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13화
집정관의 의무(4)
임무에 참가할 인원이 정해졌다.
사실 꽃놀이 참가자라 해도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나와 리아네, 카네프, 엘프리드.
그리고 제비뽑기의 결과대로라면 우르키가 합류해야 하는데.
-집정관님의 첫 임무에는 저같이 어리숙한 녀석보다는 아슈미르 감시관님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며 자리를 양보했다.
처음에 아슈미르는 그 제안을 거절하려 했으나, 우르키가 꿋꿋하게 양보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마지못해 제안을 수락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슈나르페 남매 중에서는 안드라스가 당첨 막대기를 뽑았고 임무에 합류하게 됐다.
다섯 명의 참가자를 제외하고 릴리아와 우르키가 농장에 남게 됐다.
잔뜩 심통이 난 릴리아를 달래기 위해 한참 동안 나와 리아네가 위로를 해야 했고, 우르키는 농장일은 걱정하지 말라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임무 인원이 정해지는 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왔다.
“아빠! 나도 꽃놀이 갈래!”
「꽃놀이에 요정이 빠지다니! 말도 안 된다, 뾰!」
-무우우! 무우!
은율이를 필두로 오랜만에 모인 삼총사들이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아. 꽃놀이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릴리아 언니가 말해주던데? 자기만 꽃놀이 못 가게 됐다고 엄청 불평했어.”
“쓰읍. 그 이야기는 왜 해서…….”
임무에 참여하는 농장 식구들이 꽃놀이를 기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엄연히 중요한 임무를 위해 떠나는 일이었다. 아이들까지 데려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됐다.
“얘들아. 나랑 다른 사람들은 중요한 일 때문에 가는거야.”
“꽃놀이는 안 해?”
“그, 그게…… 꽃놀이를 안 하는 건 아닌데…….”
“그럼 나도 꽃놀이 갈거야!”
「꽃놀이! 꽃놀이! 뾰!」
-무우우! 무우우!
은율이, 규리, 아꿍이는 힘껏 나한테 들러붙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삐이익! 삐익!
-삐익!
-뀨우! 뀨우!
아기 그리핀들과 신수 슈슈도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울음소리를 냈다. 자기들도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아기 마수들과 요정, 신수에 둘러싸이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행복한 표정으로 녀석들을 쓰다듬어줬을 텐데, 지금은 이 녀석들을 어떻게 진정시킬지 난감할 뿐이었다.
그때.
「모두 떼쓰는 건 그만 둬라냥.」
커다란 고양이 치즈가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냈다.
「시현이 곤란해한다냥.」
-무우…….
-삐이…….
치즈의 말에 아이들은 떼쓰는 것을 멈추고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렇게 난리를 부리던 녀석들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나는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단한데?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네 말을 잘 듣게 된거야?”
「킁! 너무 위협을 주지 않는 선에서 서열을 정리했을 뿐이다냥.」
“서열정리?”
「그렇다냥. 안 그랬으면 저 작은 악마들이 온종일 나를 괴롭혔을거다냥.」
치즈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음음.
이해하지 저 마음.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 사랑스러움 뒤에 흘러넘치는 에너지는 그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산책시키는 일도 농장 식구들에게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일 정도였다.
특히 집에서 계속 뒹굴뒹굴하는 게 일과인 치즈는 아이들에게 더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작은 악마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서열정리.
그렇다고 치즈가 아이들을 억압한 건 아니었다.
농장 식구들이 바쁠 때는 치즈가 아이들을 전부 돌봐줬다고 할 정도로 잘 챙겨줬다.
아!
물론 모두가 치즈에게 서열정리 된 건 아니었다.
“우으으. 치즈는 내 편 안 들어줄 거야?”
「끄응…….」
은율이가 서운한 표정으로 말하자 치즈는 난감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치즈라고 해도. 농장의 사실상 서열 1위, 은율이를 당해낼 순 없었다.
「웬만하면 아이들도 함께 데려가는 게 어떻냥?」
“어? 말려주는 거 아니었어?”
「떼를 쓰지 못하게 말려준 거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한 건 아니었다냥.」
치즈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네가 요즘에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는 바람에 여기 있는 아이들이 많이 외로워했다냥. 오늘 이렇게 떼를 쓰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냥.」
“음…….”
「정말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데리고 가줘라냥. 필요하다면 아이들이 너무 날뛰지 못하게 나도 도와주겠다냥」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치즈의 말대로 최근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잠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너희들도 같이 가자.”
“와아아!”
「우리도 꽃놀이 간다, 뾰!」
아이들은 환호성과 기쁨의 울음소리를 내며 방방 뛰었다.
“대신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야 돼? 마음대로 막 행동하면 바로 돌려보낼 거야!”
-무우우!
-삐익!
-뀨우!
어휴!
이럴 때만 대답 잘하지.
아이들의 초롱초롱해진 눈동자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치즈도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치즈야.”
「……?」
“설마 네가 꽃놀이 가고 싶어서 애들 핑계 댄 거 아니지?”
「…….」
“…….”
「……냐아앙!」
치즈는 나른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내 눈빛을 피해 도망쳐 버렸다.
나는 당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더 헛웃음을 터뜨렸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농장 식구들은 바쁘게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원래는 키르웬 감시관이 나를 데리러 오는 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함께 하는 인원이 늘어난 바람에 좀 더 일찍 움직이기로 했다.
각자 자신의 짐을 챙기고.
엘프리드는 그리, 피니를 양쪽 옆구리에, 아슈미르는 슈슈를 가슴에 껴안았고.
나는 아꿍이를 안아 들었다.
은율이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리아네의 손을 잡았고, 그 옆에는 규리를 등위에 태운 치즈가 어슬렁어슬렁 출발을 기다렸다.
하하.
어쩌다 보니 대가족의 소풍같은 광경이 되어버렸네.
위험한 임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잘 다녀오세요!”
“맛있는 거 많이 사와!”
우리는 우르키와 릴리아의 배웅을 받으며 농장을 나섰다. 설레는 표정의 일행은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잠시 후.
차원문을 통과한 우리는 오묘한 표정의 발레리안을 만날 수 있었다.
“잘 지냈냐?”
“안녕하세요, 발레리안 님.”
“오랜만에 뵙네요.”
-삐이익!
-무우! 무우!
조용했던 사무실 안은 금방 인사 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의 발레리안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시현 씨. 정말로 전부 다 데리고 나오셨네요?”
“어쩌다 보니…….”
그는 완전 질려 버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여기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 전혀 몰랐네요. 이제는 놀랍다는 말도 안 나올 정도예요.”
“리안 씨. 매번 신경 써주시는 분에게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하하하!”
발레리안은 대답대신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비좁게 느껴지는 사무실을 떠나, 건물 아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모두가 넉넉하게 탈 수 있는 미니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 이 버스 리안 씨가 준비해 주신 거예요?”
“네. 일반 차량으로는 모두 함께 이동하기 힘들 것 같아서 급하게 구했습니다. 운전해 주실 분도 따로 고용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라인 씨는 믿음직스럽니까.
나는 발레리안의 철저한 준비성에 또다시 든듬함을 느꼈다.
미니버스가 신기한 듯 구경하던 일행이 한 명씩 차량에 탑승했다.
운전석에 있던 버스 기사님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안전벨트 매주세요. 출발하겠습니다.”
기사님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미니버스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창문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시의 풍경이 보이면서, 분위기는 다시 한번 시끌벅적해졌다.
처음 도시를 구경하는 엘프리드와 몇몇 아이들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머지 일행들도 관광을 온 것처럼 즐거워했다.
“목말라? 물 챙겨줄까? 잠깐만…… 어! 거기 그리랑 피니! 창밖으로 날개 내밀면 안 돼! 엘린 너도 너무 창밖으로 얼굴 내밀지 마.”
나는 인솔교사가 된 것처럼 일행의 행동을 하나하나 살폈다.
수학여행 때 선생님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던 게 약간은 공감되는 것 같았다.
* * *
미니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조금은 한산한 거리를 지나 익숙한 건물 앞에 버스가 멈춰 섰다.
가장 먼저 버스에서 내린 은율이가 어디론가 뛰어갔다.
“할머니!”
“우리 강아지!”
은율이는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던 어머니를 발견하고 와락 안겨들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손녀를 이리저리 살피며 기쁨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세요?”
농장 식구들도 차례로 버스에서 내려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어머니는 품에 안고 있던 은율이를 내려주며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어머!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여기 예쁜 아가씨가 리아네. 듬직한 안드라스 씨. 시현이가 항상 일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는 엘린 후배. 그리고 항상 고마운 카네프 사장님 맞죠?”
어머니 입에서 농장 식구들의 이름이 척척 튀어나왔다.
차례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농장 식구들은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우우! 무!
-뀨우!
「우리도 왔다, 뾰!」
“귀여운 아기들도 왔구나. 할머니 집에 오랜만에 왔네?”
이어서 아기 그리핀들과 치즈도 어머니와 첫 만남을 가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기 그리핀들은 처음 보는 어머니를 아주 잘 따랐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우리 집안에는 아기 마수들을 이끄는 뭔가가 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