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91화
큰일 났다(4)
스마트폰 화면에는 ‘긴급재난문자’가 표시됐다.
긴급 균열 발생 안내…… 한옥마을 인근 예상치 못한 균열 발생으로 통제 중…… 인명사고 위험이 있으니 해당 지역으로 접근 자제…….
균열이 발생하면 일괄적으로 발생하는 재난 문자였다.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예상치 못한 균열의 발생이 도심 가까이 발생했다는 것 정도?
균열 발생 지점을 확인해 보니 우리가 있는 곳과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발레리안도 나와 똑같이 스마트폰으로 재난 문자를 확인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카네프가 불쑥 물었다.
“뭐야?”
“아, 별일 아니에요. 근처에 균열이 발생했다고 하네요.”
“균열?”
순간 카네프의 눈동자에 작은 반짝임이 일어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균열 제거를 맡은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예요. 저희는 빨리 은율이 선물이나…….”
“그 균열이라는 게 갑자기 괴수가 튀어나오고, 주변을 위험 지역으로 만든다는 거 맞지?”
“그, 그렇죠.”
내가 느낀 불길함에 확신이라도 주려는 듯, 카네프의 입꼬리가 위로 솟구쳤다.
“잘됐네. 그 균열이라는 거 직접 보고 싶었거든. 얼른 가보자.”
“안 돼요!”
“안 됩니다!”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발레리안과 내가 동시에 외쳤다. 카네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단순히 흥미가 생겨서 구경하러 가겠다는 건, 그곳에서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시는 분들에게 민폐입니다. 민폐!”
“맞아요. 그리고 외부인 출입은 금지돼서 아무나 못 들어가요. 차량 운행도 통제돼서 찾아가기도 힘들어요.”
“카네프 님이 문제를 일으키면 저뿐만 아니라, 시현 씨도 같이 곤란해집니다.”
“아직 은율이에게 줄 선물도 못 찾았잖아요. 균열은 잊어버리고 계속 선물이나 더 찾아보죠?”
우리는 필사적으로 카네프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이 사람을 균열로 데려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가만히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네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뭐…… 어쩔 수 없지.”
카네프는 더 고집부리지 않고,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뭐지?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너무나도 예상외의 반응에 오히려 우리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뭘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 빨리 선물 찾으러 가야지.”
“아…… 예.”
“여기는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는 것 같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보자.”
다른 곳으로 가보자는 말과 함께 카네프는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와 발레리안은 한발 늦게 그의 뒤를 따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리안 씨. 이걸로 된 거겠죠?”
“글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카네프는 따로 안내를 해주지 않았는데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금방 백화점 입구를 찾아 밖으로 나섰다.
“잠시만요, 사장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어딜 가긴 어딜 가? 은율이 선물 찾으러 가야지.”
“그럼,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주차장에서 차 가지고 이쪽으로 올게요.”
“필요 없으니까 괜찮아.”
“네? 그게 무슨…… 헉!”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르르륵!
귓가에 울리는 익숙한 사슬 소리.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소환된 사슬이 순식간에 나를 제압했다. 백화점 입구를 드나들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사장님!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에요?”
“아아! 왠지 좋은 선물이 있을 만한 곳을 알 것 같은데.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내가 직접 너희를 데려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말이야.”
“저희를 어디로 데려가시려고요?”
카네프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균열 근처에 가면 왠지 좋은 선물이 있을 것 같거든?”
“이, 이런…….”
어쩐지 너무 순순히 말을 듣더라니!
평소와 다른 모습이 조금 의심스럽긴 했는데 이렇게 뻔뻔한 태도로 우리를 제압할 줄은 몰랐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황급히 발레리안 쪽을 바라봤지만. 안타깝게도 발레리안 역시 사슬에 제압당해 반쯤 체념한 모습이었다.
나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쳤다.
“균열 위치가 어딘지 모르시잖아요? 이 넓은 도시에서 절대 못 찾으실걸요?”
“응. 걱정하지 마. 아까 네가 신호 받았을 때, 대충 수상한 기운의 방향을 감지해뒀거든.”
“아…….”
이 순간.
싱글벙글한 카네프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꽉 잡아. 목 안 꺾이게 조심하고.”
“사, 사장님. 잠깐…… 으아아악!”
“으윽!”
엄청난 압력이 느껴지며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주변 사람들의 외침은 금방 바람 소리에 묻혀 희미해졌다.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백화점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일 정도로 높게 떠올랐다. 그리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심 위를 가로질렀다.
잠시 후.
발아래 먼 곳에서 공간의 일그러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틀림없는 균열 주변에서 나타나는 현상.
카네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균열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 * *
“흐으음. 여기가 균열이라는 공간이구나. 생각보다 평범하네. 요정계와 같은 이면 세계라고 보면 되는 건가?”
기어코 균열에 난입한 카네프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사이, 속박에서 풀려난 발레리안과 나는 부쩍 핼쑥해진 표정으로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시현 씨, 괜찮으세요?”
“끄응…… 견딜 만해요.”
나는 어지러움을 꾹 참으며 대답했다. 한동안 끙끙 앓는 소리를 낸 뒤에야 조금씩 여유가 생겨 주변을 살폈다.
균열 내부는 거대한 동굴의 모습이었고, 쨍쨍한 날씨의 바깥 상황과는 다르게 시야가 굉장히 어두웠다.
발레리안은 빛을 내는 마법 구체를 소환했다. 덕분에 주변을 좀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여기 보세요. 여러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걸 보니, 이미 균열 내부로 인원이 투입된 것 같네요.”
“그렇네요. 괜히 우리가 들어와서 방해되면 안 될 텐데…….”
이렇게 무단으로 균열 내부에 진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민폐였다. 균열 제거 활동에 방해되지 않게 빨리 나가는 게 최선이었다.
“빨리 사장님을 데리고 나가야…… 사장님? 사장님!”
“카네프 님!”
이런…….
우리가 잠시 어지러움을 극복하는 사이, 카네프는 이미 우리의 시야 안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그 사람이 순순히 균열 밖으로 나갔을 리는 없으니, 예상되는 움직임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벌써 균열 안쪽으로 들어가셨나 봅니다.”
“얼른 찾으러 가요.”
우리는 마법 구체를 앞세워 균열 안쪽으로 향했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카네프의 뒤를 쫓았지만, 그의 모습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 안쪽으로 향하던 도중. 앞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리안 씨, 앞쪽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요.”
“먼저 진입한 인원들인 것 같습니다. 으음, 아무래도 전투 중인 것 같은데요?”
우리가 잠시 발걸음을 멈춘 것과 동시에 앞쪽에서 환한 빛이 번쩍였다.
“멈추세요!”
20대로 짐작되는 여성의 목소리.
전투를 위한 복장을 착용한 여성이 우리를 향해 불빛을 비추며 경고를 이어나갔다.
“이곳은 균열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위험 지역입니다. 관계자 외에는 무단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좀 있어서.”
“민간인이십니까?”
“예. 민간인은 맞는데…….”
“어휴! 도대체 바깥에서는 통제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일반 시민이 여기까지 진입하게 놔두면 어쩌자는 거야?”
어두워서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투에서 짜증과 불만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명백히 우리가 잘못한 상황이라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됐다.
“무슨 일 있어?”
뒤쪽에서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선배님!”
“왜?”
“후방에서 불빛이 번쩍이길래 확인했더니. 민간인 두 분이 여기까지 진입하셨더라고요.”
“뭐? 민간인이 여기까지? 빡빡한 경계를 어떻게 뚫고 들어온 거야.”
새롭게 나타난 여성은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 쪽을 바라봤다.
어떤 미친 사람한테 이끌려 하늘에서 냅다 뛰어들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잠깐?
저 사람 목소리가 익숙한데……?
“어? 잠깐.”
마침 상대 쪽에서도 뭔가를 눈치채고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시현? 너 시현이야?”
“아, 안녕? 예린아.”
선배라고 불린 여성은 바로 옆집 이웃으로 질긴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서예린이었다.
“네가 여기서 갑자기 왜 튀어나와?”
“그게…… 좀 복잡한 사정이…….”
우리에게 출입 경고를 하던 여자가 서예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 아시는 분이세요?”
“응. 얘도 우리 길드 소속이야. 저기 옆에 계신 분은 아니지만.”
그녀는 발레리안과도 만난 적이 있었기에, 서로 간단하게 눈인사를 나눴다.
“예에?? 저, 정말이요? 저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저 녀석 자기 딸이랑 노느라 바빠서, 길드 활동은 대충대충 하거든.”
“야. 나도 나름대로 바쁘거든?”
“바쁘기는 개뿔!”
나는 서예린과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질문을 던졌던 여자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진짜 여기는 왜 온 거야? 길드 소집 인원 중에 너는 분명 없었던 거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야.”
“사정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고.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 일행 중에 한 사람이 균열 내부로 들어갔거든? 그 사람을 데리고 나가려고 여기까지 왔어.”
“그래? 미현아. 혹시 이 두 사람 말고 또 누가 지나간 사람 못 봤어?”
서예린의 질문에 미현이라 불린 여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저는 여기 계신 두 분밖에 못 봤어요.”
“그렇다는데?”
“분명 여기로 들어오셨을 텐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쪽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저게 뭐야?!”
“으아아아아!”
-끼긱! 끼이익!
-끼에에에엑!
사람의 비명뿐만 아니라, 괴수들의 비명도 함께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