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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87화 (38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87화

수호신과 신녀(9)

미르나와 은율이가 차례로 정신을 차린 뒤 제단을 감싸고 있던 결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계의 어둠이 걷히며 주변은 평범한 숲의 풍경으로 변해갔다.

-스르르륵!

주변에 그림자가 일렁이며 테르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피로가 가득한 얼굴로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테르잔 님.”

“시현, 괜찮아? 은율이는?”

“저희는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정말 괜찮아?”

그녀는 이리저리 휙휙 움직이며 직접 상태를 살폈다. 오히려 본인이 더 힘들어 보이는 상태임에도, 먼저 우리를 걱정해 주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죄송해요, 저희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별로…… 옛날엔 이것보다 더 힘든 일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너희들이 괜찮으면 그걸로 됐어.”

테르잔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 님!”

“거기! 괜찮은 거야?”

잠시 후, 다른 일행들도 제다 근처에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카네프와 리아네는 테르잔이 그랬던 것처럼 바로 나와 은율이의 상태를 살폈다.

아니스와 상태가 좋아진 다우르는 미르나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옷에 핏자국이…….”

두 사람은 미르나의 입가와 옷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발견하고 표정을 흐렸다.

그 모습을 본 미르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니야. 조금 무리를 하는 바람에 피를 약간 흘렸을 뿐이야. 지금은 괜찮아졌으니 걱정하지 말려무나.”

“정말 괜찮으신 거죠?”

“물론이지. 귀여운 손녀 덕분에 오히려 더 건강해진 느낌이야.”

미르나는 싱긋 웃으며 품에 안겨있는 은율이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괜찮다는 사실을 확인한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긴장감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왔는지, 모두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나마 쌩쌩해 보이는 카네프가 내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귀찮은 결계를 펼쳐 우리를 골탕 먹이고, 은율이를 납치한 놈은 도대체 누구야?”

그 질문에 은율이와 미르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그게…….”

나는 대답을 망설이며 슬쩍 미르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수호신이라 모셔왔던 여우신이 이번 일의 원흉이었고, 심지어 손녀의 몸을 뺏으려고 했다는 사실이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어쩌면 미르나뿐만 아니라, 수호신을 믿고 있었던 은월족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일이었다.

“저기……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해드리면 안 될까요?”

“뭐야? 왜 뜸을 들여?”

“그게 이야기가 좀 복잡해서…….”

“누가 그랬는지만 말하라니까. 복잡하기는 뭐가 복잡해.”

계속 닦달하는 카네프 때문에 난감해하던 찰나.

“우웅…… 아빠, 나 졸려.”

은율이가 슬쩍 내 품에 안기며 피곤함을 호소했다.

“많이 졸려? 아빠랑 같이 자러 갈까?”

“응. 자러 갈래.”

“끄응…….”

차마 은율이에게 뭐라 할 수 없었던 카네프는 더 닦달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모두 피곤하신 것 같으니까. 일단 돌아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리아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갈 준비를 했다.

* * *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가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달과 별들이 지고, 어슴푸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정말 자리에 눕기만 해도 곧장 잠들 수 있을 만큼 피곤했지만, 주변의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으으윽…….”

“누가 여기 치료사 좀 불러!”

“붕대랑 부목 좀 더 가져와!”

여우신이 마을 주민 전체를 조종해 이용하는 바람에, 바깥에는 아직 후유증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과 수많은 부상자로 난리통을 겪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니스와 다우르, 심지어 건강이 좋지 않았던 미르나까지 직접 나서서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래는 우리도 도움을 좀 보태려고 했는데, 미르나가 더는 우리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며 억지로 숙소로 들어가게 했다.

불가항력이긴 했어도 은월족의 부상자 대부분이 우리 일행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숙소에서 쉬고 있는 게 마냥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창문 틈으로 슬쩍슬쩍 상황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사장님이 정말 많이 때려눕히셨나 보네요.”

“내, 내가 뭘?”

“심한 부상자들은 전부 상처 부위에 사슬 자국이 선명해서요.”

“크흠, 누구는 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죽자고 달려드는 놈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지.”

카네프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사장님을 탓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나도 그를 탓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카네프가 저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오히려 위험해지는 건 우리 쪽이었을 테니까.

그냥 싸움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반 주민들도 부상자가 많이 나온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아까 눈치를 보던 신녀도 사라졌으니까 이제는 말해봐.”

카네프는 다시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테르잔도 관심이 있는지 슬쩍 나타나 자리를 잡았다.

대답하기 전에 은율이가 있는 곳을 먼저 바라봤다. 은율이는 리아네의 무릎을 베개 삼아, 포근한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처음 제단에 도착해 여우신에게 조종당하는 미르나를 만나고, 은율이의 의식 세계에 들어가 겪었던 일들과 어떻게 여우신을 막아냈는지. 차례로 하나하나 이야기 해줬다.

수호신인 줄 알았던 여우신이 흑막이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분개했고. 은율이의 부모님이 나타나 희생한 부분에서는 리아네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모두가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그럼 그 여우신은 지금 시현 님이랑 같이 있는 건가요?”

리아네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마을 사람들을 조종하고, 은율이의 몸을 뺏으려고 했다면서요?”

“미르나 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리고 완전히 제압했으니까 그렇게 큰 위험은 없을 거예요.”

솔직히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 리아네를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을 거라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안심이 되지 않는지 안절부절못한 모습을 보였다.

“그 여우신 때문에 우리가 어제저녁부터 개고생했다는 거지? 아오! 내가 직접 만나서 본때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응응. 맞아.”

카네프와 테르잔이 여우신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시현, 어떻게, 그 여우신이라는 녀석 못 끌어내?”

“여우신을 끌어내라고요? 으음, 그게 가능하려나?”

카네프의 황당한 요구에 나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이참에 한 번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의식을 집중했다.

‘어이, 거기 있어?’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의식 한편에서 여우신의 존재감은 확실히 느껴졌다.

‘너 밖으로 나올 수 있어?’

-그, 그건 왜 물어보는 거냐?

‘그냥 궁금해서. 나올 수 있는 거야?’

-불가능!

음. 거짓말이네.

여우신이 ‘불가능!’이라고 외치자마자 거짓말이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챘다.

붉은 사슬을 이용한 지배가 예상보다 제대로 통한 모양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붉은 사슬을 떠올리며, 여우신을 밖으로 끌어내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잠깐만! 이게 뭐하는…….

-뿅!

머릿속으로 들리던 여우신의 목소리가 끊어짐과 동시에 작은 흰색 털 뭉치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동그란 털 뭉치는 데구르르 굴러 사람들 한가운데에 딱 멈춰 섰다.

“이건……?”

“털 뭉치?”

“……?”

털 뭉치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곧 작고 뾰족한 귀 두 개가 쏙! 튀어나왔다.

이어서 살랑거리는 꼬리와 앙증맞은 팔다리도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눈처럼 새하얀 털을 가진 아기 여우였다.

코를 찡긋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 너무 귀엽…….

잠깐! 저 녀석이 설마……??

-앙! 앙!

-으으! 내가 이런 치욕적인 모습을!!

아기 여우의 귀여운 울음소리와 여우신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나는 해괴한 걸 본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이상한 반응을 눈치챈 카네프가 곧바로 물었다.

“시현, 이 녀석이 여우신이야?”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요?”

“호오? 그래?”

카네프는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내며 아기 여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뭔가 위험을 감지한 아기 여우가 그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 황급히 버둥거렸지만, 앙증맞은 팔다리로 카네프의 손길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텁!

-끼히잉! 끼히잉!

“이 녀석 때문에 우리가 그 난리를 겪었단 말이지? 털도 보들보들한 게 잘됐네. 테르잔!”

“응?”

“날이 잘 드는 거로 하나 꺼내 봐. 이 녀석으로 여우 목도리 하나 만들어야겠어. 덩치가 좀 작아서 아쉽긴 한데. 잘 벗겨내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알았어, 단장. 조금만 기다려.”

무기를 꺼내라는 말에 테르잔은 싱글벙글해져서 자신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앞에는 금방 무시무시한 무기들로 가득해졌다.

-끼히잉! 끼히잉!

-이, 이 녀석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여우신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거기 너! 못 본 척하지 말고 나 좀 도와줘!

다급해진 여우신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연히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내가 왜 도와줘. 네가 우리한테 하려고 했던 짓은 벌써 잊어먹은 거야?’

-그, 그건…….

“단장. 여기 있어.”

“고마워.”

“카네프 님. 설마 은율이가 있는 곳에서 하시려는 건 아니죠? 하실 거면 은율이가 없는 곳에서 하세요.”

“안 그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 자∼! 그럼 나가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카네프의 손에 날카로운 칼이 쥐어지자 여우신의 버둥거림이 더욱 심해지더니, 완전히 절박해진 목소리로 내게 애원했다.

-끼히잉! 끼힝!!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빌 테니까. 제발 나 좀 도와줘! 끄아아악!

카네프가 아기 여우를 데리고 방을 나서려던 그때.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에 잠들어 있던 은율이가 몸을 일으켰다.

“우웅…… 무슨 소리야?”

은율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기 여우 쪽으로 향했다.

카네프는 반사적으로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날카로운 칼을 뒤로 숨겼다.

“와아! 아기 여우다.”

순간 은율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카네프가 있는 쪽으로 후다닥 다가갔다. 우리가 뭐라 설명하기도 전에 아기 여우는 은율이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왜 이렇게 떨어? 추워서 그래? 내가 꼭 안아줄게.”

은율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기 여우를 꼭 안아줬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아주 마음이 훈훈해지는 장면이었다.

여우신은 은율이의 곁이 안전하다는 걸 눈치챘는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얌전히 품에 안겼다.

“헤헤, 엄청 얌전하네. 착하다, 착해!”

-끼힝, 끼힝.

여우신을 길들이는 은율이를 지켜보며, 우리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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