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01화 (40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01화

에크르아스 의회(1)

클라우 집행관 부인은 금방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쟁반 위에는 사람 숫자에 맞춘 찻잔과 주전자 그리고 쿠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준비해서 지금 막 오븐에서 꺼낸 쿠키예요. 따뜻한 차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으니 얼른 드셔보세요.”

“차향이 참 좋구먼.”

“감사합니다, 부인.”

나도 아크 심판관과 아슈미르를 따라서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모자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그녀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쿠키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바삭!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쿠키가 부드럽게 부서졌다. 특유의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바삭한 식감과 어우러졌다.

특별히 대단한 맛이 느껴지자는 쿠키는 아니었지만, 묘하게 안정감이 드는 기분이었다. 천계에서 느끼는 엄마의 손맛이랄까?

맛있는 쿠키, 푹신한 의자, 은은한 차향.

그 편안한 분위기에 처음 느꼈던 당황스러움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굳어 있던 얼굴과 손발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쿠키 하나를 깔끔하게 먹고 난 다음. 자연스럽게 쿠키가 담긴 접시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하필 그 방향에 앉아 있던 부인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고 있던 그때. 그녀는 더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떠세요? 쿠키는 입맛에 좀 맞으세요?”

“아…… 맛있어요.”

“정말요?”

“네. 정말 맛있어요. 함께 준비해 주신 차랑 정말 잘 어울리네요.”

“호호! 다행이네요. 혹시 손님 입맛에 안 맞으실까 봐 걱정했거든요. 아침부터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맛있다는 말이 진심으로 기쁜지 만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 모습을 본 아크 심판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거 섭섭하구먼.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아예 관심이 없는 모양이야.”

“아크 심판관님이나, 감시관분들은 자주 제 쿠키를 드셔보셨잖아요. 그보다는 아주 멀리서 온 손님분의 감상이 더 궁금한 게 당연하죠.”

“허허허.”

“어머! 그러고 보니 손님분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제 이름은 ‘로라’라고 해요.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집행관 임무를 수행 중인 클라우가 제 남편이에요.”

나도 재빨리 손에 든 쿠키를 내려놓고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그냥 시현이라고 불러주세요.”

“시현 님이셨구나.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저도 편하게 로라라고 부르시면 돼요.”

“네.”

“그런데 마계에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마족은 아니신 거죠? 요즘 집행관, 감시관분들이 자주 방문하는 지구 출신이시죠?”

로라는 자기소개를 끝마치자마자 궁금한 것들을 잔뜩 물어보았다. 대부분 대답하기 어렵지 않은 것들이라 가볍게 질문에 응해주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달칵…… 끼이이익.

2층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후…….

-파닥파닥!

-파닥파닥!

“엄마?”

“……누구야?”

두 명의 아기 천족이 날개를 퍼덕이며 2층에서 내려왔다.

“어머나!”

깜짝 놀란 로라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들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두 아기 천족은 열심히 날개를 움직여 로라의 손길을 피했다.

“아앗! 너희들!”

엄마의 손길을 피한 아기들이 향한 곳은 바로 내가 있는 곳이었다.

2∼3살 정도 돼 보이는 아기 천족들은 살포시 내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아, 안녕?”

“…….”

“…….”

내 인사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천족 아기들.

녀석들은 낯선 내가 무섭지도 않은지 이리저리 눈동자를 움직이며 나를 살폈다. 처음에는 눈으로 살펴보기만 하다가, 나중에는 자그마한 한 손으로 나를 찔러보거나 만지기도 했다.

“죄, 죄송해요. 시현 님. 손님분들이 오시기 전에 2층에 재워놨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나 봐요.”

“괜찮아요.”

당황스러워하는 로라에게 나는 편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기분이 나쁜 일도 아니었을 뿐더러 사랑스러운 아기들의 장난은 오히려 기쁘게 받아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지구, 천계, 마계 구분할 것 없이. 아기들은 그 어디라도 귀엽구나.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볼 살,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물론이고. 파닥파닥 움직이는 작은 날개가 매력 포인트였다.

“머리카락이 조금 짧은 남자아이가 ‘론’, 리본으로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가 ‘린’이에요. 둘이 쌍둥이로 태어났어요.”

쌍둥이라…….

잠시 바르바토스 가문의 쌍둥이가 머리에 떠올랐다. 마계의 쌍둥이 못지않게 천계의 쌍둥이도 아주 귀여웠다.

“이름이 론이랑 린이구나.”

“응.”

“마자.”

“내 이름은 시현이야.”

“…….”

“…….”

론과 린은 내 이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시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허허. 시현이 아기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구먼.”

“농장에 계신 분들 말씀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이 잘 따르는 신기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마을에 가면 아이들이 시현 님한테 전부 몰려들거든요.”

“오오. 시현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나?”

아슈미르와 우르키의 말에 아크 심판관은 진심으로 놀란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나는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에요. 그냥 애들이 조금 잘 따를 뿐이에요. 아무래도 딸이 있어서 더 아기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있고요.”

“딸이 있으세요?”

“네. 론이랑 린보다는 서너 살 정도 나이가 더 많을 거예요.”

“어쩐지. 아기를 대하는 모습이 익숙한 것 같더라고요.”

“하하하!”

으윽!

그런데 얘들아. 부끄럽게 왜 옷을 들추고 그러니?

쌍둥이들은 내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거나, 직접 얼굴을 들이밀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웅? 날개가 업써.”

“이상해. 어디 아파?”

아무래도 내 등에 날개가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얘들아. 나는 원래부터 없어.”

“어엇?”

“날개가 업써?”

원래 날개가 없다는 말에 쌍둥이들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핫! 그래. 나는 천족이 아니라서 날개가 없어.”

내가 유쾌하게 웃은 것과 다르게 쌍둥이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울먹거렸다.

“그럼 못 나는고야?”

“불쌍해…….”

날지 못하는 내가 너무 불쌍했는지 아이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나는 급히 아이들을 달래주었다.

“아냐. 나는 괜찮으니까. 울지마, 얘들아.”

“훌쩍.”

“훌쩍.”

허허.

날지 못한다고 이렇게까지 슬퍼할 줄이야.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아기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른 일행들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은율이를 통해 단련된 나의 달래기 스킬로 쌍둥이들은 금방 울음을 멈췄다. 대신 아이들은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대신 우리가 날게 해주께!”

“응. 우리만 믿어!”

“어?”

론과 린은 날개를 움직여 날아올라 내 양쪽 어깨로 향했다. 둘은 어깨 쪽 옷을 손으로 잡고서는 힘을 줘서 끌어올리려 했다.

“우우웅!!”

“우우웅!!”

둘은 온 힘을 다했지만 나는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 쌍둥이들의 작은 날개로는 성인 남성의 무게를 들어 올리기 힘들어 보였다.

혹시 아이들이 무리할까 봐 바로 말리려던 그때.

옆에 있던 아크 심판관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기운이 내 주변을 감싸더니, 쌍둥이들이 당기는 대로 몸이 부웅 떠올랐다.

“어어?!”

“와아!”

“됐따!”

깃털처럼 가벼워진 나는 금방 천장까지 날아올랐다. 신이 난 쌍둥이들은 나를 데리고 집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크 심판관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고, 로라는 박수를 칠 정도로 좋아했다. 아슈미르와 우르키도 마찬가지였다.

“어때?”

“재밌지?”

“응. 재밌네. 고마워, 얘들아.”

고맙다는 말에 론과 린은 사랑스럽게 웃음 지었다.

그, 그런데 얘들아.

나 언제까지 끌고 다닐 거니? 나 이제 좀 창피하거든?

하지만 안타깝게도.

쌍둥이들은 내 속마음도 모르고, 자기들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나를 끌고 날아다녔다.

나중에는 내가 조금만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자기들이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잡아서 옮겨주었다.

차마 아이들의 순진한 마음을 거절할 수 없어서, 나는 얌전히 아기 천족들에게 끌려 다녀야 했다.

* * *

저녁에는 로라가 성대하게 준비한 식사를 대접받았다.

로라는 특별히 천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주었다. 그녀의 요리 실력이 뛰어난 덕분인지, 모든 음식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저녁 식사를 끝마친 뒤에는 아크 심판관, 아슈미르, 우르키가 떠날 준비를 했다.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 테니 준비하고 있게나. 의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니, 식사도 든든하게 먹어두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챙겨드릴게요.”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세 사람은 떠나갔다.

나는 잠들기 전까지 쌍둥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인형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다 보니, 아기들의 고개가 금방 꾸벅꾸벅 기울어졌다.

“론, 린! 이제 자러 가야지.”

“으으응…… 시러.”

“더 놀래.”

아이들은 나에게 매달리며 더 놀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로라가 둘을 안아 들자마자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잠든 모습도 아주 사랑스러웠다.

“고마워요. 시현 님이 아이들이랑 놀아준 덕분에 오늘은 편하게 지냈네요.”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따라오세요. 2층에 잠자리를 준비해뒀어요.”

나는 로라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침대와 작은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아마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 방처럼 보였다.

“이불도 바꿔놓고 청소도 해둬서 불편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을까요?”

“아뇨. 괜찮아요.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 뭘 이정도로 가지고…… 내일 아침 식사 준비되면 깨워드릴게요. 그럼 편히 쉬세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로라와 인사를 나누고 방문을 닫았다.

나는 잠시 방안을 둘러보다가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이불에서는 금방 빨래를 한듯한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별로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그런지 온몸에 나른함이 몰려왔다.

스르륵.

아주 자연스럽게 눈이 감기더니, 아까 로라에게 안겨든 쌍둥이들처럼. 순식간에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천계에 도착한 첫날 밤이 조용히 지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