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20화 (420/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0화

균열과 꽃놀이(6)

괴수 무리와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은율이를 데리고 꾸준히 꽃밭을 늘려나갔다.

토벌대는 괴수가 꽃 한 송이 건드릴 수 없도록,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공격을 받아냈다.

차근차근 꽃밭을 늘려나간 덕분에 대책이 없을 것 같던 균열도 점차 세력이 약해졌다.

균열의 상태를 확인한 지휘자들은 희망찬 목소리로 토벌대를 독려했다.

“균열이 약해지고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정신 차려! 여기서 무너지면 전부 끝이야!”

하지만 그들의 희망찬 외침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세력이 약해졌다 해도 균열은 여전히 수많은 괴수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애초에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하는 토벌대가 불리한 입장이었다.

게다가 꽃밭을 늘려나갈 때마다 지켜야 하는 부분도 같이 넓어지면서, 방어해야 하는 토벌대의 부담도 함께 커졌다.

그나마 카네프와 천족이 뛰어난 활약 덕분에 괴수들의 공격을 꾸역꾸역 막아냈다.

쉽지 않은 상황에 나는 다시 한번 더 여우신을 불렀다.

‘아직이야?’

-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한 거 아냐?’

-봉인을 하려면 아직 부족해.

아아, 이런…….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무우우우…….

-삐이이…….

-뀨우…… 뀨우…….

기운을 많이 소모한 은율이와 아이들은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특히 은율이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당장 아이들을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 토벌대 전원이 꽃밭에 희망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여기서 균열을 막는 데 실패하면 토벌대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이 절망에 빠지게 된다.

토벌대 지휘자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그나마 안전한 퇴각을 포기하고 다시 전투에 나선 것이리라.

여기서 그만둘 순 없어.

나는 강하게 입술을 깨물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부축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이게 전부였다.

내가 아이들을 다독이던 그때.

“으아아악!!”

“뚜, 뚫렸어! 지원, 지원!!”

잘 버티고 있던 한쪽 방어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다른 쪽에서 지원을 나서기 전에 괴수들은 순식간에 빈틈을 파고들어 꽃밭으로 내달렸다.

-끄륵! 끄륵!

-키에에에엑!!

잔뜩 흥분한 괴수들이 달려든 곳은 다름 아닌 나와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시현 님?! 조심하세요!!”

“시현 선배!!”

뒤쪽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리아네와 엘프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방어벽을 돌파한 괴수들이 두 사람보다 더 빠르게 가까워졌다.

-타앗!

나는 망설임 없이 아이들 앞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괴수들이 내 시야에 가득해졌다.

신기하게도 두려움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바로 한걸음 앞까지 다가온 괴수들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번쩍!

한줄기 섬광이 눈앞에 번쩍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몸이 굳어지는 동안, 시야에 가득했던 괴수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땅바닥에는 괴수의 일부였던 파편들이 이리저리 떨어졌다.

“어휴! 오랜만에 제대로 검을 휘둘러서 그런지, 온몸이 삐걱거리는구먼.”

걸걸한 목소리와 익숙한 뒷모습.

괴수들을 일격에 쓸어버린 주인공이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제자야, 어디 다친 곳은 없냐?”

“스, 스승님?”

“큭큭!”

벨리온은 내 표정이 재밌다는 듯 소리죽여 웃었다.

“어떻게 여기에……?”

「내가 데리고 왔다, 뾰!」

규리가 벨리온의 어깨 위로 얼굴을 쏙 내밀었다.

“이 작은 요정이 당장 따라오지 않으면 네가 위험할 거라고, 옆에서 어찌나 쫑알쫑알 시끄럽게 하던지.”

「이 멍청한 인간이 빨리 안 따라와서 큰일 날 뻔했다, 뾰!」

“크흠! 나는 심심하다고 장난치는 줄 알았지…….”

「우씨! 내가 진짜라고 그랬잖아, 뾰! 뾰!」

벨리온은 머쓱하게 헛기침을 했고, 잔뜩 뿔이 난 규리는 벨리온의 수염을 쭉쭉 잡아당기며 화풀이했다.

“시현 님, 괜찮으세요? 어머!”

“시현 선배…… 어엇? 벨리온 님?!”

급하게 달려온 리아네와 엘프리드가 벨리온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벨리온 역시 두 사람을 알아보고 한손을 휘적휘적 내저었다.

“아아. 한가하게 인사할 상황은 아닌 것 같으니 대충 넘어가자고. 그것보다 저 괴수 놈들을 때려잡으면 되는 건가?”

“네. 괴수들로부터 이 꽃밭을 지켜야 해요.”

벨리온은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괴수 무리를 바라봤다. 다시 몸을 돌린 그는 어깨를 크게 돌리며 몸을 풀었다.

“아직도 이 기분 나쁜 녀석들이 넘쳐나는구나. 오늘은 절대 한 마리도 되돌려 보내지 않겠다!”

우렁찬 포효와 함께 벨리온은 괴수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가 합류하자마자 뚫렸던 방어벽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시현, 시현! 다른 친구들도 기다리고 있어, 뾰!」

“다른 친구들?”

「응! 모두 시현을 돕겠다고 했어, 뾰!」

그러면서 규리는 손등을 가리켰다. 손등에서는 아까 아이들을 불러왔을 때처럼, 또 한 번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따스한 빛을 통해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아련하게 전해졌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요정 여왕의 기운을 이끌었다.

환한 빛을 내던 빛무리는 커다란 차원문으로 변해갔다.

-부우우우웅!!

「우리가 도와주러 왔다, 뾰!」

「시현 님과 은율 아가씨를 지켜라!」

차원문에서 수많은 요정들과 풍뎅이 호위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정들은 나와 은율이를 발견하고 꽃밭 주변으로 모였고, 풍뎅이 호위병들은 곧바로 괴수들에게 달려들었다.

「은율이가 힘든가봐, 뾰!」

「괜찮아! 우리가 기운을 나눠줄게, 뾰!」

요정들은 은율이와 아이들 주변을 날아다니며 반짝이는 가루를 뿌려주었다.

기분 좋은 향기가 퍼져 나가면서, 아이들의 지쳐 있는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시현, 아직 안 끝났어, 뾰!」

“응?”

「아직 더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뾰!」

“더 기다리고 있다고?”

규리의 말대로 아직 내 손등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렸다.

다시 요정 여왕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웅!!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빛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압박감이 온몸에 밀려왔다.

“으윽?!”

겨우 정신을 붙잡으며 의식을 집중했다.

-파아아아앗!!

다시 모습을 드러낸 빛무리.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었다. 하늘을 뒤덮은 균열들처럼, 커다란 빛무리들이 사방에 생겨났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빛무리 너머의 존재들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온몸에 힘이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수많은 빛무리가 차원문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영주님을 위하여!!”

“카디스 영지를 위하여!!”

카디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돌진하는 카디스 영지의 병사들. 그 중에는 로커스와 크록, 테르잔도 함께하고 있었다.

“붉은 비늘 일족의 명예를 걸고! 지난날에 받았던 은혜를 이 자리에서 갚겠다!”

“신녀님께서 명하셨다. 목숨을 걸고 시현 님과 은월족 아이를 지켜라!”

무장한 용마족과 은월족도 우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우웅!!

-쮸우우! 쮸우우우!!

숲속의 꿀벌들과 토타라들도 함께 차원문을 넘어왔다.

두 마수는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내며, 괴수들을 순식간에 밀어붙였다.

“이, 이 녀석들은?”

“아군이다! 적이 아니니 당황하지 마라!”

“괴수들이 주춤한다. 지금이 기회야!”

지원군의 등장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토벌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아직 열려 있는 마지막 차원문.

그 너머에서 엄청난 땅 울림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땅 울림 소리를 빠르게 알아채고 반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축 처져 있던 아꿍이도 번쩍 고개를 들며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무우우우!!

아꿍이의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차원문 너머에서 커다란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마지막 차원문에서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야쿰들이 달려 나왔다.

이제는 울림 정도가 아니라,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땅이 뒤흔들렸다.

야쿰 무리의 가장 선두에 있는 큰뿔이.

농장에서 보여주는 느긋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두 눈동자에는 눈앞에 모든 것을 짓밟겠다는 포악함만이 가득했다.

큰뿔이를 따르는 야쿰들은 무자비하게 괴수들을 짓밟으며 거침없이 돌진해 나갔다.

-크에엑?!

-키엑! 키에엑!!

괴수들은 소리 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변을 가득 메우던 괴수들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저…… 저…….”

“무, 물러서. 휘말리지 않도록 물러서라!”

기세를 올려 반격하려던 토벌대는 그 자리에 멈춰서야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닥과 하나가 된 괴수의 시체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특별한 지원군 덕분에 한계였던 토벌대와 천족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너희들…….”

나를 돕기 위해 먼 곳에서 달려와 준 이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시큰해지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차례 괴수들을 쓸어버린 야쿰들이 천천히 방향을 틀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야쿰의 위력을 직접 확인한 토벌대는 깜짝 놀라며 허둥지둥했다.

“괜찮아요. 저를 도와주려고 찾아온 친구들이에요.”

“아…….”

“진짜예요. 엄청 착하고 귀여워요.”

“……??”

내 설명에도 토벌대는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야쿰 무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주변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반가운 미소로 야쿰들을 맞이했다.

“나 도와주러 온 거야?”

-부우우. 부우우우.

“정말 고마워, 얘들아.”

고생한 야쿰들을 하나씩 쓰다듬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혹시 싸우다가 다친 녀석은 없어?”

-부우우우.

야쿰들은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대견한 표정으로 녀석들의 옆구리를 토닥토닥해 줬다.

“그래, 기특하다, 기특해! 역시 우리 야쿰이 최고야!”

내가 강아지, 고양이 다루듯이 야쿰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토벌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엘프리드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끄응……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진짜 시현 선배만 귀엽다고 생각하는 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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