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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86화 (38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86화

수호신과 신녀(8)

쓰러져 있던 여우신이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 망할 녀석들…….”

나에게 대항하기 위해 여우신도 붉은 사슬을 불러냈다. 하지만 그 기세는 처음과 비교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두 사람이 말한대로야.

지금이 여우신을 쓰러뜨리기 위한 마지막 기회!

나는 곧바로 붉은 사슬을 이용해 공격했다. 여우신은 허겁지겁 자신의 사슬을 움직여 공격을 막아냈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아까 내가 수세에 몰려 위험해졌던 것처럼, 힘이 빠진 여우신은 방어하는 데만 급급해 점점 뒤로 밀려났다. 나는 방심하지 않고 철저하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여우신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끝까지 저항하려 해봤지만, 결국에는 수세에 몰렸던 상황을 뒤집지 못했다.

-콱!

내 붉은 사슬이 여우신의 온몸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제압당한 여우신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커헉?!”

붙잡힌 여우신을 내 앞으로 끌고 와 무릎 꿇게 했다. 그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지다니…….”

“수호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을 기만하고. 은율이의 부모를 불행에 빠뜨린 것도 모자라, 은율에게까지 나쁜 짓을 하려고 해? 네가 저지른 무거운 죄.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겠지?”

나는 여우신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손가락 움직임에 맞춰 그를 옥죄고 있던 사슬들이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여우신이 얼굴이 일그러뜨리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하거나, 꼴 좋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여우신의 최후를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됐다. 그 어느 때보다 독하게 마음을 먹으며 붉은 사슬에 힘을 가했다.

처음에 여우신은 사슬을 풀어내기 위해 힘껏 버둥거리다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다급히 말을 건넸다.

“자, 잠깐!”

“…….”

나는 대답 대신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 같아 사슬에 더 강한 힘을 줬다.

“으아악! 잠깐! 지금 날 없애 버리면 신녀가 위험해질걸?”

“뭐?”

“미르나! 그 여자가 위험하다고!”

여우신을 강하게 옥죄고 있던 사슬을 잠시 풀어주었다.

“헛소리하지마.”

“지, 진짜야! 무리해서 신녀의 힘을 소모하는 바람에 생명이 위험해졌어.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금방 죽을 거야.”

나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 세계로 들어오기 전, 피를 토하며 무리하던 미르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고통에서 풀려난 여우신은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으로 말했다.

“나라면 그 힘을 다시 불어넣어 줄 수 있지.”

“…….”

“이대로 나를 없애 버리면 신녀의 목숨도 살리지 못해. 흐흐. 저 아이의 할머니를 그냥 죽게 놔둘 거야?”

나는 능글맞은 표정의 여우신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의 선택에 따라 미르나의 생명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를 풀어준다면 신녀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으아악!!”

잠시 느슨해졌던 사슬이 아까보다 더 강한 힘으로 여우신을 압박했다.

“으으윽! 내 말 못 들었어? 나를 없애면 신녀도 죽는다니까!”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르나 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은율이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너를 이대로 풀어줄 수 없어. 나에게는 은율이를 지키는 게 제일 우선이야.”

죄송합니다, 미르나 님.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사죄하며 결의를 다졌다. 은율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죄책감은 얼마든지 떠안을 생각이었다.

“사라져라, 여우신.”

“으아아악!!”

완전히 끝을 내려는 순간.

-와락!

“안 돼, 아빠!”

은율이가 다리를 꽉 껴안으며 나를 말렸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은율이를 내려다봤다.

“은율아?”

“…….”

은율이는 물기 가득한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물러서, 은율아. 이 나쁜 녀석을 당장 없애야 해.”

“…….”

“할머니 때문에 그러는 거야?”

-끄덕끄덕.

난감한 상황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우신을 이대로 풀어주면 은율이가 위험해져. 영원히 아빠랑 못 만날 수도 있어.”

은율이는 잠시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의지에 찬 얼굴로 내게 대답했다.

“괜찮아. 나는 이겨낼 수 있어.”

“…….”

“아빠만 옆에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러면서 은율이는 생긋 웃어 보였다. 너무나도 당당한 자신감에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까지 비장했던 내 결심이 허무해지는 느낌이었다.

은율이의 말을 무시하고 여우신을 없애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순히 철없는 아이의 생각으로 나를 말리려는 게 아닐 테니까.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일도 은율이의 뜻을 존중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은율이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정말 괜찮겠어?”

“응, 괜찮아. 아빠랑 엄마도 지켜주실 거야.”

나에게 딸을 부탁했던 은월족 부부를 떠올리며 나도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알았어, 은율아. 그럼 잠시만 기다려.”

“응.”

은율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준 뒤, 다시 여우신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미소는 사라지고 얼굴에는 싸늘함이 가득해졌다.

“허억…… 허억…….”

죽다 살아난 여우신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왠지 꺼림칙해서 이 방법만큼은 안 쓰고 싶지 않았는데…….”

-촤르르르륵…….

“뭐, 뭐야?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붉은 사슬이 하나씩 여우신의 몸을 파고들었다. 여우신은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온 힘을 다해 사슬의 침입을 저항했다.

“으윽!!”

“그냥 풀어줄 수는 없으니. 사슬에 묶인 채 나와 함께 해줘야겠어.”

“……?!”

예전에 리아네의 의식에서 보았던, 그녀가 붉은 사슬에 묶여 광기에 지배당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여우신을 붉은 사슬로 통제하려 시도했다.

이렇게 되면 여우신은 계속 나와 연결되는 불편한 상황이 되겠지만, 그냥 풀어줘서 은율이가 위험해지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했다.

여우신도 이 사실을 눈치챘는지 어떻게든 저항하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나는 마수들을 정신 제어하던 감각을 떠올리며 천천히 의식에 침입했다.

결국.

“아, 안 돼!”

여우신과 내가 붉은 사슬로 완전히 연결돼버렸다. 당연히 주도권은 사슬의 주인이 내 쪽에 있었다. 절망하는 여우신을 뒤로하고 은율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빠는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응, 알았어.”

내가 은율이를 꼭 껴안음과 동시에. 의식의 세계가 새하얀 빛으로 가득해졌다.

* * *

“끄응…….”

의식이 돌아오는 느낌과 함께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식의 세계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온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끙끙대며 몸을 일으키자마자 은율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제단 위에 은율이는 편안한 표정으로 잠에 빠져 있었다.

안도에 한숨을 내쉬던 그때.

“끄으으…….”

“아! 미르나 님!”

뒤에서 들려오는 신음을 듣고 뒤늦게 미르나를 떠올렸다. 나는 당장 그녀의 곁으로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미르나 님? 미르나 님, 정신 차리세요.”

아직 숨이 끊기지는 않았지만, 의식이 없는 데다가 호흡도 버거워 보였다. 그녀의 입가에 말라붙은 피를 닦아주며 여우신을 찾았다.

“야, 여우신!”

-…….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대답 지난해?”

-…….

“험한 꼴을 보겠다 이거지?”

의식을 집중해 여우신의 존재감을 추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사슬로 이어진 여우신의 존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사슬을 이용해 여우신을 압박했다.

-커헉!

머릿속에 울리는 비명.

점점 사슬의 압박이 거세지자 짜증 섞인 여우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끄악! 알았으니까 그만해!

“야, 빨리 말해. 어떻게 해야 미르나 님을 도와줄 수 있는 거야?”

-내가 저런 하찮은 녀석의 명령을 들어야 하다니…….

잠시 자조적인 말투로 중얼거린 여우신은 순순히 내 질문에 대답했다.

-제단 위의 은월족 아이를 신녀 옆으로 데려가.

“그다음은?”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게 해줘.

“그게 끝이야?”

-너도 거기에 손 올려. 그럼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무나도 간단한 지시에 미심쩍어하며 다시 물었다.

“정말이야? 너 거짓말하는 거면 나중에 가만 안 둬?”

-왜 알려줘도 지랄이야! 어차피 이 망할 사슬 때문에 거짓말해봤자 다 들통난다고!

“아아, 그래?.”

-아이고, 내가 어쩌다 저런 멍청한…….

“시끄럽고. 빨리 시작해.”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여우신의 한탄을 무시하며, 은율이와 미르나의 손을 동시에 붙잡았다.

-우우우웅…….

은율이의 몸에서 신비한 기운이 퍼져 나오더니, 아주 천천히 팔을 따라 미르나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기운을 받아들일수록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고, 끊어질 것 같던 호흡이 점차 규칙적으로 변했다.

잠시후.

은율이에게서 뿜어져 나온 신비한 기운이 전부 흘러 들어간 다음. 미르나가 눈꺼풀을 움찔거리며, 의식을 되찾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으…… 으음…….”

“미르나 님? 정신이 드세요?”

“여, 여기는…….”

내 도움을 받아 살짝 몸을 일으킨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옆에 누워있는 은율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은율아!”

“괜찮아요. 그냥 잠든 거예요.”

“아아…….”

은율이가 괜찮다는 말에도 미르나는 쉽게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 은율이를 살폈다.

“우웅…….”

미르나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율이도 천천히 눈을 떴다. 미르나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을 움직여 은율이에게 다가갔다.

“은율아, 괜찮니?”

“할머니?”

“그래, 할머니야. 나 알아보겠어?”

“응. 헤헤.”

은율이는 귀엽게 웃으며 미르나의 품에 쏙 안겨들었다. 그제야 미르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할머니와 손녀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동안 계속 떨어지지 못했다.

나도 두 사람을 지켜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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