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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97화 (39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97화

생일파티(4)

“저거 엄청 맛있어.”

테르잔은 보기 드물게 눈을 반짝이며 푸른색 열매를 바라봤다.

그녀를 잘 아는 편에 속하는 카네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테르잔이 저 정도의 반응을 보일 정도면. 진짜로 맛있다는 뜻인데…….”

모두의 시선이 열매 쪽으로 쏠렸다.

사실 테르잔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표현할 기회가 없었는데. 열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달콤한 냄새가 이미 방 안에 가득해진 상태였다.

거기다 테르잔의 반응까지 더해지니 열매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됐다.

-톡, 톡.

은율이가 탁자 위의 열매를 손으로 두드리며 물었다.

“껍질이 엄청 단단해. 이거 어떻게 먹어?”

“내가 껍질 열어줄까?”

“응.”

“잠시만 기다려.”

자연스럽게 테르잔이 품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단순히 껍질을 여는 용도치고는 무시무시한 도구였지만, 여기서 그걸 굳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

테르잔은 무기를 손에 들고 열매 앞에 섰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시선을 고정한 채, 날카로운 기운이 담긴 무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파팟!

열매 주변으로 몇 차례 섬광이 터져 나왔다. 열매의 단단한 껍질이 스르륵 벗겨지며 열매의 안쪽 부분이 드러났다.

“와아아!”

“멋있어요, 테르잔 님.”

“무기 다루는 실력은 여전하네.”

지켜보던 사람들에게서 감탄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테르잔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껍질을 벗겨낸 열매 안쪽에는 분홍빛의 과육이 담겨 있었다. 속살을 드러낸 열매에서는 더욱 진해진 달콤함과 싱그러움이 뿜어져 나왔다.

테르잔은 열매 앞에서 자리를 비키며 말했다.

“은율아. 먼저 먹어봐. 숟가락으로 이 부분을 떠서 먹으면 돼.”

그녀는 친절하게 먹는 법까지 알려주며 은율이의 첫 시식을 도와주었다.

숟가락을 들어 올리던 은율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귀여운 여우 소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등을 떠밀었다.

“괜찮아. 이건 테르잔 님이 주는 생일 선물이니까. 은율이가 제일 먼저 먹어도 돼.”

그제야 은율이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인 숟가락은 아주 부드럽게 열매를 파고들어, 딱 한입에 먹기 좋을 만큼 과육을 덜어냈다.

그리고 숟가락은 곧장 은율이의 작은 입으로 향했다.

-냐암! 우물우물!

모두가 숨소리를 죽이며 은율이의 반응을 살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여우귀와 꼬리 쪽이었다.

뾰족한 여우귀는 쫑긋 세워지고, 천천히 살랑이던 꼬리는 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휙휙 움직였다. 크게 떠진 은율이의 눈동자처럼, 우리의 궁금증도 계속 커져 나갔다.

결국, 참다못한 릴리아가 불쑥 튀어나와 물었다.

“맛이 어때? 맛있어? 맛없어?”

은율이는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정말?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우으…….”

은율이는 끙끙 앓으며 자신의 숟가락과 열매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금방 고민하는 이유를 눈치챘다.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어도 돼.”

“하지만…….”

껍질을 벗겨낸 열매 속살은 그리 크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딱 한 입 정도 맛볼 수 있을 정도?

모두 내색은 하지 않고 있어도, 은근히 열매의 맛을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물론 나도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은율이가 더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포기할 생각이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은율이는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은율아. 더 안 먹어도 되겠어? 테르잔 님이 어렵게 구해오신 거라 다음에는 또 못 먹을 수도 있어.”

내 권유에도 은율이는 의젓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아빠가 맛있는 건 가족들이랑 나눠 먹는 거라 그랬잖아. 나도 다 함께 나눠 먹었으면 좋겠어.”

“은율아…….”

“흑! 나 완전 감동 받았어!”

“허허, 언제 저렇게 의젓해졌는지…….”

농장 식구들 모두 감동한 얼굴을 했다. 나도 괜히 눈시울이 뜨끈해지면서 은율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에구구, 어쩜 이렇게 착하고 예쁠까. 은율이가 최고야.”

“헤헤헤.”

은율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착한 여우 소녀 덕분에 농장 식구들은 ‘생명의 열매’를 맛볼 기회가 생겼다.

모두 조심스럽게 열매를 한 입씩 떠먹었다.

“아빠도 빨리 먹어봐.”

“응. 알았어.”

나도 숟가락으로 열매의 과육 부분을 한 입 떠먹었다.

으음?!

이 맛은……!

처음 열매를 입으로 넣었을 때 식감은 탱탱한 느낌의 젤리를 연상케 했다.

달콤한 향기 때문에 맛도 달콤할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 느껴지는 맛은 의외로 톡톡! 쏘는 상큼함이었다.

입안 가득 느껴지는 상큼함 뒤에는 젤리 같던 과육이 흐물흐물해지면서 또 다른 맛이 퍼져 나왔다.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함과 고소함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미각 세포를 뒤흔들던 열매를 꿀꺽 삼키면,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기분 좋게 퍼져 나갔다.

정말 만병통치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였다.

“와아…… 진짜 대단하네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놀라움을 표했다.

칭찬에 인색한 카네프도 ‘왜 그 위험한 곳으로 찾아가는지 알겠다.’라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전부 한 입씩 맛본 뒤에도 열매가 꽤 많은 양이 남았다. 모두 못 먹는 사람이 있을까 봐 정말 조금씩 숟가락에 담아서였다.

“남은 건 은율이가 먹을까?”

“그래도 돼?”

더 먹고 싶은 걸 꾹 참았던 은율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나는 웃으며 남은 열매를 은율이 앞쪽으로 당겨주었다.

“모두 한 입씩 맛봤으니까 이제 괜찮아. 마음껏 먹어도 돼.”

다른 사람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망설임이 없어진 은율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숟가락을 들어 열매를 떠먹었다.

모두 얼매를 먹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볼이 빵빵해진 은율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 * *

모두 ‘생명의 열매’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던 그때.

내 옆으로 카네프가 조용히 다가왔다.

“이제 우리 선물만 남은 거지?”

“네.”

“끄응…… 저 녀석은 왜 ‘생명의 열매’같은 걸 구해와서는…….”

카네프는 테르잔을 노려보며 불만을 표했다. 그녀는 무릎 위에 은율이를 올려두고, 열매를 구해온 무용담을 자랑하는 중이었다.

“우리 선물을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당장 습지대로 날아가서 ‘생명의 열매’ 하나 더 구해올까?”

평소답지 않게 초조해하는 카네프.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언제 거기까지 다녀오시려고요.”

“최, 최대한 빨리 다녀오면 오늘 안에는…….”

“사장님. 이상한 소리는 그 정도만 하시고. 빨리 준비한 선물상자나 가져오세요.”

카네프는 살짝 시무룩해진 얼굴로 선물상자를 가지러 갔다.

정말 사장님도 많이 변하셨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싱긋이 웃었다.

나와 카네프는 준비한 선물상자를 가지고 은율이 앞으로 나섰다.

“흠흠, 은율아…… 이건 시현이랑 나랑 준비한 선물.”

“아빠랑 사장님 선물이야?”

은율이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초롱초롱해졌다.

“아니, 그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은율이 생각이 나서…….”

“킥킥킥…….”

“큭큭…….”

쩔쩔매는 카네프의 모습에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곧바로 카네프는 고개를 돌려 살벌해진 눈빛을 보냈고, 순식간에 웃음소리는 잦아들었다.

나는 팔꿈치로 카네프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사장님, 얼른 선물부터 주세요. 은율이 기다려요.”

“으, 응. 여기 받아.”

선물상자를 받은 은율이가 잔뜩 신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열어봐도 돼?”

“물론이지.”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은율이는 재빨리 리본을 풀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색감의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이건 뭐야?”

“한복이야.”

“한복?”

“아빠가 태어난 나라에 전통 의상이야. 평소에는 입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명절 같은 날에는 많이 입어.”

“와아아…….”

은율이는 한복을 꺼내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카네프는 혹시 마음에 안 들까 걱정하는 얼굴로 반응을 살폈다.

“아빠. 이거 지금 입어 봐도 돼?”

“그럴래?”

“제가 도와줄게요.”

“나도!”

은율이가 직접 입어보고 싶다고 하자, 리아네와 릴리아가 돕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은 한복을 챙겨 은율이를 데리고 옆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한복으로 갈아입은 은율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홍색 치마에 소매가 알록달록한 저고리.

귀여운 꽃신을 신고, 머리에는 한복과 어울리는 장신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초조해하던 카네프도 한복 입은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는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어때? 내가 어울릴 거라 그랬지?”

“네네. 사장님 덕분이네요.”

한복을 입은 은율이가 쪼르르 우리 앞까지 와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 같았다.

“히힛! 아빠 나 어울려?”

은율이는 애교가 잔뜩 들어간 눈웃음과 함께 물었다. 나는 몸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잘 어울려! 그렇죠, 사장님?”

“으…… 응! 너무 예뻐.”

우리의 칭찬에 은율이는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고마워, 아빠. 사장님!”

그리고 나와 카네프를 차례로 안아주었다.

“하하하…….”

카네프는 약간 감정이 벅찬 표정으로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은율이의 한복차림을 보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이어나갔다.

그때마다 카네프는 자신이 직접 고른 거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뒤로도 농장 건물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고.

은율이의 눈꺼풀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은율아, 잠 와? 침대로 데려다줄까?”

“으으응. 좀 더 놀래…….”

더 놀고 싶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야속한 눈꺼풀은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은율이를 품에 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생일파티 즐거웠지?”

“응…… 너무 재밌었어…….”

“내년에도 또 생일 파티하자.”

“으응…… 약속…….”

“그래. 약속!”

내년 생일파티를 약속한 은율이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은율이의 입가에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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