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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11화 (41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11화

집정관의 의무(2)

“저한테 임무요?”

“임무?”

나는 어리둥절하며 키르웬에게 되물었고, 옆에 있던 은율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네. 조만간 지구에서 상당한 규모의 균열이 발생할 예정입니다. 지난번처럼 저희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것 같아서요. 미리 집정관님께 도움을 요청하려 찾아왔습니다.”

“그래요? 언제 그 균열이 발생하는데요?”

“지구의 시간을 기준으로. 내일 정오쯤으로 예상합니다.”

“으음.”

내가 어정쩡한 반응을 보이자 키르웬은 곧바로 염려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혹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으십니까?”

“아뇨.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벌써 이렇게 일을 맡기실 줄은 전혀 예상 못 했거든요. 임시 집정관으로 임명되긴 했지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거든요.”

옆에 있던 은율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 집정관이 뭔지 알아. 아슈미르 언니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랬어. 그래서 천족 아저씨들은 다 아빠 말대로 해야 한대.”

은율이는 집정관에 대해 들었던 것을 이야기하며 작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마도 내가 대단한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치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는 잘 몰라도, 직장에서 승진했다고 하면 자식들이 뿌듯해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잘했다는 듯이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키르웬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옆에 있는 아이가 시현 님의 따님이신가 보군요.”

“네. 맞아요. 은율이라고 해요.”

“듣던 대로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군요.”

칭찬을 들으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팔불출처럼 보일지라도, 은율이에 대한 칭찬이 기분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뒤늦게 자신의 일을 떠올린 키르웬은 짧게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크흠. 다시 임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시현 님이 당황스러워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임무를 지정한 에크르아스 의회에서도 그 부분을 염려하기도 했고요.”

그는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천계의 상황을 대변했다.

“시현 님은 잘 모르실 겁니다. 새로운 집정관이 임명되고, 요 며칠 사이에 천계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새로운 집정관에 대해 반대하는 쪽 의견이 적지 않았거든요.”

나는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천족에게 가장 중요한 직책을 갑자기 이계의 인간이 꿰찼으니까요.”

만약에 마왕성에서 카네프를 대신해 갑자기 새로운 책임자를 임명한다면. 농장 식구들은 당연히 기분이 나빠…… 기분이…… 으음…….

나빠하겠지?

아무튼!

천계에서 그런 반발이 생겨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아크 심판관님을 중심으로 해서 시현 님을 옹호하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만.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조금은 급하게 임무가 부여된 것 같습니다.”

“으음…… 한마디로 직접 증명해 보이라는 거네요?”

“그게 논란을 잠재울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니까요. 물론 방금 말씀드린 건 부차적인 이유고. 거대 균열의 잠재적 위험성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설명을 마친 키르웬은 조금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살폈다. 혹시 내가 임무를 거절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나는 키르웬의 얼굴이 더 굳어지기 전에 체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아크 심판관님이랑 약속한 것도 있고. 또 그렇게 중요한 일을 모른 척할 수도 없으니까요.”

키르웬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감사합니다. 아크 심판관님은 물론이고 천계에 많은 이들이 시현 님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내일 오전. 시간에 맞춰서 저희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시현 님이 집정관으로 행하실 수 있는 권한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가진 권한이요?”

* * *

임무에 대해 알린 키르웬은 곧바로 되돌아갔다.

안으로 초대해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었지만, 그는 아직 중요한 일들이 남아 있다며 초대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바빠 보이는 그를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약간의 휴식시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농장 식구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다행히 모두 바쁜 일과가 없어서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많은 사람이 모인 만큼 조금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뭔가를 눈치챈 안드라스가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크흠! 큼.”

“아유! 깜짝이야! 오라버니, 갑자기 왜 그렇게 크게 기침을 해!”

그는 여동생의 타박을 대충 흘려 넘기며, 반대편에 앉아 있던 나에게 말을 건넸다.

“시현 님.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정확히 속내를 읽힌 것같아 어색하게 웃었다.

“하핫.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가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안드라스는 약간의 뿌듯함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나도 기분 좋은 끈끈함이 느껴져 흐뭇하게 웃으…….

“이 녀석이 너무 순진해서 그래. 생각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잖아. 사기꾼이 딱 좋아할 만한 유형이라니까.”

“…….”

카네프의 얄미운 목소리에 내 얼굴에 반쯤 그려진 미소가 그대로 일그러졌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 망설임 없이 찬물을 끼얹는 것도 참 대단해 보였다.

“뭐야? 맛있는 디저트 같이 먹으려고 모이라 한 거 아니었어? 히잉.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도…….”

릴리아와 엘프리드가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평소에 점심 식사가 끝난 뒤에 맛있는 디저트를 나눠 먹는 경우가 많아서 오해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리아네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뇨. 걱정하실 만한 일은 아니고요. 천계에 갔을 때 큰 도움을 받았던 분이 있는데. 아까 은율이랑 산책을 하는 도중에 만났어요. 키르웬 감시관이라는 분인데…….”

“키르웬 감시관님?!”

“키르웬 감시관님이 오셨습니까?”

아슈미르와 우르키가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나는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진정하세요. 키르웬 님은 일이 바쁘셔서 금방 돌아가셨어요. 중요한 이야기만 간략하게 해드리면…….”

농장 식구들에게 내일 일어날 대규모 균열 현상과 집정관의 임무에 대해 말해줬다. 딱히 복잡한 이야기는 없어서 설명은 금방 끝났다.

“……그래서 제가 임시 집정관으로서 임무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아마 내일 키르웬 감시관님과 함께 균열 문제를 해결하러 가야 할 것 같아요.”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임무라…….”

가장 먼저 카네프가 볼멘 목소리를 냈다.

“어쩐지 그 자존심 강한 천족들이 말 잘 듣는 노예를 보내주고. 거창한 직책을 주는 것처럼 하더라니. 결국은 시현을 이렇게 부려먹으려는 속셈이었구먼!”

“노예가 아니라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라니까……. 그리고 뭘 또 부려먹어요. 균열 문제는 천계뿐만 아니라, 마계와 지구 쪽에서도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잖아요.”

“말만 번드르르한 게 얄미워서 그러지. 집정관이 그렇게 대단한 직책이라면 너에게 임무를 던져주는 게 아니라, 전부 찾아와서 간절하게 요청해야지!”

그의 불평에 다른 농장 식구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카네프 아저씨 말이 맞아! 시현 오라버니가 너무 착해서 쉽게 부탁을 들어줘서 그래.”

“맞아요. 시현 선배가 얼마나 바쁜데. 당장 거절해 버리죠!”

“…….”

“…….”

그렇게 농장 식구들이 불만을 쏟아낼 때마다, 아슈미르와 우르키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안드라스와 리아네는 두 천족이 안쓰러웠는지 추가로 불만을 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천계에서 내려온 임무에 대해 긍정적인 건 아닌듯했다.

“시현 님…….”

“집정관 님…….”

아슈미르와 우르키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의 첫 번째 집정관 임무를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을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조용히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실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애초에 내가 임시 집정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유일하게 은율이만 그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농장 식구들은 오히려 내가 천족들과 긴밀한 연관성이 생기는 걸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였다.

나를 천족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 싫어하는 느낌?

팔이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도 농장 식구들의 편에 서서 기분을 맞춰주고 싶지만, 균열의 심각한 상황과 차원의 균형이라는 대의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모두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괜히 천족이 얄미워 투정을 부리는듯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 개성 넘치는 마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완벽히 입지를 다진 의지의 한국인이다.

나는 아쉬운 척 연기를 하며 미리 생각해 뒀던 대사를 입으로 내뱉었다.

“이렇게 모두가 반대할 줄은 몰랐네요. 여기 있는 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

“시현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이야?”

“키르웬 감시관님이 임무에 관한 이야기 말고 집정관의 권한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거든. 집정관은 자신을 수행할 인원을 마음대로 지정할 수 있는데. 그 수행 인원이 굳이 천족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네?”

“……?”

“……?”

“……아!”

모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가장 머리회전이 빠른 안드라스가 뭔가를 눈치채고 반응을 보였다.

“서, 설마. 저희도 그 임무에 참여할 수 있는 겁니까?”

“네. 제가 집정관이니까요. 물론 천계 쪽에서도 인원을 보내주겠지만요.”

“그럼 혹시 임무가 끝난 뒤에는……?”

“임무가 끝나면 쉬어야죠. 요즘 막바지 꽃놀이가 유행이라던데. 꽃놀이를 하러 가도 되겠죠?”

“그, 그래도 되는 겁니까?”

“누가 뭐라 그래요? 내가 집정관인데?”

“…….”

“근데 아쉽네요. 여기 있는 모두가 임무에 부정적인 것 같으니. 꽃놀이는 물 건너갔네요.”

순간 농장 식구들의 눈동자가 크게 번쩍였다.

분위기가 뒤집히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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