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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22화 (42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2화

마지막 이야기(1)

-스륵, 스륵.

두꺼운 사진 앨범이 내 손에 따라 한 장씩 넘어갔다.

안에는 나를 포함한, 농장 식구들의 사진이 빽빽하게 정리돼 있었다.

요즘에는 사진이 전부 디지털화된 터라 아무리 큰 앨범이라도 작은 저장 장치 하나에 수십 권을 저장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손으로 넘길 수 있는 앨범이 더 마음에 들었다.

뭔가 아련하게 감성을 자극한다고 할까?

새로운 사진 정리가 끝났을 때 쯤.

문득 옛날 일이 떠올라 가장 깊숙한 곳의 앨범 하나를 꺼냈다. 윗부분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붙어내고, 조심스럽게 첫 장을 열었다.

이 앨범을 만들 때는 처음으로 사진을 모으고 정리하던 시기여서 사진의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이런 사진은 왜 보관하고 있을까? 싶은 것들도 잔뜩 있었다.

‘한번 시간 내서 다시 정리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나는 금방 또 추억에 빠져들어서 정신없이 앨범을 둘러보았다.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앨범 속에 빠져들었다.

-달칵.

-저벅, 저벅.

“시현 님?”

“…….”

“시현 님!”

누군가의 부름에 나는 강제로 추억 여행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앞에는 불퉁한 표정의 아슈미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응? 아슈미르?”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길래 그냥 들어왔어요.”

“아. 미안, 미안! 앨범 정리하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집중했던 모양이야.”

“앨범이요?”

앨범 이야기에 아슈미르는 불퉁한 표정을 풀고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리고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와 같이 앨범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들은 언제쯤 찍은 건가요?”

“아마 아슈미르랑 우르키가 오기 전이었을 거야. 이때가 처음 야유회 갔을 때 찍은 걸 거야. 이건 처음 딸기를 수확했을 때. 이건…….”

앨범의 앞부분은 거의 다 아슈미르가 농장에 없던 시절의 사진이었다.

좀 더 앨범을 넘기자.

앞쪽에는 없던 릴리아가 사진에 나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아슈미르와 우르키의 사진도 하나둘씩 발견됐다.

“여기 제 사진이에요. 여기도!”

아슈미르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며 즐거워했다.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그녀를 보며 나는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슈미르도 많이 변했네.”

“네?”

“사진 속이랑 다르게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잖아. 표정도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그, 그런가요? 저는 별로 안 변한 것 같은데요?”

민망한 듯 볼을 살짝 붉힌 그녀는 짐짓 모른 척을 했다.

“많이 변했어. 이때만 해도 사진에 웃는 모습이 거의 없잖아. 예전에는 은율이가 너만 보면 그렇게 무서워했었는데.”

“어, 언제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요즘에는 은율이가 저를 얼마나 잘 따르고 좋아하는데.”

“하하하!”

당황하는 아슈미르를 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즐거워하는 나를 보며 다시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요. 감시관은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엄격히 교육받았으니까요.”

“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게 됐잖아.”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앨범을 바라봤다.

아직은 아슈미르의 표정에 어색함이 남아 있는 사진.

그중에서도 유독 배경이 특별한 사진 몇 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연도를 헤아렸다.

“이게…… 벌써 2년 전인가?”

“벌써 그렇게 됐나요?”

사진 속의 배경은 마계도, 천계도, 한국도 아니었다.

모두 지구의 여러 나라에서 정확히는 거대 균열들을 봉인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찍은 것들이었다.

2년 전.

우리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균열을 성공적으로 봉인했다.

한국의 성공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지켜보고 있던 많은 이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거대 균열은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로 퍼져 나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천족들은 ‘차원의 균형’을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주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반면에 농장 식구들은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거대 균열을 없애고 이 사진들을 남기게 됐을까?

그때 당시를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카네프 님. 혹시 독일이라는 나라 아십니까?

-응? 그게 뭔데?

-유럽이라는 지역에 속한 나라인데. 맥주를 아주 잘 만들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

발레리안은 준비한 자료들을 촤르르륵 펼쳐 보이며, ‘다른 나라로 가면 어떤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는지.’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그 나라의 고유한 특산물, 신비한 유적, 즐거운 축제. 그리고 사진으로만 봐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

거기에 더해 발레리안은 각자의 취향에 맞춰, 거의 맞춤 여행 수준으로 스케줄을 완벽하게 짜주었다.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확인된 거대 균열의 정보를 취합해, 여러분들이 최적의 경로로 이동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두었으니까요.

순간 발레리안을 닮은 여행사 직원이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는 우리에게 완벽한 여행 브리핑을 보여줬다.

-독일 맥주가 그렇게 유명해? 여기 주류 매장에서 파는 맥주보다 더 맛있어?

-카네프 님. 독일 사람들이 그 말 들으면 굉장히 불쾌해할 겁니다. 그분들은 독일 맥주가 세계 최고라고 굳게 믿고 있거든요.

-꿀꺽. 그, 그럼 한번 가볼까?

카네프가 맥주에 관심을 드러낸 순간 끝이었다.

다른 농장 식구들도 하나둘 발레리안의 자료에 관심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마계 농장 원정대가 출범하게 됐다.

한국에서 출발한 원정대는 여러 나라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거대 균열을 봉인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미 대처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어렵거나 힘든 일은 없었다.

균열을 봉인하고 남는 시간에는 즐겁게 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여행 분위기를 즐겼다.

지금 보고 있는 앨범의 뒷부분은 다 이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이때 참 재밌었는데…….”

“그러게요.”

나와 아슈미르는 많은 나라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잠시 추억에 빠졌다.

“다시 한번 더 모두 다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것 뭐 있겠어? 나중에 시간 맞춰서 여행 가면 되지.”

“정말요?”

“말 나온 김에 한번 계획 짜볼까?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 모일 텐데.”

나는 아슈미르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앨범을 정리했다.

정리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방문 너머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다다닷!

-벌컥!

“시현 님, 시현 님!”

리아네가 다급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막 연락이 왔어요. 아무래도 준비를…….”

“……?”

“……?”

“둘이서 뭐 하고 계셨어요?”

“우리? 앨범 정리하고 있었어. 앨범 정리하는 김에 옛날 사진도 좀 구경하고.”

앨범을 정리했다는 말에 리아네는 갑자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앨범 정리하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저 빼놓고 둘이서 한 거예요?”

“아, 아냐. 나 혼자 사진 몇 장만 정리했을 뿐이야. 아슈미르는 온 지 얼마 안됐어.”

“맞아요. 리아네 선배.”

“……정말이에요?”

“내가 왜 거짓말하겠어. 말 나온 김에 오래된 앨범을 한번 싹 정리하고 싶으니까. 나중에 다 같이 모여서 정리하자.”

오해가 풀리면서 리아네의 얼굴에서 서운한 기색이 완전히 사라졌다.

“헤헷! 알았어요. 나중에 꼭 같이 정리해요.”

그녀의 미소를 확인한 우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년 전, 거대 균열 사태가 마무리될 때쯤.

내가 집정관의 직책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아슈미르도 감시관 직책을 내려놓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모두 깜짝 놀랐다.

이미 많은 경력과 성과를 쌓아 올린 그녀였기에 주변에 많은 만류가 있었지만, 아슈미르의 의지는 확고했다.

-감시관의 임무를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시현 님 곁에 남아, 옆에서 보좌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키르웬 감시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랫동안 함께했던 제복과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그녀는 공식적으로 감시관의 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농장 식구들은 감시관이 아닌, 평범한 아슈미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미 함께한 시간이 많았던 탓에 아슈미르는 자연스럽게 농장 생활에 스며들었다. 어려운 감시관의 임무를 척척 수행했던 것처럼, 농장의 일도 딱 부러지게 해냈다.

농장 생활을 잘 해내는 아슈미르를.

딱 한사람.

리아네만이 조금 껄끄럽게 생각했다.

“시현 님 알고 계시죠? 제가 시현 님을 제일 먼저 살펴드렸고, 옆에서 도와드린 기간도 제가 제일 길다는 거요.”

“으…… 응. 잘 알지.”

아무래도 리아네는 아슈미르가 자신의 자리를 뺏을까 봐 걱정인 모양이었다. 특히 치명적인 약점인 요리도 아슈미르는 척척 해내니까.

물론 이건 리아네의 과도한 걱정일 뿐.

나는 그녀를 멀리하거나, 그녀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농장에서 가장 많이 도움을 준 사람이었고,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또 은율이가 농장에서 나 다음으로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 리아네였다.

그래도 리아네가 아슈미르를 질투해 해코지한다 거나, 어색하게 지내는 건 전혀 아니었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 나에 관련된 일에서만 약간 욕심을 부리는 느낌?

지금은 리아네의 귀여운 투정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려니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리아네.”

“네?”

“아까 뭔가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엄청 급하게 뛰어 들어왔잖아.”

“아앗! 내 정신 좀 봐.”

뭔가를 떠올린 리아네는 짧게 비명을 지르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방금 안드라스 님한테 소식이 왔어요. 이제 곧 준비에 들어가니까 얼른 와 달래요.”

“정말?”

“정말이에요?”

나와 아슈미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리아네는 벌써 눈동자를 촉촉하게 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통이 벌써 시작됐데요.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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