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424화 (42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4화

마지막 이야기(3)

-꼼지락, 꼼지락.

“아빠, 아빠! 방금 봤어? 아기가 손을 이렇게 움찔거렸어!”

은율이는 아기의 작은 움직임에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은율이뿐만 아니라, 아기 침대 주변에 모여든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다.

아담한 침대에 위에 몸을 맡긴 아기.

아직은 작은 움직임도 버거운지. 가끔만 살짝 고개를 돌린다거나, 팔다리를 움찔거렸다.

이런 게 본능에 새겨진 감정일까?

아기의 작은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손가락, 발가락, 이마에 뿔도 야무지게 자리잡았네요.”

“뿔?”

“저쪽에 안 보이세요? 이마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이 있잖아요.”

리아네의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아기의 이마에 작은 뿔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 저게 뿔의 흔적이구나. 아기의 뿔은 본 건 처음이야.”

“저도 처음이에요.”

아슈미르도 신기하다는 듯 아기의 이마를 살폈다.

아무래도 마족에게 뿔이 큰 의미를 지닌 것처럼, 아기 때부터도 뿔을 많이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카네프는 평소에 보기 힘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코가 안드라스를 좀 닮은 것 같지 않아?”

“흠흠. 그렇습니까?”

자신을 닮았다는 말에 안드라스의 입이 귀에 걸렸다. 본인은 표정 관리를 한다고 해보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

“자∼! 조금 있으면 아기 밥 먹을 시간이에요. 아기랑 엄마가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나머지 가족분들은 나가주셔야겠네요.”

“에에? 벌써?”

은율이가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아직은 좀 더 아기와 함께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미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은율이를 달래주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나중에 아기가 조금만 더 자라면, 그때 꼭 은율이가 많이 놀아주렴.”

“응! 알았어. 그럼 그때까지 기다릴게.”

“은율이는 정말 착하구나. 우리 아기도 누나를 닮아서 착하게 자랐으면 좋겠네.”

“헤헤.”

은율이는 누나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지, 엄청 쑥스러워하며 몸을 배배 꼬았다.

우리는 흐뭇하게 웃으며 은율이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왔다.

“아기가 예쁘고 건강해서 너무 다행이에요.”

“그러게요. 아빠, 엄마가 된 두분 모두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하아…… 저 뺀질뺀질하던 녀석이 애아빠라니. 참…….”

리아네, 아슈미르, 그리고 카네프까지.

각자 아기를 만난 소감을 밝히며 한마디씩 했다. 나도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것 같아, 괜스레 옆에 있던 은율이의 손을 꼭 잡았다.

모두가 여운에 잠겨 있던 그때.

-지이이잉. 지이이잉.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기를 만나러 가기 전에 스마트폰을 진동으로 설정해 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얼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연결했다.

-시현 선배! 아기 태어났어요? 건강해요? 뿔이랑,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잘 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잠시 스마트폰을 귀에서 떨어뜨려 놓았다가, 다시 통화를 이어나갔다.

“응.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어. 손가락, 발가락 잘있고. 뿔도 예쁘게 자리잡았데.”

-어후…… 정말 다행이네요. 소식이 없어서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겼을까 봐 조마조마했다고요.

엘프리드의 목소리에서 빨리 연락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나왔다.

“하하! 미안, 미안. 우리도 정신이 없어서 연락해 준다는 걸 깜빡했어. 아기가 나오는 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

-그랬어요? 산모랑 아기 다 건강한 거죠?

“응. 건강해. 조금 전에도 이야기하다가 나왔어.”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네요. 저도 급하게 일정이 잡힌 것만 아니었으면 거기서 같이 기다렸을 텐데…….

“급한 일정은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내 말투와 미소에 장난기가 스며들었다.

“세계적인 스타인데 일정이 바쁜 건 당연하지.”

-…….

“너무 무리하지마.”

-하아아…….

스마트폰 너머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반면에 나는 킥킥대며 웃음을 참았다.

-제가 무슨 세계적인 스타에요. 그냥…… 그…… 좀 유명해진 것 뿐이지.

“큭큭, 그게 그 말 아냐?”

-끄응…….

엘프리드는 더 놀림당하고 싶지 않았는지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거기에 릴리아도 같이 있었어요?

“릴리아? 아니. 최대한 맞춰서 오겠다고는 했는데. 아직 소식이…….”

통화를 이어나가던 그때.

건물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내 조카 어딨어! 귀여운 아가야, 고모가 왔어요!”

릴리아의 목소리였다.

* * *

“허허허, 아기가 건강하다니 정말 다행이야. 릴리아가 오면서도 걱정이 정말 많았거든. 그 때문에 우르키가 구박을 좀 받았지만 말이야.”

“하하…….”

아크 심판관 옆에서…….

아니! 아크 집정관 옆에서 우르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조금 늦게 도착했네? 며칠 전에 릴리아와 연락했을 때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도착한다고 들었거든.”

“갑자기 집정관님께서 급하게 처리하셔야 할 일이 생겨서요. 저도 집정관님을 보좌하느라 조금 늦었어요.”

“에잉.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둘이 먼저 가봐도 된다니까. 쯧.”

아크 집정관이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우르키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집정관님을 옆에서 보좌하는 게 저의 임무. 사적인 일로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없죠.”

우르키는 아크 집정관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예전에 우물쭈물하고, 허둥대던 견습 감시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오! 우르키 많이 늠름해 졌는데? 이제 견습이 아니라, 정식 감시관이라 이거야?”

내가 장난스러운 물음에 우르키는 화들짝 놀라서 양손을 내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요. 이제 막 견습 딱지를 뗐을 뿐, 다른 감시관분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죠.”

“우르키 감시관은 아주 잘하고 있어. 아슈미르의 빈자리를 아주 잘 메꿔주고 있다네.”

아크 집정관은 흐뭇하게 웃으며 칭찬했다. 우르키는 쑥스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리숙하던 예전 모습이 살짝 엿보이는 것 같아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벌컥!

“여기 있었네? 우르키, 같이 아기 보러 가자. 이제 막 수유 시간이 끝나서 잠깐은 옆에서 지켜봐도 된대.”

방문을 열고 들어온 릴리아가 다짜고짜 우르키의 팔을 잡아끌었다. 우르키는 당황하며 릴리아를 만류했다.

“릴리아. 아직 두 분과 이야기가…….”

“아크 할아버지, 시현 오라버니! 나 우르키 데려가도 되죠?”

“어…… 으응. 데려가.”

“마음대로 하려무나.”

“괜찮다잖아. 얼른 가자.”

“어…… 어?”

“빨리!

“죄, 죄송합니다.”

우르키는 릴리아에게 잡혀 끌려 나가면서도 수 차례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나간 문 쪽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저래도 괜찮은 거예요?”

“허허허! 뭐 어떤가? 나는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데.”

2년 전.

거대 균열 봉인을 위해 우리는 여러 나라를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르키와 릴리아가 남아서 농장을 돌보는 일이 많아졌다.

중간중간 우리도 농장으로 돌아와서 일을 돕긴 했지만, 두 사람이 농장에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미세한 변화를 리아네가 가장 먼저 눈치챘다.

-저기 두 사람. 좀 많이 가까워진 것 같지 않아요?

-으음. 같이 일하다 보면 당연히 친해지는 거 아닌가?

-아뇨. 그냥 친해진 수준이 아닌 것 같아요. 뭔가 눈빛이 깊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슈미르와 은율이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럽게 나를 포함한 다른 농장 식구들도 약간의 의심을 품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중.

집정관의 직책을 아크 심판관에게 넘겨주던 날에 사건이 터졌다.

그날은 집정관 직책을 넘겨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슈미르의 감시관에서 은퇴하는 동시에, 우르키가 견습에서 정식 감시관으로 임명되는 날이었다.

정식 감시관으로 임명된 우르키는 아슈미르 대신 집정관의 보좌 임무를 맡게 됐다.

임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농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

모두가 아쉬워하던 그때.

-나도 따라갈래!

갑자기 릴리아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처음에는 주변에 있던 모두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릴리아는 살짝 눈물 젖은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우르키가 떠나면, 나도 따라갈 거야!

그러면서 릴리아는 우르키에게 달려가 쏙 안겨들었다. 처음엔 눈치를 보던 우르키도 결국에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설마설마했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벌어지자. 애틋한 두 연인을 제외한 모두가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 제대로 충격받은 안드라스의 표정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지었다.

“아직도 안 믿기네요. 두 사람이 저런 관계가 될 줄은…….”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게 젊음의 좋은 점 아니겠는가?”

“릴리아는 천족들 사이에서 잘 지내나요?”

“잘 지내다마다. 씩씩한 성격 덕분에 주변 천족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다네. 물론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아예 없지는 않지만, 본인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군. 거기다…….”

“……?”

아크 집정관은 나를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위대한 집정관이 직접 인정한 연인이라는 소문 때문에 아주 인기가 좋아.”

“그 ‘위대한 집정관’이라는 게 설마 저를 말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끊어졌던 집정관의 명맥을 잇고, 불안정했던 차원의 균형을 원래대로 되돌리지 않았는가?”

“이제 아크 님에게 집정관 자리를 넘겨드렸으니. 그 부담스러운 수식어도 함께 가져가시죠?”

“위대한 선배님의 영광을 어찌 하찮은 후배가 넘보겠는가? 허허허!”

“하하하!”

아크 집정관의 장난스러운 표현에 나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장난기 가득하던 아크 집정관의 눈동자에 조금씩 진지한 기색이 맴돌았다.

“정말 고맙네. 자네가 없었다면 이렇게 편히 웃을 수 있는 일이 없었을지도 몰라.”

“뭘요. 저도 주변의 도움이 있어서 할 수 있었어요.”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자네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다네. 인생 끝자락에 자네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나에게는 최고의 행운인 것 같아. 정말 고맙네.”

그는 앉은 자세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네.”

그의 진심이 담긴 인사에 나는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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