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95화
생일파티(2)
나와 안드라스는 은율이를 데리고 엘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새롭게 생긴 건물과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점심때가 지나가는 시점.
시간을 확인한 안드라스가 슬쩍 운을 띄웠다.
“이제 슬슬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금방 배가 고파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농장 쪽에 생일파티 준비가 끝난 듯했다. 나는 금방 속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은율아, 이제 돌아가자.”
“벌써?”
돌아가자는 말에 얼굴을 흐리는 은율이.
오랜만에 외출이 금방 끝나서 아쉬운 모양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은율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읏차! 나중에 또 오면 되지. 오늘은 이제 점심 먹으러 돌아가자. 농장에서 모두 기다리고 있을 거야.”
“으응. 알았어.”
“아유, 착하다 우리 딸!”
“꺄하하하!”
은율이의 부드러운 볼살에 얼굴을 비비자 웃음이 꺄르르 터져 나왔다.
다시 기분이 풀린 은율이를 데리고 우리는 농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걸으며 엘든 마을을 구경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농장의 울타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 리아네 언니다.”
건물 앞을 서성이고 있던 리아네를 은율이가 먼저 발견하고 외쳤다. 뒤이어 리아네도 우리를 발견하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네. 여기서 오래 기다리고 계셨어요?”
“아뇨. 조금 전에 나온 거예요. 지금쯤이면 돌아올 것 같았거든요. 은율아, 아빠랑 외출하니까 재미있었어?”
“응. 재미있었어.”
“그래? 그럼 다음에는 언니랑 외출할까?”
“나는 좋아. 헤헷!”
리아네와 은율이가 서로를 마주 보며 방긋 웃었다.
“흠흠, 혹시 식사 준비는 다 끝난 겁니까?”
안드라스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그 순간 은율이를 제외한 세 사람 사이에 눈빛이 빠르게 오고 갔다.
“네. 오늘은 나미라 아주머니가 직접 준비해 주셨어요.”
리아네는 손가락으로 몰래 OK 사인을 만들어 보이면서 파티 준비가 잘 끝났음을 알렸다.
“그럼 다른 분들이 더 기다리기 전에 얼른 들어가죠. 가자, 은율아.”
리아네가 안내하듯 앞서서 걸었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식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식당 쪽으로 향해야 했지만, 그녀는 식당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은율이가 리아네의 옷을 잡아당겼다.
“언니. 식당은 이쪽 아닌데?”
“다른 분들을 함께 데리고 가려고. 모두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거든.”
리아네는 그럴듯한 변명을 둘러댔다. 은율이도 별다른 의심 없이 ‘그렇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복도를 지나 약속된 방문 앞에 도착했다.
이 문 너머에 식구들이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괜스레 긴장되는 것 같았다.
리아네는 방문 옆으로 비켜서며 은율이에게 말했다.
“은율아. 들어가서 다른 분들 좀 불러줄래?”
“응. 알았어.”
그녀의 부탁에 순진한 여우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 앞으로 향했다.
작은 손에 붙잡힌 문고리가 돌아가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방 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응?”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은율이는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벽 쪽을 더듬어 조명 스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은율이는 금방 스위치를 찾고. 뒤꿈치를 들어 올리며 손을 뻗었다.
-탁.
-번쩍!
조명이 켜지면서 방안에는 불빛이 번쩍였다.
-파팡! 팡!
-뿌우우우!
폭죽 소리와 장난감 피리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은율이가 꼬리를 바짝 세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생일 축하해, 은율아!”
“생일 축하해!”
기다리고 있던 농장 식구들이 한목소리로 생일을 축하해 줬다.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은율이는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자세를 낮춰 은율이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은율아, 생일 축하해.”
“생일?”
“응. 오늘이 은율이 생일이야.”
“…….”
은율이는 멍한 표정으로 ‘생일’이라는 단어를 계속 웅얼거렸다.
나는 그런 은율이를 번쩍 안아 들어 오늘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로 데려갔다.
알록달록한 풍선과 반짝이는 장식으로 한껏 파티 분위기를 낸 방 안. 그 가운데에 주인공을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자리에 은율이를 앉히자마자. 나미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커다란 케이크를 내왔다.
케이크 위에는 은율이의 이름과 생일 축하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자! 오늘 주인공을 위한 생일 모자!”
릴리아는 ‘Happy Birthday’라고 적힌 고깔모자를 가져와 은율이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이때까지도 은율이는 멍한 표정으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물었다.
“은율아. 혹시 너무 놀랐어?”
다행히 은율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내 생일이야?”
“그래. 나미라 아주머니가 알려주셨어. 오늘이 은율이가 태어난 날이야.”
“…….”
은율이는 멍하니 주변 사람들을 쳐다봤다. 반면에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은율이를 바라봤다.
한동안 말없이 농장 식구들을 바라보던 은율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눈동자에 금방 눈물이 그득그득해지자,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은율아. 괜찮아?”
“너무 놀라서 그런가?”
“엘린 오라버니가 피리 소리를 너무 크게 내서 그런 거 아니야?”
“내, 내가 뭘?”
“둘 다 조용히 해! 은율이가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리잖아.”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나는 손수건으로 은율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생일파티 하는 거 싫어? 전부 나가라고 할까?”
-도리도리.
은율이는 다시 한번 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
-끄덕끄덕.
그 대답에 숨죽여 지켜보던 모두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율이는 부끄러워졌는지, 내 품에 얼굴을 묻으며 꾸물꾸물 안겨들었다.
나는 ‘허허’ 웃으며 은율이가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 작은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케이크 먹기 전에 촛불을 켜야 해.”
릴리아가 재빨리 나서서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방의 조명을 끄고, 모두 준비했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은율이의∼!”
“생일 축하합니다!”
어제 급하게 연습한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나는 아직 품 안에 안겨 있는 은율이에게 말했다.
“은율아. 마음속으로 소원 빌면서 케이크의 촛불을 꺼봐. 그럼 그 소원이 이루어져.”
소원이라는 말에 아직 물기 가득한 눈동자가 반짝였다.
잠시 소원을 고민한 은율이는 있는 힘껏 숨을 내뱉어 촛불을 꺼뜨렸다.
다행히 한 번에 모든 촛불이 꺼졌고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은율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자∼!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모자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푸짐하게 준비했으니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나미라와 리아네는 차례로 준비된 음식들을 내놓았다.
식탁 위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가득해지면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떠들썩해졌다.
그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단연코 은율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만큼 식탁 위에는 은율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너무 많다 보니, 은율이의 눈이 쉴 새 없이 휙휙 돌아갔다.
나는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조금씩 접시에 덜어주면서, 너무 급하게 먹지 않도록 해주었다.
은율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많이 준비되었지만, 나미라의 요리 실력이 워낙 출중했기에 취향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겁게 자신의 접시를 비워냈다.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릴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은율이한테 선물 줄래. 시현 오라버니, 그래도 되지?”
“모두 식사는 어느 정도 끝낸 것 같으니. 괜찮겠네.”
“헤헤. 그럼 내가 첫 번째!”
릴리아는 씨익 웃으면서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녀는 방 한쪽 구석에 있던 선물상자를 가지고 은율이에게 다가왔다.
“생일 축하해, 은율아! 이건 나랑 리아네 언니가 준비한 선물이야.”
“고마워, 언니.”
“지금 바로 열어봐.”
은율이는 나의 도움을 받아서 선물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릴리아는 얼른 반응이 보고 싶은 듯 몸을 들썩였고, 리아네는 초조함과 기대감이 섞인 눈빛으로 은율이를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어 상자를 열었다.
은율이는 얼굴을 내밀어 상자 안을 살피더니,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건……?”
선물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인형.
그런데 평범한 인형이 아니었다.
“사장님? 사장님 인형이다!”
“뭐어?”
은율이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카네프를 닮은 인형이었다.
단순히 닮은 수준이 아니라.
얼굴, 머리칼, 입고 있는 옷까지 세세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정말 실제 인물을 축소해 놓은 듯한 인형이었다.
카네프를 제외한 농장 식구들이 우르르 인형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오? 카네프 님이랑 똑같네요?”
“진짜 잘 만들었네.”
“상자 안에 다른 사람들 인형도 있어요.”
“설마 농장 식구 모두를 인형으로 만든 거야?”
연이어 터져 나오는 감탄에 릴리아의 어깨가 하늘로 치솟았다.
“엣헴! 인형은 내가 제작했고, 옷이랑 머리카락 같은 부분은 리아네 언니가 도와줬어.”
“저는 옆에서 조금 거들어준 정도에요. 릴리아가 진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이 인형은 단순히 닮은 게 끝이 아니야. 팔이랑 다리를 이렇게 움직이면…….”
릴리아가 인형의 팔과 다리를 조금씩 조정했다.
그녀의 조정에 따라 인형은 자유자재로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 생생한 움직임이 굉장히 놀라웠다.
저쪽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규어.
그 피규어들 중에서도 굉장히 고가의 물건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은율이도 인형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 인형을 만들기 위해 슈나르페의 기술력을 전부 쏟아부었지. 은율아, 어때? 마음에 들어?”
“응! 너무 마음에 들어. 고마워. 리아네 언니, 릴리아 언니.”
은율이는 양손 가득 인형들을 껴안으며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그 모습을 본 리아네와 릴리아는 아주 만족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