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05화
에크르아스 의회(5)
회의장은 커다란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층의 관람석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입장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반대로 나와 키르웬이 입장한 2층 관람석에는 1층에 비해 자리가 여유로웠다.
2층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분위기를 보아하니, 가진 직책에 따라 1층과 2층으로 구분해 놓은 듯했다.
키르웬은 금방 자리를 찾아 앉으며 나에게 속삭였다.
“죄송하지만 저 혼자 앉아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그냥 제 옆에 가만히 서 있으시면 됩니다. 곧 회의가 시작될 테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네.”
나는 키르웬을 보좌하듯 그의 자리 옆에 섰다. 정체를 숨기고 있는 상황에서 약간의 불편함으로 투정 부릴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면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대부분 언제 회의가 시작되는지에 관심을 가질 뿐,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2층 관람석 자리가 거의 채워졌을 때쯤.
큰 키의 천족 한명이 회의장 가운데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관람석 쪽을 둘러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숙! 모두 정숙해 주시길 바랍니다.”
관람석 쪽의 소란스러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회의 시작이 늦어진 만큼. 개회사, 출석 여부 확인, 사전 준비 등등. 본회의 전 절차는 생략될 예정입니다. 의원님들이 입장하시면 안건 확인을 빠르게 끝내 뒤, 곧바로 본회의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회의를 지켜보시는 분들은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남자는 짧게 안내사항을 전하고 회의장의 사회자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이어 에크르아스 의회의 의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그중에는 아크 심판관도 함께하고 있었다. 큰 사건을 일으킨 것 치고는 굉장히 평온한 모습이었다.
회의장에 들어선 의원들은 알아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사회자는 의원들의 착석을 확인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에크르아스 의회. 임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회의 전 절차는 생략하고. 빠르게 안건 확인을…….”
“잠깐!”
“……?”
앉아 있던 의원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늘 회의의 안건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지 않소?”
그러면서 그는 아크 심판관이 있는 쪽을 노려봤다.
“오늘 경비병을 공격하고, 신원이 불분명한 자를 의사당에 침입할 수 있도록 조력한 사람이 지금 의원석에 앉아 있소. 그 뻔뻔한 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소.”
-웅성웅성.
-웅성웅성.
노골적으로 아크 심판관을 노리는 발언에 관람석 쪽에서도 웅성거림이 커졌다.
의원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나타났다.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지지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인상을 찡그리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쪽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아크 심판관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허허, 레토 의원께서는 저에게 불만이 많으신 모양이구려.”
“개인적인 불만 같은 게 아니오. 오늘 당신이 저지른 만행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뿐이오!”
“경비병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을 뿐. 그들을 해할 목적은 전혀 없었소. 나는 회의에 꼭 필요한 참고인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었을 뿐이오.”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소. 그대가 경비병을 공격했다는 것과, 침입자를 도와줬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니까.”
레토란 이름을 가진 천족은 의원석 가운데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장에게 정식으로 건의하겠소. 임시 회의의 안건을 처리하기 전에. 먼저 아크 의원의 징계 위원회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옳소! 아무리 심판관 직책. 그리고 에크르아스 의회 소속이라 해도 오늘 있었던 일을 그냥 넘길 순 없소!”
“임시 회의의 안건도 중요한데. 징계 위원회를 여기서 진행하는 건 좀…….”
“절차상으로는 임시 회의를 먼저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의 중요도를 생각해 보면…….”
징계 위원회에 대한 나머지 의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으음…….”
가운데에 앉아 있던 의장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그때.
닫혀 있던 입구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경비대가 들이닥쳤다.
사회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경비대의 대장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회의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셨습니까?”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의사당 건물을 침입한 침입자와 관련해서 꼭 알려야 할 사안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비대 대장은 짧게 양해를 구한 다음, 뒤쪽 경비대원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경비대원들은 포박되어 있는 두 명의 천족을 데리고 회의장 쪽으로 나섰다.
바로 아슈미르와 우르키였다.
“아앗!”
“…….”
두 사람을 확인하자마자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비명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키르웬도 난감함을 드러내며 어두운 얼굴을 했다.
레토 의원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경비대 대장에게 물었다.
“침입자를 모두 잡아들인 것인가?”
“아직 아닙니다. 총 세 명의 침입자 중에 두 명만 잡아냈습니다. 마지막 침입자는 여기 회의장으로 숨어든 것 같습니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관람석 쪽이 크게 술렁거렸다. 몇몇은 당장 침입자를 잡아낼 기세로 주변을 샅샅이 살피기도 했다.
“…….”
경비대 대장은 매서운 눈빛으로 관람석을 살피더니, 뭔가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저벅, 저벅.
경비대 대장은 2층 관람석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걸어 나갔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정확히 우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키르웬 감시관님!”
“…….”
“감시관님이 머물던 대기실에서 침입자 중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해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옆에 계시는 분도 함께 소개해 주시면 좋겠군요.”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아…… 걸렸구나.
여기서는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키르웬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시현 님. 아무래도 제 예상보다 일찍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하시죠.”
“네?”
“모두의 이목을 잡아끄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 주인공의 등장은 화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펄럭!
“그 말 어디서 들어본…… 으악!!”
날개를 펼친 키르웬은 내 뒷덜미를 붙잡고 날아올랐다. 우리는 순식간에 조명이 달린 높은 천장까지 도달했다가 빠르게 아래로 하강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회의장 한가운데로 내려서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나를 붙잡은 키르웬의 억센 손길 때문에 다행히 엉덩방아를 찧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스르륵.
격한 움직임으로 내 머리를 덮고 있던 후드 모자가 흘러내렸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모두에게 드러났다.
“침입자다! 당장 체포해!”
“예!”
“예!”
나에게 달려드는 경비대원들 앞으로 키르웬이 막아섰다.
“물러나주시겠습니까? 이분은 아크 심판관님께서 모셔온 중요한 참고인이라서요.”
“키르웬 감시관님, 물러서십시오. 침입자의 체포를 방해하신다면 당신도 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이분을 체포하려면 먼저 저부터 넘어야 할 겁니다.”
키르웬과 경비대 대장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오갔다.
“그만!”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의장이 나섰다.
그는 경비대 대장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보내고 아크 심판관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아크 의원. 저 사람이 당신이 데려온 참고인이 맞소?”
“그렇소. 의회에 참석한 심판관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누구든 참고인으로 데려올 수 있소. 시현은 이번 임시 회의에 중요한 참고인이라 생각되어 데려온 거요.”
아크 심판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레토 의원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터무니없는 억지요. 신원도 확인되지 않은 자를, 그것도 무단으로 의사당에 침입한 범죄자를 참고인이랍시고 데려오다니!”
“이건 심판관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이요. 당신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소용없소.”
“저런 뻔뻔한…….”
부들부들 떨던 레토 의원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지금 당장 징계 위원회를 열어 저자의 심판관 직책을 박탈해야 하오.”
“레토 의원의 말이 옳소. 당장 징계 위원회를 열어야 하오!”
“심판관 직책의 중요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오? 이렇게 가볍게 논의할 문제가 아니오!”
각자의 의견이 쏟아져 나오면서 회의장은 완전 아수라장이 됐다. 관람석 쪽에서도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퍼져 나갔다.
“모두 조용!”
“…….”
“…….”
“에크르아스 의회에 소속된 의원으로서 경거망동한 행동은 자제하시오!”
의장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잠재웠다.
그는 찬찬히 의원들을 둘러보다가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아크 심판관과 닮은 듯한 심유한 눈동자로 나를 살폈다.
잠시 후.
의장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아크 의원의 참고인에 관한 주장은 합당하다고 생각되오. 비록 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켰을지라도, 심판관으로 가진 권한은 모두에게 존중받아야 하오.”
레토 의원을 비롯한 몇몇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의장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레토 의원의 말대로. 아크 의원이 저질렀던 일을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도 사실이오. 그래서 아크 의원?”
“말씀하시지요.”
“당신은 분명 이번 회의에 꼭 필요한 참고인을 데려왔다고 했었소.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모두에게 그 사실을 입증해 보일 수 있겠소?”
아크 심판관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시현을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요.”
대답을 들은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생각은 잘 알았소. 그럼 의회의 의장으로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요. 아크 의원이 데려온 참고인의 회의 참석을 인정하겠소. 하지만 여기 모인 의원들에게 참고인의 필요성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아크 의원이 오늘 있었던 소동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거요.”
의장은 아크 심판관에게 경고하듯 말을 마쳤다. 몇몇은 마뜩잖은 얼굴을 했지만, 의원 대부분이 의장의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비대원들과 키르웬 감시관은 물러나도록 하시오. 곧바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