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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14화 (41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14화

집정관의 의무(5)

어머니는 아이들을 챙기고,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지만 오랜만에 북적이는 분위기가 좋으셨는지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구석에서 조용히 기회를 엿보던 아슈미르도 틈을 봐서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도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으음. 농장에서 일하는 분이세요?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옆에 있던 내가 나서서 아슈미르를 소개했다.

“천족 아슈미르 씨야. 원래는 감시관으로 활동하시던 분인데. 지금은 우리 농장에서 도움을 주고 계셔.”

“아! 기억났어요. 잠시 이 아이가 우리 집에 머물렀을 때 찾아오셨던 분이죠?”

-뀨우?

어머니는 예전에 기억을 떠올리며 신수 슈슈를 안아 들었다. 아슈미르는 표정을 밝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때 함께 찾아뵀었던 우르키 견습 감시관도 지금은 시현 님의 농장 일을 돕고 있습니다.”

“어머! 그래요? 천족의 감시관이라면 굉장히 높으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부족한 우리 아들이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어머니가 호호 웃으며 하는 말에 아슈미르는 화들짝 놀라며 양손을 내저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시현 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호호, 그런가요?”

“어머니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집정관은 천족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런 분의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음? 집정관?”

아슈미르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집정관의 대단함을 강조했지만, 정작 어머니는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집정관으로 임명됐다는 이야기를 안 했으니까.

나는 슬쩍 끼어들며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돌렸다.

“으흠. 엄마. 우리가 일정이 좀 빠듯해서. 인사는 더 길게 못 할 것 같아.”

“그럼 얼른 가야지!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 어제 말했던 대로 아이들만 잠깐 돌봐주면 되는 거지?”

“응. 리아네 씨가 남아서 엄마 도와줄 거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리아네가 환하게 웃으며 어머니 옆에 찰싹 붙었다.

“어머니. 어머니도 나중에 같이 꽃놀이 가요.”

“호호. 나는 됐어. 젊은 사람들 노는데 낄 정도로 눈치 없지는 않거든.”

“같이 가시면 좋을 텐데…….”

“나는 이미 산책 다니면서 꽃구경 실컷 했어.”

어머니는 아쉬워하는 리아네를 달랜 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대신 엄마랑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응. 알았어.”

어머니와 한 약속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잠은 꼭 집에서 자고, 다음 날은 온전히 손녀와 함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였다.

“꽃놀이에 필요한 것들이랑, 도시락은 내가 준비해 줄 테니까. 얼른 다녀와.”

“고마워, 엄마. 그럼 다녀올게. 아이들 좀 잘 부탁드릴게요, 리아네 씨.”

“걱정마세요, 시현 님.”

나는 어머니와 리아네에게 인사를 한 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하나씩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야 해. 말썽 피우는 녀석은 꽃놀이에 안 데리고 갈 거야?”

“응. 알았어. 할머니랑 리아네 언니 말 잘 듣고 있을게!”

「걱정하지 마라, 뾰!」

-무우우!

-삐익!

-삐익!

-뀨우우!

어이구!

항상 대답은 잘해요.

“치즈 부탁해.”

거대한 치즈 냥이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흐아아암! 이 사람 말만 잘 들으면 되는 거 아니냥?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라냥.」

그러면서 치즈는 어머니 옆에 착 달라붙어 살살 애교를 부렸다.

누가 보면 한 십 년 정도는 우리 집에서 키운 고양이인 줄 알겠네…….

“시현 씨.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합니다.”

“네네. 갈게요.”

나는 손을 흔들며 농장 식구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출발하는 버스 창문 너머로 아이들을 이끄는 어머니와 리아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유치원의 인자한 원장 선생님과 풋풋한 신입 선생님 같아 보여 슬며시 웃음이 났다.

* * *

전례 없는 규모의 균열 발생.

혼란을 막기 위해 뉴스와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지 않은 만큼, 일반 시민들은 지금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 중이지만.

자세한 정보를 아는 업계 종사자와 정부 관계자들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중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균열 발생 빈도나 그 강도가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 갑자기 한국에서 발생한 재난급 균열.

주변 국가와 국제기구에 직접적인 지원 요청을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일단은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는 선에서 그치기로 했다.

정부가 소집한 비상대책회의에서 유력한 길드 대표들과 오랜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균열 발생 예정지에는 이미 많은 군, 경 인력이 투입되어 주변 통제에 나섰고. 정부, 길드 관계자들도 일찍 현장에 나와 지속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모두가 긴장 속에 균열을 대비하는 그때.

균열 발생 예정지로 향하는 한 버스에서도 심각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중이었다.

“여러분 잘 들어주십시오. 심각한 상황입니다.”

안드라스는 진지한 얼굴로 버스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저희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천하의 안드라스가 어떻게 된 거야?”

카네프가 질책하듯 소리쳤다. 안드라스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급하게 준비하느라 이런 문제가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조금 더 확실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안드라스 선배!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요? 설마 완전히 불가능한 거예요?”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아…….”

아슈미르가 손을 번쩍 들며 또 다른 가능성을 언급했다.

“천족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성이 더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변수가 될 수 있겠군요.”

“끄응…… 천족과 손을 맞춰야 한다니.”

“카네프 님. 지금은 비상사태입니다. 저희만으로 부족하다면 천족의 힘이라도 빌려야 합니다.”

나와 발레리안은 오묘한 표정으로 버스 안 사람들을 바라봤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주제는…….

“아무튼! 어떻게든 빨리 일을 끝내야 합니다. 그래야 18시까지 개장하는 축제에 넉넉히 입장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후 18:00까지 개장하는 꽃축제에 최대한 빨리 입장하기’였으니까.

농장 식구들에게 ‘전례 없는 규모의 균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빨리 일을 해치우고 놀러 갈 생각뿐이었다.

카네프는 초조한 듯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중얼댔다.

“으으. 꽃놀이 가기 전에 맥주도 직접 고르러 갈 생각이었는데…….”

“저기 사장님. 내일도 시간이 있으니까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 없어요.”

“어헛! 시현 실망스러워. 내일도 시간이 있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꽃놀이에 가려 했다니. 나는 진심이라고!”

“…….”

아니 농장일할 때 그렇게 진심으로 해보시지…….

쓸데없이 진지한 카네프를 보며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유일하게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발레리안이 씁쓸한 표정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저, 저기…….”

그때.

조용히 운전에 집중하던 기사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이쪽이 맞는 건가요? 뭔가 경찰이랑 군인이 잔뜩 있는데.”

“아! 맞습니다. 기사님. 신경 쓰지 마시고 쭉 들어가 주세요.”

아무래도 균열 예정지 근처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버스는 임시 주차장으로 만들어진 공터에 들어가 멈췄다.

기사님에게 일이 끝날 때까지 대기해 달라 부탁한 뒤, 우리는 차례대로 버스에서 하차했다.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주변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확 쏠렸다.

마족의 상징인 뿔은 숨겼지만,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는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었다.

따가운 시선에 엘프리드만 조금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찬찬히 주변을 구경할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어엇? 아저씨?”

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빠르게 달려왔다.

“진짜 아저씨 맞네?”

“아, 태호구나. 오랜만이야.”

내가 소속된 가디언즈 길드.

지금은 거의 이름만 올려놓은 수준이지만…… 아무튼, 그곳의 몇 없는 인연 중 하나인 정태호였다.

정태호는 소년의 모습에서 벗어나 성숙해진 모습으로, 여전히 씩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며 반가움을 전했다.

“야, 야! 여기 봐봐. 아저씨도 왔어.”

정태호는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또 다른 인연 윤세희가 쪼르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세희도 오랜만이네. 둘 다 잘 지냈어? 또 맨날 티격태격하면서 싸우는 건 아니지?”

나는 어린 조카들을 만난 것처럼 안부 인사를 건넸다. 정태호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가 애도 아니고…….”

“얘가 멍청한 짓만 안 하면 안 싸워요.”

“뭐어? 내가 언제 멍청한 짓을 했다고 그래?”

“언제 그러긴. 저번 임무 때만 해도 장비 챙기는 걸 깜빡해서 내가 대신 챙겨줬잖아.”

“그, 그건 진짜 한번 실수한 것뿐이야.”

“하하하하!”

여전한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기분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아저씨.”

“왜 세희야?”

“저기 뒤에 계신분들은 누구세요?”

“아…….”

윤세희의 질문에 내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정태호는 뒤에 있던 아슈미르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아아! 저분! 예전에 신수를 찾던 천족 맞지?”

“어? 정말이네?”

두 사람은 어떻게 된 거지 빨리 말해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재촉했다. 어느 정도 내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었기에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기로 했다.

“이분들은 내가 일하는 농장에서 오신 분들이야.”

“아저씨가 일하는 농장이라면……?”

“설마……?!”

“맞아. 멀리서 오신 분들이지.”

내 말뜻을 이해한 정태호와 윤세희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농장 식구들을 바라봤다. 그렇게 적당히 설명하고 넘어가려는데.

-휘이이익!

-휘이이익!

하늘에서 바람을 가르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수많은 천족이 내 앞에 내려섰다.

갑자기 등장한 천족들에 정태호와 윤세희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천족들은 주변 시선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한 치의 주저 없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집정관님을 뵙습니다.”

“집정관님을 뵙습니다.”

우리 쪽에 향해 있던 시선이 모두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태호와 윤세희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난감한 상황에 볼을 긁적거렸다.

아…….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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