을 이어나가도록 했지.”

“…….”

“소질 있는 아이들은 계속 태어났지만, 그릇에 어울리는 아이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더라고.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어. 견고한 결계를 만들어 외부와 접촉을 최소화하고, 신녀의 핏줄이 계속 이어지도록 유도했어. 정말 길고 지루한 기다림이었지.”

수호신은 지루했던 세월을 떠올리는 듯 잠시 끔찍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돌변하며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어. 훌륭한 그릇이 태어났거든! 그릇이 은월족 마을을 떠났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네 덕분에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왔어. 정말 고마운 일이지.”

“자, 잠깐?! 설마 그 그릇이라는 게…….”

“맞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옆으로 비켰다. 그 뒤에는 제단에 누워있는 은율이의 모습이 보였다.

“은율아!”

“걱정할 필요 없어. 잠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뿐이니까. 중요한 그릇을 내가 함부로 다룰 리 없잖아?”

“이 자식이?!”

수호신이고 뭐고 따질 것 없었다. 나는 거칠게 손을 휘두르며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 공격이 그녀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컥!”

어느새 주변에 자라난 식물 줄기들이 순식간에 나를 속박했다.

“안 돼, 안 돼. 중요한 의식을 앞두고 조금의 방해도 허락할 수 없지. 당장 숨통을 끊어놓고 싶은데 아까 고맙다고 한 건 사실이니까. 이 정도만 해둘까?”

“으윽…….”

“거기서 잘 지켜보라고. 이 몸의 완전한 부활을 말이야.”

수호신은 은율이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 돼!”

나는 온몸을 비틀며 가진 능력을 모두 사용해 봤지만, 몸을 옥죄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후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정말 길고 긴 기다림이었어.”

수호신은 은율이의 작은 몸에 양손을 올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이 살아 움직이듯 제단을 향해 몰려들었다.

커다란 달이 밝게 빛나는 것만큼, 은율이와 수호신 주변에도 은빛 기운이 가득해졌다.

-파아아앗!

엄청난 빛 폭발과 함께 제단 주변이 잠잠해졌다. 괴상하리만큼 밝게 빛났던 달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풀썩.

제단 앞에 서 있던 미르나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동시에 나를 속박하고 있던 식물 줄기도 스르륵 사라졌다. 나는 곧장 은율이가 있는 제단으로 뛰어갔다.

“은율아! 은율아!!”

“…….”

가까이서 살펴본 은율이는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에 오히려 불안감이 치솟았다.

“은율아, 내 말 들려? 눈 좀 떠봐.”

“…….”

“제발…… 은율아…….”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품에 안겨 올 것 같은데…….

내 간절한 목소리에도 은율이는 깨어나지 못했다.

“시…… 시현 님…….”

제단 옆쪽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미르나 님……?”

“저 좀…….”

미르나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금방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왔음을 깨닫고, 손을 뻗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줬다.

“미르나 님! 정신이 드세요?”

그녀는 힘겨운 표정으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은율이가 이상해요! 아까 수호신이라는 녀석이 나타나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짓을…….”

“진정하세요, 시현 님. 저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미르나는 감정이 복잡한 눈빛으로 은율이를 내려다봤다.

“설마 수호신님께서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실 줄이야…….”

“지금 은율이는 어떻게 된 거죠?”

“수호신님이 은율이를 그릇으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지금 은율이의 몸에 깃들어 부활 의식을 진행 중일 겁니다.”

“그, 그럼 은율이는?!”

“본래의 은율이는 그릇으로 희생되어 사라지겠죠.”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은율이가 사라진다니……?

그것도 내 눈앞에서…….

“정신 차리십시오!”

미르나의 뾰족한 목소리에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아직 기회가 없는 건 아닙니다. 실낱같을 가능성일지라도 방법은 있습니다.”

“뭐, 뭐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평소라면 수호신님의 힘을 당해낼 수 없겠지만, 부활 의식을 진행하는 이 순간에 수호신님은 가장 취약해져 있을 겁니다. 이때 부활 의식을 막아내고, 은율이의 의식을 깨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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