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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398화 (39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98화

천계의 부름(1)

“여기는 다 끝났어요.”

축사 안쪽에서 엘프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사의 청소가 다 끝났다는 알림이었다.

“그래. 수고했어. 둘 다 청소 도구 챙겨서 나와. 좀 쉬었다 하자.”

“알았어요. 우르키, 가자.”

“네, 선배님.”

엘프리드와 우르키가 청소 도구를 챙겨 축사 밖으로 나왔다. 나는 두 사람을 도와 도구들을 정리한 다음, 함께 나무 그늘로 향했다.

오랜만에 축사 대청소를 해서 그런지, 선선한 날씨임에도 몸에 열기가 가득 올라왔다.

상의의 단추 몇 개를 풀어헤치며 땀을 식히고 있던 우리에게 리아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가져온 쟁반 위에는 시원한 음료가 담긴 유리잔이 보였다.

“시원한 마실 것 좀 가져왔어요.”

“고마워요, 리아네 씨.”

“잘 먹을게요.”

“고맙습니다.”

우리는 인사와 동시에 허겁지겁 유리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손이 살짝 시릴 정도로 차가운 온도의 음료는 금방 우리들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하아∼! 좋다.”

리아네는 유리잔에 음료를 채워주며 미안함을 표했다.

“많이 힘드셨나 보네요. 제가 좀 도와드릴 걸 그랬네요.”

“아뇨, 괜찮아요. 리아네 씨도 따로 할 일이 있으시잖아요.”

엘프리드와 우르키도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꼼꼼히 청소했을 뿐이에요.”

“엘린 선배 말이 맞아요. 근데 저 음료수 조금만 더……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리아네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몇 차례 빈 잔을 채워주던 그녀도 내 옆자리에 살포시 자리 잡았다.

앉아있는 자리로 풀 내음 가득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우리는 각자 편안한 자세로 나른한 휴식시간을 즐겼다.

한동안 멍한 느낌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때.

농장 건물 옆쪽에서 삑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은율이가 흙피리를 입에 대고 열심히 부는 중이었다. 그 옆에는 아슈미르가 지도를 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어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짧게나마 연주를 시도하는 수준이었다. 열심히 흙피리를 연주 중인 은율이를 보며 리아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피리 다루는 실력이 금방 늘었네요?”

“하하! 최근에는 저것 때문에 은율이가 아슈미르 씨를 졸졸 쫓아다녔잖아요. 그렇게까지 귀찮게 따라다니며 물어보는데 실력이 안 늘 수가 없죠. 거기다 원래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요.”

은율이는 생일 선물로 받은 흙피리를 엄청 마음에 들어 했다. 빨리 연주법을 익히려고 아슈미르를 아기 새처럼 따라다녔다. 덕분에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지금도 아슈미르에게 몇차례 조언을 듣더니, 금방 그럴듯한 연주를 해냈다.

“어머! 연주가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조금 있으면 연주회에 나가도 되겠는데요?”

“허허! 아슈미르 감시관이 악기를 선물했나 보군.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에?”

“……?”

“……?”

“……헉?!”

우리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에는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천족 노인, 아크 심판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우르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취했다.

“견습 감시관 우르키가 심판관님을 뵙습니다.”

“쉬고 있던 모양인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있게나.”

“아닙니다!”

편하게 있으라는 말에 우르키는 오히려 더 경직된 자세로 대답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머지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크 심판관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아크 심판관님.”

“허허, 잘 지냈나?”

그는 리아네와 엘프리드와도 짧게 인사를 나눴다.

뻣뻣하게 굳은 우르키의 반응으로 봐서는 아크 심판관의 예고되지 않은 방문인듯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 불쾌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 어리둥절하긴 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따로 연락도 없이…….”

“미안하게 됐네. 오늘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도 급하게 결정된 일이라서 말이야.”

아크 심판관은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미안함을 드러냈다.

“어? 아크 할아버지다!”

멀리서 은율이가 아크 심판관을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왔다. 함께 있던 아슈미르도 그 뒤를 따랐다.

“아크 할아버지! 언제 온 거야?”

“감시관 아슈미르가 심판관님을 뵙습니다.”

“방금 왔단다 얘야. 아슈미르 감시관도 잘 지냈나?”

“할아버지, 이거 봐봐. 아슈미르 언니가 준 피리야. 이제 정확하게 소리 낼 수 있어.”

은율이는 목에 걸려있던 흙피리를 들어 자랑한 다음, 입에 물고 연주를 시작했다.

한 음정, 한 음정.

아직 어색한 손놀림으로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조용히 연주를 지켜보는 아크 심판관의 얼굴에도 인자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은율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허! 연주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랬지?”

“아직 며칠 안 됐어.”

“며칠 사이에 이 정도 실력이라니! 정말 대단하구나.”

“헤헷.”

은율이는 칭찬이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꼬았다. 아크 심판관은 흐뭇한 표정으로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게 말했다.

“시현. 괜찮다면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나? 조금은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는데…….”

“네, 괜찮습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실래요? 이제 막 대청소를 끝낸 참이라. 간단히 씻고 옷만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하게. 그동안 귀여운 자네 딸과 시간을 보내고 있겠네.”

“기다리시는 동안 쉴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드릴게요.”

리아네가 아크 심판관과 은율이를 데려가고, 나머지는 씻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 * *

빠르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아크 심판관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기 전부터 들뜬 은율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덜컥.

“아빠!”

“오, 왔는가?”

“…….”

아크 심판관은 은율이를 무릎 위에 올려둔 상태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카네프가 뚱한 표정으로 짓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야. 은율이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네.”

나는 아크 심판관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옆에 있는 카네프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님은 왜 여기 계세요?”

“은율이 목소리가 들리길래 나와봤더니, 저 천족 영감탱이랑 있잖아. 그래서 나도 앉았지.”

카네프는 그저 은율이가 아크 심판관과 함께 있는 게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슈미르와 우르키도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분도 자리에 앉으시는 게…….”

“저희는 괜찮습니다. 신경 쓰시지 말고 편하게 대화 나누십시오.”

두 사람은 정중히 권유를 거절하고 꼿꼿한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잠시 후.

리아네가 차와 간식을 가지고 등장했을 때. 아크 심판관은 무릎 위에서 은율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은율아. 미안하지만 이 할아버지가 아빠랑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단다. 잠시 밖에서 놀고 있으면 안 되겠니?”

“나도 여기 있으면 안 돼?”

은율이는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나가기 싫다는 표정을 했다. 나는 아크 심판관이 난처해지지 않도록 먼저 나서서 은율이를 타일렀다.

“은율아! 떼를 쓰면 아크 심판관님께서 곤란하시잖아.”

“응…… 알았어.”

은율이가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언니랑 같이 놀러 갈까?”

눈치빠른 리아네가 재빨리 은율이를 챙겼다. 그녀는 은율이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이제 방 안에는 나와 카네프.

그리고 아크 심판관과 아슈미르, 우르키만 남게 됐다.

“나는 남아 있어도 상관없겠지?”

카네프가 살짝 삐딱한 자세로 물었다. 아크 심판관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상관없다네. 어차피 처음부터 자네도 부를 생각이었어. 시현에 대해서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충분히 아니까 말이야.”

“신경 쓰긴 뭘…….”

“사장님이 절 많이 아끼시긴 하죠.”

“시끄러워. 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괜히 신경질 부리는 카네프의 모습에 나는 킥킥대며 웃음을 참았다.

“그래서? 뭐 때문에 여길 찾아온 거야. 이야기하는 걸 봐서는 또 시현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다지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라서 본론부터 이야기하겠네.”

은은한 미소를 띠던 아크 심판관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차원의 균형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네. 이제는 천족만의 힘으로는 수습하기 힘든 상황이야.”

순식간에 방 안에는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해졌다. 아슈미르와 우르키의 얼굴도 미세하게 굳어졌다.

“시현. 예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하나?”

“하신 말씀이라면…….”

“나는 자네가 어긋난 균형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었지.”

“…….”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네. 그리고 지금까지 천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 지난번에 자네가 균열의 봉인을 도와줬던 일 기억하나?”

균열의 봉인을 도왔던 일이라면…….

아! 사장님과 함께 휴가를 나섰던 그때를 말하는 거구나!

“그것도 천족을 설득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어. 지금은 꽤 많은 천족들이 자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네. 물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적지 않지만…….”

“으음…….”

천족이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든. 두 경우 모두 왠지 껄끄럽게 느껴졌다.

“최근에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천족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커지는 중이라네. 덕분에 요지부동이던 늙은이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지.”

“요지부동이던 늙은이라면…….?”

“에크르아스 의회가 움직였네.”

에크르아스 의회?

평소에는 안드라스가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쏙쏙 설명해줬지만, 이번에는 그를 대신해서 아슈미르가 입을 열었다.

“에크르아스 의회는 천족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사 결정 기구입니다. 구성원 모두가 주요 단체의 지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 계신 아크 심판관님도 의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설명을 들은 카네프가 짧게 중얼거렸다.

“대충 마계의 마왕성이라 비슷한 건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라면 에크르아스 의회는 마왕처럼 모든 권력을 독점하지 않습니다.”

아슈미르의 설명으로 대충 ‘에크르아스 의회’라는 곳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아크 심판관이 말을 이었다.

“에크르아스 의회에서 처음으로 내 주장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네. 자네가 유일한 열쇠라는 내 주장을 말이야.”

어…… 잠깐만…….

그렇다는 말은?

아크 심판관은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시현. 나와 함께 천계로 가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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