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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10화 (410/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10화

집정관의 의무(1)

-와구! 우물우물.

나무그늘 아래 돗자리.

그곳에 아기 여우가 열심히 턱을 움직이며 양쪽 볼을 씰룩거렸다.녀석의 입가에는 떡고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맛있어?”

-우물. 이 떡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시루떡? 쫀득쫀득하고, 단팥이 고소해서 완전 맛있어!

여우신은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기분 좋게 살랑였다.

“그래. 맛있다니 다행이네.”

-조금만 더 따뜻할 때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것도 만들자마자 빠르게 배달받아서 곧바로 가져온 거야. 더 빠르게 먹으려면. 여기에 떡집을 하나 차려야 할걸?”

-오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인데? 당장 떡집을 만들자. 그럼 갓 만든 떡을 매일……!

“예예.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식기 전에 떡이나 얼른 먹어.”

나는 여우신의 헛소리를 막을 겸. 손수건을 꺼내 아기 여우의 지저분해진 입가를 닦아주었다. 녀석은 잠시 나를 째려보다가 다시 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이 떡귀신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떡을 가져다주고 있다.

떡집 몇 군데와 직접 계약을 맺고, 매일 갓 만든 떡을 배달받아 전해주고 있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천계에서 도움을 받았던 건 사실이었기에. 약속했던 대로 녀석의 요구조건을 성실히 이행했다.

벌써 3일.

나는 천계에서의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3일 전에 농장으로 돌아왔다. 경비병들에게 체포됐었던 아슈미르와 우르키도 다행히 함께였다.

농장으로 돌아온 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금방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농장과 영지를 관리하고, 농장 식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그런 일상.

그렇다고 완전히 예전과 똑같은 일상은 아니었다.

일단 내 손목에는 아직도 황금빛 팔찌가 생겨났고. 또 하나 달라진 점은…….

-털썩.

내 옆자리에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방문자를 확인해 보니,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사장님?”

“뭘 그렇게 놀라? 그건 그렇고. 이 녀석은 또 떡 먹고 있네.”

카네프는 힐긋 여우신 쪽을 살피더니 손을 뻗어 시루떡 한 덩이를 빠르게 낚아챘다.

-앗! 내 떡을?!

-아르르르!

여우신은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며 털을 빳빳하게 세웠다.

하지만 아기 여우의 모습을 한 탓에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고, 또 카네프는 어설픈 위협이 통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카네프는 시루떡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으음. 이것도 꽤 맛있네.”

“맛 괜찮으세요? 따로 챙겨드릴까요?”

“됐어. 나는 떡 중에서는 인절미가 제일 좋더라.”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인절미도 만들어 올게요. 그런데 사장님. 무슨 일로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내 물음에 카네프는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뭐가?”

“아니. 평소에는 밖에 잘 안 나오시잖아요. 오늘 날씨가 좋아서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겼을 리도 없고.”

방에서 뒹굴뒹굴하는 게 일과의 대부분인 걸 생각하면. 아주 당연하게 생길 의문이었다.

카네프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대답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싶었거든. 보기만 해도 아주 배가 부르고 흐뭇해지는 기분이야.”

“설마 사장님…… 저기서 일 돕고 계신 분들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맞는데? 아주 바람직한 모습 아냐?”

카네프의 얼굴에서 순수하게 기뻐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이런 걸 ‘순수악’이라고 표현하던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계속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열 명 정도 되는 천족들이 열심히 농장 일을 돕고 있었다.

농장의 두 번째 변화가 바로 저 천족들이었다.

내가 농장으로 돌아오고 이튿날.

무장한 천족 수십 명이 농장을 찾아왔다.

그들이 농장으로 찾아온 이유는 ‘임시 집정관’인 나를 보좌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임시 집정관이 됐다고 해도 굳이 천족의 보좌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수십 명이다 되는 인원이 머무를 장소도 부족했다.

하지만 내 거절에 천족들은…….

-아무리 임시라고 해도. 집정관의 직책을 가진 내가 보좌 한 명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천계의 모두가 또다시 집정관의 자리가 공석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정식으로 인정받을 집정관이 나타날 때까지 무조건 나를 보호해야 한다!

이런 이유를 차례로 언급하며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곁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말 오랫동안 집정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천족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원해서 임시 집정관이 된 건 아니지만, 일단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만큼 그들의 제안을 무조건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을 하기로 했다.

찾아온 수십 명을 전부 머무르게 할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여기에 남게 된 인원이 열 명.

아슈미르에게 듣기로는 모두가 감시관, 집행관 출신의 아주 뛰어난 인재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의 뛰어난 재능은 농장의 잡일과 단순 노동에 고스란히 이용되는 중이었다.

“마계 농장에서 천족들을 노예로 부리는 날이 찾아올 줄이야. 지금까지 네가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것 같아.”

“저기, 죄송한데요. 사장님. 저분들은 노예가 아니라 저를 도와주러 오신 분들입니다만?”

“그게 그거 아냐? 네 손목에 있는 그 팔찌만 내밀면 무슨 명령이든 따라야 한다며?”

“…….”

아니…… 뭐…….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카네프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마왕성에 보내는 보고서에 상세히 기록해 뒀어. 시현이 천족 노예 열 명을 데려와 열심히 일시키는 중이라고.”

“으아! 이상한 말 좀 보고서에 적지 마세요! 노예라는 말도 금지예요!”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쟤네들도다 부려먹는 중인데.”

“도대체 누가…….”

“저기 천족분들. 빨래 너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내가 만든 아티팩트 테스트 협조 좀 해줘. 천족에게도 똑같이 아티팩트가 통하는지 궁금하거든.”

“제가 알려준 대로 해주세요. 흠흠, 이래 봬도 제가 시현 선배랑 가장 많이 일했거든요.”

“천족 아저씨! 천족 아저씨! 나 펄럭펄럭 해줘. 펄럭펄럭!”

카네프의 말대로.

농장 식구들은 자연스럽게 천족에게 일을 부탁하고 있었다. 심지어 은율이도 놀아달라고 천족의 손을 잡아당겼다.

“임시 집정관님.”

우르키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지시하신 일 다 끝냈어요.”

“고생했어. 그리고 집정관이라고 어렵게 안 불러도 돼. 옛날처럼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헉! 저 같은 견습 감시관이 어떻게 집정관님의 성함을…….”

“괜찮으니까 편하게 불러. 그리고 점심 식사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저분들이랑 같이 쉬어.”

“아뇨. 그럴 수는 없죠! 임시 집정관님께서 명령을 내릴 때까지 다른 분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을게요.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우르키는 절도있게 대답한 다음 천족들이 있는 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의 군기가 바짝 든 모습에 카네프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끼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집정관 직책을 얻은 것 때문에 우르키는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원래도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사명감에 불타올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조금 재밌는 점은.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아슈미르도 은근히 어깨가 올라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도 우르키처럼 나를 꼬박꼬박 ‘집정관’이라고 불렀으며. 이번에 새로 합류한 천족들에게 나의 대단함을 알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아슈미르와 우르키의 시선에는 예전과는 다르게 존경심이 가득했다. 같은 농장 식구인 두 사람에게 그런 눈빛을 받는 다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끄응…….

이걸 되돌릴 수도 없고…….

물론 아직은 적응하는 단계겠지만, 평온했던 농장 생활이 조금 어색해진 느낌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평온함을 되찾기 위해.

조만간 날을 잡아서 천족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호칭이나 명령체계에 관한 교통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점심식사가 끝나고.

나는 배도 꺼뜨릴 겸 은율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천족들이 호위를 하겠다며 우르르 따라붙었다. 딸과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기 싫었던 나는 2명 정도만 멀리서 따라오라고 말했다.

“아빠, 아빠! 아까 천족 아저씨가 펄럭펄럭 해줬어.”

은율이는 양팔을 날개처럼 흔들며 천족의 날갯짓을 흉내 냈다.

한때는 은율이가 천족을 무서워하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적응해 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처줬다.

“펄럭펄럭 재밌었어?”

“응! 천족 아저씨가 내가 부탁하면 언제든지 펄럭펄럭 해준다고 그랬어.”

“그래도 천족 아저씨들 너무 귀찮게 하면 안 돼. 아저씨들도 힘들 테니까.”

“알았어. 그럼 조금만 펄럭펄럭 해달라고 그럴게. 헤헷!”

나는 웃으며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렇게 짧은 산책을 끝내고 다시 농장으로 돌어가려던 그때.

-펄럭펄럭!

머리 위에서 커다란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서 세 명의 천족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고도를 낮춰 땅으로 내려섰다.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반갑게 외쳤다.

“키르웬 감시관님!”

“안녕하십니까? 임시 집정관님.”

키르웬 감시관도 반가운 얼굴로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마계는 처음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요.”

“먼 곳까지 무슨 일이세요?”

“따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본론부터 빠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천계에서 집정관님께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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