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16화 (41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16화

균열과 꽃놀이(2)

서예린이 내 일행들과 한창 인사를 나누던 그때.

-우우우우웅!!

주변에 강력한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균열 발생의 전조증상은 이미 여러 번 겪어보았지만, 이렇게까지 강력한 반응은 처음이었다.

그 누구보다 경험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서예린의 얼굴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장난기 하나 없는 말투로 나직하게 말했다.

“시현아, 이제 가 봐야 할 것 같아.”

“응. 얼른 가 봐.”

“절대 무리하지 말고. 저 마족, 천족 아저씨들 뒤에 꼭꼭 숨어 있어.”

“너도 몸 조심해.”

우리는 작게 미소 지으며 서로의 평안을 기도했다. 서예린이 빠른 걸음으로 떠나가고. 나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드에 소속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인원과 장비를 점검했고, 주변을 통제하기 위해 동원된 인원들도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심상치 않은 전조 반응에 모두가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콰직! 콰지직!

-끼이이이익!

공간이 뒤틀리며 기괴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본격적으로 균열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변에 기분 나쁜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미 예상됐던 것처럼.

균열은 계속해서 그 크기를 늘려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었다. 채 몇 분이 흐르기도 전에 눈앞의 균열은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크게 자라났다.

“꿀꺽…….”

엘프리드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균열을 응시했다.

“대단히 큰 규모라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자라날 줄이야…….”

안드라스는 균열을 살피며 우려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건 키르웬과 아슈미르도 마찬가지였다.

균열이 내뿜는 압박감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이 정도의 압박감 속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이번에는 제대로 몸 풀 수 있겠는데?”

“…….”

“시현. 저 균열만 제대로 처리하면 바로 꽃놀이 갈 수 있는 거지? 아! 그리고 꽃놀이 가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맥주 사가야 해.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하고 있어.”

유일하게 눈앞에 균열보다는 꽃놀이 맥주를 걱정하고 있는 한 사람. 카네프는 나중에 고를 맥주를 생각하면서 히죽 웃음 지었다.

아직 카네프를 잘 모르는 키르웬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 나머지 농장 식구들은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카네프의 모습에 오늘만큼은 왠지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거대 균열 제거를 위해 모인 토벌대가 진입을 시작했다.

“대열을 맞춰!”

“갑자기 전투가 시작돼도 당황하지 않도록, 모두 각자 위치 제대로 확인해!”

“거기!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균열에 진입하는 절차부터 이곳저곳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많은 길드에서 갑자기 인원들을 모으다 보니, 지휘 체계 정리가 쉽지 않은 탓이었다.

원래라면 내가 천족들을 지휘해야겠지만, 훨씬 경험이 많은 키르웬에게 지휘권을 양도했다. 지휘권을 받은 키르웬은 알아서 천족들을 잘 통솔해 전투를 준비했다.

농장 식구들은 뭐…….

딱히 지시를 들을 생각도, 내릴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균열 입장이 끝나자마자 모인 인원들은 균열 내부로 진입을 시도했다.

내부는 커다랗게 깨진 돌이 가득한 생기를 찾을 수 없는 황폐한 환경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배경은 아니지만, 나무와 풀 같은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이 없어 진입이 쉬웠다.

잠시 후.

돌무더기 틈에서 기괴한 곤충의 형상을 한 괴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균열의 크기에 걸맞게 엄청나게 많은 괴수 무리였다.

“모두 전투 준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전 인원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곧이어 주변에서 괴수들의 비명과 폭발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정말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만 모인 덕분일까?

토벌대는 압도적인 화력과 기세로 괴수들을 몰살시켜 나갔다. 주변을 가득 메우던 괴수 무리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키르르륵!

-키륵!

기세를 잃은 괴수 무리는 황급히 몸을 돌려 전선을 이탈했다. 토벌대는 무리해서 뒤를 쫓지 않고, 남아있는 잔당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선에서 전투를 마무리했다.

첫 전투의 기분 좋은 승리.

거기다 큰 피해도 없어 조금이나마 토벌대의 사기가 상승한 느낌이었다. 각 길드의 지휘자들은 긴장을 풀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약간의 정비 시간을 가진 뒤. 토벌대는 곧바로 길을 나섰다. 두 번째 전투는 생각보다 더 이른 시기에 마주하게 됐다.

방금 전투에서 이탈했던 괴수들에 더해. 조금 더 강력해 보이는 괴수 무리가 더해져 기습을 가했다.

적의 기습을 미리 예측하고 있던 토벌대는 능숙하게 기습을 받아내고 반격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괴수 무리의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전투가 팽팽해지면서 토벌대 측에서도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전황을 살피던 키르웬이 내 이름을 불렀다.

“시현 님!”

나는 금방 키르웬의 의중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키르웬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솟구쳤다. 다른 천족들도 뒤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많은 천족들이 일사불란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빛무리가 승천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리고 그 빛무리는 빠르게 괴수 무리 한가운데로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빛의 폭발과 함께 괴수 무리가 우르르 쓸려 나갔다. 정신 못 차리는 괴수들에게 천족들의 무기가 자비 없이 날아들었다.

천족이 전투에 합류하자마자 팽팽하던 전세가 확 뒤집어졌다. 토벌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괴수들을 밀어붙였다.

이번에는 안드라스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치르는지 충분히 확인했으니. 저도 슬슬 전투에 도움을 보태야겠습니다.”

안드라스가 양손을 뻗자, 그의 커다란 소매에서 작은 비행 아티팩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티팩트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전장으로 날아가 전투를 돕기 시작했다.

천족들의 화려한 전투에 비해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아티팩트들은 적재적소에 나타나 맹활약했다.

특히 전세를 정확히 살피는 안드라스의 능력 덕에 아티팩트는 위급한 상황을 빠르게 지원할 수 있었고. 덕분에 토벌대의 부상자 숫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천족과 안드라스.

이들의 합류만으로 토벌대에 엄청난 전력 상승이 일어났다. 완전히 기세에 밀린 괴수 무리는 순식간에 무너져 갔다.

토벌대가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순간.

-드드득…… 콰아아앙!

-그어어어억!!

땅속에서 압도적인 크기의 괴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끝판왕급의 괴수 등장에 토벌대는 주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얼굴이 흐려지는 가운데.

딱 한 사람만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띄웠다.

“드디어 싸울 만한 녀석이 나왔네.”

가벼운 발걸음의 카네프가 슬쩍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엘린, 아슈미르! 시현 잘 지키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우리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카네프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는 눈으로도 쫓기 힘든 빠르기로 거대 괴수를 향해 쇄도했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익숙한 사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 괴수를 제압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거대 괴수.

녀석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슬에 묶여 몸을 버둥거리는 것뿐이었다. 강렬한 푸른빛을 내뿜는 사슬들은 자비 없이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우드득!

-그어어어억!!

비명에 섞여 굉장히 섬뜩한 소리가 거대 괴수 몸에서 울려 퍼졌다. 얼마나 그 소리가 생생했는지, 토벌대 전원이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쿠우웅!

힘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거대 괴수의 몸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거대한 충격음을 기점으로 전투의 승패가 완전히 갈라졌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압도적인 승리!

조금 힘겨웠던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토벌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전의를 상실한 나머지 괴수들은 혼비백산하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후방에서 전투를 지켜본 아슈미르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도 완벽한 승리군요. 이대로라면 끝까지 쉽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싱겁네요. 안 그래요, 시현 선배?”

“어? 으음… 그렇네.”

엘프리드의 물음에 나는 약간 어정쩡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슈미르와 엘프리드의 말대로 모두 엄청난 활약을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속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이게 끝일까?

불길한 빛을 띠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혼자만의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염원했다.

* * *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토벌대는 파죽지세로 나아갔다.

이어지는 전투에서도 토벌대는 큰 피해 없이 적을 괴멸시켰다. 부상자는 조금씩 발생했지만 큰 사상자는 하나도 없었고. 사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졌다.

목소리를 높이며 방심을 경계하던 지휘자들도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나를 지키느라 계속 후방에 있던 엘프리드는 나설 기회가 없어 아쉽다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던 어느 순간.

계속 이어지던 전투가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지면서, 모두가 이제 곧 끝에 도달하게 될 것을 직감했다. 토벌대는 마지막 정비를 마치고 균열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약간 좁은 협곡과 같은 지형을 통과해 도착한 곳은. 크고 거친 돌들이 커다란 원형 경기장처럼 둘러싼 곳이었다.

그 한가운데는 지금껏 싸워온 괴수 중에서, 가장 강력한 개체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네프가 해치웠던 거대 괴수도 몇 마리씩이나 섞여 있었다.

“호오? 마지막은 좀 빡세게 몸을 움직여야겠는데?”

“거대한 녀석은 카네프 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천족분들과 함께 토벌대를 계속 지원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빨리 해치우고 끝내자. 꽃놀이 갈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

카네프와 안드라스.

그리고 키르웬과 천족들은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