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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17화 (417/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17화

균열과 꽃놀이(3)

마지막 전투가 시작됐다.

나는 이번에도 후방에서 지켜보는 역할이었지만, 모두 무사히 마지막 전투를 마무리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사방에서 큰 폭발음이 터지고, 천족의 강력한 무기가 번쩍였다.

안드라스의 아티팩트들도 이전보다 훨씬 더 바쁘게 전장을 날아다녔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카네프였다.

카네프는 적진 한가운데를 휘저으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쓰러뜨렸다.

그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일인군단이라는 표현이 절로 머리에서 떠올랐다.

“카네프 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도 말로만 전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엘프리드와 아슈미르가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토벌대 몇몇도 전투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압도적인 카네프의 실력을 멍하게 쳐다봤다.

그렇게 모두의 눈부신 활약으로 토벌대는 순조롭게 괴수들을 소탕해 나갔다.

-키에에에엑!!

-키에엑!!

괴수들 쪽에서 비명 같은 울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여기가 마지막 전장이라는 걸 아는 듯, 놈들은 기를 쓰고 토벌대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승패는 이미 한참 전에 기울어진 상황.

꺼지기 직전에 잠시 강렬해지는 촛불처럼 괴수들은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 발악을 해보았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크르르르…….

-털썩!

마지막 괴수가 토벌대의 공격에 쓰러지면서 전장에는 평온함이 찾아왔다.

“와아아아!!”

“모두 수고했다!”

토벌대원들로부터 약간 힘 빠진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이었던 만큼 전투가 훨씬 격렬한 탓이었다.

모두 팔다리는 후들거리고 얼굴은 엉망이었지만, 큰 피해 없이 임무를 끝마친 덕분에 표정만큼은 더 없이 밝았다.

“일부는 경계, 나머지는 부상자 먼저 살펴라. 심각한 부상인 녀석부터 응급조치 시작해!”

“여기! 이 녀석 먼저 좀 봐줘!”

“지혈제랑 붕대. 빨리!”

카네프, 안드라스, 키르웬과 천족들도 내가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나는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뭘 이 정도 가지고. 오랜만에 몸 좀 푼 정도지.”

“저희보다는 다른 토벌대분들이 더 고생하셨을 겁니다.”

“키르웬 님도 고생하셨어요. 혹시 크게 다치신 분은 없나요?”

“약간의 찰과상 정도만 있을 뿐. 큰 부상자는 없습니다. 모두 집정관님께서 걱정해 주신 덕분입니다.”

모두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아 걱정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차례인가?

균열 내부의 괴수를 전부 처치했음에도 균열은 아직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천족과 함께 봉인절차가 필요해 보였다.

여유롭게 봉인절차를 생각하고 있던 그때.

-우우우우웅!!

-끼이이익!!

하늘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균열이 알아서 붕괴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자마자 내 예상이 크게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저건…….”

“말도 안 돼.”

누군가의 힘 빠진 중얼거림.

그 말이 지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대변해 줬다.

“이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키르웬도 하늘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철벽같은 천족들이 대놓고 감정을 내보일 정도로, 우리의 머리 위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공간이 뒤틀리는 기괴한 소음과 함께 하늘에서 수많은 균열이 동시에 나타났다.

각 균열에서 내뿜는 불길한 기운이 드넓은 하늘을 빼곡히 메웠다.

균열 안의 균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괴한 현상에 모두의 얼굴에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가득해졌다.

상황은 더 최악으로 변해갔다.

-키에에에엑!!

-크르르…… 크와앙!!

-끼릭! 끼리릭!!

완전해진 균열은 곧바로 수많은 괴수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모, 모두 전투 준비!”

“이, 일어나! 적들이 몰려온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길드의 지휘자들이 소리쳤다. 지금껏 흔들림 없던 그들의 목소리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나머지 토벌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찬란한 승리의 기쁨과 성취감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깊은 절망감이 모두의 얼굴에 드리웠다.

“이건…… 힘들겠군.”

카네프의 입에서 처음으로 약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안드라스도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저 정도 규모의 괴수 무리를 상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이대로라면 전멸당할 겁니다.”

“그럼……?”

“포위당하기 전에 먼저 돌파해서 후퇴해야 합니다. 이미 각 길드의 지휘자들도 후퇴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에 맞춰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는 다급히 키르웬을 불렀다.

“키르웬 감시관님.”

“말씀하세요.”

“토벌대가 후퇴할 수 있도록 길을 뚫어주시겠습니까? 저는 후방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가능합니다.”

키르웬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허락을 구했다. 당연히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곧바로 날개를 펼쳤다.

“모두 절 따르십시오. 지금부터 우리가 토벌대의 퇴로를 확보합니다.”

“예!”

“예!”

천족들은 다시 빛나는 무기를 꺼내 들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토별대도 천족을 향한 곳을 따라 후퇴를 시작했다.

안드라스도 아티팩트들을 꺼내 전투를 준비하는 와중에, 카네프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괴수 무리를 응시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큰 목소리로 카네프를 불렀다.

“사장님! 사장님도 토벌대가 후퇴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

“사장님?”

조용히 주변을 살피던 카네프는 미간을 찌푸리며 짧게 혀를 찼다.

“쯧…… 이건 힘들어.”

“네?”

“이미 퇴로에도 괴수가 넘쳐나고 있어. 천족 놈들이 퇴로를 확보하는 것도 힘들고. 설사 돌파에 성공했더라도, 토벌대 대부분이 포위를 벗어나기 힘들 거야.”

“그, 그런…….”

“괴수 놈들이 의도한 건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제대로 걸려들었어.”

“사장님이 도와주시면 되잖아요?”

“안 돼.”

그는 단호하게 내 말을 부정했다.

“내가 도와주더라도 시간만 조금 더 버는 것밖에 안 돼.”

“…….”

“그리고 이런 난전 상황 속에서는 너를 지키는 게 최우선이야. 다른 녀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너무나도 냉정한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일행들을 바라봤지만, 모두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릴 뿐이었다.

항상 해결책을 척척 내놓던 안드라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서 모두 전멸한다고?

많은 사람을 위해 노력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거기다 토벌대에는 모르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도 이야기를 나눴던 서예린, 정태호, 윤세희. 그리고 가디언즈 길드 사람들도 여기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지인 몇 명 정도는 더 보호해 줄 수 있어.”

카네프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이 제안을 반길까?

서예린은 함께 싸워온 전우를 버리고 도망치려 할까? 정태호와 윤세희는?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모두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토벌대 전원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당장 저 하늘의 균열들을 전부 막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어.”

카네프는 포기하라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절망감에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이, 이게 뭐야?

‘여우신?’

-완전 지옥이 따로 없네. 너 여기서 뭐 해? 당장 도망치지 않고. 네가 죽어버리면 나도 곤란해진다고!

나는 반가운 목소리로 여우신을 불렀다.

‘잘됐다. 나 좀 도와줘.’

-뭐, 뭐를?

‘저 하늘의 균열들을 막고 싶은데. 도와줄 수 없을까?’

여우신의 의식이 잠시 하늘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잠시 품었던 기대감은 기겁하는 목소리와 함께 와장창 깨져나갔다.

-이건 안 돼!

‘왜! 저번에는 잘 봉인했잖아! 혹시 또 떡 이야기하려는 거야? 이번에 도와주면 몇 개월, 아니. 몇 년 동안 떡을…….’

-안 돼, 안 돼! 평생 떡을 준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여우신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차원의 균형이 완전히 어긋나 버렸어. 균열을 봉인하는 것도 균형이 유지될 때나 가능한 거야. 이건 나도 손쓸 도리가 없어.

‘그럼 어떻게 해?’

-…….

내 물음에 침묵만 되돌아왔다.

다시 한번 지독한 절망과 무력감이 나를 덮쳐왔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안드라스는 말했던 대로 후방을 막으러 향했고, 엘프리드와 아슈미르도 조금이라도 도움을 보태기 위해 나섰다.

내 곁을 지키던 카네프는 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붙잡았다.

“이제 시간이 없어. 우리는 이대로 빠져나간다. 토벌대를 도와주는 건 나중 일이야.”

“…….”

뭐가 집정관이고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무기력하게 도망만 가야 하는데!

카네프는 꽉 내 팔을 붙잡고 이곳을 벗어날 준비를 했다.

희망을 잃은 내가 무기력하게 끌려가던 그 순간.

-스스슷…….

갑자기 내 손등에서 신비로운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카네프는 움찔하며 멈춰 섰다.

“뭐, 뭐야?”

“이건…… 요정 여왕의 힘?”

나는 손등의 기운에 집중했다.

갑자기 왜 그런지는 잘 몰라도, 멀리서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이런 신호를 보내는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알 수 없는 현상에 신중해졌겠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요정 여왕의 기운을 이끌었다.

뭐라도 좋으니까.

제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뭔가가 나오길!

-스스스…… 파아아앗!

그순간 손등의 은은한 빛이 순식간에 강렬해지면서 주변을 물들였다.

너무나도 강렬해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어? 된 것 같다, 뾰!

-된 거야?

-무우우!

-삐이익! 삐이익!

-뀨우? 뀨우우!

-어, 어어? 밀지마라, 뾰!

-아아앗!

“……?”

머릿속에 울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들.

순간 뭐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급하게 멈추려 해보았지만, 이미 빛무리 안에서는 작은 그림자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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