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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02화 (40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02화

에크르아스 의회(2)

천계에서의 두 번째 날.

나는 아침 일찍 찾아온 아크 심판관과 함께 집을 나섰다.

편안했던 잠자리, 거기다 로라가 차려준 맛있는 아침 식사까지 든든하게 챙겨먹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놀자고 안겨드는 쌍둥이를 달래주는데 애먹은 걸 빼면, 아주 상쾌한 아침의 출발이었다.

“지난밤은 잘 지냈나?”

“네. 로라 씨가 잠자리도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시고, 아침도 잘 챙겨 주셨어요.”

“허허, 역시 그녀에게 부탁하길 잘한 것 같아.”

나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솔직히 조금 의외였어요.”

“……?”

“천족분들은 모두 딱딱하고, 정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로라 씨와 쌍둥이들을 보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해하네. 자네가 지금까지 만난 천족들은 대부분 감시관과 집행관이 전부였을 테니까. 그들은 중요한 임무를 맡은 만큼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게 철칙이라네.”

나는 힐긋 아크 심판관을 바라봤다. 그는 내 시선의 의미를 눈치채고는 싱긋 웃었다.

“나도 처음 임무를 맡았을 때는 그렇게 행동했었다네.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공과 사를 구별할 자신이 있으니, 굳이 재미없게 굴 필요는 없지. 자네는 내가 딱딱하고 진지하게 굴었으면 좋겠나?”

“아뇨. 저는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 같아요.”

“허허! 역시 자네는 나와 잘 통한다니까.”

아크 심판관은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기분 좋게 미소를 머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멀리서 보이던 커다란 건축물 근처에 도착했다. 원통 형태의 커다란 건축물은 고대 신전을 보는 것 같은 웅장함을 자랑했다.

“여기가 에크르아스 의회의 의사당일세. 의회의 이름을 따 ‘에크르아스 의사당’이라고 부르지.”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의사당 주변에는 꽤 많은 천족이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천족들 전부 회의에 참석하는 건가요?”

“직접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에크르아스 의원들뿐이야. 하지만 일반 시민들도 공개된 좌석에서 회의를 지켜볼 수 있지.”

아크 심판관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긴급하게 회의가 열릴 정도로 워낙 중요한 사안이다 보니.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 같구먼.”

“으음…….”

이렇게 많은 천족들 지켜보는 자리에 내가 나서야 한다니…….

조금 전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괜히 의식이 되면서 긴장감이 몰려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날개를 펼친 천족들이 하늘에서 의사당 주변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천족 중. 두 명의 천족이 우리 쪽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어제 저녁을 먹고 헤어졌던 아슈미르와 우르키였다.

그들은 농장에서 봤던 편안한 옷차림이 아니라, 감시관 제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크 심판관님, 시현 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조금 늦었습니다.”

“아닐세. 우리도 이제 막 도착했다네.”

고개를 숙이는 두 사람에게 아크 심판관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일단 들어가도록 하지. 너무 사람들이 몰려서 더 붐비기 전에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아크 심판관의 뒤를 따라 의사당 입구 쪽으로 향했다.

입구 쪽으로 갈수록 걷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는데, 아크 심판관을 알아본 천족들이 알아서 물러나거나 길을 터주었다.

“헉! 아크 심판관님!”

“심판관님께서 지나가실 수 있도록 빨리 물러서.”

덕분에 우리는 의사당의 입구까지 쭉 걸어 나갈 수 있었다.

금방 입구에 도달한 우리 앞에 경비병들이 길을 막고 나섰다. 어제 성문 입구에서 봤던 수비대와 비슷한 차림이었다.

“심판관님을 뵙습니다.”

“오늘 있을 회의에 참석하러 왔다네. 들어가 봐도 되겠나?”

“당연히 심판관님과 감시관분들은 괜찮습니다만…….”

경비병의 시선이 내쪽으로 향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자는 의사당 내부로 입장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의회에 중요한 참고인이라네. 신원은 내가 보장하겠네.”

“아무리 심판관님이라고 하셔도 안 됩니다. 신원확인 절차가 필수입니다.”

“당장 회의가 오늘인데 언제 그 답답한 절차를 다 진행하겠나? 의사당 내부에서 약식으로 진행할 테니 일단 들여보내주게.”

“그래도 규칙을 어길 순 없습니다.”

성문 수비대 때와는 달리 의사당의 경비병은 쉽게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완고한 경비병의 태도에 아크 심판관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쯧……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주게.”

“……?”

“아슈미르 감시관!”

“네.”

“어제 미리 말해뒀던 계획대로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아슈미르는 내 왼편으로 다가와 팔을 꽉 붙잡았다. 동시에 우르키는 반대편에서 똑같이 행동했다. 순식간에 양팔을 제압당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펄럭!

-펄럭!

날개를 꺼낸 아슈미르와 우르키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나를 데리고 의사당 쪽으로 향했다.

“멈추십시오!”

뒤쪽에서 경비병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슈미르와 우르키는 가볍게 경고를 무시하고 더 빠르게 나아갔다.

“당장 침입자를 쫓아라!

”저들이 의사당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으윽?!”

추격하려던 경비병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날개를 펼친 아크 심판관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미안하네만, 여기서 잠시 이 늙은이와 어울려줘야겠어.”

“시, 심판관님??!!”

수십 명의 경비병이 순식간에 제압당해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입구에 몰려있던 천족들도 기세에 눌려 후다닥 뒷걸음질 쳤다.

의사당의 건물 입구를 통과하기 직전.

최대한 고개를 돌려 아크 심판관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는 내 시선을 의식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멀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 걱정은 말고. 나중에 다시 만나세.”

* * *

긴박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의사당 내부로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건물 내부에도 많은 천족들과 경비병이 있었지만, 아직 외부 상황을 모르는 탓에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아슈미르와 우르키는 황급히 날개를 접고 잡고 있던 나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일단 나도 눈치껏 그들을 따라서 태연한 척 행동했다.

“시현 님. 이쪽입니다.”

“아, 예.”

당장 묻고 싶은 질문들을 꾹 참아내며 아슈미르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피해 사람이 별로 없는 곳으로 움직였다.

사람이 북적였던 입구 쪽과는 달리 건물 안쪽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그다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의 시선이 없어졌다는 걸 확신하자마자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슈미르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경비병이 순순히 시현 님을 들여보내줬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 돌파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럼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죄송합니다. 혹시 시현 님께서 불안해하실까 봐 비밀로 했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리는 나와 달리 아슈미르는 평소의 담담한 모습이었다. 우르키는 약간 긴장했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거예요? 아까 경비병들이 쫓아오려고 그러던데.”

“아크 심판관님께서 시간을 끌어주실 겁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의사당 내부에 숨어 있다가 회의에 시현 님을 참석시킬 겁니다.”

“그럼 아크 심판관님은 어떻게 해요?”

“괜찮습니다. 심판관의 직책을 가진 천족은 그 누구도 구속하거나 체포할 수 없습니다.”

“허어. 면책특권인 건가요?”

“면책은 아닙니다. 지금 일으킨 소란에 대해서 따로 징계 위원회가 열릴 겁니다. 아크 심판관님께서는 징계를 감수하고 이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스럽고, 약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아크 심판관이 징계까지 감수하면서 일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를 통해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는 그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

-…….

갑자기 뒤쪽에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외부에서 일어났던 상황이 건물 내부로 전파됐음을 눈치챘다.

“시현 님. 일단 숨을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아슈미르는 숨을 곳을 찾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겉으로는 담담한 듯 행동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의사당에 건물 규모가 워낙 큰 탓에 당장 쫓기는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뒤쪽에서 추격의 기운이 점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잠깐. 시현 님!”

복도의 꺾어지는 길에서 멈춘 아슈미르가 다급하게 나를 이끌고 몸을 숨겼다.

-척, 척, 척!

그 앞으로 경비병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그들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는 너무나도 명확해보였다.

“아, 아슈미르 님, 시현 님! 저쪽에서도…….”

우르키가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며 복도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또 다른 경비병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다가오는 경비병에게 들키고. 앞으로 나서자니 또 다른 경비병들과 맞닥뜨리는 상황.

“으음…….”

아슈미르가 침음을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또다시 강행돌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때 우르키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나서서 주의를 끌게요.”

“뭐?”

“제가 주의를 끄는 동안 두 분이 복도를 지나가세요. 오랫동안 시간을 끌기는 힘들어도, 두 분이 빠져나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아슈미르 감시관님, 시현 님을 부탁드릴게요.”

우르키는 우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주위를 살피던 경비병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우르키 쪽으로 향했다.

“거기 정지!”

“…….”

“감시관 소속인 것 같은데. 직책과 이름을 밝혀라!”

“……메롱!”

우르키는 혀를 쭉 내밀어 보인 다음 재빨리 반대편으로 달려나갔다.

“수상한 자를 찾았다!”

“당장 잡아라!”

“감시관 제복을 입고 있는 녀석이다!”

앞쪽 복도를 막고 있던 경비병들 모두가 우르키의 뒤를 쫓아갔다.

“지금입니다, 시현 님.”

미안해. 우르키.

나중에 농장으로 돌아가면 힘든 일 안 시키고, 맛있는 거 많이 챙겨줄게.

나는 마음속으로 우르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아슈미르와 함께 복도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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