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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23화 (42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3화

마지막 이야기(2)

아기가 태어난다는 소식에 나는 급하게 앨범을 치우고,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 지금 바로 나갈 준비를…… 으음, 아기한테 줄 선물을 지금 가져가는 게 좋으려나? 아니면 나중에 가져갈까?”

미리 준비해 놓은 아기 선물을 떠올리며 갈팡질팡했다.

아기 소식을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닌데, 막상 아기가 태어난다고 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선물은 나중에 전해줘도 되지 않을까요? 일단 최대한 빨리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으응. 알았어. 나는 알아서 준비할 테니까, 두 사람이 은율이 좀 챙겨줘.”

“네.”

“네.”

나는 리아네와 아슈미르에게 은율이를 부탁하고, 외출 준비를 위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도를 걸어 내 방으로 향하던 중, 뭔가를 떠올리고 휙 몸을 돌렸다.

바로 방으로 가지 않고 내가 향한 곳은 1층 가장 안쪽에 있는 카네프의 방이었다.

방문 앞에 도착한 나는 평소보다 강하게 방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사장님!!”

-…….

큰 목소리를 냈음에도 방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시 방문을 두드리려다가 움직이던 손을 멈칫했다.

“아……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카네프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시현.

-예, 사장님.

-당분간은 나 찾지마.

-……?

뜬금없는 말에 내가 의문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카네프는 평소에 보기 힘든 진지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을 해결하려고. 아마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아.

-무슨 일인데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아냐. 이건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야.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

-…….

카네프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그때는 끝내지 못했던 일…… 지금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사장님…….

-너무 걱정하지마. 금방 끝낼 테니까.

카네프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말을 더 꺼내기 전에, 그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 나갔다.

이게 며칠 전에 있었던 일.

사장님은 아직 ‘그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걸까? 나는 답답한 표정으로 닫혀 있는 문을 바라봤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이 그 일을 꼭 해내실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니까 계속 기다리고 있을게요…….

……는 개뿔!!!

-벌컥!!

“사장님!!”

“……?!”

어두컴컴한 방 안.

그 안에 사람 형상의 그림자가 네모난 푸른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성큼성큼 창문 쪽으로 걸어가 드리워져 있던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

창문을 통해 환한 빛이 쏟아지며 방 안의 어둠을 순식간에 몰아냈다.

“크으으윽!”

그림자는 햇빛에 노출된 뱀파이어마냥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사장님!”

“으으. 갑자기 왜?”

“언제까지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거예요?”

“이, 이제 거의 다 끝났단 말이야.”

초췌한 얼굴의 카네프가 네모난 푸른빛을 가리켰다. 그 안에는 갑옷과 대검을 든 용사가 커다란 괴수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그 용사를 움직이고 있는 건 카네프.

무려 게임 패드를 통해서!

카네프의 앞에는 용사의 모험담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모니터와 게임기가 놓여 있었고. 그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진 과자 봉지와 음료수, 맥주 캔이 있었다.

“하아…….”

머릿속에 최소 1시간짜리 잔소리 대본이 줄줄 생성됐지만, 오늘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태어날 아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장님. 일단 외출 준비부터 하시죠.”

“왜?”

“아기가 곧 태어난대요. 방금 안드라스 씨한테서 연락 왔어요. 은율이랑 다른 사람들은 벌써 준비 중이니까. 사장님도 얼른 준비하세요. 설마 과자 부스러기 잔뜩 묻어 있는 그 차림으로 갈 생각은 아니죠?”

“으…… 응.”

카네프는 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쉬운 눈빛으로 게임 화면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꺼냈다.

“그런데 시현.”

“……?”

“이것만 딱 깨고 가면 안 될까? 이제 이것만 깨면 엔딩이야. 패턴도 거의 다 파악해서 진짜 얼마 안 걸려. 응?”

-뚝!

아아…….

조금 있으면 태어날 아가야. 오늘은 정말 좋은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조금 힘들 것 같아. 대신에 앞으로 네가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이 나쁜 어른을 제대로 혼내주고 갈게.

마음속으로 아기에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숙련된 잔소리 스킬을 발동했다.

“지금 그게 식구들 중에서 제일 어른이신 분이 할 소리예요?! 조금 있으면 아기가 태어난다니까요!”

“…….”

“아니, 은율이는 날이 갈수록 어른스러워지는데. 어떻게 사장님은 점점 더 철이 없어지세요? 제가 사장님한테 잔소리한 게 은율이한테 한 것보다 100배는 더 많을 거예요!”

잔소리 스킬에 가장 많은 경험치를 제공한 범인은 슬슬 눈을 피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임 끄고 당장 외출 준비하세요! 어질러놓은 건 나중에 정리할 거니까.”

“으응…… 알았어.”

“얼른 움직이세요. 얼른!”

내 성화에 못이긴 카네프가 며칠 동안 떠나지 않았던 게임기 앞을 벗어났다. 자연스럽게 화면 속 용사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 * *

-저벅, 저벅, 저벅.

“으음…….”

안드라스의 입에서 온갖 걱정이 담긴 무거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방문 쪽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몸을 돌려 반대편 벽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으으음…….”

방문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반대편 벽쪽으로…….

-저벅, 저벅…….

“으으으음…….”

방문.

다시 반대편…….

참다못한 카네프가 살짝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좀 가만히 있어. 정신 사납게 왜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질 않아서…….”

안드라스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대답했다. 대답하는 와중에도 눈동자는 방문 쪽을 계속 힐긋힐긋 쳐다봤다.

“후우우…….”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안드라스는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도 잠시.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번에는 자리에 일어섰다, 앉았다. 일어섰다 앉았다…….

또 한소리를 하려는 카네프를 나와 리아네가 나서서 막았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사장님. 안드라스 씨도 얼마나 걱정되면 저러겠어요?”

“맞아요. 우리도 이렇게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끄응…….”

진통이 시작된 지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게 해가 떨어지기 전이었는데, 이제 밤이 깊어지면서 창밖에는 달과 별이 가득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은율이가 눈을 비비며 졸린 목소리를 냈다.

“아빠. 아기 나오려면 아직이야?”

“조금 오래 걸리나 봐. 은율아, 많이 피곤해? 아빠가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에 데려다줄까?”

“으으으응!”

은율이는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억지로 눈을 크게 뜨면서 별로 졸리지 않는다는 걸 나에게 어필했다.

“나도 아기 나올 때까지 기다릴래. 제일 먼저 볼 거야!”

아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동생이 생긴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던 은율이.

귀여운 여우 소녀는 어떻게든 동생의 탄생을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 귀여운 모습에 방 안에는 잠시 훈훈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러면 여기 기대서 잠깐만 자고 있어. 아기가 태어나면 아빠가 깨워줄게.”

“꼭 깨워줘야 해. 꼭?”

“하하! 알았어. 꼭 깨워줄게.”

“꼭…… 꼭…….”

은율이는 몇 번이고 강조하며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안 가 리아네와 아슈미르가 서로에게 기대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밤을 훌쩍 지나 새벽으로 접어들었다.

방문 너머 복도에서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산모의 힘주는 소리.

불안함을 참다못한 안드라스가 당장이라도 방을 뛰쳐나갈 것 같던 그때.

팔짱을 끼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카네프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주변이 거대한 침묵으로 둘러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타닷! 타닷!

급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동시에 안드라스는 수만 가지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을 응시했다.

“아기…… 태어났어요!”

-후다다닥!

안드라스는 차원도약 마법을 쓴 것보다 빠르게 문쪽으로 다가섰다.

“아기는 건강합니까? 산모는? 아미는 어떻습니까?”

출산을 도와준 여성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기가 나오기까지 조금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아기와 산모. 둘 다 건강해요.”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드라스는 여자의 손을 붙잡고 수차례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도 기쁜 소식에 우리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축하해 줬다.

“축하해요, 안드라스 씨!”

“축하한다. 드디어 너도 아빠가 되는구나.”

나와 카네프가 안드라스의 양쪽 어깨를 두드렸다. 뒤이어 리아네와 아슈미르도 환하게 웃으며 축하를 보냈다.

“모두 감사합니다.”

안드라스는 반쯤 잠긴 목소리로 겨우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아기 아버지만 따라오세요. 다른 분들은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산모랑 아기가 준비 끝나면 알려드릴게요.”

여성은 안드라스를 이끌고 산모와 아기가 있는 방 안으로 향했다. 우리는 두근두근한 표정으로 아기와의 만남을 기다렸다.

“아빠! 이제 아기 볼 수 있는거야?”

“응. 조금만 기다리면 돼.”

막 잠에서 깨어난 은율이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스으으윽.

천천히 문이 열리고. 아까 안드라스를 데려갔던 여성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들어오세요. 아기가 놀랄 수 있으니, 절대 큰 소리를 내면 안 돼요. 아시겠죠?”

-끄덕끄덕.

-끄덕끄덕.

모두가 말 잘 듣는 아이가 된 것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의 엄마, 아미였다.

온통 땀에 젖어 초췌한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침대에 누워 있던 아미는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힘없는 그녀의 미소에 왠지 마음이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미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는 선에서 손, 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녀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침대 옆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안드라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 쪽으로 몸을 돌린 그의 품에는 하얀 포대기에 담긴 아기가 안겨 있었다.

안드라스의 커다란 덩치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아기.

그는 아기로부터 시선을 옮겨 우리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참아내는 듯 커다란 어깨가 쉴 새 없이 뜰썩거렸다.

“제…… 아들입니다. 크흑! 이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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