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96화
생일파티(3)
리아네와 릴리아의 인형 구경이 끝날 때쯤.
안드라스가 슬그머니 일어나 입을 열었다.
“흠흠, 이번에는 저희가 준비한 선물을 가져오겠습니다.”
안드라스와 함께 엘프리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함께 방 밖으로 나가더니, 천으로 덮여 있는 커다란 무언가를 끙끙대면서 가져왔다.
문을 겨우 통과할 정도로 큰 크기에 모두의 얼굴에 호기심이 생겨났다.
은율이도 방금 선물 받았던 인형들을 놓고 천으로 뒤덮인 선물을 바라봤다.
“저랑 엘프리드가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은율이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은율아. 직접 확인해 볼래?”
“응!”
고개를 끄덕인 은율이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엘프리드가 천의 끝부분을 잡아 내밀었고, 은율이는 그것을 망설이지 않고 쭈욱 잡아당겼다.
-스르르륵.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담한 크기의 책상이었다.
“책상이네요?”
“네. 기존에 은율이가 사용하던 책상이 조금 작아진 것 같아서요. 새로 직접 만들어봤습니다.”
“시현 선배! 이 책상을 만들 때 들어간 나무 재료가 엄청 귀한 거래요.”
“그래?”
처음에 봤을 때는 일반적인 책상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책상에서 은은히 퍼져 나오는 나무 향기가 독특했다. 나무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슈나르페 가문이 소유 중인 숲에서 구한 원목을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특유의 나무 향기가 집중력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어서 귀한 가구 재료로 사용되는 겁니다.”
“나도 집에 가면 있어. 우리 가문 사람들은 다 저 책상을 쓰거든.”
설명하는 안드라스의 표정에서 살짝 자부심이 느껴졌다. 평범한 겉모습과는 달리 정말로 귀한 재료로 만든 모양이었다.
“향기가 정말 좋습니다.”
“그러게요.”
아슈미르와 우르키가 책상에 관심을 드러냈다. 인형 선물을 봤을 때 조금 시큰둥했던 모습과는 많이 상반된 반응이었다.
은율이도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책상 이곳저곳을 살폈다.
“은율아. 한번 앉아봐.”
나는 은율이의 손을 잡아 책상 의자에 앉혀주었다. 책상이 은율이보다 조금 큰 느낌이었지만, 쑥쑥 자라나는 성장기임을 고려하면 아주 적당해 보였다.
무엇보다 선물의 주인공이 아주 마음에 든 눈치였다.
-드륵.
“와아아!”
서랍 쪽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갖가지 필기구와 공책, 그리고 은율이가 좋아하는 간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서랍 칸마다 꽉꽉 들어차 있어서 내년 생일까지도 거뜬해 보였다.
“참고로 서랍 안에 들어 있는 선물은 리안이 직접 준비한 것들입니다. 바빠서 파티에는 참석 못 했지만, 은율이가 꼭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안드라스는 서랍 안에 선물들은 발레리안이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고마움과 민망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저번에 카네프가 ‘휴가 동행권’으로 나왔을 때, 바쁜 발레리안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리안 씨.
나중에 꼭 신세 진 만큼 갚을게요.
나는 마음속으로 발레리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은율아. 책상은 마음에 들어?”
“기분 좋은 나무 향기가 나서 좋아. 빨리 여기서 책 읽어보고 싶어.”
은율이는 책상 위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안드라스와 엘프리드는 서로 손바닥을 짝! 마주치며, 생일 선물의 성공을 자축했다.
이번에는 아슈미르와 우르키가 작은 나무 상자를 가지고 은율이에게 다가섰다.
“천계에서 가져온 선물입니다.”
“생일 축하해, 은율아.”
우르키는 작은 상자를 열어 은율이 앞으로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도자기처럼 생긴 무언가가 들어 있었는데, 흔히 ‘오카리나’라고 부르는 악기와 닮아 있었다.
은율이는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건 뭐야?”
“흙으로 빚어서 만든 악기입니다. 흙피리라고도 부르죠.”
아슈미르는 흙피리에 연결된 목걸이를 직접 은율이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 부분에 숨을 불어넣으면 구멍을 통해 소리가 흘러나올 겁니다.”
“이렇게?”
은율이는 곧바로 흙피리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삐익, 삐익!
있는 힘껏 숨결을 불어넣었지만, 삑삑거리며 바람 빠지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자, 은율이의 얼굴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아슈미르는 살포시 웃으며 은율이를 위로했다.
“아직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조금만 배우면 금방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제가 천천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평범한 선물이네?
천계에서 가져왔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선물인 줄 알았는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르키가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시현 님. 저건 단순히 흙피리를 선물한 게 아니에요.”
“……?”
“천족이 아이에게 악기를 선물하는 건, 그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지켜주겠다는 뜻이에요.”
“저, 정말?”
“네. 악기를 선물하는 이유도 필요할 때 악기 소리를 내면 어디서든 찾아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허어…….
그렇게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줄이야.
평범해 보이는 악기 선물에 그런 중요한 뜻이 담겨 있을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멍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우르키가 다시 속삭였다.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는 시현 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곳에 찾아온 거고. 은율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게 가장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을 뿐이에요.”
나는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으음…… 신경 써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짧은 감사 인사에도 우르키는 환하게 웃음 지었다.
* * *
은율이가 아슈미르의 도움을 받아 흙피리로 그럴듯한 소리를 내게 됐을 때쯤.
나는 오늘 엘든 마을에서 받아왔던 선물들을 차례로 꺼내왔다.
하나는 로커스와 크록.
또 하나는 테르잔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먼저 로커스와 크록의 생일 선물을 은율이에게 전했다.
포장된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작은 오르골이었다.
오르골의 윗부분을 열고 스위치를 켜면.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중앙 부분에 종이 인형들이 일어나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로커스와 크록이 준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선물이었다.
은율이는 오르골이 신기했는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오르골의 음악을 감상했다.
다음은 테르잔이 준비한 선물 차례.
두껍고 흰 보자기에 싸여 있는 선물을 탁자 위에 올렸다.
개인적으로 내용물이 가장 궁금했던 선물이라 곧바로 보자기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안드라스가 급하게 나서서 나를 제지했다.
“시현 님, 잠시.”
“예?”
“혹시 내용물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좀 더 조심히 열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카네프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안드라스 말이 맞아. 워낙 생각하는 게 독특한 녀석이라 거기에 뭘 넣어놨을지 몰라.”
“그래도 은율이한테 줄 선물인데. 테르잔 언니가 잘 생각해서 준비하셨겠죠.”
리아네의 말에도 카네프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졸지에 테르잔의 선물이 위험물 취급받는 상황에 구석에서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위험한 거 아닌데…….”
“헉! 테르잔 님.”
“테르잔 언니.”
“크흠, 흠!”
테르잔이 음식 접시를 들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기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테, 테르잔 님.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에…… 배가 고파서 조용히 음식 먹고 있었어.”
그녀의 말대로 음식 접시에는 식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선물이 걱정되면 그냥 내가 가져갈게.”
“아니에요. 테르잔 님. 그러지 마세요.”
“맞아요, 언니. 카네프 님이랑 안드라스 님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말한 거예요.”
그러면서 리아네는 두 사람을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카네프와 안드라스는 몸을 움찔 떨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이거 내 선물이야?”
어느새 다가온 은율이가 보자기에 둘러싸인 선물을 콕콕 찌르며 물었다.
“응. 맞아.”
“지금 열어봐도 돼?”
“은율이 마음대로 해. 너에게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은율이는 곧장 보자기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너무 꽁꽁 묶여 있는 탓에 나와 리아네가 옆에서 도움을 줘야 했다.
-스르륵.
꽉 묶여 있던 부분이 겨우 풀리면서 내용물이 드러났다. 보자기 안에는 멜론 크기에 푸른색 껍질 열매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열매 주변에서는 아주 달콤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얼마나 그 향기가 달콤했던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입에서 단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헉! 저건?!”
“안드라스 씨. 이게 뭔지 아세요?”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호, 혹시 ‘생명의 열매’ 아닙니까?”
안드라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심상치 않은 그의 반응과는 달리, 테르잔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어제 막 구해서 가져온 거야.”
“이럴 수가. 진짜 생명의 열매라니…….”
“안드라스 씨. 생명의 열매가 뭔데요? 혼자서만 놀라지 말고 제대로 설명 좀 해주세요.”
안드라스는 잠시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생명의 열매에 대해 거침없이 설명을 늘어놨다.
“마계에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금지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지독한 독기로 가득 찬 습지대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곳이죠.”
“저번에 갔었던 ‘침묵의 숲’ 같은 곳인가요?”
“맞습니다. 그 습지대에서 아주아주 오랜 세월 동안 주변의 독기를 흡수해 열매가 열리는데. 그게 바로 ‘생명의 열매’입니다.”
독기를 흡수한다는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생명의 열매’는 그 어떤 지독한 독이라도 정화시킬 수 있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기록에서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설명할 정도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안드라스의 모습에 나는 완전히 달라진 눈빛으로 보자기 위 열매를 바라봤다.
설명을 듣고 나니 조금 비범한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테르잔 님. 이렇게 귀한 걸 주셔도 괜찮으세요?”
“어차피 오래 보관 못 하는 열매라 아껴도 소용없어. 그리고…….”
테르잔은 짧게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저거 엄청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