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00화
천계의 부름(3)
나는 눈을 껌뻑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잘 정비된 벽돌길.
그 길을 따라 양쪽으로는 잘 관리된 나무와 풀들이 쫙 이어져 있었다.
굉장히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는 풍경이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에게 아크 심판관이 말을 걸었다.
“혹시 심하게 어지럽나?”
“아, 아뇨. 괜찮습니다.”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주변 풍경이 바뀌는 순간에 살짝 어지러웠을 뿐, 지금은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허허, 그렇다면 다행이구먼. 나도 오랜만에 사용해 보는 거라 조금 걱정이 됐거든.”
“그런데, 여기가 설마……?”
“자네의 생각이 맞아. 여기가 모든 차원계의 중심이자, 모든 천족들의 고향인 천계라네.”
“여기가 쳔계…….”
“어떤가? 직접 천계를 본 소감이?”
아크 심판관은 살짝 들뜬 표정으로 내 소감을 물었다.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천계에 도착했다는 말도 실감이 안 나네요.”
“너무 성급했나 보군. 오랜만에 손님이라서 내가 너무 들뜬 모양이야.”
그는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일단 걷도록 하지.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해주겠네.”
일행은 잘 정비된 벽돌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변에 나무와 풀밖에 없었는데 벽돌길을 따라 걷다 보니 조각상, 분수, 커다란 비석 같은 것도 하나둘씩 나타났다.
천족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은 당장 박물관에 가져가도 될 정도로 훌륭했고, 아름다운 분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커다란 비석에는 글씨가 깨알같이 작게 새겨져 있었는데. 아주 당연하게도 내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대충 십여 분쯤 걸었을 때.
벽돌길이 끝나면서 아주 커다란 도로가 나타났다.
평범했던 벽돌길과는 달리, 커다란 도로는 아주 고급스러운 대리석과 같은 재질로 전부 포장돼 있었다.
그 고급스럽고 번쩍번쩍한 느낌 때문에 ‘내가 여길 걸어도 될까?’라는 걱정이 잠시 들 정도였다.
아크 심판관과 아슈미르, 우르키까지 먼저 움직이는 것을 본 다음, 나는 뒤늦게 발걸음을 옮겼다.
으음…….
근데 길이 이렇게 넓은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마차 같은 거라도 한 대 지나다닐 법한데 말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멀리서 아주 커다란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다가갈수록 흐릿했던 윤곽이 점차 선명해졌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성벽과 황금빛 성문이었다.
얼마나 성벽이 크고 높은지, 가까이 갈수록 구경하던 고개가 90도로 꺾여 목 뒷부분이 아플 정도였다.
-후드드득!
일행이 황금 성문 근처에 도착하는 순간.
성벽 위쪽에서 날개 퍼덕이는 소리와 함께 천족 병사들이 내려왔다.
두꺼운 갑옷을 입은 수십의 병사가 하강하는 모습은 꽤 멋진 장면이었다.
병사 중 한 사람이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아크 심판관 앞으로 달려가 예를 취했다.
“수비대장 하르오가 아크 심판관님을 뵙습니다.”
아크 심판관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았다.
“오랜만이야. 지금은 자네가 근무 중이었나 보군.”
“네, 그렇습니다. 심판관님.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걸어서 오셨습니까? 심판관님께서는 언제든지 날개를 꺼내 성벽을 넘으실 수 있지 않습니까?”
“허허, 오늘은 날지 못하는 손님이 있어서 말이야. 거기다 성벽과 성문의 웅장함이 이 도시의 자랑거리 아닌가? 겸사겸사 손님에게 구경도 시켜줄 겸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네.”
아무래도 천족 세 사람은 나 때문에 지금까지 걸어서 이동한 모양이었다.
수비대장은 살짝 고개를 돌려 뒤쪽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내 쪽을 향했다. 투구 안에서 강렬한 안광이 번뜩였다.
“심판관님. 저분은……?”
“곧 있을 에크르아스 의회 소집에 나올 참고인일세. 중요한 문제로 먼 곳에서 모셔온 손님이니 곧바로 길을 열어주게.”
길을 열어달라는 말에 수비대장의 몸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자를 도시로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의회 소집에 꼭 필요한 참고인은 심판관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참석시킬 수 있네. 그 말은 곧 도시에 입성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으음…….”
“이자의 신분은 내가 보증하지. 그러니 성문을 열어주게.”
잠시 고민에 빠졌던 수비대장은 결국 자신의 뜻을 굽혔다.
“알겠습니다, 심판관님.”
“허허, 고맙네.”
“모두 들어라! 아크 심판관님과 일행분들께서 입성하신다. 지금 당장 성문을 열어라!”
수비대장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부하 병사들이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성문 뒤편으로 넘어갔다.
잠시 후…….
-그그그그긍!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커다란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성문 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빛이 점점 강렬해지더니, 주변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와아…….”
‘천국의 문’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에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크 심판관이 흐뭇하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꽤 멋진 장면이지? 이 도시의 자랑거리 중 하나일세.”
“네. 정말 멋있네요.”
“자∼! 얼른 들어가 보도록 하지. 천계의 도시 ‘셀레스티아’로 말이야.”
* * *
천계의 도시 ‘셀레스티아’.
처음 천계에 도착했을 때는 이곳이 천계라는 걸 실감하기 어려웠었는데, 도시 ‘셀레스티아’에 도착한 뒤부터는 확실히 천계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높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번쩍이는 도로와 조화를 이뤘고, 그 건물들 사이를 천족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마치 신화에 나오는 듯한 도시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이쪽입니다, 시현 님.”
“아, 예.”
도시 구경에 빠져 있던 나를 아슈미르가 옷을 잡아당겨 일깨웠다. 일행보다 뒤처졌다는 걸 깨닫고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십니까, 심판관님.”
“안녕하세요!”
지나가는 천족들 중에 많은 이가 아크 심판관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허허, 안녕하신가?”
아크 심판관도 환하게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주었다.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적대적인 느낌은 없었고, 대부분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마계에서도 그랬지만, 천계에서도 나는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거리를 오래 걸을수록 점점 더 나에게 시선이 쏠리는 기분이었다.
부담스러움을 느낀 나는 아슈미르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아슈미르 씨. 지금 가는 곳에 언제쯤 도착하나요?”
“혹시 피곤하신 겁니까?”
“아뇨. 피곤한 건 아닌데. 주변 시선이 좀 따가워서요.”
“얼마 안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아슈미르는 슬쩍 내 옆쪽으로 움직였다. 자신이 방패막이가 되어 주변의 시선을 가려주려는 모양이었다.
위험한 차도 쪽에서 여자를 떨어뜨려 놓는 듬직한 남자의 모습이랄까?
물론 나와 아슈미르 씨는 상황이 반대이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감사의 뜻을 담아 그녀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에 답했다.
도시의 풍경이 점점 눈에 익을 때 쯤.
아크 심판관은 아담한 2층 건물 앞에 멈춰서며 말했다.
“도착했네. 여기가 시현, 자네가 잠시 머무를 곳이라네.”
“예? 저 혼자서요?”
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미안하네. 내가 머무는 곳은 이래저래 까다로운 조건이 많아서 자네를 데려갈 수 없다네.”
“저와 우르키 견습 감시관은 감시관 숙소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곳은 외부인 출입금지인 곳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처음 와보는 도시에 나 혼자 딸랑 놔두는 건 좀…….
불안함으로 내 표정이 흐려지자. 아크 심판관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호기롭게 웃었다.
“허허! 걱정하지 말게. 그 대신 믿을 만한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놨으니까 말이야. 들어가 보면 자네도 마음에 들어 할걸세.”
그리고 그는 나를 이끌고 건물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잠시만요!
문 안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문이 활짝 열렸다.
안쪽에서는 앞치마를 맨 천족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아주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조금 풀릴 정도로 환한 미소였다.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맙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이죠, 아크 심판관님. 얼른 들어오세요.”
앞치마를 맨 천족 여성은 옆으로 비켜서며 안쪽으로 손짓했다.
아크 심판관, 아슈미르, 우르키, 마지막으로 내가 집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는데. 문 옆에 서 있던 천족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시도했다.
“아, 안녕하세요.”
“…….”
그녀는 내 쪽으로 한발 다가와 빤히 얼굴을 쳐다봤다.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천족 여성은 다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덥석 껴안았다. 그녀의 덩치가 꽤 컸던 탓에 나는 품에 쏙 안기는 모양새가 됐다.
“심판관님이 말씀하셨던 손님 맞죠? 너무 잘 왔어요!”
“아…….”
“자자! 들어오세요. 여기 머무시는 동안에는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있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향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편안하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차와 간식을 준비해 드릴게요. 아! 나머지 분들도 저녁은 드시고 가실 거죠?”
“허허, 그래도 괜찮겠나?”
“물론이죠! 제가 비장의 메뉴로 준비해 뒀으니 꼭 맛보고 가세요. 호호!”
천족 여성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다음,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인 나에게 아크 심판관이 말을 걸었다.
“시현. 혹시 예전에 나와 함께 농장으로 찾아갔던 클라우 집행관 기억나나?”
“클라우 집행관…… 아! 기억나요.”
아크 심판관이 처음으로 농장에 방문했을 때, 아슈미르와 함께 그를 보좌했던 남자 천족을 떠올렸다.
“여기가 바로 클라우 집행관의 집이라네. 방금 만났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고.”
“아…….”
나는 머릿속으로 클라우 집행관과 방금 만났던 천족 여성을 동시에 떠올려보았다.
부부인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울린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기계처럼 딱딱했던 클라우 집행관의 부인이 저렇게 다정하고 밝은 사람이라니…….
아무래도 천족에게는 아직 내가 모르는 면이 많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