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07화
에크르아스 의회(7)
내 앞에 생겨난 차원문을 통해 작은 요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꺄하하하!」
「어라? 여기는 농장이 아니잖아, 뾰!」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뾰?」
요정들은 처음 와보는 장소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덕분에 넓은 회의장이 순식간에 꽃향기로 가득해졌다.
“어엇?!”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처음으로 요정을 본 천족들은 당황해서 허둥지둥했다.
물론 요정들은 천족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구경을 하거나 장난을 쳤다.
“참고인! 이 작은 생명체들은 도대체??”
의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시현계로 이어지는 차원문만 열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있던 요정들이 넘어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네요.”
“요정? 그럼 이 요정이라는 작은 생명체들은 시현계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오?”
“원래는 요정계에서 지내던 친구들인데 균열 때문에 요정계가 큰 피해를 당하는 바람에……. 지금은 그곳을 떠나 시현계에서 지내고 있어요.”
“허어…….”
간단한 설명을 들은 의장은 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 멍한 눈동자로 내 앞에 생겨난 차원문과 요정들을 바라봤다. 시현계에 대한 증명을 해보라던 레토 의원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휴…… 실패하는 줄 알았네.
아슬아슬한 성공에 안도하는 동시에 깜짝 놀라는 천족들을 보며 살짝 뿌듯함을 느꼈다.
고비를 넘기고 안도하고 있던 나에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보게! 이 녀석들 좀 어떻게 해주게!”
의원석에 앉아 있던 의원 중 한 사람이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거기에는 신이 난 요정 두 명이 의원의 긴 턱수염을 마구 잡아당기고 있었다.
“얘들아! 처음 뵙는 분에게 이렇게 장난치면 안 돼!”
「왜애? 재밌게 놀고 있는 건데, 뾰!」
「맞아, 뾰!」
“그렇게 수염을 잡아당기면 큰 실례야. 빨리 수염에서 손 떼고 죄송하다 말씀드려.”
요정들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말한 대로 순순히 수염에서 물러났다.
「시현 말대로 할게, 뾰!」
「미안!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그런 거야, 뾰!」
“죄송합니다. 이 녀석들도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닐 거예요.”
“허헛. 괜찮소. 나도 조금 당황했을 뿐이라오.”
다행히 긴 턱수염을 가진 의원은 마음씨 좋은 얼굴로 우리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나는 더 큰 사고를 치기 전에 요정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하는 말은 잘 듣는 녀석들이라 금방 모여들었다.
“얘들아. 지금은 내가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거든? 다시 차원문을 타고 시현계로 돌아가 줄래?”
「벌써 돌아가기 싶은데, 뾰오…….」
「조금만 더 놀다가 가면 안돼, 뾰?」
“진짜 중요한 일 때문에 그래. 나중에 일 끝나면 잠깐이라도 다시 불러줄게.”
「그럼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뾰!」
「약속한 거야, 뾰!」
“응. 약속!”
나중에 다시 불러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요정들을 차례로 돌려보냈다.
마지막 요정이 차원문을 넘음과 동시에 차원문도 스르륵 사라졌다.
엄청난 존재감으로 회의장을 꽉 채우던 요정들. 그들이 다시 시현계로 돌아가자 회의장에는 잠시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짓던 천족들도 하나둘 제 모습을 되찾아갔다.
회의장에 다시 차분한 분위기가 되돌아왔을 때, 나는 의원석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시현계에 대한 증명이 되겠죠?”
“허…… 이거 참.”
“아크 의원의 말이 사실이었어.”
“끄응…….”
의원들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순수하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기도 했다.
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시현계의 존재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아크 심판관은 지금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나를 몰아세우던 레토 의원은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꽉 다물었다.
의장은 웅성거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장의 직책을 잠시 내려놓고 말하자면 참고인이 직접 보여준 능력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대의 능력은 창조의 영역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오. 우리가 절대 도달할 수 없었던 그 경지에 말이오.”
의원들 사이에서 깜짝 놀란 반응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창조의 영역!”
“어찌 평범한 인간이 그런 겅지에……?”
“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 않소?”
애써 부정하려는 의견에도 의장은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했다.
“안정적인 차원계를 구축한 것도 모자라 이미 그곳에 생명체가 정착했다는 걸 눈으로 보았소. 이것이 창조의 영역이 아니라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소?”
“허어…….”
“…….”
의장은 슬쩍 고개를 돌려 아크 심판관을 바라봤다.
“아크 의원이 확신에 차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 한 것도 이 때문일 거요. 안 그렇소?”
“허허허!”
아크 심판관은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의장과 모든 의원에게 충분한 대답이 된 듯했다.
-탕!
“잠깐!”
레토 의원이 가볍게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약간 거칠어 보이는 언행에 의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레토 의원, 갑자기 무슨 일이오?”
“저 인간이 새로운 차원계를 만들어 냈다는 건 인정하겠소. 하지만 아크 의원의 주장이 모두 입증된 건 아니오!”
“그게 무슨 뜻이요?”
“아크 의원은 저 인간이 차원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이라고 했소. 하지만 새로운 차원계를 만들어 내는 것과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오.”
“으음…….”
“확실히 그건 일리 있는 말이군.”
“새로운 차원계를 더 만들어 낸다고 해서 불균형이 완화되지는 않을 테지.”
의원들의 공감을 얻어낸 레토 의원은 기세를 올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늘 회의는 심각해진 차원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자리요. 경비병들을 억압하면서까지 참고인을 데려온 아크 의원은 좀 더 명확히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야 하오.”
그는 다시 한번 더 입증이 필요하다며 아크 심판관을 압박했다.
의장은 레토 의원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크 심판관을 바라봤다. 눈빛으로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는 듯했다.
시선을 받은 아크 심판관이 입을 열었다.
“시현은 이미 그에 관해 능력을 보인 적이 있소. 최근에 천족이 봉인에 어려움을 겪었던 균열을 시현이 직접 봉인에 성공했었소. 이것만으로도 그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거요.”
아크 심판관은 예전에 사장님과 외출했을 때 생겼던 일을 언급했다.
하지만 레토 의원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흥! 조금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지. 그 균열은 봉인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소. 좀 더 일찍 지원이 도착했더라면, 저자의 도움 없이도 금방 해결했을 거요.”
“그 자리에는 키르웬 감시관도 있었소. 고위 감시관도 봉인을 어려워했던 균열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니오?”
“내 생각은 변함없소. 수없이 오랜 시간 동안 차원의 균형을 수호해 온 우리가 평범한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주장이었소!”
-웅성웅성.
-웅성웅성.
아크 심판관과 레토 의원의 논쟁으로 회의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레토 의원 쪽을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쉽사리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의장이 손짓을 보내자 옆에 있던 사회자가 곧바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정숙해 주십시오!”
다시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 의장이 말했다.
“그럼 레토 의원이 말해보시오. 어떻게 하면 참고인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레토 의원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하더니, 뭔가를 떠올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확실한 방법이 있소. 이자리에서 ‘그것’마저 해내 보인다면, 나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요.”
그것?
뭘 하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토 의원의 얄미운 미소를 보니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라 하면…….”
레토 의원은 의장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의장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은?!”
“의장께서 허락해 준다면 지금 당장 준비해 오겠소.”
의장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좋소.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증명이 될 것으로 보이오.”
레토 의원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회의장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천족 병사에게 뭔가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지시한 것을 회의장으로 가져오게.”
“예!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병사들은 곧바로 회의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회의장을 나섰던 병사들이 아주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되돌아왔다.
병사들은 가져온 상자를 아주 조심스럽게 회의장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질의 상자는 딱 봐도 엄청 중요한 물건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팔을 쫙 펼쳐야 비슷할 것 같은 길이에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좁은 폭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상자의 내용물을 알 수 없으니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아크 심판관은 뭔가 눈치챈 듯한 모습이었다.
“참고인.”
“네?”
“지금 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은 천족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오. 그와 동시에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소.”
“…….”
“만약에 그대가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아마 이 상자 안의 물건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요.”
의장은 상자에 대한 설명 끝에 경고를 덧붙였다.
“하지만 섣불리 도전하지 않길 권하오. 많은 천족들이 이 물건 때문에 큰 피해를 보았소. 만약에 그대가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포기해도 좋소.”
설명을 마친 의장은 나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슬쩍 아크 심판관 쪽을 바라보니, 걱정과 우려가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범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관람석의 천족들과 의원들도 숨죽여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상자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의장은 내게 위험하다고 경고를 했지만, 정작 마음속에는 두려움보다 궁금증이 먼저 일어났다.
쩝! 이러면 어쩔 수 없나?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여기까지 와서 찝찝하게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결심을 내린 나는 의장에게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해볼게요. 상자 열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